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미국을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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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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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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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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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최후의 날(3)

DUMMY

2월 27일.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국민과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긴급명령’에 서명했다.


헌법에서 개인과 시민의 자유를 명시하는 몇 개 조항을 무시할 수 있는 권리.


-개인의 자유

-보도의 자유

-의견 표명의 자유

-통신의 자유

-재산권

-집회와 결사의 자유


손짓 한 번에 6천만 국민이 사는 나라의 기본권이 휴짓조각으로 전락했다.


법적 제약을 뛰어넘은 권리의 사용.

히틀러는 이에 대해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공산당의 폭력 행위에 대한 방어 조치”라고 말했다.


나치당은 이제 ‘심각한 치안 교란’을 야기하는 무수한 범죄에 사형 판결을 내릴 권리를 얻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대로 되었다.

단 며칠만에 공산당의 모든 간부들이 체포당했다. 공산당의 정치깡패들은 ‘스스로’ 물러났으며, 공산당 당수는 당의 해산 명령에 서명했다.

물론 그것이 진짜 서명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당수 텔만이 하룻밤 새 증발해버렸는데 증명해줄 사람이 누가 있겠나.


“깃발을 높여라! 대열을 단단히 갖추어라!

돌격대가 행진한다, 조용하고도 확고한 걸음으로

적색 전선과 반동분자들에게 사살된 동지들도

영혼이 되어 우리의 대열과 함께 행진한다.”


돌격대는 더욱 가열차게 날뛰었으나, 신기하게도 선은 넘지 않았다.


본래라면 4천 명에 이르는 무고한 시민들과 의원들을 잡아 처넣으며 제 지지도를 스스로 깎아먹었을 나치는, 철저하게 공산당만을 규탄하는 전략을 취했다.

의사당을 불태운 것도 공산당. 이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것도 공산당. 시민들의 입에 빵이 들어가지 않는 것도 공산당이 사보타주를 일으켜서. 모든 것이 공산당 때문이었다.


그 결과, 사민당은 면책권을 얻었다.


‘의사당 화재에 대한 책임으로 공산당을 지목한다면 사회민주당을 더 이상 탄압하지 않겠소.’

‘······받아들이리다.’


분명 둘 다 좌익이었건만, 공산당은 죽었고 사민당은 살았다.

본래라면 발행 정지를 당했을 사민당의 신문을 비롯한 언론 기관들은 공산당을 규탄한다는 조건으로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차피 지금 가장 큰 위협은 공산당이다. 적을 만들려면 하나만 만들어야지, 독일 내 좌파 세력을 모조리 두들겨부수는 모양새를 취한다면 좌파 전부가 단합할 거야.’


히틀러의 생각은 간단했다.

독일 전체에 뿌리내린 좌파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결국 당장 부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그들에게 결코 공감할 수도 없고 동조할 수도 없는 세력, 공산당. 극좌파들.

나치 외의 모두를 탄압한다면 결국 나치 외의 모두가 뭉쳐 나치를 적대하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다. 공산당이 완전히 부서지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유화적으로 보여야만 했다.


바이에른 인민당과 중앙당 또한 그렇게 살아남았다.


공산당은 핀치에 몰렸다.

애시당초 그들에게 동료는 없었다. 기존 정당들을 전부 부르주아지 반동으로 규정한 세력을 누가 도울까? 이미 29년에도 그들은 사민당에게 밉보인 적이 있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세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경찰들은 괴링의 손아귀에 있었다. 돌격대는 공산당을 죽여버리고 싶어했다. 군부는 침묵을 지켰다. 다른 정당들은 그들을 외면하거나 도리어 규탄했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히틀러를 찾아갔지만, 총리 관저의 문은 결코 빨갱이에게 열리지 않았다.


공산당은 그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공산당이 무너지자, 당연하게도 그 잔여 세력들은 모조리 사민당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의 쓴맛만을 경험할 뿐이었다.


‘히틀러가 이 나라를 집어삼키려 들고 있소! 이대로 가면 놈들은 기어코 공화정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독재정을 수립할 거요.’

‘······히틀러 당수는 저에게 헌정 질서를 파괴하지 않겠다 약속했습니다.’

‘거짓말이군. 그럼 나치 놈들이 그대들 사민당과 손잡고 연정이라도 펼 것 같소? 정신들 차리시오! 다음 차례는 당신들이라고!’

‘이만 나가주십시오.’


그리고 벨스는 이들과 손잡을 생각이 없었다.

나치는 싫지만, 공산당도 혐오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아직 가슴속에 애국 두 글자가 남아있던 사민당으로서는 독일에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는 꼬라지를 보고 싶진 않았다.


공산당이 궤멸하자, 사회는 안정을 되찾는 듯 보였다.

거리에는 빨갱이들의 선전선동을 멀리하라는 포스터가 넘쳐났지만, 누구도 그걸 보고 독일의 좌익 세력을 떠올리지 않았다.

2월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각 정당들은 대개 비상계엄이 곧 해제되리라 여겼다.


“갈색 대대들에게 길을 열어라.

돌격대원들에게 길을 열어라!

수백만의 사람들이 희망차게 하켄크로이츠를 올려다본다.

자유와 빵을 위한 날이 밝아온다!”


그렇게 생각했다.


‘히틀러 총리? 이제 비상계엄을 해제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임시 의사당에서, 히틀러가 너무나 인자한 얼굴로 하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아직 의사당 방화를 주관한 세력이 남아 있는데, 그럴 수는 없지요.’


의사당 방화를 주관한 세력? 그건 공산당 아니었나? 대체 총리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히틀러는 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고, 그날 의회는 곧바로 파했다.


그리고 사민당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저희에게 우호적인 신문사들이 전부 폐업했습니다.’

‘잡지사에 나치 돌격대가 자리잡고 내용을 검열한다고 합니다.’

‘경찰이다! 지금 너희는 명백한 반국가적 집회를 열고 있다. 체포에 불응한다면 강제로 연행하겠다.’


전방위적인 공세.

사민당은 하루아침에 국가의 적으로 지정당했다.


사민당의 언론들은 하루아침에 움직임을 멈췄다. 프로이센주 경찰권을 장악한 괴링은 그 권한을 온몸으로 휘두르며 사민당의 집회에 온갖 깽판을 놓았다.


그들은 강력히 반발했지만, 이미 시간은 너무 오래 흘러 있었다.


탄압이 시작된 것은 3월 1일.

그리고 선거는 3월 5일.


딱 4일만 눈 감고 귀 막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 사민당이 대대적으로 반(反)나치 운동을 전개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그리고 나치는 두려울 게 없었다. 이미 총리의 권력과 기업가들의 자본까지 손에 넣은 상황. 이제 남은 것은 이 모든 것은 대대적으로 휘둘러 선거 운동에 나서는 것뿐이었다.


“사민당은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함으로서 이미 조국을 영국과 프랑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사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우리는 또 한 번 그들에게 굴복하는 겁니다!”

“중앙당을 뽑으시겠다구요? 여러분, 이 대공황을 일으킨 브뤼닝이 중앙당 출신입니다! 그가 표를 받는다면 우리는 두 번째 대공황을 목격하게 될 겁니다!”


지독한 네거티브 전략.

좌파의 두 거두라 할 수 있는 사민당과 중앙당은 끊임없이 물어뜯겼다. 대공황과 베르사유 조약의 원죄가 있는 한 그들은 결코 이 공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 전략에 잘 대응했냐 하면.


그럴 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지금 선거운동을 개시한다면 저 무뢰배들이 우리를 두들겨 패고 연행할 겁니다.”


창밖에 늘어선 돌격대를 보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한탄이 전부였다.

애시당초 대응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환경에서, 나치는 끊임없이 그들을 비방하고 조롱했다.


거대한 선거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 이건 선거전이라기보단 나치 홍보에 더 가까운가?


그들은 결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온갖 짓들을 저질렀다. 분명 유권자들에게 뇌물을 뿌리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었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국영 라디오가 히틀러와 괴벨스의 목소리를 전국 구석구석으로 전달했다.

스와스티카 깃발이 내걸린 거리에서는 돌격대원들이 행군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광장에선 쉼없이 대중 집회가 벌어졌다. 나치의 현란한 포스터들이 게시판을 도배했고, 밤이면 모닥불의 빛과 확성기의 소리가 동시에 나타나기를 수 차례.


마침내 선거가 개시되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48.3%

-국가인민당 10.8%


나머지는 더 볼 필요도 없었다.


나치와 국가인민당은 곧바로 결합하여 연정을 구성했다. 둘이 합쳐 원내 의석수는 60%. 약간의 무리수만 감수한다면 그들은 걸림돌을 치워버릴 수 있었다.


‘합법적으로’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의석수를 충당하는 데 성공하자, 바로 다음날 임시 의사당에서 법안이 발의되었다.


물론 그 사이 약간의 마찰이 있긴 했다.


‘우리는 히틀러 총리가 결코 헌정 질서를 파괴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 필요합니다.’


히틀러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약간의 침묵이 독일의 운명을 보여주는 듯했다.


‘물론이지요, 당수.’


그리고 그의 입에서 거짓말이 흘러나왔다.


국가인민당은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독일 내에서 나치당의 지지율은 절대적이었다. 나치당 단독으로 거의 과반수에 이른 상황에서 그들이 뭐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음날, 의회가 소집되었고.


‘ㅡ따라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은 정식으로 <민족과 국가의 위난을 제거하기 위한 법률>을 발의하는 바입니다.’


[수권법]


멸망은 아주 느리게, 그리고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사민당 당수 오토 벨스를 비롯한 몇 명이 감방에서 항의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들이 의회에 출석한다면 연정은 결코 3분의 2를 달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좌익 세력이 단결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돌격대가 크롤 오페라하우스를 둘러싼 시점에서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멍청이는 없었다.


몇 번의 무의미한 항의와 일관된 무시가 지나가고, 표결이 시작된다. 그리고 결과는 누구나 짐작했듯.


-찬성 458

-반대 91


압도적인 찬성이었다.


“와아아아아아!!”

“히틀러! 히틀러!!”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빨갱이는 물러가라!!”


독일 전역에서 퍼지는 환호 소리를 들으며, 히틀러는 한 손을 가볍게 흔들어주었다.


1933년 3월 6일.

마침내 바이마르 공화국이 멸망하고, 나치 독일이 그 서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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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정상화(2) 24.09.08 166 9 13쪽
8 정상화(1) 24.09.06 176 9 11쪽
» 공화국 최후의 날(3) 24.09.05 173 5 10쪽
6 공화국 최후의 날(2) 24.09.04 180 8 11쪽
5 공화국 최후의 날(1) +2 24.09.03 192 10 12쪽
4 완성을 위한 노력(3) +1 24.09.02 195 7 12쪽
3 완성을 위한 노력(2) +1 24.09.01 229 8 12쪽
2 완성을 위한 노력(1) +1 24.08.30 290 9 11쪽
1 암살 +2 24.08.29 344 1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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