홈플레이트의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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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주
작품등록일 :
2024.08.2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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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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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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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포수 (3)

DUMMY

“휴··· 겨우 탔네.”


지하철에 탄 임샛별은 한숨 돌렸다.

이대로면 경기 시작 전 고척돔에 도착할 터.


눈 돌아갈 정도로 바빴으나 홈 직관은 도저히 놓칠 수 없었다.

임샛별에게 야구는 취미 이상의 존재가 된 지 오래니까.


솔직히 기쁜 날보단 개빡치는 날이 훨씬 많았으나 이겼을 때의 도파민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요새 피닉스는 야구 잘했다.

무기력하게 안 졌고, 상위 팀 상대로도 끈질기게 싸웠다.


4월만 꼬라박지 않았어도 중위권 싸움했을 텐데.


“···오늘 상대 파이터즈지?”

“어.”

“최근 어떻더라. 잘하냐?”

“아니. 선발 무너져서 죽 쓰는 중.”


임샛별은 귀를 기울였다.

복장을 봐선 한 명은 피닉스 팬이었고 또 한 명은 그냥 친구로 보였다.


인기 팀 카이저스나 나이츠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구 팀인 호크스나 돌핀스도 아닌 같은 피닉스 팬.


피닉스 팬은 멸종위기 동물보다 보기 어려웠기에 임샛별은 속으로 반가워했다.


“피닉스 잘한다면서? 왜 아직 9위냐?”

“낙지 새끼가 꼬라박아서.”

“누군데? 전 감독?”

“어. 그 새끼가 라인업만 멀쩡하게 굴렀어도 지금 7위나 6위였다.”


인정.

나간 놈 욕하긴 싫은데 석낙경은 인간 이하의 그 무언가였다.


만약 그 인간이 눈앞에 있었다면··· 아니 참자. 비루한 면상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인생에 마이너스였다.


“그래서. 새 감독은 잘하냐?”

“어. 딱 승률 5할이다.”

“5할? 괜찮은데? 용병술이 좋나? 아니면.”

“뭐··· 이것저것 있는데.”


남자는 숨을 고르더니 단박에 말했다.


“강마루. 걔가 팀 바꿨어.”


그 말에 임샛별은 숨을 멈췄다.


“그 신입 포수? 힘 죽이던데.”

“어. 근데 성적이 다가 아니거든.”

“그럼 뭔데.”

“투수. 투수를 편안하게 해줘.”

“몸에서 뭐 안정제라도 나와?”


남자는 웃었다.


“투수란 놈들. 하나 같이 제멋대로거든. 내가 저번에 말했지? 우리 팀 에이스, 엄살 하나 기똥차거든.”

“소주환?”

“응. 그걸로 끝이게? 성깔 지랄 맞은 놈들, 이상한 루틴 들먹이는 놈에 개복치 같은 멘탈 가진 놈까지. 아주 뭐, 환상적이야. 환상적.”


남자는 말을 이었다.

그런 놈들이 강마루만 만나면 좋아한다고.


“실제 투수들 성적도 좋아지고 있고. 한 번 봐봐. 야구 잘하는데 또라이라서, 보는 맛도 있어.”

“예를 들면?”

“첫 인터뷰 때 자기 여친 자랑했어. 아직도 기억난다. 명원대학교 문예창작과 1학년 임샛별.”

“크크크. 진짜? 그놈 물건이네.”


임샛별은 고개를 숙였다.

아 정말··· 강마루 이놈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어쨌든 재밌는 놈이니 봐봐. 설레발이면 설레발인데, 난 강마루가 몇 년 안에 MVP 먹고 메이저 간다고 본다.”


MVP와 메이저리그.

그 말에 임샛별은 곰곰이 생각했다.


콧물 질질 흘리던 동갑 남자애는 어느샌가 프로에 갔고 팀 중심에 올라섰다.


사이가 멀어진 건 아니었다.

지금도 강마루는 매일 연락했고 원정만 가면 선물이라며 이것저것 보냈다.


그저··· 초조했다.

나만 멈춰 있는 거 같아서.


학과 생활도 충실했고 시험 성적도 좋았고 학보사도 충실히 다녔다.

근데 강마루랑 비교하면 어떨까? 당연히 후자가 압도적이지 않을까?


‘아니. 이러지 말자.’


임샛별은 숨을 골랐다.

걔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는데 이러면 안 된다.


이러면 누나로서 할 말도 없다.

강마루는 강마루, 나는 나다.


“···그러고 보니.”

“?”

“너희 주장, 오늘 복귀했다며?”

“아 맞다.”


그 말에 임샛별도 라인업을 확인했다.


‘······어?’


임샛별은 깜짝 놀랐다.

하용범이 복귀했는데도 강마루가 선발이었으니까.


***


서울 피닉스 대 인천 파이터즈 고척 경기.


라인업이 발표되자 기자들은 물론이고 팬들 모두 깜짝 놀랐다.


선발 맷 라이언 우투우타


1. 도규철 중견수 우투좌타

2. 황금민 유격수 우투우타

3. 애드리언 킹 지명 좌투좌타

4. 배선호 좌익수 우투우타

5. 강마루 포수 우투우타

6. 공정태 1루수 좌투좌타

7. 양이준 3루수 우투우타

8. 문유식 2루수 우투좌타

9. 백성균 우익수 좌투좌타


국가대표 포수 하용범이 복귀했는데도 강마루는 선발로 나왔다.


“부상 덜 나았나?”

“설마. 회복 안 됐는데 왜 올려? 급한 것도 아니잖아.”


족저근막염 특성상 지속적인 관리는 필수.

하지만 복귀 첫 경기부터 안 나올 이유도 없었다.


“뭐··· 강마루 잘하잖아. 장타도 좋고. 하용범 나이 생각하면 강마루 박고 키워야지.”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하용범이잖아.”


선수들도 속으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주장이 복귀했는데 마루가 선발?

주장님이 순순히 자리를 넘겼나?

아니면 싸웠나?


궁금했으나 물어보긴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배선호는 하용범에게 말 걸었다.


“자.”

“이게 뭡니까?”

“뭐긴 뭐야. 음료수지. 바통 대신이다.”


배선호는 하용범 대신 임시 주장을 맡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그런 말은 얼굴 좀 풀고 하면 안 되냐? 내가 뭐 죄지은 것도 아니고. 어쨌든.”

“?”

“괜찮냐?”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몸은 괜찮냐?

그리고 선발 아닌데 괜찮냐고.


하용범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결과만 고려했을 뿐입니다.”


***


오늘 내 파트너는 맷 라이언이었다.

에고 강하고 성격 더러운 외국인 1선발.


첫인상부터 죽여줬다.

그 당시 주장님과 마운드에서 싸웠으니까.


그 뒤에도 몇 번 합을 맞췄으나 틱틱거리는 건 여전했다.


“마음에 안 드는군.”

“뭐가.”

“어제 그놈. 그냥 고소할까?”


통역한테 들었는데 어제 SNS에서 팬과 가벼운 설전이 있었단다.


지난번엔 해바라기 씨 맛이 변했다며 투덜거리더니 이번엔 팬과 싸움.

암만 봐도 그냥 애새끼였다.


“인스타 접으라고 했잖아.”

“왜? 공식 계정도 아니고 내 개인 계정인데? 아니 그보다 이 나라 놈들은 야구에 목숨 걸었나? 왜 이렇게 지랄이지? 야구 지면 지구 멸망하나?”


나는 빵 터졌다.


“그분, 아이디 기억해?”

“물론. 마운드에 크게 적을까?”

“아니 그건 반대고 대신.”


나는 미트를 가리켰다.


“이분이 그분이라 생각하고 던져.”

“···그놈이 퍼킹 코리언? 좋아. 개새끼 오늘 넌 죽었다.”


마운드에 올라간 라이언은 초구부터 냅다 한가운데 던졌다.


뻐엉!!!


-152!!! 152.7입니다!!

-초구부터 152! 오늘 컨디션 좋은데요?


짜릿짜릿 울리는 손과 귀를 뻥 뚫는 미트 소리. 나는 선두 타자 임상원을 슬쩍 본 뒤 같은 구종을 요구했다.


딱!

파앙!!


2구는 파울이고 3구는 살짝 빗나간 볼.

파이터즈도 그렇고 임상원도 그렇고 스몰볼이 주특기이나 이 정도면 할 수 있었다.


‘힘 있게 가자. 또 포심!’


가운데서 미트를 펼치자 맷 라이언이 씩 웃더니 팔을 휘둘렀다.


뻐어엉!!!


-삼진 아웃!! 맷 라이언이 임상원을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힘 좋네요! 힘 좋아요! 포심만 연속 네 개 던져서 삼진! 오늘 파이터즈 타자들··· 쉽지 않겠는데요?


이걸로 멈추지 않았다.

2번 타자 김민관도.

3번 마이크 디포트도.


맷 라이언은 누군갈 죽일 기세로 냅다 포심만 던졌다.


뻐엉!

뻥!!

뻐어엉!!!


11구 모두 포심에 3타자로 이닝 끝.

라이언의 기백 넘치는 피칭에 다들 박수로 화답했다.


“라이언! 라이언!! 라이언!!!”

“오늘은 이름값 좀 하네! 씨발 진작 그리 던지지!!”


본인도 만족스러웠는지 슬쩍 웃으며 다가왔다.


“이거면 그 새끼도 하느님 곁에 갔겠지?”

“응. 근데 라이언.”

“?”

“혹시 매일 싸울 생각 없어?”

“······나도 나지만 너도 정신 나갔군.”

“그러니 너랑 놀고 있잖아.”

“미친 새끼.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내 등을 가볍게 치는 라이언.

아프긴커녕 기분 좋았다.


***


당연한 얘기지만 구종 하나만 던질 순 없었다.

너클볼이라면 몰라 포심 일변도의 피칭은 막힐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잔뜩 흥분한 라이언 상대로 기조를 바꿔봐야 알아들을 리도 없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야 했다.


따아악!!!


-아! 타구가! 타구가!! 넘어갔습니다!!! 솔로 홈런!! 인천 파이터즈가 1대0으로 앞서갑니다!!!


중심도 아니고 하위 타순에서 한 방.

나는 마운드로 올라갔다.


“어때. 정신 차렸어?”

“···미친 그러면.”

“어. 내가 말해도 듣는 척도 안 했을 거 아냐.”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무는 라이언.


“한국에 이런 말이 있거든?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정신 차리는데 솔로 한 방이면 싸지. 안 그래?”

“······망할. 알았다.”


2회 초 2사 1 : 0.

한 점 줬으나 처음부터 시작한단 마음으로 집중했다.


60|60|50|55|60

순서대로 포심, 커브, 슬라이더, 제구, 총합.


역시 예상대로였다.

숫자는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주환이 형은 50이었던 체인지업이 55로 올라갔다.

맷 라이언은 55였던 포심이 60으로 올랐고.


몰래 연습했나?

아니면 단순히 컨디션이 좋아서?


하루는 궁금해 주환이 형에게 물었더니 이런 말을 들었다.


‘오, 역시. 죽어라 연습했다. 죽어라!’

‘······거짓말이죠?’

‘흐흐흐. 글쎄. 어떨까?’


형은 세상에서 제일 신뢰 안 가는 표정으로 흘려 넘겼다.


주환이 형과 노력이라니.

전혀 안 어울리는 단어지만 나는 왠지 정말로 연습했을 거라 봤다.


형의 본심을 들으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어쨌든.

주 구종인 커브와 슬라이더를 섞으며 파이터즈 타자들을 상대했다.

위닝샷은 당연히 포심이었고.


딱!


-타구가 위로 떴습니다! 2루수 글러브 속으로!! 아웃! 3회에 이어 4회도 무실점으로 막아냅니다!

-홈런 한 방에 흔들릴 줄 알았는데 잘 끌고 가네요.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강마루 선수죠. 강마루 선수. 적재적소에 정말 잘 끊어주고 있습니다.


파이터즈에게 한 점 더 줬으나 라이언의 공엔 힘이 있었다.

커브도 잘 떨어졌고 슬라이더도 손에서 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포심이 정말 좋았다.


뻐어엉!!!!


-152.6!! 맷 라이언! 위기에서 탈출합니다!! 탈삼진 8개째!!!


라이언의 호투에 타자들도 힘을 냈다.

6회 말, 처음으로 찾아온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따악!

딱!!


순식간에 3안타를 몰아쳐 동점을 만들었고, 킹과 배 선배 또한 볼넷과 몸에 맞는 볼로 출루했다.


그리고 타석엔 내가 들어왔다.


-투수 교체! 그리고 타석엔 강마루가 들어옵니다!

-위험해요. 위험해요. 위험합니다. 차라리 볼넷으로 내보내고 6번 공정태와 상대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1루가 채워져 있는데도요?

-네! 캐스터님도 아시···.


따아아악!!!!!


손에 맞는 순간 알았다.

이건 넘어갔다.


나는 오른손을 불끈 쥐었고 고척돔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우와아아아!!!!”

“씨발! 마루야!! 강마루!!!”

“와. 어쩌면 좋냐. 나 평생 마루 팬 할란다.”

“······나도.”


0 : 2에서 순식간에 5 : 2.

경기는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


“마이볼! 마이볼!!”


크게 외치는 도규철 선배.

타구는 얌전히 들어갔고 라이언은 7회도 막아냈다.


“나이스 피칭!!”

“잘했다! 잘했어!!”


격하게 환영하는 선배들.

라이언은 7이닝 2실점으로 본인 몫을 100% 다했다.


-라이언 선수 오늘 정말 잘 던졌어요.

-그렇습니다. 이제 피닉스는 2이닝만 막으면 됩니다. 2이닝만.


투구 수도 91개.

당연하다는 듯이 불펜은 몸을 풀었고 코치님들도 수고했다며 라이언을 토닥였다.


습관이었다.

라이언은 많이 던져봐야 90개니까.

작년부터 올해까지 계속.


하지만 라이언의 표정은 묘했다.

불만보다는 안절부절에 가까웠다.


“저놈 왜 저래. 잘 던졌잖아.”

“놔둬. 괜히 욕먹을라.”

“하루 이틀 저러는 것도 아니잖아.”


조심스러워하는 선배들.

난 안다. 저놈이 왜 저러는지.


“라이언.”

“···뭐지.”

“지금 고민 중이지?”

“······뭐?”

“마이너랑 일본. 아니, 프로에서 완투승 한 번도 없었지?”

“······.”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너 더 던지고 싶잖아. 우리 9회까지 가보자.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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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달라진 위상 (3) +7 24.09.12 3,094 98 11쪽
18 달라진 위상 (2) +4 24.09.11 3,227 104 13쪽
17 달라진 위상 (1) +5 24.09.10 3,336 102 12쪽
16 탈꼴찌를 향해 (3) +6 24.09.09 3,337 103 12쪽
15 탈꼴찌를 향해 (2) +7 24.09.08 3,465 104 11쪽
14 탈꼴찌를 향해 (1) +3 24.09.07 3,508 97 12쪽
13 늘어나는 기회 (3) +7 24.09.06 3,509 98 12쪽
12 늘어나는 기회 (2) +5 24.09.05 3,664 92 12쪽
11 늘어나는 기회 (1) +7 24.09.04 3,777 107 12쪽
10 첫 선발 출장 (3) +4 24.09.03 3,982 101 12쪽
9 첫 선발 출장 (2) +6 24.09.02 4,108 105 12쪽
8 첫 선발 출장 (1) +3 24.09.01 4,270 96 12쪽
7 갑작스러운 데뷔 (3) +4 24.08.31 4,574 99 13쪽
6 갑작스러운 데뷔 (2) +8 24.08.30 4,745 111 12쪽
5 갑작스러운 데뷔 (1) +4 24.08.29 4,827 110 12쪽
4 1군으로 (3) +3 24.08.28 5,047 113 11쪽
3 1군으로 (2) +9 24.08.27 5,398 113 12쪽
2 1군으로 (1) +5 24.08.26 6,310 121 12쪽
1 프롤로그 +7 24.08.26 7,456 12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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