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미국을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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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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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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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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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최후의 날(2)

DUMMY

고작 이십 년도 흐르지 않았건만,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 시간.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며 자리에 천천히 착석했다.


커튼을 닫고, 불을 모조리 끈 채 작은 촛불 하나만을 책상 앞에 올려둔다. 독일 제국의 마지막 원수는 그 촛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곧, 기억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

.

.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초점이 어긋난 사진처럼 흐릿할 뿐이다.

부모님, 형제자매들과 함께 포젠에서 뛰어놀던 시절. 군인이 되리라 선언하고 제국군에 스스로 입대하여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치르던 시절.

대대 부관을 거쳐 연대장에 오르고, 빌헬름 1세의 취임식에 참석하던 시절.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몰락하고, 빌헬름 2세가 즉위하고, 진급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공부에 매진하던 시절들.


흐릿하게 스쳐 지나가던 기억이 제대로 된 속도를 찾았다. 힌덴부르크는 조용히 그 필름을 재생했다. 그것은 그의 퇴역날이었다.


끝내 참모총장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퇴역하던 날.

그날은 이상하게도 선명히 떠올랐다. 이 기나긴 비극의 시작점이 그곳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자네를 추천했지만··· 폐하께서는 아무래도 몰트케가 낫다 여기시는 듯하네.’


슐리펜이 그를 찾아와 늘어놓았던 말들.

빌헬름 2세와 만난 뒤의 그는, 이미 반쯤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날은 더욱 늙어 보였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늙은이는 그에게 참모총장 자리 대신 다른 것을 물려주었다.


아니, 어쩌면 독일 제국 모두에게 남긴 유산이었다.


[슐리펜 계획]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본토로 진입한다는 거대한 우회기동 작전안.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동시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독일은 어떻게 군을 움직여야 하는가? 협상국과 동맹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독일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군대는 언제나 최악을 가정한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최악을 우리의 손으로 불러들인 걸지도 모른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14년이었다. 퇴역하고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 동맹국에서 급전이 날아든 것은.


제국 외교부는 그날부로 불야성에 시달렸다.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쑥덕거렸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세르비아 무장 조직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는 제국을 향한 명백한 도발이며, 제국은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독일인 중, 비스마르크의 어록을 떠올리지 않은 이는 드물 터였다.


‘작금의 유럽은 화약고다. 발칸에서 벌어질 저주받을 바보짓이 그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철혈재상이 옳았다. 세르비아는 역사에 다시없을 개짓거리를 저질렀다. 사라예보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은 황태자의 가슴을 정확히 꿰뚫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고 총동원령을 선포했다.

세르비아를 지키기 위해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선포했다.

협상국으로 묶여 있던 프랑스가 총동원령을 선포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지키기 위해, 빌헬름 2세는 총동원령을 선포했다.


슐리펜 계획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국의 가장 똑똑한 참모들이 설계한 열차 시간표가 실무진의 손에서 피어나기 시작했고.

수만, 수십만을 넘어 수백만 단위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철도 시스템은 무수한 장병들을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으로 실어날랐다.


개중에는 힌덴부르크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퇴역한 몸이었지만, 어디 프로이센에 진짜 퇴역이란 개념이 있던가? 군부 안의 끈끈한 네트워크는 전쟁 전문가이자 군부 원로를 다시금 호출했다.


그는 루덴도르프와 함께 동부 전선으로 향했다.


평생 다시 설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전장. 어릴 때는 프랑스에서, 이제는 러시아를 상대로 맞서 싸워야 했다.

동부 전선의 총지휘관. 그가 쓴 새로운 감투의 이름이었다.


그는 탄넨베르크에서 승리했다. 브루실로프 공세를 막아냈으며, 러시아 제국군의 여러 공세를 막아내고 끝내 브레스트 요새마저 함락시키며 러시아 영내로 진군해 들어갔다.


무한한 영광을 얻었다. 차르의 군대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으며, 징징대던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정예한 독일의 군대를 보고 끝없이 찬양가를 불러대기 바빴다.


그리고.


너무 오래 걸렸다.


그와 루덴도르프가 무수한 전훈을 기록하는 동안, 서부 전선은 끝 간 데 없이 파멸로 치닫고 있었다.

에리히 폰 팔켄하인, 그 멍청한 작자는 서부전선에만 집중하다 대국을 모조리 말아먹었다. 양면 전선을 치뤄선 안 된다는 것은 세 살배기 어린이도 아는 상식 아닌가? 러시아가 허수아비처럼 쓰러지고 있는데, 동부 전선에 지원을 더 하지는 못할망정 프랑스에만 집착하다니.


슐리펜 계획은 프랑스의 필사적인 저지에 가로막혔다. 신대륙이 참전하고, 대영제국이 끊임없이 유럽에 군대를 보내고 있었다.

제국군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협상군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예정된 파멸을 막으려 발버둥친 대가는 참혹한 멸망이었다.


에리히 폰 팔켄하인의 입지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서부전선은 패배, 패배, 패배만을 거듭했으며 그는 그 와중에도 서부전선 공세만을 고집했다.


동부전선의 영웅 힌덴부르크와 신임 참모총장 팔켄하인은 끊임없이 대립했다. ‘탄넨베르크의 영웅'을 적대하니 안 그래도 없었던 입지가 개미알마냥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입지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성공이었다.

팔켄하인은 공세를 계획했다. 서부전선에서 대승리를 거두고, 프랑스를 탈락시키면 역사에 남을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루덴도르프와 힌덴부르크 또한 발밑에 무릎 꿇릴 수 있으리라.


서부 전선을 무너뜨릴 최후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ㅡ


실패했다.


힌덴부르크는 제국의 실세가 되었다.

빌헬름 2세는 팔켄하인을 살려보려 발버둥쳤지만, 그게 될 리가 없잖은가. 베르됭에서 독일의 건아 수십만 명이 죽었다. 군부 내에서조차 왕따였던 팔켄하인은 그 시점을 계기로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다.


동부전선은 끝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서부전선은? 벨기에와 프랑스를 주요 전장으로 삼는, 그 끔찍하리만치 좁은 전역은?


그곳에서 독일군은 세 나라를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미합중국, 대영제국, 프랑스 공화국. 그 이름도 끔찍한 삼국협상.


될 리가 없었다.

루덴도르프는 어떻게든 그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힌덴부르크가 생각했을 때 슐리펜 계획으로 프랑스를 무너뜨리지 못한 시점에서ㅡ 어쩌면 팔켄하인이 동부전선을 빨리 종결짓는단 판단을 내리지 못한 시점에서 이미 패배는 예정되어 있었다.


킬 군항에선 반란이 일어났다.

반전주의자들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들쑤시고 다녔다.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은밀히 협상국에 평화협상을 타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협상국의 공세가 개시되었다.


이미 전쟁을 시작한 지 4년이 되어가는 시점.


독일은 더 이상 전선을 유지할 수 없었다.

방어자가 지극히 유리한 전장 환경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협상국의 교환비는 1대 1 수준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반전 여론이 들끓었다.

동맹국들이 하나하나 전장에서 이탈함으로서 독일은 식량 수급처조차 잃어버린 형편. 순무의 겨울이 모두를 잠식하고 있었다.


4년간의 전쟁은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다. 돌아오지 않는 가족에 분노한 시민들은 더 이상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분노한 병사들이 지휘관을 때려죽이는 군대. 독일 제국이 가진 전부가 낱낱이 까발려지고.


게임은 끝났다.


빌헬름 2세는 도주했다.


프랑스 콩피에뉴에서, 그들은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독일 정부가 붕괴했다.


각지의 주정부들이 궐기했으나, 주정부 안의 세력들 또한 끝없이 치고받으며 그 궐기가 멈췄다.


공산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파업에 열중했다. 그들은 노동으로 돈을 버는 대신 자본가들의 배를 갈라 돈을 꺼내기를 원했다.


광기와 혼돈이 독일 전역을 집어삼키는 와중, 베를린이 움직이며 질서의 포장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포장지였다. 종전 협정에 서명하기 전, 협상국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기 위한 움직임. 힌덴부르크는 그 포장지 제작자들을 경멸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건립된다.

누구도 바라지 않던 사생아가 태어났으니, 그를 따라 사생아의 숨통을 어떻게든 붙여놓기 위한 인큐베이터도 함께 고안되었다.

헌법. 법률. 의회. 대통령. 총리. 그 외 잡다하면서도 수많은 체제들이 튀어나왔다.


단 한번도 공화정이 존재하지 않았던 민족에게 공화정이 주입된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함이 모두의 몸을 감쌌다.


협상국들이 채택한 정치체제. 독일 전역의 혼돈을 가리는 공화의 포장지가 완벽하게 덧씌워졌다.


독일인들은 자신만만했다.

호엔촐레른 황가를 몰아냈고, 볼셰비키를 박멸했으며, 민주공화정을 수립했다. 그러니 설령 패전했다 한들 저 유명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의해 공정하게 보호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11월.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었다.


독일은 단치히를 빼앗겼다.

알자스-로렌을 빼앗겼다.

오이펜-말메디를 빼앗겼다.


빼앗기고, 빼앗기고, 또 빼앗겼다.


정치가들의 공허한 담론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프랑스는 독일을 죽여 버리고 싶어했고, 다른 두 협상국은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민주공화정? 황가 폐지?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독일이 그 짓을 하면 죽은 프랑스 장병들이 돌아오기라도 하나?


잃어버린 영토 위로 1,320억 마르크의 배상금이 책정된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지불할 수 있는 돈의 13배에 달하는 액수였다.


독일은 모든 것을 잃었다. 그들의 잘못도 아닌 전쟁으로, 그들이 시작하지도 않은 전쟁으로.


상실의 허무함 위로 분노와 증오가 덧대어졌다. 독일인들은 더 이상 프랑스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프랑스를 증오했다.

영국을 증오했고, 미국을 증오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파기한 소련도 증오했다.


증오는 곧 불길이 되어 독일을 덮쳤다.

신생 공화국은 너무나 위태롭게 흔들렸다.

공화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만들어낸 체제조차 그 체제를 거부하는 국민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리고 지금.


“의사당에 불 지른 새끼들이 저기 있다!”

“빨갱이들을 전부 잡아 죽여라!!”


갈색 제복을 입은 돌격대와.


“씨발, 저게 뭔 소리야?”

“우린 아무것도 안 했다고! 미친! 저 새끼들 온다!”

“프롤레타리아 만세! 사회주의 혁명 만세!! 혁명이여 영원하라!!”


붉은 제복을 입은 공산당이 부딪혔다.


누가 이기든 공화국은 무너지겠군.

힌덴부르크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띄우며 커튼으로 창밖을 다시금 가렸다.


촛불을 끄자, 방 안에는 어둠만이 남았다.


.

.

.


그날 독일 공산당은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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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정상화(2) 24.09.08 165 9 13쪽
8 정상화(1) 24.09.06 176 9 11쪽
7 공화국 최후의 날(3) 24.09.05 172 5 10쪽
» 공화국 최후의 날(2) 24.09.04 180 8 11쪽
5 공화국 최후의 날(1) +2 24.09.03 191 10 12쪽
4 완성을 위한 노력(3) +1 24.09.02 195 7 12쪽
3 완성을 위한 노력(2) +1 24.09.01 229 8 12쪽
2 완성을 위한 노력(1) +1 24.08.30 290 9 11쪽
1 암살 +2 24.08.29 344 1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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