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미국을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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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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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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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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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검의 밤(3)

DUMMY

모든 인간에게는 우열(優劣)의 차이가 있다.

어떤 인간은 다른 인간에 비해 우월하고, 반대로 그 ‘다른 인간’은 ‘어떤 인간’에 비해 열등하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잘못되었다.


인간의 지능에 명백한 우열이 있을진대, 어째서 모두가 1인 1표라는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는가?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이끌고 계도하긴커녕 어째서 선거와 투표라는 불필요한 절차에 얽매여야 하는가?


‘다수’의 열등한 자가 ‘소수’의 우월한 자를 핍박하고 음해하도록 만들어진 공화정은 과연 존속할 가치가 있는가?


나치의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였고, 이에 따라 그들은 공화정을 내다 버리고 새로운 체제를 쌓아올렸다.


오직 최고의 두뇌를 가진 한 사람의 최고지도자가 민족을 이끌어야 하며, 일반 대중은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만 한다.

가장 우월한 자가 민족을 다스릴 때 그 민족은 영광의 길로 접어들 수 있으리라 믿는 이념.


이른바 지도자원리(Führerprinzip)였다.


이 이념에 따라 아돌프 히틀러는 무제한의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퓌러- 영도자(Führer)라 칭하고 대통령과 총리를 합한 자리에 올라섰다. 그들이 염원하던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지도자 중 최소한 둘은 달성된 셈이었다.


그러나 나치 이념에 따르면 퓌러란 그 대통령과 총리를 합한 것 이상의 무언가였다.

가장 우월한 이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전적으로 옳으므로, 헌법조차 그의 의지에 비하면 한낱 글자 쪼가리에 지나지 않았다.

열등한 자들이 만든 규율에 어찌 우월한 자가 얽매이겠는가?

그는 국가의 모든 시스템을 자유로이 다스릴 권한이 있었고 그것이 당연하며 옳은 일이었다. 적어도 나치당 내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진짜 히틀러가 국가를 완전히 통치할 수 있을까?


바이마르 공화국은 18개의 행정구역과 십수 개의 정부 부처, 그 아래에서 일하는 수백 수천 명의 관료들과 전문가들로 이뤄진 거대한 조직이었다.

그 말인즉슨, 저 아래에서 실무를 뛰고 있는 직원부터 시작해서 국가정책을 총지휘하는 장관급 관료의 업무까지 히틀러의 몫이라는 말이다. 지도자원리에 의하면.


당연히 못 한다.


월화수목금금금은 기본이었던 지옥불반도의 맛을 보고 온 나조차 그러라 하면 그냥 목을 매달고 말 텐데, 원본 히틀러는······ 그러느니 그냥 총통직 때려치우고 말지 않았을까.


그래서 여기엔 특별한 조항이 추가된다.


이른바 ‘상위 지도자’와 ‘하위 지도자’의 개념이다.

상위 지도자가 임명한 하위 지도자가 상위 지도자의 권위와 업무를 일부 나눠받는다는······ 말이 될 듯 말듯한 오묘한 개소리.


상위 지도자는 아돌프 히틀러다.

히틀러는 무제한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원하는 대로 그 권위를 나눠줄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히틀러의 권위를 나눠받은 것은 괴벨스와 괴링을 비롯한 히틀러의 최측근들이었고, 이들의 권위는 또 그들의 아랫사람들에게로 내려가고 내려가며 일종의 피라미드형 권력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내가 그 권위를 거두어간다면, 독일 민족의 그 누구라도 정치권력을 잃고 실각해야만 했다.

괴링, 힘러, 괴벨스, 룀 등등은 내게 권위를 ‘빌려간’것이지 스스로의 권위를 휘두르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리고 당연히, 세상은 이론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가령 내가 지금 룀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한다 쳐보자.


‘룀, 이제 내가 자네의 권위를 거두겠네. 자네는 더 이상 돌격대를 다스릴 수 없네. 자네의 권위를 받은 모든 사람도 더 이상 돌격대에 머무를 수 없으니 전부 내쫓게나.’


그럼 룀은 얌전히 지휘봉 반납하는 대신 내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미쳤냐?’


이게 장검의 밤이 벌어진 이유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하물며 돌격대를 거느린 룀이라면?

아니, 사실 괴링이나 힘러 같은 충성파들이라 해도 과연 저 말을 순순히 들을지는 의심스럽다. 그 절대권력의 스탈린조차도 대놓고 절벽에서 밀어버리는 대신 권위를 조금씩 깎아내리는 식으로 숙청을 진행해야만 했던 걸 보면.


그리고 나는, 일단 장검의 밤을 일으키기에 앞서 이유를 확실히 정립하고자 했다.


“이 나라의 대통령직은 내가 계승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저도 물론 그에 동의합니다만, 음, 군부 내의 여론을 고려해야 하는 처지라 말입니다.”


힌덴부르크가 죽고 나면 그 대통령 자리는 내가 이어받아야 한다. 그래야 총통직에 오를 수 있으니까.

문제는 그러기 위해선 군부의 지지가 꼭 필요하다는 거다. 헌법에 따르면 군대의 통수권을 대통령이 가지고 있기 때문.


한데 군부 내 친나치 파벌 대표격에 드는 블롬베르크조차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내 생각보다 반나치 여론이 제법 심한 듯했다.


그리고 그 이유 대부분은 룀의 돌격대겠지.

군부를 아예 해체해버리자는 주장을 하는 인간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데 나치당을 좋게 보려야 좋게 볼 수가 없다.


나는 그냥 툭 던졌다.


“SA가 문제인가?”

“···이미 들으셨나 보군요.”

“못 듣는 게 이상한 일 아닌가. 룀 그 개자식이 하는 말이 틀렸다는 건 나도 알고 당 내 고위관료는 다 아는 일이네.”

“그렇다면···.”


아무래도 대놓고 돌격대 좀 죽여달라고 말하긴 그랬는지 블롬베르크는 살짝 초조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걱정 마라. 네가 원하는 대답 해줄게.


“며칠만 지나면 돌격대는 더 이상 군부에 대해 뭔가 말을 늘어놓을 처지가 아니게 될 걸세. 장담하지.”

“그렇게만 된다면 군부는 물심양면으로 총리 각하를 지지할 것입니다.”


정말 그럴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대통령직 계승 정도는 눈감아줄 확률이 높겠지.


룀을 숙청하지 않고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으니, 이제 다음 차례로 넘어갈 때다.


.

.

.


장검의 밤 전날.


제법 오랜만에 열린 나치당 회의의 주제는, 당연히 룀의 숙청이었다.


힘러의 살생부를 체크하고, 장검의 밤 당일에 어느 순서로 어디어디를 습격해서 마비시킬지 등등.

구체적이고 자세한 계획이 힘러, 하이드리히, 괴링, 괴벨스, 나 사이를 오갔다. 사실 괴벨스야 그냥 룀이 나쁜 새끼라는 선동만 해주면 되니 여기 낄 이유는 없긴했지만 본인이 아득바득 우겨서 꼈다. 본인 없는 곳에서 무슨 얘기가 오갈지 두렵겠지.


나도 살생부를 체크하던 도중, 이상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파펜?”


프란츠 폰 파펜.

보수파 정치인.

힌덴부르크의 아첨꾼. 나치당의 계획에 어느 정도 협조하여 현 내각에서 부총리 자리를 꿰찬 인물. 그러나 나치당원이 아니기에 현시점에서는 거의 실권을 잃고 뒷방 늙은이 신세.


그런데 이놈 이름이 왜 살생부에 적혀 있냐.


내가 쳐다보자 힘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파펜이 당에 반기를 들려 한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반란인가?”

“어찌 보면 그렇게 해석되겠군요. 사람들을 불러모아 자신이 총리가 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하여간 이놈의 나라에는 제 명을 재촉하는 인간이 왜 이렇게 많을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파펜의 주변인물을 위협하는 정도로만 하지.”

“하지만ㅡ”

“아직 힌덴부르크가 죽지도 않았는데 파펜을 죽여버릴 순 없네. 여하튼 그의 총애를 받는 건 내가 아니라 파펜이니까.

만일 힌덴부르크가 파펜을 애도하며 나선다면 여론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으니, 정 죽이고 싶거든 내가 대통령직을 받아낸 다음에 다시 논의하는 걸로.”



나는 힘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파펜의 이름 위로 두 줄을 그었다.


보아하니 힘러랑 하이드리히가 파펜을 죽이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내가 강경하게 나오니 둘 다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 거론된 인물들은 나는 잘 모르는 인간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름은 안다. 하지만 원 역사에서 어떤 성정이었는지 어떤 업적을 세웠는지 등등은 잘 모른다는 뜻이다.

그레고어 슈트라서, 쿠르트 폰 슐라이허 등등.

슐라이허야 나도 아는 반나치 인사고, 슈트라서는 옛 나치당원이었다가 탈퇴했는데 지금은 어디서 뭐 하고 지내는지 모르겠네.


앞으로도 영원히 모르게 되겠지만.


토의가 끝나고, 나는 룀에게 전화를 걸었다.


“룀? 잠깐 통화 가능한가?”


-아돌프? 갑자기 무슨 일이야?


“업무 중에 돌격대 관련 안건이 나와서 말일세. 지금 어디인가?


-나야 뭐 뮌헨에서 놀고 있지. 여기 맥주집이 새로 열었는데, 맛이 기가 막혀. 자네도 나중에 한 번 와보게.


“그렇군. 내일 돌격대 관련 회의가 잡혔는데, SA간부들 전부 데리고 베를린으로 올 수 있겠나?


-얼마든지. 돌격대 예산 깎겠다는 소리만 아니면 다 좋아.


“······그건 걱정 말게.”


앞으로는 돌격대에 예산을 배정해 줄 필요도 없을 테니까.

목구멍에서 맴도는 말을 고이 삼키고, 시끄럽게 떠드는 룀의 장단을 적당히 맞춰준 뒤 전화를 끊었다.


“어떠셨습니까?”


뒤를 보니 하이드리히가 있었다. 나는 잠시 침묵한 후 대답했다.


“계획에 지장은 없을 것 같네.”

“다행입니다.”


다행이라.


생각해보면 지난 1년 동안 내가 룀을 좀 피하긴 했어도 한 번도 안 만나진 않았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실감한 건, 룀이 히틀러와 정말 친하게 지냈다는 사실. 당장 나를 아돌프라 부르는 사람도 룀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끽 해야 에바 브라운 정도?

근데 2월쯤에 연애고 나발이고 다 집어던져서 브라운은 이미 독일 어딘가의 평범한 시민으로 신분하락한 상태니 사실상 룀밖에 없었다.


잠시 그 사실을 음미하다, 회의 해산을 선언했다.

어차피 고민해봐야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

.

.


“준비는 다 끝났나?”

“물론입니다!”


SS 마크를 박아놓은 철모를 쓴 힘러가 우렁차게 외쳤다. 아니, 지금 비밀 작전하러 가는데 이렇게 목소리를 크게 내면ㅡ


“게슈타포도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번에는 음침한 검정색 코트를 걸친 하이드리히가 가볍게 경례를 올리며 말했다. 다행히 목소리가 작았다.


나는 둘 모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양측의 뒤로 기관단총을 든 수십 명의 친위대원과 게슈타포 요원들이 사열해 있었다. 붉고 검은 제복의 행렬이 눈을 어지럽혔다.


뒤를 보니 갈색 제복을 입은 돌격대원 하나가 이들을 보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하이드리히의 표정이 굳어졌고 게슈타포 요원 몇몇이 그를 향해 달려 나갔다.


뭐라 한마디 하려다 관두고, 그냥 하늘을 향해 권총을 한 발 쏘아 올렸다.


타앙-!


그 소리와 함께, 검고 붉은 파도가 갈색 건물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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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정상화(2) 24.09.08 175 10 13쪽
8 정상화(1) 24.09.06 186 10 11쪽
7 공화국 최후의 날(3) 24.09.05 182 6 10쪽
6 공화국 최후의 날(2) 24.09.04 187 8 11쪽
5 공화국 최후의 날(1) +2 24.09.03 198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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