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레이트의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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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주
작품등록일 :
2024.08.2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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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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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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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선발 출장 (2)

DUMMY

노리고 친 건 아니었다.

아직 그럴 실력은 없었다.


그저 본능이었을 뿐이다.

오로지 살겠다는 본능.


따아악!!


배트에 맞은 타구가 우중간으로 향했다.

그 순간, 몸이 움직였고 주환이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뛰어! 강마루!!!”


정신없이 달렸다.

2루를 가리키는 1루 코치님과 얼굴을 찡그리며 비키는 내야수들.


타다닥.


2루로 뛰며 타구를 확인했다.

전진 수비였던 탓에 중견수, 좌익수 모두 공을 잡지 못했다.


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나는 2루를 돌아 3루로 뛰었다.


-강마루! 강마루! 2루를 돌아 3루로 뜁니다!!


슬라이딩 사인을 보내는 3루 코치님.

뒤를 보지 않아도 공이 날아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흡!”


외마디 비명과 함께 미끄러지듯이 3루에 손을 뻗었다.


순간 헬멧에 가려 보이지 않았으나 귀엔 들렸다.


“세잎!!”


3루심은 두 팔을 강하게 뻗으며 외쳤다.


-3루타!!! 3루타입니다!! 피닉스 신인 포수 강마루! 프로 첫 안타를 결정적인 순간에 뽑아냅니다!!!


“으아아아!!”

“됐다 씨발!!!!”

“마루야!! 강마루!!!”


거친 숨을 토해내며 일어섰더니 3루 코치님이 주먹을 내밀었다.


“나이스. 멋졌다.”


쏟아지는 칭찬 속에 시선을 돌렸더니 더그아웃 모두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지?

멋지게 폼 잡는 순간 다리가 휘청거렸다.


-하하하. 힘들 만하죠! 3루까지 전력으로 뛰었으니까! 교체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뻘쭘한 표정으로 괜히 다리를 두들겼다.

2 : 2 상황에서 나온 결정적인 장타에 프로 첫 안타까지.


정신은 없었으나 난 호흡을 골랐다.

홈에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9회 말도 막아야 했고.


***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최종 스코어 5 : 2.


마종수 선배는 마지막 삼진 볼을 내게 건넸다.


“우리 후배님 컬렉션 또 추가됐네?”

“앞으로 한 30년만 더 부탁드립니다.”

“이놈이 진짜··· 그냥 늙어 뒤질 때까지 해달라고 해라. 엉?”


우리는 웃으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계속되는 하이파이브와 격려, 격한 반응까지.


그런 가운데 감독님이 다가오셨다.


“강마루!”

“네! 감독님!”

“어때? 기분은?”

“정말, 정말 좋습니다! 그리고 감독님이 믿어주신 덕분에···.”

“그만. 그런 건 말이지, 기자들 앞에서 하는 거다. 하해와 같은 감독님 믿음 덕에 이길 수 있었다고.”


그만 참지 못하고 웃었다.


“어쭈? 웃어? 감독 앞에서?”

“결승타 쳤으니 봐주시면 안 됩니까.”

“건방진 놈. 그래 기분이다. 오늘까지는 봐주마.”


미소와 함께 떠나는 감독님.

말은 이랬으나 감독님이 나를 믿어주신 덕분에 첫 안타를 때릴 수 있었다.


그것도 결승 타점을.


“줄 서라. 도열해.”


현장을 정리하는 주장님.

순간 묻고 싶었으나 배 선배가 제지했다.


“일단 인사부터. 자.”


우리는 일렬로 섰다.

배 선배가 조용히 말했다.


“봐봐. 보여? 팬들 얼굴?”


팬들이 날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내 이름을 연호했고

또 누군가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명심해. 저 사람들, 네가 웃게 한 거다.”

“······.”

“어때? 기분은?”

“······좋아요. 정말.”

“야구, 열심히 해야겠지?”

“네!”


주장님 신호에 따라 우린 모자를 벗은 뒤 고갤 숙였다.


“잘했다!! 사랑한다!!!”

“피닉스 파이팅!!”

“앞으로 이렇게만 하자!!!”


쏟아지는 격려에 가슴이 뜨겁게 타올랐다.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행복했다.


***


“너무 늦게 들어가지 마라? 알겠나?”


주장의 당부와 함께 창원 드래곤즈 선수들은 퇴근했다.


홈 경기인데 5 : 2 패배.

더군다나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불금에 패배. 그것도 꼴찌 팀한테.


당연히 라커룸 분위기는 안 좋았고, 선수들은 조용히 경기장을 나섰다.


그 중엔 드래곤즈 마무리 투수 현대경도 있었다.


현대경은 고민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갈까 아니면 한잔할까.


후배들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했으나 딱히 내키지 않아 거절했다.


역시 술밖에 없나.

하지만 경기장 인근은 위험했다.

창동이나 오동동, 합성동도 마찬가지였다.


술 취한 마산 아재들이 한마디씩 거들 테니까.


옛날보다 전투력이 떨어졌다고 하나 아저씨들을 이겨낼 자신은 없었다.


‘···편의점이나 가자.’


주차장에 가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베테랑 3루수 권상열이었다.


“집?”

“네. 형은요?”

“나도.”

“형은··· 저쪽이지 않나요?”

“어찌할지 뻔히 보여서. 또 맥주 왕창 사서 들어가게? 차라리 소주 마셔라. 맥주는 탈 난다.”

“······형이 같이 가면요.”


두 사람은 결국 술집 대신 카페에 갔다.

배는 고팠으나 딱히 밥 생각은 없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마지막 스플리터?”

“네.”


9회 초 무사 1, 2루 원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던진 스플리터.

잘 떨어졌으나 강마루의 배트는 힘차게 돌았다.


“실투 아니야. 잘 던졌어.”

“그럼.”

“타자가 잘 쳤어. 타자가.”


8타수 무안타 신인에게 역전 3루타 맞고 패배.


야구란 그런 법이라고 넘기려 해도 뼈 아팠다. 잘 던진 공이라 더욱더.


“처음부터 이상했어요. 무사 1, 2루인데 신인한테 강공이라니.”

“조덕출 감독님이니까.”

“잘 아세요?”

“말로만. 피닉스 초창기 멤번데, 당시에 감독, 코치랑 많이 싸웠다고 하더라. 야구관 차이 때문에.”


오랫동안 미국에서 지낸 걸로 아는데··· 왜 그랬는지 알겠다.


“어. 여긴 찍히면 끝이니까.”


그래도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암만 미국물 먹은 감독이라도 그 상황에서 강공은 쉽지 않았다.


“그 신입이 마음에 들었나 보지. 이름이 강···.”

“강마루요. 강마루.”

“그래. 강마루. 붙어보니까 어때?”


덩치 크고 눈빛 좋다.

힘은 확실히 있어 보인다.


“그럼 포수 강마루는?”

“···포수요?”

“어. 지켜봤을 거 아냐. 주환이랑 뛰었으니까.”


현대경은 소주환을 존경한다.

남들은 이해 못 하나 그의 여유로움과 피칭 스타일을 닮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

“응.”

“하용범 선배보다 더 편안해 보이던데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너도?

그렇다는 말은.


“어. 주환이 웃더라. 나한테 안타 맞았는데도.”


6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선 권상열은 소주환의 체인지업을 때렸다.


“텍사스성 안타라 해도 평소 같으면 얼굴 구겼을 놈이 뭐가 좋은지 웃고 있더라. 네가 알던 주환이랑 다르지? 답은 간단해. 포수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현대경은 힘겹게 반박했다.


“비약 아닌가요. 그래봤자 신인인데.”

“그래? 너도 말했잖아. 용범이 형이랑 던질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고.”

“······.”


현대경은 투수다.

당연히 선호하는 포수가 있고, 별일 없으면 그 포수와 던지길 원한다.


“피닉스에 좋은 투수 많은 거 알지.”

“네.”

“만약··· 강마루가 팀을 대표하는 포수로 발전하면? 어떻게 될까.”

“······.”


권상열이 잔을 비우자 현대경이 말했다.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무슨. 우리 팀 애도 아닌데.”

“그럼 왜.”

“경계다. 경계. 싹이 나오면 짓밟아야지.”


또 저런다.

팀을 떠나 좋은 신인 나오면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늦은 밤 서울 시내의 한 술집.

사람들은 잔을 부딪치며 덕담을 나누었다.


“1학년, 글 잘 쓰던데?”

“그래. 혹시 따로 공부했어?”

“역시 과가 과라 다르네.”


쏟아지는 칭찬에 임샛별은 어쩔 줄 모르며 적당히 받아쳤다.


대학교 1학년.

임샛별은 고민 끝에 학보사에 들어갔다.


학과 수업에 피닉스 경기 관람까지.

이런 와중에 학보사는 지옥행이나 다름없었으나 들어갔다.


충실한 학교생활을 위해.

정확히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바보 동생도 야구장에서 힘내고 있으니까.


-무사 1, 2루! 무사 1, 2루입니다! 그리고 타석엔··· 9번 타자 강마루입니다!


흠칫.

모두의 시선이 TV로 향하는 가운데 임샛별도 아닌 척 고개를 돌렸다.


“야구?”

“카이저스나 나이츠도 아니고 피닉스?”

“왜요 선배.”

“피닉스, 인기 없잖아. 야구도 못하고. 사장님이 좋아하시나.”


임샛별은 속으로 외쳤다.


‘여기 피닉스 팬 있거든?! 그리고 야구 못한다고? 최근 5승 5패다! 5승 5패!’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으나 드러낼 순 없었다.


초구는 볼이고 2구부터 계속 파울.

그러자 어떤 선배가 말했다.


“감독이 명장병 걸렸네. 무슨 신인한테. 두고 봐. 무조건 삼진이다.”


9회 초 무사 1, 2루.

원 볼 투 스트라이크.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따아악!!!


강마루의 타구는 우중간을 정확하게 갈랐다.


“아자!!!!!”


쾅,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서는 임샛별.

모두가 깜짝 놀랐다.


“···1, 1학년?”

“······샛별아?”


일행도, 다른 테이블 손님도 쳐다봤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아. 그게 말이죠. 저. 잠깐. 배가 아파서.”

“······.”

“맥주를 많이 마셨나 봐요.”

“······어, 그래.”


자리를 잠깐 비웠다 돌아왔으나 분위기는 여전했다.


“그, 미안. 피닉스 팬인 줄 몰랐네.”

“아뇨아뇨아뇨. 아니에요. 괜찮아요. 오히려 저야말로.”


필사적으로 항변하는 임샛별.

누군가 무심코 말했다.


“아, 생각났다. 한 달 전에.”

“한 달 전?”

“누가 떡 돌렸잖아.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분명 강마루라고.”

“······아.”


다시 한번 쏠리는 시선.


아, 과연, 음···.

다들 말은 안 했으나 무언가 깨달은 듯한 눈빛이었다.


임샛별의 머리는 빛처럼 돌아갔다.


‘아니에요. 그냥 아는 동생이라.’

‘신경 안 써도 돼요. 쟤는 바보라서.’

‘사람 잘못 봤어요. 그냥 동명이인이에요.’


뭘 꺼내도 안 먹힐 게 뻔했다.


맥주가 술인지 물인지 모르겠고

치킨이 고기인지 고무인지 헷갈리기 시작할 때쯤,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5 : 2로 피닉스 승리.

창원 원정에서 거둔 뜻깊은 승리였다.


만약 집이었다면 환호했을 텐데.

뭐가 뭔지 본인도 헷갈리는 가운데 오늘 결승 타점의 주인공 강마루가 카메라 앞에 섰다.


-강마루 선수 우선,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 이겨서, 정말 기쁩니다!


“잘 생겼네.”

“목소리 좋다.”

“······.”


임샛별은 일부러 안 들린 척했다.


-우선 9회 초 상황부터. 무사 1, 2루에서 번트가 아니라 강공 사인이 나왔습니다. 기분은 어땠습니까.

-외야로 보내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외야라··· 떨리진 않으셨나요?

-네. 오히려 기대했습니다.

-···기대요?

-네. 안타가 없었으니까요. 만회할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멘탈 좋다.”

“이야···.”


-첫 안타가 3루타에 결승타··· 칭찬 많이 받았죠?


강마루는 고개를 끄덕인 뒤 술술 풀어냈다. 감독님, 코치님, 선배님들··· 모두가 칭찬해주셨다고.


그래서 정말 기분 좋다고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입니다. 지금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다들 생각했다.

부모님? 가족? 아니면 뭐, 할머니나 할아버지.


하지만 강마루의 대답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녀가 떠오릅니다.

-······그녀요?

-네.


강마루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명원대학교 문예창작과 1학년 임샛별! 보고 있지? 약속대로 나 안타 쳤다! 네가 응원해줘서 쳤어!


“우와아아아······.”

“······와.”

“······.”


모두가 임샛별을 쳐다봤다.


누군가 뭐라 했고, 누군가는 휘파람을 불었으나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제 이름대로 최고가 되어서! 하늘에 있는 별에게 다가가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함성 속 임샛별은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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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달라진 위상 (2) +4 24.09.11 3,229 10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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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탈꼴찌를 향해 (2) +7 24.09.08 3,467 104 11쪽
14 탈꼴찌를 향해 (1) +3 24.09.07 3,509 97 12쪽
13 늘어나는 기회 (3) +7 24.09.06 3,511 98 12쪽
12 늘어나는 기회 (2) +5 24.09.05 3,666 92 12쪽
11 늘어나는 기회 (1) +7 24.09.04 3,778 107 12쪽
10 첫 선발 출장 (3) +4 24.09.03 3,984 101 12쪽
» 첫 선발 출장 (2) +6 24.09.02 4,111 105 12쪽
8 첫 선발 출장 (1) +3 24.09.01 4,273 96 12쪽
7 갑작스러운 데뷔 (3) +4 24.08.31 4,575 99 13쪽
6 갑작스러운 데뷔 (2) +8 24.08.30 4,748 1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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