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물이 아니에요 꼬마가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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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성
작품등록일 :
2024.08.2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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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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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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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 에델 (1)

DUMMY

길버트는 황궁의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새벽녘부터 집을 나섰다.


에센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지금 황제는 여덟왕국의 맹약을 거론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매의 보고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제국 곳곳에서 반란의 싹이 일어나고 있고 당장 에센이라는 큰 곁가지를 쳐내는것에 급급했다.


에센 공작령이라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를 도려낼수만 있다면 엮여있을 수많은 불온분자에게 강한 경고의 인상을 남길 수 있겠지만 에센이 황제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란 거대한 것이여서 길버트는 이 문제를 두고 매일 밤 잠을 설쳤다.


황제는 에센의 군사력이 필요했고 에센은 황제의 인정이 필요했다.


암묵적인 에센과 황제의 거래에서 에센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했고 요구한다.

언젠가 이 거래가 어그러질테고 제국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생기게 될것이다.


“후우···.”


길버트는 연초에 불을 붙였다.

두대째였다.


꼬일데로 꼬여버린 실타래는 풀려고 하면 더더욱 꼬여버려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참으로 막막했다.


큰 가위라도 있다면 단번에 절단내버리고 싶을만큼 문제의 덩어리는 덕지덕지 역겹게 엉켜있어서 에센이라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를 단단하게도 만들어나갔다.


길버트는 제국이 한번 뒤집어지지 않는 이상 영원토록 미뤄야 할 거대한 숙제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젠 그 마저도 적응이 되어서 길버트에게 그런것들 따위는 일상이 되어버렸고

하루 밀린 업무가 대수롭지 않을 정도가 됐지만 말이다.


“한스. 카인은?”

“자고계십니다.”


자꾸만 마음이 가는 장남.


장차 카를라인을 물려받을 카인을 위해서라도 제국은 튼튼하고 굳건해야만 한다.


먼 훗날 업무를 넘겨받을 카인이 무능한 아버지라고 평가하지 않도록 일처리를 해내야한다.


길버트는 비릿하게 웃었다.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세인트가에서 점심식사 초대라. 황궁에서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나?”

“안주인님께서 말씀하시길 소가주께서 작은 다툼을 벌였다합니다.”

“카인이 결례되는 행동을 한건가? 방향성은 달라도 다리 하난 놓아진 셈이로군. 알겠네.”

“어제 긴히 세바스찬과 이야기를 나눠본 바 성하께서 소가주님을 각별하게 생각한다더군요.”


한스를 바라보는 길버트의 표정변화는 없다.

항상 있는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있다.


사고뭉치 아들덕에 많은 만남이 있어왔고 결과적으로 카를라인가의 영향력이 커지게 끔 행동했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일.


“수고했소 한스. 뒷일은 내 알아서하겠네.”


한스에게 작은 종이 하나를 내미는 길버트.


“카인이 그린 그림이라고 하더군. 원 안에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적혀져 있소. 혹시 짐작가는 것 있나?”


한스는 종이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영문모를 표정을 짓는다.


“당장은 모르겠군요. 개인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부탁함세.”


말을 마친 길버트는 가주 전용 검은색 마차를 타고서 유유히 황궁으로 향했다.


한스는 카인을 향한 알 수 없는 교황의 관심과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이 적힌 종이를 바라보며

‘소가주께선 신탁을 받으신건가.’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생각의 비약은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신앙적인 일은 생각한다고 알 수 없는일.

한스는 카를라인가를 위해 카인과 관련된 정보를 좀 더 모으는데 시간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


작은 체구에 비해 과분할 정도로 큰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카인.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잘 수 있는 시간대는 방금 막 잠에서 깬 시간대다.


평소라면 울렸을 끔찍할만큼 경쾌한 핸드폰 알람소리도 없었고

미뤄둔 집안일도 없다. 늦잠 잔다고 사회적인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카인은 행복한 해방감을 느끼며 다시 잠에 빠지고 있었다.


푹신한 털로 만들어진 침대는 카인의 가벼운 몸에도 푹 들어갈 정도로 부드러웠고

이 침대에서 뒹굴뒹굴 하고있다보면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은 착각감에 빠질 정도다.


카인은 열심히 뒹굴거렸고 열심히 잤다.


기나긴 불면증에서 잠시 벗어난 카인은 극도의 행복감을 느꼈다.

몇십년만의 제대로 된 잠은 카인이 그토록 바라던 것 중 하나였다.


“도련님, 아침입니다.”


카인이 간과한 사실은 소가주의 침실엔 개인적인 잠금장치가 달려 있지 않았다는 사실과 하얀색 커튼을 열어젖히면 들이닥친 빛의 향연이 수면의 질을 떨어트린다는 것이었다.


“나가세요. 좀 더 자게.”

“아침은 평소대로 샬렛에게 준비 시킬까요 도련님?”


한스는 커튼을 열어 제끼고는 카인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일어나실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부르세요.”


한스는 몇분 전부터 카인을 깨울 각도기를 이리저리 재보던중이였다.


그러다 마침 눈에 뛰게 침대 위를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카인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노련한 집사장 답게 진입할 타이밍 하나는 기가막히게 알았다.


“그냥 일 보세요 좀.”

“도련님의 아침 수발도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입니다.”


한스가 침실의 모든 커튼을 열자 카인은 들이닥친 빛을 피해 어둠을 찾아 움츠려든다.


“아침에 할일 없잖아요?”

“식사가 있으십니다 도련님.”

“거를래요 그럼.”

“샬렛에게 따로 말해놓겠습니다. 따로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카인은 햇빛이 싫었고 잠은 더자고 싶었고 한스가 한달정도 외국으로 출장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잠이 다 달아나버렸다.


물론 한스가 의도한 바였다.


카인은 흐느적거리며 침대에서 기어나와 기지개를 쭉 폈다.

이런것도 나쁘지 않다고 은연중에 생각하면서.


“샬렛에게 들었습니다. 요즘 부쩍 혼자 하시는 일이 많아지셨다고 하시니 옷은 두고 가겠습니다. 필요하시면 부르세요.”


한스는 나갔다.


카인은 한스가 두고간 옷들을 갈아 입고는 흐느적 흐느적 기어나왔다.

행복한 수면을 방해받은 분풀이로 벗은 잠옷들은 개어두지 않고 적당히 휙휙 던져놨다.


한스의 안내를 받아 식당으로 향하는 카인.


“그나저나 집사장님? 아침에 할 일도 없는데 잠은 좀 개운하게 잡시다.”

“충분히 주무실만큼 주무셔도 된답니다.”

“커튼 열어놓고 일어날때까지 쳐다보는데 뭘 어떻게 자요.”

“그런가요? 도련님은 항상 잘 주무셨습니다만.”


카인은 잘 잔다는게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한스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다들 바쁜지 식당엔 나 혼자다.

아니, 한사람 더 있다.


금발의 긴머리를 휘날리는 똑똑한 여성이 한명.


“소가주님 좋은아침입니다.”


밥먹다 말고 일어서서 가볍게 목례하는 바이스 에델.


“밥먹다 그러면 밥이 넘어가요? 편하게 먹어요 편하게.”

“잠은 편하게 주무셨나요? 아침에 따로 일정이 있으신지요?”

“있어요.”


밥먹고 다시 자려고 생각한 카인.

뒹굴거리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으로 인한 정말이지 중요한 일정이였다.


“그러시군요! 소가주님의 일정을 저도 살짝 견학해볼 수 있을까요?”


웃으며 넌지시 말하는 에델.


어떠한 악의도 느껴지지 않은 순수한 부탁이였지만

카인에게 있어선 악의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싫은데요.”


완곡하고 단호한 거절의 의사표시였지만 이 조그마한 생명체가 토라지듯 툭 던진 말 한마디는 한스와 에델에겐 거절의 표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말요? 방해 안되게 멀리서 보기만 할게요?”

“도련님. 가주께서 에델님을 가문의 상담역으로 지목하셨습니다. 저희 가문을 대표하는 선생님이기도 하니 결례되는 행동은 자제하셔야만 합니다.”

“아, 한스님 그런게 아니에요! 전 소가주님과 친구가 되고 싶은 것 뿐이랍니다.”


에델의 노골적인 플러팅에 카인은 참 혼란스러웠다.


웃는 낯에 침뱉는건 쉽지가 않아서 어물쩡 넘어가고 싶었다.


“그 이야긴 그만하고 밥이나 먹어요.”


와구와구 음식을 헤치우는 카인.


한스는 자리를 비우고 에델은 가만히 카인이 밥먹는걸 바라보았다.


카인은 묵묵히 입안에 음식물을 넣었다.


이토록 왕성한 식욕을 느낀다는것도 카인에겐 의미가 있었다.

하루 한끼가 일상이였던 그에겐 썩 괜찮은 허기짐이다.


“슬슬 여름이 다가오네요 소가주님. 아카데미에 갈 준비는 끝내놓으셨나요?”

“컥, 커헉··· 큽!”

“소가주님 천천히 드셔야죠? 여기 물이요.”


에델은 거하게 기침한 카인에게 다가와 손수건으로 슬며시 입을 닦아주곤 등도 토닥여줬다.


“아카데미요? 밥먹다가 왜 뜬금없이 그 소리가 나오는데요.”

“일년에 한번 귀족가 아이들은 간단한 조사를 하잖아요? 카를라인가는 마침 다음주에요.”


참으로 쓸데없는 학업성취도 평가같은게 제국엔 있었다.


아카데미 소리를 들으면 걱정부터 앞서는 카인으로썬 미치도록 하기 싫었다.


“그거 그냥 안가면 안돼요?”

“그럼 제가 아카데미에 따로 연락을 해놓겠습니다.”


카인의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그게 돼요?”

“제가 아카데미엔 영향력이 좀 있어서요. 아마 제가 말하면 학장님도 이해해주실거에요.”


토마토 베이스의 짭짤한 스프에 빵을 찍어 먹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에델.


이 순간 카인은 에델이야말로 신이 내려준 보물이며 카를라인가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효율적인 시간안배는 보다 효율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에델의 도움이 있다면 잠 잘 시간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는것이다.


카인은 에델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감사를 표명했다.


“진짜 고맙습니다! 대단하신줄은 알았는데 이정도일줄은 몰랐어요!”

“그렇게 고마워할 일은 아니에요 소가주님.”


받은것에 확실한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


비록 서로에게 아무런 대단한 감정이 없을지언정 사회를 보다 부드럽게 굴러갈 수 있게 도와주는 윤활유 같은 말 몇마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카인은 잘 알고있었다.


덕분에 에델은 빵을 한입 먹을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카인은 악당답게 히죽거리며 남은 음식을 처리하러 의자에 엉기적 엉기적 올라갔다.

유달리 음식 맛이 좋았다.


“그럼 제 부탁 들어주실거에요?”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선생님. 서로 돕고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에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어색하게 웃는 카인을 바라본다.


‘역시 애는 애라니까.’


아무리 소가주께서 영민하시더라도 저택 안에서 자라났을뿐인 그런 재목.


아직 세상 밖 물정을 모르시고 정보를 대함에 있어서 부족하실 점이 많으실테다.


소가주님이 앞으로 카를라인가의 가주로 살아가기 위해선 사람을 보는 눈과 위기대처능력, 학술적인 지식은 물론이고 세상의 그 누구보다 많이 아는 분이 되셔야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에델은 싱글벙글 웃으며 다람쥐처럼 음식을 입안에 넣고있는 카인을 바라보며 결심을 굳혔다.


“그럼 아침마다 저랑 놀아주실 수 있으신가요?”

“놀아요?”

“소가주님도 책상에서 공부하는 건 싫으시잖아요? 아침엔 저도 할일이 없어서 참 심심하답니다.”

“그정도는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대단하신 선생님 아니십니까.”


그렇게 카인과 에델의 비밀스러운 구두계약이 체결되었다.


에델은 아카데미와 관련된 카인의 편의를 봐주었고

카인은 아침시간에 자신에게 참견할 수 있는 권한을 에델에게 주었다.


카인은 이게 불공평한 계약이 될 수도 있다는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럼 밥 다먹고 저랑 이야기나 좀 할까요?”

“상관없어요.”

“밥을 드셔서 걱정되긴 하지만 과자를 좀 준비하고 작은 서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카인에게 눈웃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선 에델.


카인은 밥을 먹으며 바이스 에델에 대해 생각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내가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데 말이다.


***


가죽냄새가 진하게 올라오는 일층의 작은 서재.

아직 사용된 일이 단 한번도 없었던 카인의 공간.


카를라인가의 서재는 철저한 방음과 보안이 갖춰진 마법적인 공간이며

작은가주의 작은 서재 또한 길버트의 서재와 맞먹는 훌륭한 폐쇄성을 갖고 있다.


빠르게 식사를 마친 후 작은 서재로 들어선 카인은 다소곳이 앉아 창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에델과 눈이 맞았다.


“오셨군요 소가주님. 안오시면 어떻게 할까 하면서 걱정하고 있었답니다.”

“그냥 몇마디 하는건데요 뭐.”

“소가주님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아요.”

“제가 뭘 숨기거나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요.”


의미심장하게 웃는 에델.

식당에서 제안했을 때 보았던 은은한 미소.


“저는 소가주님과 친구가 되고 싶을뿐이에요. 그리고 전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노는 걸 좋아한답니다.”

“몸쓰는 것 보단 편하니까 좋네요.”


에델은 이 귀여운 꼬마 신사의 초롱초롱한 눈을 바라보며 어린시절 자신의 고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천재는 외롭다.


에델은 천재였고 동년배보다 훨씬 뛰어났다.

또래들과 어울리기 힘들었고 어른들에게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카인의 일면을 알게되자 자신의 어린시절 모습과 너무나도 겹쳐 보였던 것이다.


이유없이 화내고, 틈만나면 세인님과 세실리아님을 괴롭히고, 말썽부리고, 공부는 안하려고 하고, 정해진 것을 따르지 않으려고 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은 어린시절의 에델또한 겪었던 일.


‘무슨말을 해도 대화가 통하질 않았으니까.’


어린시절의 에델은 항상 자신에게도 속터놓고 이야기 할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뭘 그렇게 쳐다봐요?”

“···.”


카인을 바라보는 에델.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카인의 시선을 느낀다.

자신 또한 그랬다. 카인은 보이지 않는 방어기재가 있다.


에델은 카인이 오기 전부터 수십번이나 곱씹으며 생각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진심을 담아 목소리를 높인다.


“저희 오늘부터 친구해요!”


카인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바이스 에델의 본심을 이해할수가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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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바이스 에델 (2) 24.09.02 9 1 12쪽
» 바이스 에델 (1) 24.09.01 13 1 14쪽
6 그런 세계 24.08.31 19 1 14쪽
5 열살의 처세술 24.08.30 19 1 13쪽
4 천리길도 황궁에서부터 24.08.29 23 1 13쪽
3 글자만으론 판단할 수 없어 24.08.28 27 1 13쪽
2 아. 깨달아버렸다. 24.08.27 30 1 14쪽
1 카를라인가 24.08.27 4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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