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검의 밤(4)
측근들이 룀에 대해 말한 것들이 전부 사실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놈들 말대로라면 룀은 혈관에 피 대신 맑스-레닌주의가 흐르는 진성 빨갱이이자, 고대 그리스에나 통했을 법한 논리로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정신병자이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병신 무지능자였다.
그게 진짜였다면 돌격대를 300만으로 키우지도 못했겠지. 설령 그게 본인이 한 일이 아니라 해도 적당히 유능한 사람 골라서 일을 맡기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그 재주도 없어서 전쟁 말아먹은 게 히틀러 아닌가.
그러니 내가 룀을 죽이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냥, 룀의 모가지를 붙여두는 것보다 따버리는 게 더 이익이 많을 것이라는 계산이 서서다.
“대체 왜! 왜 이러는 겁니ㅡ억!!”
“빨갱이들이 어디서 그 흉측한 아가리를 놀려?”
“전부 체포해! 국가와 총리 각하께 역심을 품은 반역도들이다!!”
이미 돌격대 건물은 개판이 되어 있었다.
기관단총을 난사하며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친위대 요원들은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겼지만, 아마 지금 돌격대 참모들에게 더 무서운 건 저 최상층 회의실 안의 상황이리라.
‘루체를 비롯한 돌격대 참모 몇몇을 미리 포섭해 놓았습니다.’
‘게슈타포 요원 몇을 경비병으로 위장시켜 침투해 놓으면 더욱 원활한 진압이 가능하리라 예상됩니다.’
과연 프라하의 교수인이다. 내부 진압이란 분야만 따지면 절정을 넘어 초절정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지.
저 위에서 창문 깨지는 소리랑 고함 지르는 소리, 비명소리가 조화로운 하모니마냥 울려 퍼졌다. 내 귀에까지 들릴 정도면 보통 일은 넘어섰다는 뜻.
창문을 깨고 총탄이 튀어나오길 몇 차례.
깨진 창문 틈새로 갈색 제복을 입은 참모 하나가 인간이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는 시빌미터에서 자유낙하를 시도했다.
그리고 다리가 깨졌다.
“ㅡㅡㅡ!!”
두 짝이 모두 이상한 모양으로 꺾여있는 걸 보니 일단 뼈부터 시작해서 근육과 신경계가 총체적인 난국에 접어든 듯싶었다.
아주 박살이 났다는 뜻이다.
그걸 본 친위대원들이 뭐라 수군댔다.
“이 새끼 너무 아파서 비명도 못 지르는 것 같은데?”
“냅두고 안으로 들어가! 아무것도 못 하는 놈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라!”
“벽으로 밀어둬. 걸려 넘어지겠다.”
권총을 빼앗기고 시체마냥 구석으로 밀려 들어가는 갈색 제복을 보니 마음속에서 측은함이 밀려오······ 지는 않았고. 그냥 무덤덤했다.
당장 공산당 정치깡패랑 돌격대랑 피 터지게 싸울 때는 저것보다 더 고어한 장면도 많이 봤는데 뭐. 거기선 진짜 사람 피와 뼈가 곤죽이 되서 흩뿌려졌다고.
기관단총을 든 친위대원들이 2층을 싸그리 ‘멸절’시키고 있을 무렵, 돌격대 간부 몇몇이 나와서 우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개중에는 나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총, 총리 각···? 커억!”
“눈 깔아, 이 새끼들아.”
“대체 왜 친위대가 우리를 공격하는 겁니까?!”
“그야 니들이 마음속에 자본론 한 권씩 펼쳐놓고 사는 새끼들이라서지. 빨갱이들이 감히 위대한 독일에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냐?”
“그게 무슨······! 저희는 당과 총리 각하께 충성하는 컥!”
“뭘 대화까지 나누고 있어 새끼들아! 아직 진압 안 끝났다!”
총탄에 맞은 놈들보단 개머리판에 두들겨 맞고 기절한 놈들이 좀 더 많을 듯했다.
사실 지금 돌격대 인원들의 무장이래 봐야 권총이 전부인데, 수류탄에 기관단총까지 풀무장한 놈들을 상대로 저항해봤자 의미가 없을 테니 대화를 시도하는 놈들이 많았다.
그리고 대화하자는 놈들은 굳이 쏴죽이기보단 기절시키는 정도로 끝내도 충분하니······ 의외로 죽는 사람은 별로 없는 상황이랄까.
물론 기자양반의 정신을 지닌 참모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무죄판결 나면 재활비는 드릴게.
“각하, 룀을 체포했습니다.”
벌써?
게슈타포 요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묶여 있나?”
“2층 회의실에 가둬두었습니다. 바로 보러 가시겠습니까?”
“안내하게.”
.
.
.
“아돌프!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내가 회의실로 들어가자마자 룀은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내게 고함을 질러댔다. 귀 떨어지겠다, 이 자식아.
“무슨 짓이긴. 이제 돌격대에게 주어진 시간이 전부 끝났다는 거지.”
“그게 뭔 개소리ㅡ”
“그놈의 개소리 타령은 적당히 하고, 진짜로 짐작 가는 게 하나도 없나? 진짜로?”
그 말에 룀의 입이 잠시 다물렸다.
여기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 그냥 내가 권총으로 저 머리통을 시뻘겋게 물들여 줄 의향이 있다.
‘룀. 돌격대에 사회주의 성향이 짙은 이들이 좀 있는 것 같은데?’
‘부패한 자본가를 타도하자는 의견은 있지.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사회주의자로 몰기엔 부적절해. 돌격대 내부 인사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대략 한 달쯤 전에 나누었던 대화.
돌격대 안에 사회주의가 만연하니 좀 어떻게 해봐라.
룀은 무시했다.
거의 대놓고 인상을 찡그리는 것으로 더 이상 그 주제로 대화하기 싫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 다음엔, 뭐였더라.
‘군부에서 돌격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 같더군.’
‘하! 그 무능한 융커 새끼들이 무슨 자격으로? 대전쟁에서 패배했으면 얌전히 입 다물고 찌그러질 줄 알아야지, 어딜 국민의 지지를 받는 돌격대를 음해해?’
‘······.’
‘아돌프, 자네도 슬슬 돌격대를 인민군으로 재편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보게. 새로운 혁명의 시발점은 저 군부를 우리가 흡수해서 독일 사회 전체를 갈아엎을 힘을 손에 넣는 거라고.’
새로운 혁명. 인민군. 군부 흡수.
골백번도 더 떠들었던 이야기.
나는 룀과 거의 처음으로 언쟁 비스무리한 걸 벌였고, 룀은 제대로 열이 뻗쳤는지 씩씩거리며 총리 관저를 나갔다.
물론 며칠 뒤 다시 하하호호하며 화해했지만, 이미 그 시점에서 그와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군부의 지지율 하락, 민간인에 외교관까지 두들겨 패는 깡패집단을 살려두는 건 이익보단 손해가 크니까.
룀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허탈하게 웃었다.
“기어이 혁명을 배신하겠단 거냐?”
“더 이상의 혁명은 독일 민족의 발전을 가로막을 뿐이네.”
그 말을 들은 룀은 거의 발작을 일으켰다.
“틀렸어! 대체 네놈은 배운 게 뭐냐, 아돌프? 저 무능하고 오만한 융커들, 독일 민족 90퍼센트를 차지하는 노동자의 고혈을 양분삼아 성장한 자본가들이 돈과 군대를 쥐고 있는 한 절대 시대는 바뀌지 않아!
네놈은 나무가 썩었으면 가지랑 이파리만 잘라낼 거냐? 밑동에 뿌리까지 썩어버렸는데 거기서 멀쩡한 열매가 열리리라 생각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우리가 해야 할 건 독일 민족이라는 토양 위에 국가사회주의의 나무를 심는 일이라고! 썩은 나무 위에 국가사회주의 간판을 단다고 해서 대체 뭐가 바뀌느냐 이 말이야!!”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대던 룀은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이며 헉헉댔다.
썩은 나무 위에 국가사회주의 간판을 단다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일단 나무는 썩지 않았기 때문이다.
융커만 몰아낸다면. 그리고 정치권력의 힘으로 경제에 손을 쓴다면······ 독일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원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탈나치 교육 대신 탈융커 교육을 시키고, 전쟁을 통해 얻은 막대한 권위로 사회를 재편한다. 그리고 그 시기는 필연적으로 2차대전 이후가 되겠지.
이것이 룀의 실수다.
돌격대를 이용해 군부를 족치고 경제를 뜯어고쳐?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직 군부는 필요하다.
“룀.”
“······뭔가.”
“자네는 너무 급했어.”
그 말에 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나는 그 반응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자네가 천국으로 가길 빌지. 거기서 내가 융커 새끼들을 족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라고. 자네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뒤탈 없는 방식으로.”
“그래. 어디 겁쟁이처럼 잘 해봐. 돌격대가 죄다 자네에게 등을 돌린 다음에도 가능할지 모르겠다만.”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방을 나섰다.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회의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바닥을 느릿하게 쓸었다.
.
.
.
[돌격대의 쿠데타 시도!]
[독일을 전복시키려는 돌격대 빨갱이들의 음모······ ‘우리는 소련이 좋아요’?]
[남자 없이는 잠을 못 잔다! 돌격대 최고지휘관 에른스트 룀의 사생활 전격해부!]
“전부 자네 작품인가?”
“거의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괴벨스의 당당한 말을 듣고 있자니 기분이 참 미묘했다.
인신공격은 상도덕에 어긋나니 하지 말라······ 고 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오긴 했다. 나는 신문을 접어서 탁자 위에 내려놓은 뒤 말했다.
“해외 동향은?”
이런 건 원래 노이라트한테 물어봐야 하지만, 노이라트는 지금 해외 순방을 돌며 독일에 부정적인 감정을 잠재우려 애쓰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치독일 행정체계야 원래 개판 아닌가. 괴벨스가 해외 핫토픽 배달부로 잠깐 전직할 수도 있지 뭐.
괴벨스가 전한 소식은 내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권 국가들은 대부분 저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왜냐.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쿠데타고 나발이고, 장검의 밤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법률 따위는 완전히 내팽개친 채 벌인 일이다. 그놈들이 좋아하는 게 이상하지.
한데 다음 말은 예상외였다.
“이탈리아도 저희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가?”
거기도 새까만 물 잔뜩 든 파시즘 국가일 텐데, 우릴 두둔하긴커녕 비난한다고?대-파시즘의 우의는 어디로 간 거냐.
무솔리니의 문어와 같은 대가리 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나 고민하는 사이, 괴벨스가 말을 이었다.
“소련은 형식적인 의견만을 내놓았을 뿐, 독일 내부 사정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입니다.”
이것도 의외라면 의외다.
돌격대를 숙청할 때 가장 열심히 써먹은 주제가 그놈들이 빨갱이라는 건데, 세계 빨갱이들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크렘린에서 별 반응이 없었다라.
하긴, 스탈린은 애초에 세계 혁명 같은 데 관심이 없었지. 일국사회주의를 천명하고 경제발전에 집중하고 있는 녀석이 독일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을 터였다.
다만 이런 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았고.
“국내 여론은 어떻지?”
“완전히는 아니어도, 상당히 호의적인 편입니다.”
중요한 건 독일 내 여론.
국민은 장검의 밤을 반겼다.
돌격대는 말 그대로 깡패 집단이었고, 국가권력을 등에 업은 운좋은 조직폭력배나 다름없었다. 정치인이라면 모를까 일반 시민까지 두들겨 패는 짓거리를 좋게 보긴 힘들었겠지.
군부는 환호했다.
블롬베르크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듯, 장검의 밤 바로 다음날 군부는 내게 충성을 맹세하고 대통령직 계승을 전적으로 돕겠다고 전해왔다.
이 정도면 목표했던 바는 완전히 달성한 셈이다.
힌덴부르크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공개적으로 장검의 밤을 칭찬할 정도면 말 다 했지 뭐.
그리고 마침내, 8월 9일.
“ㅡ이에 의거해 저는 독일 대통령직을 겸한 총통(Führer)직위에 오를 것을 정식으로 선언합니다.”
제 3제국의 총통이, 절대 권력의 서막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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