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물이 아니에요 꼬마가주님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어둠속성
작품등록일 :
2024.08.27 16:46
최근연재일 :
2024.09.04 23:1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97
추천수 :
9
글자수 :
58,661

작성
24.08.28 23:10
조회
26
추천
1
글자
13쪽

글자만으론 판단할 수 없어

DUMMY

카를라인 저택의 정원은 넓다.

정원사가 두명이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가지치기도 잘하고 사람치기도 잘하는 그런 정원사들이 두명.


잘 가꿔진 덤불들을 지나가면 정원의 중앙엔 검술연습을 위한 원모양의 넓은 공터가 있다.


“카인님? 모시러 가려했는데 제때 오셨군요!”

“안녕하세요···.”


유스타스는 잔뜩 인상을 쓴 카인을 내려봤다.


작은 가주의 얼굴에서 불침번중인 부대원의 표정이 겹쳐보이는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죽는 것 다음으로 하기 싫다는 그 표정이 나오고 있다.


‘오늘은 검술연습이 정말로 하기 싫으신가?’


유스타스는 일평생 검에 몸담겠다고 맹세한 검의 길을 걷는 자.

검을 사랑하기 때문에 작은 가주께서도 진지하게 연습하시길 바랬다.


그의 경험상 보통 이 나이대 아이들은 검연습을 좋아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카인님은 신나게 목검을 휘둘러대면서 안주인님의 화분을 깨먹으셨다.


그 사건으로 꾸중을 들으셨던건가?

혹여나 검이 싫어지시기라도 했다면···.


유스타스는 무릎을 꿇고 작은 가주와 시선을 맞췄다.

지금은 진지한 연습보단 검에 대한 마음가짐이 작은 가주에겐 필요한 것 같다.


“혹시 몸이 아프신겁니까?”

“아뇨. 그냥 말 못할 고민거리가 좀 있어서요.”

“이해합니다. 그 나이엔 걱정거리가 많이 생기는법이죠.”

“참, 세상이 말셉니다 말세.”

“그러게 말입니다. 사는게 참 팍팍해요.”


평소같으면 작은가주께선 목검으로 정원의 나무를 두들기고 계셨을테지만

한껏 진지하게 말하시는 저 작은 모습을 보자니 무슨 일이 있어도 있는것이다.


“세상이 정이 없어요 정이.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진짜 너무한거 있죠?”

“그러게 말입니다.”

“선생님은 말 못할 고민같은거 없어요?”

“선생님이라··· 카인님 정말 상심이 커보이십니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카인을 바라보는 유스타스.

연습용 목검을 강하게 쥔 손목에 붉은 실핏줄이 서렸다.


“카인님! 오늘은 검연습보단 대화를 나눠보는게 좋겠습니다!”

“아,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해보고 싶은게 있어서 잠깐만 연습해보려구요.”

“···?”


초인들이 넘쳐나는 판타지 세계여서 그런가 소설속 카인도 유서깊은 악당답게 멋있는 기술 하나 둘 쯤은 쓸줄 알았다.


그 이름하여 오른손에 봉인되어 있을 것만 같은 이름을 가진 흑염검.


카인은 목검을 잡고 대도세라 불리는 기마자세를 취했다.

어렸을적 검도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흑염검!”


힘차게 외치며 일자베기를 시전한 카인.

그후로 연속된 횡베기와 종베기를 선보인다.


“흑염검! 으얏!”


유스타스는 한껏 진지한 모습으로 검을 휘두르는 카인을 바라봤다.


'재롱잔치인가...'


유스타스가 보기에 머릿속으로 열심히 궁리한 기술명을 외치며 검을 휘두르는 작은 가주는 너무나도 귀여웠다.


토끼옷을 입고 삑삑이신발 신고 삑삑거리며 걸어다니는 아이를 보는듯한 아련한 기분.


“얏! 흑염검! 얏!”


유스타스 데니스.

검 뿐만 아니라 모든 장병기에 통달한 제국의 웨펀마스터.


스스로 유스타스류라는 새로운 검의 길을 만들어 나가려는 자.


그가 보기에 작은 가주의 눈빛은 늑대의 눈빛이라고 할만큼 살아있다.

그 여느때보다도 진지하다.


사냥하는 늑대만큼 진지하긴 하지만··· 동물들은 새끼땐 어쩔 수 없이 전부 귀여운 법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육식곰조차도 새끼땐 테디베어만큼 귀여운 것 처럼.


지금 카인이 딱 그랬다.


“훌륭한 검술이십니다 카인님. 흑염검이라고 하셨나요?”

“흑염의 기운이 칼에 담겨서 대지가 요동치고 천지가 갈라지고 세상의 종말을 노래하는 기술이에요.”


유스타스는 동공이 커지더니 이내 지긋이 자신이 쥔 목검을 바라보았다.


“대단하네요. 저도 한수 배워야겠습니다.”

“선생님이 보기엔 제가 흑염검을 쓰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나요?”

“카인님이 노력하신다면 분명 빠른 시일내에 사용하실 수 있을겁니다.”


맞으면 뿅뿅 소리가 날 것 같은 파괴력을 가득 담아 카인은 목검을 열심히 휘둘렀다.


“핫! 핫! 흑염검!”


앉아있던 유스타스는 일어나 다시한번 강하게 검을 쥐었다.


-웅웅웅


자신이 쥔 목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진동을 느꼈다.


검을 휘두르는 카인을 내려봤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어째선지 아련한 기분이 사라져갔다.


유스타스가 보기엔 휘두른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았다.

지금 카인은 휘두른다기보단 목검의 무게에 끌려다녔다는 것에 더 가깝다.


‘굳이 이름 붙인다면 중력검이겠군.’

‘허나 구태여 말씀드리지 않겠다.’


어린 나이의 훈련에서는 재미만 느끼면 된다고 유스타스는 생각했다.


몸을 만들어나가는 고단한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만 비로소 검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선히 일어나는 돌개바람과도 같은 유스타스의 보법.

산들바람처럼 카인 곁으로 불어와 함께 검의 대화를 나눈다.


“하아··· 선생님은 안힘들어요?”

“힘듭니다. 세상 사는거나 검 휘두르는거나 거기서 거깁니다.”

“그렇죠 뭐. 공감합니다. 선생님은 세상보는 안목이 뛰어나시네요.”

“카인님도 역시나 안목이 남다르십니다. 세상의 종말을 노래한다라··· 참 대단한 기술입니다.”

“진짜에요.”


카인은 지칠때까지 목검을 휘둘렀지만 100번도 채 휘두르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주저 앉아 유스타스가 내려치는 검을 바라봤다.

목검을 내려칠때마다 바람소리가 났고 정확히 배꼽부분에서 칼같은 각도를 유지한 채 몇번이고 멈춰선다.


카인이 정원에 온 이유는 유스타스 데니스를 만나기 위해서다.

책에 쓰여졌던 서술만으론 알 수 없는것도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내려치는 훈련이 정말 도움이 돼요?”

“됩니다. 모든 검술은 여기부터 시작된답니다 카인님.”


카인이 판단컨데 가문의 멸족을 피하기 위해선 연관인물들의 성격을 세심히 파악해두는것이 중요했다.


역시나 직접 보고 나니 몇가지 애매했던 정보들이 조금씩 정리되었다.


‘유스타스와 함께 만든게 아닌 카인의 오리지널 기술이였구나.’


유스타스에게 전수받은 검술을 발전시킨 형태가 흑염검이라고 카인은 짐작했다.

넌지시 흑염검을 말해봤지만 유스타스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카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꿀빨긴 글렀네.’


아무래도 지금 내 안에 숨겨진 힘은 없나보다.


소설 주인공 라파엘같은 먼치킨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나니 기분이 상당히 울적해졌다.


“연습 그만할래요.”

“30분이지만 300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게 맞나요? 선생님은 참 능동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계셔서 좋아요.”

“그렇죠? 30분동안 300분의 훈련을 했으니 오늘 검술훈련은 끝입니다.”

“잘 배웠습니다.”


카인은 배꼽인사를 한번 조지려다가 진지하게 검을 휘두르는 유스타스를 슬쩍 올려보곤 저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카인의 작은 체구가 밀려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정원의 나무에 부딪히는 칼바람 소리에 유스타스는 카인이 작게 혼잣말 한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재는 칼보다 창인데 말이지.”


카인 또한 유스타스가 작게 혼잣말 한 소리를 듣지 못했다.


“종말을 노래하는 검이라···.”


저택으로 돌아가며 카인은 생각했다.


작중 카인이 검술 스승에 대해 이야기할때 기분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라파엘과 검을 맞대며 뱉은 말. [웨펀마스터인 내 스승은 날 대신해 죽었다.]


카인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중에서 유스타스는 유독 마음에 들었다.

어리다고 바보취급 받는 기분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세실리아한테 들었어요. 형님은 이제 아침공부를 하시지 않는다구요.”

“우리 작은아드님이 왜 이렇게 기분이 안좋을까?”


세인의 어리광을 웃으며 받아주는 메리.


“세인. 이리오렴!”


세인을 안아 자신의 무릎에 앉히곤 고상하게 차 한잔을 마신다.

부드럽게 세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세인의 귓가에 속삭인다.


“혼자만 공부하는게 싫은건가요?”

“세실리아도 안하고 이제 형님도 안하잖아요··· 저도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싶어요.”

“그렇구나. 그래서 우리 작은아드님이 기분이 나쁜거였구나?”


울먹거리는 세인을 바라보는 메리는 참 난처했다.


길버트에게 전해들은 카인의 이야기를 믿기 힘든건 둘째치더라도

세인은 꽤나 승부욕이 있는 성격이다.


잘못하다간 세인에게 열등감이 들 수도 있는일이니 말이다.


“세인? 엄마는 다른 이유가 더 있는 것 같은데?”


세인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메리.

세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엄마는 세상에서 우리 가족을 제일 사랑해. 세인 너도 똑같이 사랑해.”


카를라인 가문의 안주인답게 메리는 세인이 가장 듣고싶은 말을 잘 알았다.


세인의 가슴속 응어리가 단숨에 녹아내린다.


“혼자만 공부하는거 이상하지 않아요?”

“전혀 안이상해!”

“그럼 괜찮아요.”


카인이 못살게 굴어도 칭찬받기 위해 형에게 깍듯이 대하던 세인이 아닌가.

메리는 세인에게 좀 더 사랑을 주자고 생각했다.


복도에서 작은 소리 하나가 울려퍼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당탕탕 소리가 났겠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뽀작뽀작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


“어머. 아드님 검술 훈련이 벌써 끝나는 시간이였나요?”

“아, 오늘 좀 빨리 끝났습니다.”


카인과 눈이 마주친 세인의 얼굴이 빨개진다.


“저 이제 가볼래요!”

“작은아드님. 집에선 뛰지 말아야죠?”


오도도도 뛰어가는 세인.

빨개진 얼굴이 점점 번져서 홍당무가 되었다.


“아드님? 특별한 일 없으면 앉아보시겠나요?”

“아, 특별한 일 없습니다.”

“그럼 이리오세요.”


땅을 내려보며 쭈뼛쭈뼛 걸어오는 카인.

메리는 카인을 번쩍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힌다.


‘또 사고라도 친건가?’


어째선지 카인은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만 혼내거나 추궁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카인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는 메리.


지긋이 울려퍼지는 메리의 목소리는 어떠한 소음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메아리가 되어 카인에게 꽃힌다.


“요즘 힘든일은 없나요?”


카인은 몸에서 오한이 일었다.


메리 카를라인은 장미같은 여자다.

뚜렷한 이목구비. 단아하고 청초한 여성.


하지만 웃음으로 사람을 죽일수도 있는 무서운 여자.

길버트보다 더 두렵다.


“저, 딱히 없어요.”

“흐음? 엄마가 보기엔 아닌 것 같은데?”


메리는 흐음 하며 카인의 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아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혼내거나 추궁할 생각이 없는데도 말이다.


“카인? 힘든일이 있으면 말해줄래요?”

“사실 힘든일이 있긴 해요.”


카인은 지금 이 상황이 그 무엇보다 힘들었다.

오늘 일어난 일 중에선 제일 무서웠다.


메리 카를라인이 어떤 여자인가?


칼을 목앞에 댈때도, 고문받을때도, 강간당할때도.

이 여자는 그 누구보다 강한 여자다.


그렇게 강한 여자가 지금 권력까지 가지고 있다.

손가락 까딱 하면 여럿사람 모가지쯤은 댕강이다.


“혼내실건가요?”

“우리 착한 아드님을 왜 혼내겠어요?”

“좀 생각해볼게요.”


카를라인 가문 멸족 후 악으로 깡으로 살아난 메리는 가문 멸족과 관련된 이들을 이잡듯이 찾아내 복수한다.

친가가 망해버렸으니 처가를 먹고 힘을 키워내서 말이다.


그 복수엔 라파엘에게 붙어먹은 가족이였던 세실리아도 포함되어서 카인은 메리가 참 무서웠다.


“말할래요.”

“우리 아드님은 생각이 참 빠르네요! 아빠를 좀 더 닮았으려나?”

“말해도 될지 잘 모르겠어요.”

“엄마를 좀 더 닮았군요? 말하기 전엔 안놔줄거에요.”


카인은 고개를 숙이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생각한 걸 그대로 말하면 될 것 같다.


“이 세상이 참 무서워요.”

“어머! 상상도 못할 말이네요?”


메리는 카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다시 고상하게 차를 홀짝인다.


“저도 차 한잔 마실래요.”

“이건 뜨거운거에요.”


메리는 노란색 종이 매달린 작대기를 흔들었다.

그러자 귀신같이 나타난 시종이 차 하나를 들고 왔다.


“맛있죠?”

“너무 단데요.”

“그게 맛있는거에요.”


카인은 미지근한 유자차 비스무리한 달달한 차를 홀짝였고

메리는 그런 카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머리를 매만졌다.


"착하기도 하지."


역시 겪어보면 다르다는 건가?


카인은 자꾸만 귓속말하면서 머리를 만져대는 메리가 처음엔 무서웠지만

역시나 글자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긴 힘들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목적을 위해 계획성 있게 움직이는 메리는 참 무섭지만 지금은 딱히 목적이 없지 않는가.

그럴 목적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우리 아드님이 세상이 무섭다고 하니 단둘이 놀러갈까요?”

“단둘이 놀러를 가요?”

“황궁 갈일이 좀 있어서요. 준비하고 같이 손잡고 가야겠네요!”


카인은 메리에 대한 생각을 정정했다.


‘에휴, 그럼 그렇지.’


무서운 여자 맞다.

무슨 꿍꿍이 일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힐링물이 아니에요 꼬마가주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쓰면서 재밌었습니다! 24.09.05 3 0 -
공지 연재시간은 오후 11시 10분입니다. 24.08.28 4 0 -
10 수갑으로 맺어진 인연 24.09.04 5 0 13쪽
9 바이스 에델 (3) 24.09.03 9 1 13쪽
8 바이스 에델 (2) 24.09.02 9 1 12쪽
7 바이스 에델 (1) 24.09.01 12 1 14쪽
6 그런 세계 24.08.31 19 1 14쪽
5 열살의 처세술 24.08.30 19 1 13쪽
4 천리길도 황궁에서부터 24.08.29 23 1 13쪽
» 글자만으론 판단할 수 없어 24.08.28 27 1 13쪽
2 아. 깨달아버렸다. 24.08.27 30 1 14쪽
1 카를라인가 24.08.27 44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