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물이 아니에요 꼬마가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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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성
작품등록일 :
2024.08.27 16:46
최근연재일 :
2024.09.04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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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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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천리길도 황궁에서부터

DUMMY

햇살이 밝게 내리쬐는 늦은 오후.


새하얀 빛의 프리즘이 어렴풋하게나마 물결처럼 느껴지는 시간.


메리는 빛을 받으며 천천히 뒤따라오는 카인을 향해 미소지었다.


사랑하는 아들이 조금이라도 햇빛을 받지않게 하기 위한 메리의 사소한 배려였지만

카인은 메리가 만들어준 그림자가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카인답게 불건전한 생각이나 하는 중이였다.


메리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왕궁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부단히도 애썼다.


그런 카인의 불안감이 전해졌던건지 메리는 카인에게 다가와 손을 꽉 쥐었고 카인의 손은 식은땀 범벅이 되었다.


“카인? 단둘이 놀러가는거에요.”

“저··· 근데 왜 갑자기?”

“혼자가면 심심하잖아요? 잘 지켜주셔야 한답니다?”

“뭘 지켜요?”


메리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우리 아드님은 뭘 지키고 싶나요?”

“일단 가문부터 지키고 봐야겠습니다.”


메리의 멋쩍은 웃음은 소리내서 웃는 유쾌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꼬마 가주의 담대한 배포를 들어보니 카인은 역시 카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 어머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엄마도 아드님에게 궁금한 점이 있어요.”


웃음을 멈춘 메리는 돌연 걸음을 멈췄다.

잠시 무릎꿇어 카인과 시선을 맞춘다.


“왜 갑자기 격식차리는거니?”


아들을 향한 사려깊은 물음에 카인은 그저 시큰둥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냥 뭐, 그럴나이잖습니까.”

“크흡. 그··· 그렇네요? 이제 열살의 나이가 될테니, 어른스러워야겠죠!”


이 어른스럽게끔 행동하는 귀여운 생명체를 어쩌면좋을까.

메리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악지르고 뛰어다니고 떼쓰고 혼내면 울고 토라지는 카인도 귀여웠지만

점잖게 행동하는 꼬마신사같은 모습또한 너무 사랑스러웠다.


메리는 다시 일어나 걸었다.

카인의 손을 꽉 잡은채로.


“우리 아드님이 궁금한건 얼굴에 써있네요. 왜 같이 황궁에 가는지 궁금해진건가요?”

“솔직히 궁금하진 않아요.”

“흐음?”


메리는 걸으며 뒤돌아 카인을 내려다봤다.


인상쓰고 쫄래쫄래 걸어오는 모습이 여간 가기 싫어하는 것 같았는데?

곰곰히 생각해봐도 카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 우리 아드님은 어떤게 궁금한가요?”

“황궁에 가면 제가 해야 할 일이나 만나야 할 사람이 있나 궁금해서요.”


카인의 관심사는 여기에 있었다.


어차피 언젠간 황궁에 가야하고 좋던 싫던 소설의 등장인물들과 엮이는 건 필연일수도 있다.

미리 어떤식으로 행동할 지, 어떤식으로 대처할지 생각해두고 싶었다.


‘스노우볼을 차근차근 굴려나가고 싶어.’


뭐, 메리가 생각하기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가기 싫은 핑계를 대고 싶었구나?’

정도로 해석됐지만 말이다.


메리는 카인이 떼쓰기 위한 떡밥을 깔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른스럽게 행동하곤 있지만 역시 카인은 카인이라니까.

그도 그럴게 표정부터가 불만이 많아 보였으니까.


“엄마 옆에서 엄마를 좀 도와줄래요? 얌전히 있으면 상을 줄게요.”

“잘 모르겠는데 일단은 알겠습니다.”


이야기하며 걷다보니 카를라인가를 알리는 늑대의 형상이 차창에 수놓아진 마차가 눈에 띈다. 마차에 묶여있는 말들이 크흥 크흥 거리고 있다.


“저기 멀리 위에있는 큰 건물이 황궁아니에요? 그냥 걸어가도 될 것 같은데?”

“카인? 여기까지는 카를라인 가문의 땅이였지만 밖은 달라요.”

“그냥 걸어가면 되는거 아니에요?”

“우리 아드님이 세상을 무서워하니 무섭지 않게끔 마차를 타고가는거랍니다.”


제국의 역사는 깊지 않다.


현 제국은 황제에 의한 중앙집권의 영향력이 미미하다.


여덟개의 왕국이 상호간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 낸 제국.


초대 황제는 자신이 죽었을 때 제국의 분열을 막기 위한 한가지 기관을 설립했다.


황궁의 정보기관 매가 그것이다.


마차를 타는건 안전의 이유다.


공작가는 제국에서 손에 꼽을만큼 높은 신분이기도 하지만 카인의 아버지 길버트는 황제의 권력 한부분을 지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인물이였다.


메리는 이런 어른들의 사정을 어린 카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마차 안은 생각보다 시원하답니다? 가까이서 말도 볼 수 있지요.”

“그럼 타고 갈게요.”


마차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카인을 구겨넣으면 20명쯤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카인? 여기 앉으셔야죠.”

“어디요? 앉을데가 이렇게 많은데.”


메리는 앉아있는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 친다.


“생각보다 흔들리니까요.”


카인도 한숨을 푹푹 쉰다.


“아, 네.”


카인이 메리의 앞에 앉자 마차는 출발했다.

메리는 두손으로 카인의 배를 잡아 끌어안았다.


마차는 오르막을 오른다.

수도답게 수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카인도 5년뒤면 저곳에 다니겠네요?”

“저게 아카데미에요?”

“알고 있었군요?”


황궁 근처에 위치한 아카데미의 대문.

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모든것이 담겨있는 곳.


현 황제의 아버지가 세운 전 세계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기관.


겉으론 세계의 발전을 위한 인재를 키우는 기관이지만

그 뿌리는 황제의 황권강화를 위한 정치적인 이유로 세워진 교육시설이였다.


각국의 중요 인사 및 엘리트를 볼모로 잡아 미연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게끔 설계된 구조.


세계의 모든 인재가 모이는 곳이자 천화가 넘는 분량의 이야기들을 제공한 장소.


카인은 아카데미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검술천재라···.’


카인은 작중 라파엘을 떠올렸다.


라파엘은 제국의 어두운 부분과 대립하는 역할이지만

난 그 어두운 부분을 부각시키는 역할.


‘귀찮네 진짜.’


먼치킨주인공에게 삼류 악역처럼 징벌당할일이 생기지 않길 바랄뿐이다.


“하아···.”

“흔들거려서 속이 안좋은가요? 속도를 좀 줄일까요?”

“아뇨, 그냥 좀 심란해서요.”

“크흡···.”


이제 곧 황궁에 도착하는데 표정관리가 안되고 있다.

메리는 이것 또한 시련이라고 슬픈 생각을 하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멍하게 차창을 내다보던 카인은 애국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가진걸 지키기 위해선 제국이 튼튼해야만 했기에.


-히히히힝


마차가 멈춰섰다.

황궁에 도착한것이다.


“카인. 마차는 재밌었나요?”

“재미없어요.”

“머리가 아프거나 속이 메스껍진 않나요?”

“괜찮아요. 내릴꺼니까 손 놔주세요.”


라파엘에 관한 생각 때문에 기분이 센치해진 카인.


메리는 아들이 투정부리는것이라 생각해 조금 마음이 놓였다.

갑자기 너무 어른스러워졌나 생각했더니 이럴땐 또 아이같다.


메리와 카인은 마차에서 내렸다.

이미 알고있었는지 몇몇의 시중인들이 마중을 나와있다.


“카인 공자님이신지요? 벌써 이렇게 씩씩하게 자라셨군요?”

“누구세요?”


카인의 한마디에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노인.


“세바스찬, 차나 한잔 하러왔답니다. 아를렌을 불러와주시겠어요?”

“좀 전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자비님. 아를렌님은 가든에 계십니다.”

“따라오세요 카인.”


날카로운 목소리.

고상하고 도도한 메리.


방금까지 보여주던 자상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철저히 계산된 몸짓과 표정으로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각또각


가든을 향해 메리는 걸어나간다.


정중히 예를 갖춰 따라오는 시종장 세바스찬과 다섯명의 시종들.


카인은 순식간에 엄숙해진 황궁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전입온 이등병마냥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메리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갈뿐이였다.


그런 카인을 뒤에서 지켜보는 시종들.


메리의 정석적이고도 완벽한 귀족의 예법과 카인의 어리버리함이 갭의 차이를 만들어내어

메리를 향하던 시선들을 단번에 꼬마 가주가 휘어잡았다.


이때 시종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든 한가지의 생각.


‘앞을 안보고 걷다 넘어지시면 어떻게하지···.’


콰당-


시종들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성대하게 넘어진 카인.


순간 몇초간 정적이 흘렀다.


“아으.”


카인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해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묻어나왔다.


메리는 뒤돌아 넘어진 아들의 빨개진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저건··· 울고 싶은걸 참고 있는거야.’


메리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카인을 안아주며 궁둥이를 팡팡 해주고 싶었지만

이곳은 황궁. 수많은 음모가 있을지도 모르는 우아한 전쟁터.


“세바스찬. 이곳 책임자는?”

“외곽 경비 및 정비는 찰리경 소관입니다 공자비님.”

“따로 언질할 일이 있으니 빠른 시일내에 만나뵈었으면 좋겠군요.”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메리는 밖에선 공격적인 여자다.


꼬투리 잡힐 여지를 단 하나도 주지 않겠다는 공자비의 의사표명.

혹시라도 보고있을 숙적들에게 보내는 처세 잘하라는 경고다.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했으니 좀 더 편히 계셔도 된답니다.”

“어머, 그런가요? 버릇처럼 힘이 들어가버렸네요.”


메리는 세바스찬과 눈빛을 주고받고는 넘어진 카인을 향해 다가갔다.


“괜찮아요? 혼자서 일어서야죠?”


메리의 한마디에 카인은 울고싶은 기분이 들었다.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수치스럽다.


“구경났어요?”


구경이 나긴 했다.


일어서는 카인을 바라보는 시선들의 입꼬리가 씰룩 씰룩 거린다.


“세바스찬, 갑작스러웠을텐데 고마워요.”

“제가 한건 없습니다. 그저 아를렌님과 차 마시러 오신 공자비님의 시중을 들고 있을 뿐이죠.”


황궁의 소문은 부풀려지는 경향이 있다.


카를라인 공작가의 소가주가 넘어졌다는 단순한 사건 하나.


그것이 정적들에겐 소가주의 자질을 의심하는 명분과 실리로 포장되어 가문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걸 메리는 잘 알았다.


“가죽신발 신고올걸 그랬어요. 바닥 대리석 손질 엄청 잘 되있네.”

“···그렇군요 카인. 아프진 않아요? 안기겠어요?”

“됐어요. 애도 아니고.”

“크흡···.”

“관리 진짜 잘해놨네요. 무슨 길가에 먼지 한톨도 안보이고 매끈매끈하네.”


카인은 과거 군시절 사단장님이 방문하실 때의 치약청소 기억을 떠올렸지만

에이, 설마. 하고 생각을 일축했다.


“세바스찬? 우리 소가주님의 생각이 그렇다는군요.”

“찰리경에게 카를라인의 소가주께서 잘 관리된 왕성을 보며 감탄하셨다. 라고 살짝 언질해놓겠습니다.”

“그렇네요. 우리 아드님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 잘 가꿔진곳이에요.”


카인은 메리와 세바스찬의 대화를 들으며

왕궁에 사는 사람들은 초인이거나 괴물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선지 난 얼굴도 모르는 찰리경의 노고를 취하하는 높으신 양반이 되어버렸다.


‘사소한 작은 말 한마디가 파벌을 가르고 가문의 쇠퇴를 좌우한다라.’


평범한 일반인의 생각으론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카인은 걸었다.

메리는 카인이 또다시 넘어지지 않게 손을 단단히 잡았다.


천천히 대리석바닥을 따라 걸어가자 나타나는 황궁의 가든.


그 중심에 위치한 테라스.


“성하님을 뵙습니다. 카인 인사드려야지요? 교황님이십니다.”


카인의 얼굴이 굳었다.


“카를라인의 소가주님이시군요? 보기만 해도 참 깨끗한 아이입니다.”

“그런가요? 깨끗하다니 참 잘되었구나 카인!”

“에아께서 축복하시니 심려할 일은 아닙니다 부인.”

“성하, 가주 길버트를 대신해 청을 들어주신 점 대신 감사드리겠습니다.”


카인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성 세인트가 왜 지금?’


카인의 가슴속이 요동쳤다.


메리의 처가식구 아를렌을 만나서 차 한잔 하는게 아니였던거야?

왜 여기서 성 세인트가 나오는건데?


“카인? 성하와 나눌 말이 있으니 잠시 놀고 있으시겠어요? 세바스찬 부탁해요.”

“카인님? 정원엔 재미난것이 많답니다.”


세바스찬의 손에 이끌려 테라스에서 멀어질때도 카인의 마음속에선 한가지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막아야 해.’


성 세인트.


「아카데미 검술천재」에 등장한 카를라인 가문의 몰락 한 켠을 담당했던 제국의 교황.


교황의 말은 다소의 억지성이 있더라도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교황이 가진 힘에 대해 카인은 생각했다.


신앙심 가진 자들을 부추길 수 있는 힘.


‘만약 이 만남이 필연적이라면.’


정확하게 적중한 카인의 예상.

세바스찬에게 이끌려 걷다보니 정원의 한켠에 보이는 조그마한 두개의 형체.


어른인 세바스찬은 멀리서 투닥거리는 두 아이를 바라만 볼 뿐이였다.


“야! 이거 놔!”

“왜 불경스러운 말을 하는거냐고!”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쭉쭉 잡아당기는 남자아이.


성녀 크림과 예비교황 성 세인트 2세.

카인의 아카데미 동문들이다.


그들에게 뽀작뽀작 걸어가는 카인.


“너네 뭐하냐?”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10세들의 피비린내나는 전쟁 서막을 알리는 카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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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런 세계 24.08.31 19 1 14쪽
5 열살의 처세술 24.08.30 19 1 13쪽
» 천리길도 황궁에서부터 24.08.29 23 1 13쪽
3 글자만으론 판단할 수 없어 24.08.28 26 1 13쪽
2 아. 깨달아버렸다. 24.08.27 30 1 14쪽
1 카를라인가 24.08.27 4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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