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미국을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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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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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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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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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을 위한 노력(1)

DUMMY

3주쯤 전에.

그러니까, 내가 아직 21세기를 살아갈 때.


책을 한 권 읽었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장르와 스토리는 기억난다.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먹고 소련을 이기고 영국을 점령하고 미국을 찢어버리는 내용. 장르는 당연히 대체역사물.


다만 작가는 한국인이 아니었다. 미국을 점령할 때 일본이 인도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를 집어삼키게 내버려두는데, 한국 시장을 겨냥했으면 이런 내용은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한반도는 독립시켰겠지.


그 덕분일까.

나도 자세히 읽은 것은 아니었다.

한국인 빙의물도 아니었고, 그냥 ‘역사의 한 줄기가 이렇게 뒤틀리면 어떻게 될까?’라는 가정의, 어찌 보면 1세대에 가까운 고전적인 대역물.


그리고 나는 아무래도.


“총리 각하, 어젯밤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암살당했습니다.”


그 대역물 속으로 들어와 버린 것 같다.


.

.

.


독일의 총리는 누구일까.

아, 독일연방공화국 말고 바이마르 공화국 말이다. 2차대전에 관심이 없었다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그 정부. 누구 떠오르는 사람 있나?


없을 거다.

나도 그랬거든.

생겨난 지 20년도 되지 않아 멸망한 공화국. 독일 제국에서 나치 독일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했던 나라의 국가수반 따위를 아는 게 이상한 일 아닐까.


그런데 2주 전에 하나 알았다.


“총리 각하.”


히틀러.

나치 독일의 퓌러. 국가대통령과 총리를 결합한 총통직에 스스로 취임한 자.

그런 인간도 당연히, 총통이 되기 전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총통이 아니었을 때는?


총리지 뭐.


그리고 내가 이 사실을 아는 이유는······.


“죄송합니다, 각하.”


갑자기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부관이 다급한 표정으로 걸어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총리 각하. 노이라트(Konstantin von Neurath) 외무장관이 접견을 신청했습니다.”


아···. 그쪽도 급하긴 하겠군. 나는 생각하던 걸 잠시 멈추고 그에게 말했다.


“내가 직접 찾아가겠다고 전해주게. 이건 관저에서 잠깐 보고받고 끝낼 게 아닌 듯하군.”


비서가 나가고, 문득 옆을 보니 거울이 있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20대 후반의 직장인이 아닌 40대 후반의 늙은 정치인.


칫솔 모양의 콧수염을 매단, 카랑카랑한 남부 억양을 구사하는 선동가.


20세기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최악의 독재자로 평가받는 전쟁 범죄자.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933년 1월 30일.

나는 히틀러가 되어 대통령 앞에서 총리직을 수여받고 있었다.


.


회상을 시작하자 지난 기억들이 끝도 없이 밀려온다. 사실 지난 기억들이래 봐야 대부분 2주도 되지 않았다지만 어쨌든.


나는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 앞에서 총리직을 수여받았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몰카인 줄 알았다.

독일 제국 육군 군복을 착장한 사람이 나한테 웬 이상한 명패를 주는데, 이게 현실이라 믿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입에선 독일어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었지만, 자다 일어나보니 주위에 양복 입은 사람들이 죄다 나만 쳐다보는 상황이다.

입으로 말하는지 코로 말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한국어건 독일어건 신경 쓸 틈이나 있겠나.


이때는 나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정신이 없었던지, 장면 하나하나가 싸구려 필름처럼 흐릿했다.


그러나 총리직을 수여받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현실을 깨달았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내 총리직 수여 장면을 옆에서 찍어 송출하고 있던 그놈을 본 순간, 이게 몰카라는 생각은 싹 날아가버렸다.


총력전 연설 속, 우렁차게 고함을 질러대던 그 면상이 눈앞에 있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영혼이 쏙 빠져나간 상태로 대통령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나니 더 가관인 일이 펼쳐졌다.


헤르만 괴링(Hermann Wilhelm Goring)이 활짝 웃으며 내게 나가오고 있는 것이다. 사진 속에서만 봤던 그 돼지는 정말로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껴안으려 들었다.


물론 난 그때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심장마비로 죽지 않은 게 용하다. 여기가 1차 위기다. 어떻게 버텼을까 진짜.


나는 괴링과 괴벨스, 그 외에도 나치당 간부로 보이는 모든 이들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아니 신경쓸 수조차 없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대통령실 밖으로 나와서, 비서로 보이는 사람한테 말했다. 당장 운전사 부르라고. 비서는 당황한 눈치였지만 내 말을 무시하진 않았다.


온갖 곳에 걸려있는 하켄크로이츠기를 보는 것만으로 내 심장박동은 위험 수치였다. 밖으로 나와보니 갈색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차를 둘러싸고 있었다.


차에 시동이 걸리자, 나는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었다. 갈색 물결이 홍해 가르듯 늘어서며 길을 터줬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환호성.


나치. 총리. 히틀러.


귀가 멍멍해지고, 뇌가 서서히 사고능력을 수습하기 시작할 때쯤 당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배되어 있는 하켄크로이츠는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뇌가 인식 능력을 강제로 저해시킨 걸까.


곧바로 개인실에 틀어박혀 온갖 서류들을 탐독했다. 측근들을 쫓아내고, 정신을 다스리며 책상 위에 놓인 모든 것들을 읽었다.


알게 된 모든 것들을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이곳은 1933년의 바이마르 공화국.’


공부한 적도 없는 독일어가 너무나 쉽게 읽혔다. 다른 당과의 교섭 자료, 대중선동과 관련된 저서들, 국가기밀에 관련된 서류들.

그 모든 것들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너는 지금 독일인이라고. 이곳은 바이마르 공화국이고, 네 앞에서 명패를 건넸던 그 늙은이는 힌덴부르크 대통령이라고.


전두엽을 망치로 후려치는 감각을 느꼈다.

거기가 2차 위기였다. 초인적인 상황판단력, 아니지. 아직도 현실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정신머리가 아니었다면 바로 기절했을 터. 요컨대 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기절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3차 위기는 버틸 수 없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턱을 쓰다듬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때 인중에 까끌까끌한 수염이 잡혔다. 그 순간 나는 최악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사실이다. 하지만 뇌는 그 가능성을 애써 부정하고 있었기에 그동안 떠올리지 못했던 것.


거울을 보기가 두려웠다. 그러나 세상만사 내 뜻대로 돌아가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책상 위에는 이미 거울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 거울 안에 내 얼굴이 비쳤다.


인중에 난 콧수염을 보는 순간 나는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


20대 후반의 평범한 직장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시련이었다.


히틀러라니, 히틀러라니.

내가 전생에 대량학살이라도 했나? 나라를 팔아먹었나? 여포마냥 애비를 세 번쯤 갈아치우는 초고열속성 효자였나?


그렇다 해도 이건 너무한 일이다. 차라리 지옥에 떨궈라. 지하벙커에서 권총 자살하는 뽕쟁이에 더불어 죽은 뒤에도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자' 취급당하는 개새끼 말고.


좆같은 생각만이 머릿속에 흘러넘쳤다. 그때 내 머리를 권총으로 쏘지 않은 게 용했다. 깨어났을 때는 병실이었고, 누구를 부르고픈 마음도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 일은 이 세계에 수천가지는 있었다.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병실의 문이 열리고, 나는 의사의 면상을 본 순간 루거 권총으로 쏘기 직전에 멈췄다.


이번에도 사진에서 봤던 인간이었다.


카를 브란트.

나치 독일의 생체실험에 관여한 역사상 최악의 의사.

냉동 실험, 바닷물 주사 실험, 독극물 실험 등등 인체실험을 기획하고 주도한 인간. 나치의 전쟁범죄 관련 책에서 질리도록 봤던 인간.


이미 비명조차 지를 기운이 없었던 나는, 악을 쓰며 지랄부르스를 추는 대신 당장 꺼지지 않으면 네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고 정중히 협박했다.

브란트는 얼굴이 새파래지더니 곧장 병실 문을 닫고 나갔다. 그 뒤로는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일 없었으면 좋겠다.


다음에 벌어진 일이야 뭐 뻔하지.

내가 깨어났단 소식이 퍼지고, 괴링도 오고 괴벨스도 오고, 그 외에도 내 측근이라 주장하는 잘 알지도 못하겠는 인간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대개 걱정과 축하 인사가 섞인 말들을 해줬는데 잘 기억나진 않는다. 총리가 된 게 너무 기뻐서 기절한 게 아니냐는 말만 기억에 남았다. 그걸 듣고 나서 다시 기절할 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첫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첫날이 다 흐를 때즈음엔 내 정신상태도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있었다. 이유라면 당연히 지금이 33년이기 때문이다.

36년이었다면 퇴임 선언을 발표했을 테고, 40년이었다면 영국에 무릎 꿇고 빌었겠지. 그 이후라면······ 상상하기도 싫다.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나는 내가 히틀러라는 사실을 머리로 받아들였다. 가슴으로는 당연히 거부했다. 머릿속으로 수십 개의 플랜이 흘러갔지만 어느것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게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업무의 폭풍에 휘말렸다.


‘총리 각하. 가톨릭 중앙당에서 접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총리 각하. 바이에른 인민당에서 뮌헨 당사와 관련해 나눌 말이 있다고 합니다.’

‘총리 각하. 군부와의 접견 요청은 언제쯤 처리될지······?’

‘총리 각하. 힌덴부르크 대통령께서 되도록 빠르게 부수상과 함께 자길 만나러 오라고ㅡ’


히틀러가 할 일은 많았다. 게으르고 서류를 싫어하는 총통의 등장은 몇 년 뒤의 일. 여기 있는 것은 노회하고 약삭빠른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정치인이란 자고로 성실한 법이다. 암, 국민을 속이고 동료의 뒤통수를 치려면 성실함은 기본 덕목이지.


덕분에 히틀러가 된 나는 사흘 밤낮 카페인을 빨며 일해도 다 처리하지 못할 일감을 몰아받았다.


죽을 것 같았다.

동시에, 살 것 같았다.


업무에 매진하는 동안에는 나도 내가 히틀러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히틀러는 피도 눈물도 없는 미치광이 독재자였지, 이렇게 당과 당 사이 그리고 당 내부까지 조율해가며 끝없는 암투를 벌이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덕분에 일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이런 지구가 있을 리 없잖은가. 히틀러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고, 장관 자리에 나치당 인물이 3명밖에 없는 보수 우파의 따까리인 지구라니. 대충 지구-666쯤 되지 않을까?


2주 동안 융커들과 회동하고, 당을 조율하고, 중앙당과 사민당 그리고 인민당과 끝없이 만나며 내 머릿속에선 희망 회로가 맹렬히 불타올랐다.


어쩌면 여긴 진짜 지구가 아닌 게 아닐까. 나는 다른 세계선으로 온 게 아닐까? 여긴 그냥··· 일종의 대체역사 같은 게 아닐까.


이미 이 역사가 존재했다는 것을 앎에도. 1월부터 3월까지 히틀러는 총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앎에도.

나는 빌고 또 빌었다. 하늘에 소원을 비는 동시에 서류에 심취했다. 그러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소원은 훌륭히 성취되었다.


“총리 각하.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합중국 대통령 당선인이 어젯밤 암살당했습니다.”


참으로 개 같은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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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화국 최후의 날(3) 24.09.05 172 5 10쪽
6 공화국 최후의 날(2) 24.09.04 179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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