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물이 아니에요 꼬마가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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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성
작품등록일 :
2024.08.27 16:46
최근연재일 :
2024.09.04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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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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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세계

DUMMY

머리맡에 별들을 이고 고요한 도심의 마차가 지나간다.


자신에게 안긴 카인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메리.


머리를 쓰다듬다 보니 볼따구를 꼬집어주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카인이 싫어할테니 마음을 다잡았다.


“아드님, 피곤한가요?”

“이정도로 피곤하면 이 세상 못살아갑니다.”

“크흡···.”


카인은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착하기도 하지.”


잠결에 메리의 목소리를 들은 카인은 ‘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런 평가를 내리신건가요.’

라고 은연중에 생각했지만 목소리를 낼 정도로 기운이 있진 않았다.


카인을 무릎에 눕힌 메리는 방전된 카인을 바라보며 황궁의 일을 떠올린다.


표면상의 이유는 에아교의 수장과 작은 다리 하나를 놓는 것.

그 과정에서 소중한 아들이 저주 혹은 이질적인 원인이 있었는지 조사하는 것.


길버트가 하는일에 참견할 생각은 없지만 요즘들어 그이는 일처리가 급하다.

결과가 좋으니 괜찮았지만 카인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다면 어떻게 처리하려고 했던걸까.


메리는 무릎에서 뒤적거리는 카인을 바라보며 작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어릴적 그이를 보는 것 같네.”


역대 모든 카를라인이 겪었던 심정의 변화가 카인에게도 시작되는 중이라면 사랑으로 이끌어주자고 메리는 다짐했다.


틀어지려는 것을 바로 세우고 돌이킬 수 없는건 제거하는것이 미래의 카인이 해야만 하는 일.

카인은 잘할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길버트와 나의 소중한 아들이니까.


마차는 저택에 도달했다.


메리는 휘청거리는 카인을 들쳐업고 곧 마중나온 시종에게 카인을 인도한다.


“카인 도련님은 많이 피곤하신가 봅니다.”

“후후, 이런걸 보면 아직 애라니까요.”


황궁에서 신경이 곤두서있던 메리는 저택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렸다.

피로감이 들었지만 안주인으로써의 위엄은 잊지 않는다.


“안주인님 식사는 어떻게 할까요?”

“저는 생각이 없네요. 페산트 당신은 꼭 챙겨먹으세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먹었습니다. 도련님은 곧바로 재울까요?”


메리는 페산트에게 업힌 카인을 한번 바라보더니 속삭이듯 말한다.


“이틈에 목욕 시켜요.”


***


넓은 욕실 중간에 툭 튀어나온 조그마한 검정색 대가리가 하나.


카를라인 저택가의 대욕탕.

무려 온천수가 솟아나는 거대한 공동.


벨브를 돌리면 막혀있던 물꼬가 열리면서 온천수가 솟아난다.


샬렛은 뜨거운 온천수에 찬물을 적절히 배합해 카인이 들어가기 알맞게 끔 온도를 맞추어두었다.

카인의 의식주를 일부 책임져주는 직속 시종 샬렛은 이 물온도도 기가 막히게 맞출줄 알았다.


“몸이 안움직여···.”

“도련님 일어나셨네요?”


샬렛은 카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완벽하게 책임져 줄 수 있는 풀코어 단짝친구라 해도 무방한 유능한 시종.


밥먹기 싫어하는 카인에게도 밥을 먹일 수 있고 잠들기 싫어하는 카인에게도 지겹도록 재미 없는 동화책을 읽어줘서 잠들게 만들 수 있는 샬렛.


그런 샬렛조차 유일하게 할 수 없는것.


목욕시키기.


카인은 목욕을 극도로 싫어했다.

이유는 단순한데 물이 뜨겁고 머리를 감으면 눈이 따가워서였다.


이 작은 개구쟁이를 씻기기 위해선 눈치 채지 못하는사이에 순식간에 빨래질 해버리는게 최고였고 샬렛은 낭비되는 시간 없이 효율적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으앗! 깜짝이야! 여기서 뭐해요? 아니 잠깐만... 진짜 뭐야?”


카인이 깨서 망해버렸지만.


“에고, 도련님 눈을 한번 감아볼까요? 30초만 눈을 감고 있으면 좋은일이 생길지도 몰라요.”


샬렛은 친절하게 제안했지만 카인은 잠시 눈만 꿈벅거리더니 점점 동공이 커져간다.


“뭐하는거야! 나가요 빨리!”


카인은 흘러나오는 물소리와 시각적으로 느껴질만큼 흩뿌려진 수증기를 보며 사태를 단번에 짐작했다.


이곳은 목욕탕이였고 지금 알몸으로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는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않았다.


“안돼요. 안주인님께서 반드시 씻기라고 하셨는걸요.”

“혼자 씻는다고요! 혼자 씻으면 된다니까?”


카인은 샬렛을 쳐다볼 수 없었다.

깊은 욕탕을 향해 잠수하며 나아갈뿐이다.


“음... 그럼 씻고 나오셔야해요? 검사할꺼에요.”


샬렛은 한번 져주기로 했다.


물온도가 괜찮아서 물장구치고 놀고 싶으신 것 같은데 좀 있다 씻기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빨리 좀 나가요. 제발.”

“그럼 적당할 때 다시 들어올께요!”

“뭘 들어와요. 미쳤어요?”


샬렛은 나갔다.


카인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욕탕의 벽면에 기대어 앉았다.


체구가 작아 입까지 물이 차올랐지만 머리가 뜨거워질만큼 당황스러운 기분에 전혀 개의치도 않는다.


‘하아... 내 인생.’


난 이렇게 창피한데 저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고 있다.


이런 과거회상씬은 소설에 없었는데.


덜커덩-


위협적인 소리로 열리는 유리문.


예상치 못한 큰 소리에 카인은 즉각 반응했다.

부리나케 잠수해서 욕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저항한다.


“아! 나가있으라고요 좀!”

“죄송해요. 방해됐나요? 잊은 물건 두고갈게요!”


샬렛은 다시 나갔다.


카인은 샬렛의 잊은 물건을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각기 다른 색깔의 오리장난감 세개가 욕탕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고무재질이고... 물에 담아서 몸통부분을 꽉 누르면 물총처럼 입부분에서 물이 발사된다......


'돌아버리겠구만.'


거대한 대욕탕에 오리 세마리와 함께 덩그라니 남겨진 카인.


우울한 기분을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이렇게 살다간 수치스러워 죽을것만 같다.


가문의 존속이고 라파엘이고 카인의 미래고 나발이고 인간의 존엄성이 급하다.


우선순위를 다듬을 필요가 명명백백한 상황이다.

이 조그마한 몸으로 설득력이 있긴 힘들겠지만 말이다.


“도련님! 필요한 것 있으세요? 들어갈까요?”

“제발! 10분안에 씻고 나갈께요!”

“아, 그건 안돼요. 지금 들어갈게요?”

“아! 안돼요! 들어오면 진짜 죽어버릴거에요.”


샬렛은 한숨을 내쉬었다.


‘죽어버린다니, 어디서 저런 말을 배워오신걸까.’


아이들의 체력 회복은 참 빠르다고 생각하며 글라스 재질의 벽 밖 작은 인영을 관찰하는 샬렛.


뜨거운 수증기가 안쪽에 서려 겨우 조그마한 윤곽이 보일 뿐이다.


슬슬 지루해지실쯤에 사과파이와 딸기주스로 회유하면 될 것 같다.

양치질이야 목욕보단 훨씬 간단한 일일테니.


“도련님?”

“아 씻는다구요! 거기 앞에서 그러고 있으면 안불편해요?”

“도련님은 불편하신 점 없으세요?”

“불편해서 죽겠는데요.”


카인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질 않는 유리창 밖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욕탕에서 벌떡 일어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이내 위풍당당히 헤엄치는 오리 세마리를 구석에 던져놓고는 찬찬히 욕탕의 풍경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역시 부잣집은 부잣집이야.’


욕실의 중앙 천장에 장식된 거대한 샹들리에 하며 자수를 놓은 듯한 욕탕 벽면의 휘황찬란한 문양들, 곰팡이나 때가 쉽게 끼지 못하도록 사용한 암석 재질의 사치품들.


‘오히려 이끼가 낄텐데.’


목욕탕에 있어선 안될 값어치 있어보이는 물건들에 둘러쌓여 있는 기분.


거대한 욕탕을 전세낸듯한 만족스러움은 꽤 좋다.


머리도 감고 물도 좀 찌끄려주고 손으로 피부를 쓱 밀어봤지만 때는 안나와서 적당히 대충 슥슥 헹구고는 욕탕을 나갈 채비를 시작한다.


생각없이 유리창 문을 연 카인은 대기중이던 샬렛과 눈이 맞았다.


“아 깜짝이야! 좀 나가있으라고 했잖아요!”


샬렛과 가벼운 아이컨택 후 다시 욕탕으로 부리나케 들어서는 카인.


얇은 유리문 하나를 살짝 열어 머리만 내민 채 샬렛을 바라본다.


“도련님! 넘어지시면 어떻게 하시려구요!”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언제까지 거기 서계실껀데요.”

“이제 씻으셔야죠? 다 씻으시면 상으로 사과파이와 딸기주스를 드릴께요! 밥대신으로 먹는거니 가주님껜 비밀로 해드릴게요?”

“필요없어요. 다 씻었다니까요? 나가라는게 그렇게 어려워요?”


쿠궁!


샬렛의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가 가라앉았다.


샬렛표 특제 사과파이는 도련님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영양을 생각하는 주방장 스튜어트와는 달리 오로지 도련님의 취향만을 고려해 개발한 샬렛 특제 디저트.


그것을 도련님이 거부하시는 것이다.


부쩍 침울해진 샬렛은 두 뺨을 툭툭 치곤 마음을 다잡는다.


“안주인님이 싫어할지도 모른다구요.”

“다 씻었다니까요? 왜 말이 안통하는데요.”


물에 빠진 생쥐마냥 카인의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본 샬렛은

‘자기딴에는 열심히 씻은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며 이 이상은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 몸 닦고 옷 입는 것 도와드릴게요.”

"하아..."


깊어지는 카인의 한숨소리.


눈 한번 딱 감으면 이런 쓸데없는 실랑이는 안해도 될 테지만 3초간 이루어진 인간의 존엄에 대한 심도깊은 고찰끝에 카인은 답을 내렸다.


“혼자서 해보고 싶은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그런거였어요? 그래도 양말은 혼자서 못신으시잖아요.”

“신을 수 있어요.”

“제대로 물기를 닦고 옷을 입으셔야해요?”

“네. 안보이는 곳에서 좀 기다려주세요.”


샬렛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지만 카인을 위해 한발 물러났다.

오히려 지금 실랑이를 벌이다간 도련님이 감기에 걸릴수도 있는 일이니까.


샬렛이 나가자 카인은 자기 몸보다 큰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머리를 털었다.


목 늘어진 긴 티셔츠와 반바지가 몹시나도 그리웠지만 대충 주는 대로 입고 양말도 귀찮지만 신어줬다.


“저 죄송한데요.”

“들어갈까요?”

“계속 저기요라고 부르긴 힘든데 어떻게 불러드려요?”

“네? 그냥 부르시던데로 샬렛이라고 부르시면 되시잖아요?”


아.

이 명랑한 여자 샬렛이였구나.


다시금 들려오는 씩씩한 목소리.


“또 이상한거 시키지 말아주세요 도련님! 저번에 드래곤 해드렸잖아요.”

“그냥 샬렛이면 돼요.”


문을 열고 나가려던 카인은 싱숭생숭하고도 기묘한 감각에 휩싸인다.


여자가 거리감이 없던 이유를 알았기도 했지만 샬렛··· 샬렛이라.


작중 카인이 정신적으로 크게 의지했던 인물이자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여인.


카인은 더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비극적인 일이 생기지 않도록 움직이려던 참 이였으니까.


마음먹은 카인은 문을 열었다.


“도련님! 정말 흠잡을데가 없이 잘 입으셨군요! 머리는 좀 덜 닦이셨어요.”

“그럼 배고픈데 밥이나 먹죠? 밥 먹었어요?”

“바로 식당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도련님만 드시면 되세요.”


카를라인가 별채에 위치한 대욕탕.

앞서 걷는 샬렛을 뒤따라 걷는다.


별채를 나서자 불어오는 차가운 밤공기.

하늘을 올려보니 시골에서나 보았던 수많은 별들이 떠있었고 작은 별무리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진다.


“도련님? 오늘은 분위기가 다르시네요. 황궁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건가요?”

“뭐, 그럴일이 좀 있었죠.”

“그런 말투도 그렇구요. 기분이 안좋으시다면 특별히 오늘만 다른 역할도 해드릴께요! 드래곤 말고 생각나는 건 있으신가요?”


카인은 샬렛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이윽고 꽤 괜찮은 역할 하나가 생각이 났다.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서 아이는 두명내지 세명정도 낳고 카를라인가에서 주는 연금으로 넉넉하게 살아가는 일반시민1 정도가 괜찮을 것 같네요.”

“그게 뭐에요. 너무 길잖아요!”


행복하게 오래 살면 좋지 않을까.


카인은 희생하고 헌신하는 인물이 비극적으로 죽는 건 참 희망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웃으며 살갑게 대해주는 샬렛은 비극적인 문단 몇마디로 빠르게 소모 되었고


그 사실을 알고있는 카인은 마음속 한켠에 두고있던 빙의라는 비현실감을 조금 치워낼정도로 현재의 상황에 진지한 마음이 생겨났다.


진지하게 생각중인 카인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는 샬렛.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계세요? 또 얼마나 이상한 것 시키시려고!”

“그냥, 저녁밥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

“분명 맛있을거에요! 식당에서 먹는밥은 참 맛있답니다.”

“식당 아니면 어디서 먹어요.”

“그렇죠? 매번 밥 때를 놓치시니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구요.”


휘파람을 부르며 걸어가는 샬렛.


“기분 좋아보이시네요?”

“그야, 도련님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니까요!”


카인은 샬렛을 살짝 떠본다.


“그랬죠. 샬렛이 항상 밥을 가져와줬었죠?”

“끼니를 거르면 더 작아지시니까 도련님이 작아지지 못하게 막는 것 뿐이에요.”


샬렛과 이야기를 하며 걷자 어느새 식당에 도착했고 역시나 호화스러운 음식들이 카인을 반겨주었다.


잠시 생각을 멈춘 카인은 소금간 된 구운 닭을 크게 베어물었고 떡갈비같은 고기 파이는 공깃밥 하나 추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맛있었다.


샬렛의 도움을 받아 청결함을 위한 일련의 과정들을 거친 후

노곤함과 포만감을 느끼며 카인은 잠자리에 들었다.


이현수.

그의 삶에선 이런 사랑은 너무나도 과분했다.


유년기의 이현수는 결손가정에서 자랐고 혼자 보냈던 시간이 월등히 많았기에 사랑을 받는것에도 익숙치 않았다.


명문대에 입학하고 남부러워할만한 직장에 다녀도 거대한 밑빠진 독 하나가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소통의 즐거움을 모르는 이현수에게 오늘 일어났던 일은 적잖한 충격이였고 당황스러운 기분의 연속이였다.


약없이 잠들 수 있는 하루였다.

카인은 아홉시간을 깨지도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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