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미국을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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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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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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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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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화(4)

DUMMY

요즘 총리 관저 사람들의 주머니가 묵직해지고 있다.


딱 봐도 뭔가 다른 게 들어 있을법한 사과 박스도 있고, 네모낳고 새카만데다 중량감 있어 보이는 가방을 히죽거리며 들고 다니기도 하고.

뒷주머니에서 두툼한 달러 뭉치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뭐······ 그럴 수 있다.


당장 의회가 실권 없는 장식품으로 전락해버렸으니, 독일의 최고 수뇌부는 뮌헨의 나치당 당사 아니면 총리관저이기 때문이다.

뇌물을 뿌리려면 둘 중 한군데로 가야 하는데, 요새 슬슬 뮌헨 당사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루돌프 헤스의 권력이 줄어들고 있으니 그냥 총리관저에 뿌리는 게 낫다 싶었겠지.


그러고 보니 헤스 그놈 요새 살짝 돌아버린 것 같던데.

나치당 설립과 부흥에 막대한 지분이 있는 공신이다 보니 함부로 대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은근히··· 무시받는 느낌이랄까.


나중에 한번 얘기해 봐야겠다.


아무튼, 요즘 저렇게 활발히 뇌물, 아니 로비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는 이유는 별것 아니다.


“각하. 이제 슬슬 재무장 관련해서도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괴링의 저 말처럼, 원본 히틀러가 내세웠던 독일군의 재무장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원래 독일군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군대가 철저하게 제한당한 몸이다.

육군은 장교 포함 10만 명 이내. 함선은 아예 건조 금지. 전차와 항공기를 비롯한 최신 무기도 개발 금지.


아예 군대 자체를 만들지 말라는 것.


군대가 없는데 ‘그럼 우린 어떻게 스스로를 보호하나요’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조약 자체가 독일이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냥 니들 죽으라는 의미의 조약.


그런데 독일이 과연 이 조약을 얌전히 받아들였을까?


1920년대 초, 프랑스군이 독일 공업지대 루르를 무단 점거한 사건이 있었다.

독일은 이 사건에 대해 프랑스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군대가 없어서다.


2년에 이르는 루르 점령 기간 동안 독일인 백여 명이 처형당하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가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

가령, 슐라게터란 독일 군인은 저항 조직을 이끌며 루르로 진입한 프랑스 열차에 사보타주를 가하다 프랑스군에 총살당했다. 그 다음에는 프랑스군 중령이 독일인 총에 맞아 죽었는데, 프랑스는 그 관을 운구하며 조의를 표하지 않는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물론 점령이 끝난 다음에도 사과나 보상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이쯤 되면 프랑스는 소프트 일제 아닌가 싶다. 영국이나 미국은 최소한 적국 민간인 강제노동은 안 시켰건만. 하긴 그러니까 21세기에도 유럽의 중국 소리 듣는 거겠지.


결과적으로 그 사건은 독일 경제를 개판냈고,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을 실추시켰다. 아무리 옛 적국이었다 한들 프랑스군이 루르 점령 동안 행한 일은 사실상 범죄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리고 독일에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20년대 독일은 너무 가난해서 재무장은커녕 당장 밥부터 먹고싶어요 흐엥 하는 신세였다. 1320억 마르크를 당장 배상금으로 갚아야 했으니까.

자연히 국방력 문제는 논외가 되었다. 밥 살 돈도 없는데 총을 어떻게 사? 너 밥 안 먹고 싸울 수 있어?


한데, 이런 사건이 터지니 독일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뚜렷하게 박혀버린 것이다.


‘아, 나한테 총이 없으면 저놈 총에 맞아 죽겠구나.’


물론 루르 건 말고도 재무장은 여러 요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베르사유 조약 다음으로 명징한 이유를 꼽자면 그게 이 루르 점령인 것.


결과적으로, 히틀러가 재무장을 외치며 집권한 건 필연이었던 셈이다. 독일인의 자존심을 살리고, 베르사유 조약과 지난 대전쟁의 복수를 하려면 재무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니까.


이번 각료 회의는 그래서 개최되었다.


“이름은··· 국방회의 정도로 하지 않겠나? 더 멋진 이름 있으면 말하고.”

“국방회의가 좋을 것 같습니다.”


5월 초, 나치 독일 최초의 군부 간 회동.

역사에는 아마 국방회의 정도로 기록되겠지. 원 역사에서도 이랬는진 모르겠다. 그래도 육군회의보단 국방회의가 낫잖아?


그나저나 이름, 진짜 있으면 말해도 되는데.

국방장관 블롬베르크(Werner von Blomberg)가 웃는 얼굴로 냉큼 대답하자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좋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셈인데 뭐라 할 수도 없고.


이 국방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몇 명 없었다.


아돌프 히틀러.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발터 폰 라이헤나우.

루트비히 베크.

베르너 폰 프리치.


블롬베르크는 국방장관이자 육군 내 고위인사였고, 라이헤나우는 최근 군부 개편 때 군수상 자리를 차지했다.

루트비히 베크는 참모총장인가 싶었는데 병무국장이란다. 그러고 보니 이 새끼 원역사에서 참모총장까지 올라가서 은퇴한 다음 내 뒤통수를 존나 쎄게 후려갈기려 들지 않나? 발키리 작전이라고.


다만 지금은 그냥 무뚝뚝하고 자기 일에 집중하는 전형적인 프로이센 군인상에 가까워 보였다. 나치에 대한 적대감도 없거나 감추는 것 같았고. 하긴 그러니까 친나치파인 블롬베르크가 저 자리에 앉힌 거겠지.


프리치는······ 당장은 별거 없는데, 블롬베르크한테 듣기로 나중에 제대로 된 자리 하나 만들어서 꽂아줄 작정이란다. 총사령관(예정)인 셈이다. 그게 언제가 될진 아무도 모른다만.


군부의 실세들이 총집합했단 뜻이다.


나? 나는 그냥 대빵이지.

정확하게는 이 국방회의 자체가 반쯤은 내 뜻을 군부 인사들에게 알리기 위한 장치인데 내가 빠지면 안 될 거 아냐.


아무튼 그렇게 최초로 열린 국방회의의 의제는 간단했다.


“재무장 계획 관련해서 슬슬 기틀을 잡아야 하지 않겠나?”


재무장.

그간 고작 10만 명 선에 머물러왔던 군대의 규모 자체를 다시금 확대하는 작업.


당연히 보통 일이 아니다.

군인이 수십, 수백만 명으로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일단 사람을 많이 모아야겠지. 징병제와 모병제 중 하나를 선택하면 기존 행정체계가 사람까진 모아 줄 거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군인은 사람 아닌가? 그들도 밥을 먹고 잠도 자야 한다. 그럼 일단 보급 체계를 정비해야 하겠지.

밥만 있으면 될까? 그럴 리가. 군대는 엄연히 전투 집단이고, 설령 단순한 소총병이라 해도 총과 탄약은 있어야 한다. 그러니 무기도 새로 사서 쥐여줘야 한다.

총만 있으면 되나? 아니지. 그럼 적 전차나 항공기랑은 어떻게 싸워. 전차도 만들고 항공기도 개발해서 배치해줘야 한다.

전차랑 항공기만 주면 되나? 훈련은 안 시켜? 파일럿이나 전차병이 어디 동프로이센 감자밭에서 감자 캐듯이 나오는 게 아니잖나. 따로 체계적인 훈련과정을 만들고 그들을 관리감독할 교관과 상급 지휘관들도 있어야 한다.


생각만 했는데도 골이 아프고 머리가 띵하네. 진짜 재무장 이거 사람 할 짓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나랑 블롬베르크가 밀실에서 쑥덕거리면서 날치기할 수준은 아득히 벗어나는 일감인 셈. 이걸 대충했다간 민간차량 징발해서 진격하는 국방군을 보게 될걸?


속으로 일하기 싫다를 여덟 번 정도 외치는 사이 회의가 시작되었다.


의례적으로 인삿말을 나눈 뒤, 라이헤나우가 돌직구로 내게 물었다.


“어떤 부분이 궁금하십니까?”


사실 육군 내 재무장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베르사유 조약으로 군대가 망한 그 순간부터 뒷구멍으로 시작했다고 봐야겠지.


프랑스나 영국이 독일 영토를 모조리 수색하고 다니는 게 아니니까, 적당히 숨기기만 하면 베르사유 조약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그러니 이 회의의 목적은 결국 내가 육군 내 재무장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하고, 육군은 타 부서와 협력하는 일에 내 권위를 빌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가장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전차. 보다 정확히 말하면, 육군 내의 차량화나 기계화와 관련된 모든 사항들.”


1호 전차에서 티거에 이르기까지, 독일이 개발했던 수많은 전차들. 프랑스를 6주 만에 무릎 꿇리고 베를린에서 모스크바까지 5개월 만에 주파했던 기갑사단!


독일이 전쟁 초반에 썼던 전격전의 신화. 그 창끝이었던 기갑부대에 나는······ 약간의 로망 같은 게 있었다.

돌이켜보면 2차대전사를 파고들었던 게 거의 10년이 넘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로망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건 3, 4호 전차와 티거 그리고 판터 정도지만, 뭐 전차로 유명한 게 독일 아닌가. 소련과 협력해서 전차 개발 터를 제공받은 적도 있으니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밀어주면 훨씬 더 대단한 걸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서 물어본 건데.


이건 뭐지?


“1호 전차?”

“현재 국방군 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트랙터 개발 계획입니다. 아, 트랙터인 이유는 구 협상국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이며 실제로는 전차 개발 계획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왜··· 전차에 주포가 없지?”

“1호 전차는 보병지원용 전차입니다.”


그러니까 시발 왜 주포가 없냐고.

내 표정이 점점 썩어들어가는 걸 캐치했는지 베크는 말을 덧붙였다.


“보병은 적 보병이 주요 교전 대상이며, 따라서 주포는 필요없습니다. 포에 맞든, 기관총에 맞든 사람은 똑같이 죽을 테니까 말입니다.”

“적 전차를 만난다면?”

“보병이 그럴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 혹시 훈련용인가? 내가 1호 전차 개발안은 안 보고 왔는데, 훈련용이라면 말이 되···지.”

“1호 전차는 엄연히 실전 투입을 상정한 전차입니다. 튼튼한 장갑으로 보병을 보호해주는 일종의 이동식 토치카 개념으로ㅡ”


그 뒤로 베크가 뭐라뭐라 설명했는데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미친놈들.


전차에 주포를 떼고 기관총을 붙여? 그냥 니들 거기 떼고 꼭지 두 개 더 붙이지 그러냐?


뒷목에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독일은 아직 갈 길이 너무나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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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화국 최후의 날(3) 24.09.05 173 5 10쪽
6 공화국 최후의 날(2) 24.09.04 180 8 11쪽
5 공화국 최후의 날(1) +2 24.09.03 192 10 12쪽
4 완성을 위한 노력(3) +1 24.09.02 195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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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완성을 위한 노력(1) +1 24.08.30 290 9 11쪽
1 암살 +2 24.08.29 344 1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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