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미국을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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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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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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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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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최후의 날(1)

DUMMY

1933년 2월 27일.


독일 국회의사당이 불타올랐다.


“불이야!!”

“빨갱이들이 의사당에 불을 질렀다!!”

“안에, 안에 사람은 없나? 남아있던 의원 없냔 말이야!!”


비명.

혼란.

괴성.


시뻘건 화마(火魔)를 배경삼아, 파멸의 전주곡이 가열차게 그 화음을 토했다.


허겁지겁 몰려드는 사람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들. 그저 화재를 구경하는 사람들. 어떻게든 불을 꺼보려 난리 치는 사람들.


무수한 인파 사이로 차 한 대가 섞여들고, 우리는 내려서 아주 잠깐 동안 그 풍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대체, 이게, 뭔······.”


활활 타오르는 커다란 건물은 그 자체로 사람의 혼을 빼놓았다. 기둥이 쓰러지고 천장이 낙하하며 거대한 소음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의사당은 불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다친 사람들이 어떻게든 건물 밖으로 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처참한 몰골로, 거의 다 타버린 옷과 붉다 못해 검어져버린 피부로.


그들은 반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제발 물 한 잔만······.”


털썩, 쓰러지는 사람을 보며, 모여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황 발작에 빠졌다.


운이 좋다면 기절. 운이 나쁘다면 다친 부위를 부여잡고 하염없이 의사를 찾아다니기. 운이 아주아주 나쁘다면 의사당 안 어딘가의 시체 신세.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건물은 드물다. 국가 소유의 거대 건물이라면 더더욱.


청소를 위한 잡역부도 있을 것이고, 뭔가 두고 온 게 있어 돌아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흰 가운을 걸친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고, 소방관들이 악을 쓰며 사람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물이 흩뿌려졌지만, 모닥불에 물 한 방울을 던진다 하여 불을 끌 수 있을 리 없었다.


이 전대미문의 재앙 앞에서, 나와 나치당의 최측근은 그저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대체,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저, 저도 잘ㅡ”


괴링은 옆의 비서를 붙들고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으며.


“유대인들이 마침내 움직이는 게 틀림없습니다! 당장 군경을 동원해서 모조리 잡아 족쳐야ㅡ”


괴벨스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완전히 패닉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들 침착하게.”


침착했다.


사실 당연한 것이,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은 나치에 관심 있는 21세기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일 아닌가. 날짜만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뿐이지 사건 자체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미치광이 공산주의자가 국회의사당을 불태운 사건.


그리고 이 사건을 잘 활용할 방법도 미리 생각해둔 상태였다.


나는 빠르게 지시를 하달했다.


“괴링. 자네는 지금 당장 프로이센 군경을 동원하게.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놈들은 싸그리 잡아 가두고, 이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놈들을 반드시 검거하도록.”

“알, 알겠습니다!”

“괴벨스. 자네는 지금 당장 <민족의 감시자>를 포함해서 모든 잡지사와 방송사에게 명령을 하달하게. 공산당과 사민당을 철저하게 규탄하고 의사당 화재의 원인으로 성토해.”

“물론입니다, 총리 각하!”

“보어만(Martin Bormann). 자네는 당장 룀에게 내 말을 전달하게.”

“뭐라고 전하면 되겠습니까?”

“지금부터 돌격대를 동원해서, 주요 인사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 그들이 이 화재에 대해 어떤 말도 떠들도록 둬선 안 돼. 이 화재는 빨갱이들이 조직적으로 독일에 가한 테러야. 그 사실에 국민들이 어떤 의심도 품어선 안 된다고. 알겠나?”

“넵!”


언론 통제.

입단속.

무력 동원.


단언컨대, 나보다 빨리 움직인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설령 사민당이나 중앙당에서 나치당 자작극 설이나 사실 범인이 빨갱이가 아닐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들, 사람들의 귀를 처음으로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메리트였다.


그리고 실제 범인은 아무튼 빨갱이가 맞다. 조직적인 범행이 아니라 미치광이 하나의 개짓거리일 뿐.


다음은 계엄령이다. 국가 내에 반체제 인사들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니, 국민의 권리를 제약해서라도 그들을 잡아들이는 것.


그리고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대통령뿐이니, 내가 맡아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대통령 각하를 뵈러 가야겠군.”


이쯤이면 힌덴부르크도 화재 소식을 들었겠지.


힌덴부르크는 나··· 그러니까 히틀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인사였지만, 국회의사당에 공산주의자가 불을 질렀는데도 과연 비상계엄을 거부할 수 있을까?


이것은 체제에 반대하는 폭동이자 테러나 다름없다. 의사당은 독일 제국 때 지은 것이니 확대 해석하면 아예 빌헬름 2세의 권위까지 훼손한 것.

그리고 독일 제국군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지니고 있었다. 아예 원수까지 해먹은 작자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나는 파펜의 집으로 목적지를 정하며 말했다.


“임시 의사당에 중앙당과 인민당··· 그러니까 우파 쪽 인사 몇몇만 은밀히 불러놓게. 우리한테 호의를 베푼 기업인들도.”

“어째서입니까?”

“그야 그놈들도 빨갱이가 싫을 테니까.”


빨갱이를 패는 것보다 더 좋은 것. 그건 빨갱이를 압도적으로 두들겨 패는 것 아닐까?


.

.

.


“현 시간부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모든 주(州)에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나 혼자서는 조금 미심쩍어했지만, 파펜이 함께 가니 그냥 프리패스였다. 역시 파펜. 힌덴부르크에게 아부 잘 떨어서 총리까지 해먹은 사람답게 아부 솜씨는 기가 막히지.


“현 시간부로 의회는 독일 내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으며, 반체제 인사들을 압수 수색할 권리 또한 지닌다.”


의회가 나치와 보수파 소굴이란 점을 고려해볼 때, 저건 내가 절대적인 권한을 가져도 된다는 허락이나 다름없었다.


빨갱이를 체포, 구속, 압수수색할 권한.

누가 빨갱이인지 정할 권한.

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우편 및 전화의 자유 등등을 생까고 두들겨부술 수 있는 권한.


나는 대통령실을 나온 그 순간부터 곧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좌파 의원들을 싹 다 잡아들이게. 아니, 이젠 의원도 아니니 반역도라고 불러야겠군.”

“옙, 각하!”

“놈들이 드디어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키려는 거야. 이 나라를 소련에 병합시키려는 거대한 음모가 수면 아래서 꿈틀이고 있네. 그대의 임무가 무척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게나.”

“물론입니다, 각하. 그놈들은 신성한 돌격대의 물결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할 겁니다!”


스스로도 안 믿는 소리를 지껄이며 지시를 내리려니 정신이 어질어질할 지경이었지만, 어쨌건 룀의 근로의욕은 제대로 고취된 듯했다.


볼셰비키 혁명? 소련에 병합?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1918년 스파르타쿠스단이 날뛰던 시절도 아니고 그게 가능하겠냐고.

솔직히 군부가 나서면 이깟 정치깡패들 전부 때려잡는 것 따위 일도 아니다. 후폭풍을 두려워해서 웅크리고 있을 뿐. 진성 빨갱이들이 소련 병합을 진지하게 주장하는 순간 그들은 기관총과 탱크를 들고 나타나겠지.


나는 빠르게 크롤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의사당이 작살난 관계로 앞으로는 여기가 의사당으로 쓰일 예정이었다.


이미 몇몇 인사가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종의 요식행위에 불과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


“돌격대는 결코 헌정 질서를 파괴하지 않을 겁니다.”

“좋소. 사실 대통령 각하께서 이미 동의한 마당에 우리가 거부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 저 빨갱이들을 철저히 분쇄해 보시구려.”


군부의 묵인도 얻었고.


“물론입니다. 다만······ 혹시 노동조합도 좀 어떻게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놈들 때문에 요즘 매출이 아주 빗줄기마냥 수직 낙하를 하는데ㅡ”


말도 안 되는 요구나 하고 앉아있는 기업가들의 동의도 얻었다.


이제 남은 일은 오로지 하나뿐.


“룀.”

“옙!”

“전부 부숴버려.”


나치당.

그리고 그 동맹인 인민당.


두 정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은 오늘 역사에 파묻혀 사라질 것이다.


.

.

.


시간을 거꾸로 돌려, 미국.


루즈벨트 암살 사건 직후, 백악관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기 그지없었다. 대통령 당선인이 암살당한 것 치고는 너무나 긍정적인 태도.


“이제 좀 살만해지겠군요.”

“루즈벨트 그 빨갱이가 죽었으니 당연하지요. 세상에, 농촌 지원이라니. 그 곡물 쪼가리에 투자했다가 망한 걸 왜 국가에서 책임져 줘야 한단 말입니까? 투자 실패는 개인의 책임 아니에요?”

“사회주의자나 가톨릭교도들과 손잡은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 아무리 대통령이 되고 싶어도 그놈들의 표까지 구걸해야 하나?”

“검둥이나 노랭이들은 또 어떻고? 빌어먹을, 이제 KKK가 그 역병의 씨를 말려 줬으면 좋겠군.”


먹고 마시고 떠들며 흘러나오는 이야기들.


가너는 기묘한 기분으로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다.

그 말소리 중에는 그가 동의하는 것도 있었고, 동의하지 않는 것도 섞여 있었다.


민주당의 남부 의원들, 맨해튼과 디트로이트들의 사업가들. 보수적인 성향의 일부 공화당원들까지.


루즈벨트가 죽은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그들은 이 시체 위에서 샴페인을 따고 고기를 뜯고 있었다.


물론 가너라고 해서 이 상황이 싫은 건 아니었다. 본디 부통령이란 따뜻한 오줌 한 양동이의 가치만도 못한 자리 아닌가.

백악관 장식용 토템에서 백악관의 주인으로 신분상승을 이뤄냈는데 싫을 리가.


루즈벨트가 재선을 끝마칠 나이쯤 되면 그 또한 정계를 은퇴해야 할 나이대이니, 본래는 대통령이 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장가라의 암살 시도 한 번에 가너는 대통령이 되었다. 미합중국을 이끌어 나갈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은 이곳에서 먹고 마시고 떠드는 이들이었다.


물론 그들을 지지자로 얻은 대가로 소수민족이나 사회주의자들은 그를 적대하게 되겠지만······ 뭐 알 바인가.

어차피 그 병신 같은 뉴딜 연합을 유지하려고 루즈벨트가 개고생하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본 입장이다.


루즈벨트야 사회가 더욱 진보해야 한다 믿었으니 한 손을 사회주의자에게 내밀고 다른 쪽 손을 딕시들에게 내미는 짓을 벌였겠지만, 가너는 결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진짜 이 나라가 빨갱이 소굴이 되면 어쩌려고?


가너는 뉴딜 연합을 잇지 않겠다 선언했다. 애시당초 그들은 루즈벨트가 죽은 순간부터 가너를 지지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 뉴딜 연합은 자연스레 와해될 운명이었다.


대신 더욱 확고한 연합을 만들었다. 소수를 적으로 삼아 다수를 규합하는 전략.

깜둥이 쳐죽이기를 레포츠의 일종으로 삼는 인종들, 노동자 해고하기를 취미로 아는 기업가들이 한데 뭉치니 뉴딜연합만큼의 크기는 아니더라도 더욱 단단하고 응집된 지지층이 탄생했다.


극도로 보수적이며, 정치자금이 흘러넘치는 집단. 가너의 지지층으로 구성된 33년식 보수 연합(Conservative Coalition).


이제 저들을 칼자루 삼아, 대통령의 막대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으리라.


가너는 피식 웃으며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의 지지자들 또한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

.

.


몇 주 뒤, 뉴딜 정책의 폐지가 백악관 대변인의 입을 통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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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화국 최후의 날(3) 24.09.05 172 5 10쪽
6 공화국 최후의 날(2) 24.09.04 180 8 11쪽
» 공화국 최후의 날(1) +2 24.09.03 192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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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암살 +2 24.08.29 344 1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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