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들이 사라져서 개척을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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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2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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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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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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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의 자식

DUMMY

<생략>


요괴의 비명. 병사들에게 다시 찾아오는 절망감. 요괴의 온몸이 불게 변했다. 그리고 숲에 있던 불이 요괴의 몸에 흡수돼 듯 빨려 들어갔다. 요괴의 몸은 하나의 불덩이로 변했다. 요괴의 몸짓 하나하나에 불덩이가 튀었다. 불덩이가 옮겨붙은 병사는 불을 끄지 못해 처참히 타기 시작했다. 남은 병사들은 그 모습에 다시 도망치기 바빴다. 요괴의 난동은 마치 터져나가는 폭죽 같았다. 결국 불길은 숲에서 끝나지 않고 들판까지 내려왔고, 저녁임에도 노을 내려앉은 듯 들판은 붉게 물들었다.

요괴는 몸을 가누지 못해 난폭하게 날뛰었고, 몸에서 터져 나오는 불덩이는 멀리 도망치는 시민들까지 날아갔다. 마치 불의 폭풍이 된 듯 요괴는 계속 돌고 돌았다. 모두가 요괴에게 접근하기 어려워 보였다.


크아악!


다시 한번 요괴의 비명! 요괴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쉽게 멈췄다. 어느새 요괴의 불타는 몸의 등 뒤에 도깨비가 사인검을 찔러넣고 매달렸다. 마지막 남은 도깨비로서 마지막 요괴를 토벌하지 못한다면 누가 이 요괴를 잡을 수 있겠는가.


..ㅎ다! ..ㅊㅅ...!


도깨비가 피를 토하며 무엇이라 소리쳤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 소리는 점점 커져 병사들에게도 대장에게도 들렸다.


쿵! 쿵!


요괴는 도깨비를 떼어내려 발을 구르고 손을 등 뒤로 뻗어 보지만 헛수고였다. 그가 꽂은 검에서 푸르른 불빛이 점점 모이더니. 들판의 붉은빛과 요괴의 불길을 집어삼켰다. 일 순 어느 병사가 역시 밤하늘은 어둡다고 느끼는 순간, 붉은 빛이 요괴의 등 뒤에서 점점 커졌다. 그 빛은 점점 커져 주변 일대의 어둠을 모두 삼켰다.


두우우우우우우웅!


살아남은 시민들은 말했다. 그 도깨비가 동귀어진할 때 눈뜨지 못할 정도의 밝은 빛과 낮고 깊은 울림이 퍼졌다고. 그리고 그 일대가 초토화되었다고.


[보고된 사망자 수]

병사 80명 출진 중 80명 사망.

동원된 시민 30명 중 9명 사망.

도깨비 1명 출진 중 1명 사망.


그 도깨비 새끼 죽을려면 요괴랑 단 둘이 죽지. 병사들을 모조리 끌어들였다며?

고아 새끼들이 사람 중요한 걸 모르니 그렇지.

쯧쯧. 그래도 더 이상 요괴는 안 나온다고 하니 거들먹거리는 도깨비 새끼들 안 봐서 좋네.

그럼 이제 고아들은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해. 노예로 부려. 이제 공짜 노예가 생기는 거지. 말 안 들으면 숲에 버리거나 내쫓으면 되고.

잘됐구먼. 도깨비 새끼들이 사라져서 아주 좋아.

도깨비 새끼들 잡으라는 요괴는 안 잡고 암살도 했다던데.

암살뿐인가 요괴 잡는다고 마을을 초토화한 곳이 한두 곳인가. 게다가 뇌물도 받아 처먹고 말이야.

분명 그 마지막 도깨비도 받아 처먹은 게 많았을 거야.

무당년들이랑 붙어먹는 것도 꼴 보기 싫었는데 칵~퉤!

도깨비 자식들은 어떻게 해?

몰라. 그 자식들도 노예로 쓰려나?

낄낄낄

무당들은?

요괴가 없어졌으니. 기생집에서 일하려나?

낄낄 빨리 그 모습을 봤으면 좋겠구먼.



-----



"주한!"


주한은 자신을 흔들며 부르며 소리에 깨어났다. 침대와 베게는 땀에 가득 젖어서 축축해져 있었다. 주한의 숨소리는 거칠게 내뱉다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온몸이 뻐근하게 느껴졌다.


"악몽이라도 꾼거야?"

그를 흔들어 깨운 친구 한현호가 물었다.

주한은 상체를 일으키며 창밖을 보니 새벽녘에 내려앉은 달빛이 보였다. 방 한구석에는 한현호가 켜놓은 등불이 잔잔하게 빛나고 있었다. 방 안에는 둘밖에 없었다. 창밖에서 울리는 규칙적인 새소리와 옆방에서 들리는 코 고는 소리.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얌전한 주막의 밤이었다.


"아니, 이번에는 달라."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무슨 꿈인데?"

한현호가 물으며 방 입구에 놓여있는 잔을 건넸다. 주한이 잔을 받자 물 주전자로 물을 부어주었다. 주한은 목 넘김 소리가 들릴 정도로 거침없이 마셨다. 그리고 잔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할아버지에 대한 사망 보고서를 토대로 그려진 꿈."

"동귀어진 사건을 말하는 거야? 꿈에서 할아버지는 보았어?"

"내가 할아버지였어. 내가 마지막 요괴인 갑산괴를 토벌했지. 마지막에 동귀어진까지 하면서 말이야."

"동귀어진... 들은 바로는 최악의 마지막 토벌이라고 들었지. 요괴와 중대 하나가 증발한 사건. 그것뿐만 아니라...."


한현호는 말을 하다 말고 주한의 눈치를 보았다. 주한은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그것뿐만 아니라 뒤에 숨겨진 사건도 있지."

"그 건은, 이제 미제 사건이잖아."


주한은 예전부터 위로의 말로 미제 사건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모두 할아버지를 욕할 때 그의 친구들은 앞에서 미제 사건이다. 괜찮을 것이다라고 늘 얘기해왔다. 하지만 뒤에서는 모두 달랐다.

그의 할아버지 주헌은 청주 지역 무당 살인 사건 및 뇌물 수수죄로 죄인 호송 중인 상태였다. 죄인 호송 중에 요괴를 토벌하러 가는 중대와 만났고, 그의 중대에 강제 동원되었다. 정식으로는 요괴 토벌에 성공하면 그 공로를 인정해 죄를 감안해준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도깨비는 그 당시 모두 숙청 대상이었다.


"뇌물, 모든 도깨비가 흔히 하던 짓이었다지. 우리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일 테고. 무당 살인 사건은.... 그게 맞는지는 모르겠네."

"뭐, 소문들이 다 그렇지 뭐. 실상은 뭐가 뭔지 모르고, 무당들한테 도망친 도깨비 중 몇몇은 그 무당들이 팔아넘겼다. 그에 마지막 도깨비가 숙청당하기 전 도깨비들의 복수를 행했다.라는 뭐 그런 이유가 붙은 거겠지, 중요한 건 국가가 요술석인 인강철의 사용 방법을 깨닫자마자 도깨비들도 요괴로 취급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 잡아들였다는 거야,"


주한은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였다. 그는 소문이 괜히 나는 게 아닐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 생각은 9살에 아버지가 죽은 뒤 20년 동안 생각해 왔기에 머릿속 한편에 굳혀진 상태였다. 그리고 20년이 지났음에도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보고 아직도 마지막 도깨비 주헌을 생각했다. 도깨비는 성을 가질 수 없기에 쉽게 알아보는 탓이었다. 그렇기에 매번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에게 해댔기에 잊을 수 없었다.


"아직 날도 밝지 않았으니 다시 잠이나 자자. 그건 개꿈일 뿐이야."

한현호가 말했다.

주한의 옆에 놓인 잔을 치운 그는 입구 옆에 주전자와 함께 다시 놓았다.


"이제 요괴들이 판치는 시대는 끝났어. 불 끈다."

"그래."

후~


방안에 등불이 꺼졌다. 창밖에서 은은한 달빛과 규칙적인 새소리, 누군가의 콧소리만이 잔잔하게 흘러들어오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밤이었다.

주한은 잠들기 전 한현호의 말을 되새겼다.


'요괴들이 판치는 시대는 끝났어.'



-----



5월이 곧 넘어가는 날. 해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두우물 서문 주막의 마당은 이른 아침부터 부쩍 많아진 사람들로 떠들썩했다. 모두가 곧 있을 오성사업에 입사하기 위해 대면 시험에 관한 이야기들 뿐이었다.

요술석인 인강철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오성사업에서 대규모로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가 돈 후, 오성사 본사가 있는 태평마루 국가뿐 아니라 국경을 맞닿거나 맞닿지 않은 각 국가의 뜨내기들도 다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주한이 어젯밤에 보지 못한 이들도 많이 보였는데, 음식이 제공되지 않는 여관에서 머물다가 온 이들과 막 아침이 되어 산을 넘어온 이들도 가득했다. 모두 마루와 마당 평상에 자리를 잡고 식사하고 있었는데 일부는 벌써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주한과 한현호는 대청마루의 한쪽 벽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진짜네 저 자식 도깨비 자식이여. 내 말 맞지? 어쩐지 머리 색이 좀 푸르다 싶었지."

주한이 오기 전 먼저 대청마루에 앉아 술을 마시던 패거리 3명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들은 주막에 올 때부터 주한의 밥 먹는 모습을 흘깃흘깃 쳐다보았는데, 지금은 술에 취해서 대놓고 위에서 아래로 훔쳐보았다. 그의 얼굴은 술에 취해 한껏 취해 벌겋게 상기되어있었다.


"야 인마, 술이나 마셔."

같이 앉아있던 동료가 그의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너희들이 도깨비 아닐 거라며 쳇."

아쉬운 듯 입소리를 낸 그는 다시 술을 마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현호가 부엌에서 다가왔다. 그의 한 손에는 밤주가 채워진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무슨 일이야?"

"늘 있는 일. 푸른 머리 색을 보고 도깨비를 의심하고 시비 걸으려는, 뭐 그런 거 있잖아."

주한이 옆 패거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내 세 명은 아무렇지 않게 막걸리를 마시며 큰 소리를 떠들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모두 인상은 찌푸렸지만, 그들의 덩치에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다들 아침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현호는 소주병을 열어 주한의 앞에 한 잔 따랐다.


"반주나 하자고. 태평마루에 왔으면 밤주를 반주해야지."

"밤주는 개뿔."

옆 패거리에서 한현호의 말에 반응했다.

한현호가 패거리를 보자 좀 전의 술에 취한 사내가 눈을 마주쳤다. 주한도 그를 노려보자 다른 사내들도 합심했다.


"하~."

한현호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주한을 보며 주전자를 들었다.

주한이 잔을 들자 한현호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둘은 눈을 마주쳤는데, 한현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에게 반응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주한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만 합격하면 더 이상 막노동을 안 해도 되겠네?"

"모르지, 내가 너처럼 기술이 있냐, 합격할지도 모르겠고 합격한다고 해도 몸을 쓰는 일만 하다 오겠지. 그것보다 고마웠다."

"응 뭐가?"

"우리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 도와줘서."


'막 노동하니 제 어미 건강도 못 챙기고 천애 고아가 되지 쯧쯧'

술 취한 사내의 말에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주한은 밤주를 삼켰다. 한현호도 마찬가지로 밤주를 삼켰다. 둘은 어릴 적부터 같은 마을에서 자라왔기에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아는 두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1년 전에 병으로 몸져누웠고 그대로 일어나지 못한 체 임종을 맞이했다.


"그래, 그러니까 이제부터 종종 연락하자고. 평소에 연락도 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연락해서 하는 말이 어머님이 작고하셨다길래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진짜 고아가 되었네. 난 도깨비의 자식이라 그런가."


'낄낄낄 도깨비가 다 그렇지'


주한은 주전자를 들어 한현호의 잔과 자신의 잔을 채웠다. 옅은 밤 향이 소주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손바닥 크기의 봉투를 하나 꺼내 한현호에게 내밀었다.


"이제 돈은 더 안 보내 줘도 돼. 나 혼자 남았으니 부모님에게 안부 전해드려 그동안 감사했다고, 내가 꼭 크게 갚겠다고."

"이건, 이번 오성사 대면 시험 결과를 보고 줘도 늦지 않아."

"아니야. 오성사에 떨어져도 난 빌어먹으며 잘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한현호가 봉투를 받지 않자 주한은 봉투를 그의 잔 위에 덮어놓았다. 한현호는 마지못해 봉투를 집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할아버지이자 마지막 도깨비 주헌이 죽은 날, 자신의 부모님이 매년 주한의 집안에 보냈던 돈이었다. 비단 한현호의 집뿐만 아니라 다른 집들도 같이 후원했으나 결국 마지막까지 후원자로 남은 건 그의 집안이었다. 도깨비의 무당 살인 사건과 뇌물 사건이 공표된 이후에도 말이다.

한현호의 집안은 태평마루와 국경이 맞닿은 강대쏠 국가에서 명망 높은 양반 집안이었다. 사람의 귀함을 중시 여겼기로 유명했는데, 특히 한 양반의 집안은 대대로 요괴를 잡는 이들에게 언제나 후하게 대접했었다.

잔을 내려놓은 주한은 허리춤에 있는 호패를 들여보았다. 이름 두 자와 도깨비 집안의 표시인 해태의 얼굴이 정면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래, 아버님께 꼭 말씀드릴게. 만약 무슨 일 생기면 주저 없이 연락해주고."

"그래. 예로부터 도깨비 집안이 힘들면 강대쏠의 한 양반 집을 찾아가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


'그러고 보니 왜 양반 집안이 쌍놈의 집안을 돕는거지?'

'몰라 씨. 우리가 돈 많은 놈들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어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 돈을 우리한테나 주지. 시이발 양반새에기들.'

'낄낄낄.'

옆 패거리들이 속삭이듯 말했으나 주한과 한현호에게 들릴 만큼 비아냥거렸다.

분명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주한과 한현호도 알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었다. 주한을 움직인 건 웃음 뒤에 나온 마지막 대화였다.


'우리도 오성그룹에 낙방하면 한 양반 집에 가서 빌어먹자고.'

'우리가?'

'안되면 털어먹으면 되지.'

'그게 말이 되나? 우리가 양반집을 어떻게 털어? 낄낄.'


밤주가 담긴 주전자를 잡은 주한은 단숨에 내용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거칠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주전자가 나뒹구는 날카로운 쇳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들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현호아. 오성사 대면 시험 정보 알려준 것 고맙고, 지금은 미안하다."

"아... 안돼."

한현호가 손을 뻗어 주한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였다.

그리고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주한은 주전자의 주둥이를 잡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옆 패거리 사내 한 명의 머리를 내려쳤다. 사내는 억 소리와 함께 그대로 상을 향해 앞으로 고꾸라졌다.


와장창!

헉!

"개새끼들이. 너희가 뭔데 감히 한 양반님을 욕보여? 죽고 싶은 거야? 아니면 미친 거야?"

주한의 말에 주막 안은 일순 조용해졌다.

사내의 동료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주한을 노려보았다. 그들이 일어나려 하자 주헌은 찌그러진 주전자를 내밀며 소리쳤다.


"시발놈들아, 자리에서 일어나면 무슨 일이 생긴다는 건 알아둬라. 도깨비 자식으로 태어나 천애 고아가 된 놈이 물불 안 가리면 하는 짓이 뭔지 보여주지."


사내들은 그의 위협에 자리에서 움찔거릴 뿐 눈치를 보며 일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일어난 사람은 먼저 고꾸라진 사내였다.


"이익!"


사내는 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어지러운 듯 일어나자 휘청였는데, 그것을 놓치지 않고 주한은 찌그러진 주전자를 놓고 그의 턱에 주먹을 꽂았다. 사내는 일어난 그대로 뒤로 고꾸라져 다시 한번 정신을 잃었다.


쿵!

꺅! 큰 소리에 놀란 여인의 비명소리.

헉! 주인장! 싸움이 일어났소! 밥 먹다 놀란 사내의 외침.

주변 사람들의 말을 기점으로 그의 동료들이 일어났다.

주한은 좀 전과 마찬가지로 사내의 턱을 노리고 오른 주먹을 직선으로 뻗었지만 사내는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바로 주먹을 뒤이은 오른발이 날아와 사내의 배를 걷어찼다. 사내는 뒤로 날아가 마당으로 넘어져 널브러졌다. 그 틈에 다른 사내가 주한에게 몸을 날렸다. 주한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사내와 뒤엉켰다.

몸이 엉켜 마루에서 마당으로 굴러떨어진 둘을 엎치락뒤치락했다. 덮친 사내가 주한보다 몸이 더 커 결국 위에서 내리누르며 목을 조르는 듯했으나 주한이 과감하게 그의 낭심을 무릎으로 걷어찼다.


으악!


사내의 비명과 함께 구도는 일방적으로 변했다. 주한은 낭심을 움켜잡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내를 옆으로 치워놓고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입술은 작게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 야비한 자식..."

마당으로 널브러진 사내가 일어나며 말했다. 주한은 그의 모습을 보며 그에게 다가갔다.


"뭐? 야비? 자기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놓고 야비? 이렇게 될 거란 건 생각도 못 했나 보지? 왜? 도깨비 자식들은 언제나 욕먹어도 조용히 있을 줄 알았나?"

"네가 먼저 주전자로..."

사내가 손을 뻗어 주한과 찌그러진 주전자를 가리켰다. 주헌은 사내가 무방비상태에 전의를 잃은 것을 보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턱에 주먹을 뻗었다.


퍽!


턱을 얻어맞은 사내는 그대로 주저앉으며 기절했다. 주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신을 잃지 않은 사내는 낭심에 무릎을 맞은 사내뿐이었다. 주한이 검지를 부들거리며 사내를 가리켰다.


"시발, 앞으로 또 마주치면 죽는다. 너네. 알겠어?"


사내는 대답 없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잃을 것 없는 도깨비의 자식인 걸 알아보면 알아서 피해 가야지. 시발 시비를 걸어? 멍청한 새끼들. 내가 누군 줄 이제 알겠지."

한현호가 어느새 조용히 주한의 옆에 섰다.


"경찰이 오기 전에 가자. 벌은 내일 면접을 본 후 받든지 하고 일단 여길 벗어나야 해. 가자."

"고작 술집에서 일어난 싸움으로 다 덩치 좀 있는 사내 녀석들이 경찰에 신고하겠어?"


주한은 사내를 계속 노려보며 말했다. 사내가 그의 말에 마른침을 삼키는 게 보였다.


"아니, 이보게 가긴 어딜 그냥 간단 말이오. 이거 다 물어주고 가야지."


어느새 부엌에서 나온 주막의 늙은 주인장이 그들 앞을 막아섰다.

한현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루 위에는 대자로 뻗어 정신을 잃은 사내와 부서진 밥상이 있었고, 대청마루 끝에는 사내들이 뒤엉킬 때 부서진 모서리가 보였다. 그리고 한 명은 마당에 뻗어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마당에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요?"

품에서 봉투를 꺼낸 한현호는 1,000원짜리 지폐 1장을 꺼냈다. 이 정도 금액이면 밥상을 새로 사고 마루를 수리하고도 남을 돈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겠네요."

천 원짜리 지폐를 본 주인장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얼굴에 있는 검버섯이 활짝 핀 미소와 함께 한껏 위로 치켜 올라갔다. 그의 옆으로 한현호가 한 걸음 다가와 속삭였다.


"그리고 만약 경찰이 오면 이야기도 잘해주세요."

"예, 물론 입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들었소. 저놈들이 도깨비, 님에게 시비를 먼저 건 것을요."


한현호는 그의 대답에 살짝 웃어 보이고는 주한을 보았다. 그는 어느새 궐련을 꺼내 입에 물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현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둘이 같이 다닐 때는 거의 이런 일이 많이 벌어졌다. 주헌은 시비가 걸리고 자신은 그 뒷수습을 하는 일.


"가자. 자식아"

"고맙다. 너도 하나 할래?"

주한이 궐련 주머니를 내밀었다. 작은 주머니에 3개 피가 남아있었다.


"아니, 나는 여자친구 만나러 가잖아. 궐련 냄새 싫어해."

"그렇군."


주막을 나온 그들은 자신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사람들도 더 이상 구경거리가 없어지자 하나둘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도깨비의 자식이란 걸 제대로 인식시켜줬네."

"이제 다른 도깨비의 자식들한테도 까불지 않겠지. 개자식들."

"근데 내가 누군지 알겠는지는 뭐야? 새로운 시비 대응법이야? 전에 없던 대사네"

"아니, 허세야."

주한의 말에 한현호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 모습에 주한도 작게나마 소리 내며 웃었다. 둘은 주막에서 걸어 나왔다. 그들이 머문 주막은 성문의 가장 가까이에 세워진 곳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태평마루 중심지로 갈 수 있었다.

도시를 순회하는 이동용 마차를 손짓으로 불러세웠다. 말 두 마리가 끄는 나무 마차가 둘 앞에 섰다. 마차 안에는 다른 손님이 앉아있었다. 마부가 손을 내밀자 주머니에서 동전 50원을 건넸다. 그러자 마부가 현재 목적지는 태평마루의 중심지인 두우물이라고 알려주었다.


"허세 대단하네. 먼저 간다. 내일 대면 시험에서 서로 좋은 결과 있길 바라자고."

"가라."

"참, 꼭 연락하고 자식아."

"고맙다. 정말로."


한현호는 마차를 타고 멀어져갔다. 주한은 마차의 뒤를 보며 그 자리에서 궐련을 깊게 들이마셨다.

도시 국가인 태평마루는 모든 곳에 마차가 쉽게 접근하여 오갈 수 있는 돌길이 깔려있었다. 바로 오성 사업이 투자한 기반 시설 중 하나인데 오성 사업은 태평마루에서 성장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초창기에 태평마루를 기반으로 먹을 것부터 마차 제작 등의 다양한 사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멀리 있는 난쟁이 국가에서 기술 좋은 난쟁이들을 영입하였었고 그들을 필두로 요술석 개발에 성공해 세계적으로 성장한 기업이 되었다.



--



창밖을 보며 고심한 표정을 짓는 한현호의 옆으로 강하나가 다가왔다. 그는 강하나가 다가왔음에도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오성사 제2 고급여관 5층의 위치는 상점 거리를 막힘없이 보여주었다. 창밖의 풍경은 형형색색이었다. 길가의 심어진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들은 붙잡고 불그스름하게 익히고 있었다. 나무들 밑으로 자신들의 가게 앞에 외등을 켜고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과 실랑이하는 시민들이 있다. 그들의 의상은 모두 제각각이었는데 간편하게 청바지와 색이 입혀진 윗옷, 셔츠를 입고 있거나, 저고리와 도포를 입은 자들도 있었다.


"무슨 생각해?"

산뜻한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한현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면서 고개를 돌린 그녀는 속옷만 입은 체 매끈한 피부와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가 한현호와 눈을 마주치고 생긋 웃어 보이자, 여우상을 한 그녀의 미모는 뚜렷하게 빛났다.


"그냥, 내일 오성사에 있을 대면 시험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

"그것뿐이야?"

"음, 그거랑 오랜만에 만난 우리의 저녁? 내가 빠트린 건 없었나?"


한현호가 능청맞게 웃고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도 그녀 못지않게 뚜렷한 이목구비가 미남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 달 만에 만났으니, 각오는 했겠지?"

강하나가 양손으로 한현호의 목을 감싸며 물었다.

둘은 오랜만에 만나 점심에 오성제과점에서 다과와 함께 수다를 떨고, 맛있는 저녁을 한 뒤 들어온 것이었다.

한현호는 창문에 등을 돌린 체 그녀의 허리를 양손으로 감쌌다. 늘씬한 몸매에 적당히 솟은 가슴이 보였다.


"씻으려고 옷 벗은 거 아니었어?"

한현호는 물음과 함께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다리를 받쳐 그녀를 가볍게 들었다.

오성사의 고급여관 내부는 아침의 주막과는 달랐다. 고급 목재를 이용한 침구들이 방안에 가득했다. 또한 엄지손가락 크기로 세공되고 주문으로 각인된 인강철이 기름등을 대신해 방 곳곳에 박혀 주광색의 빛을 내고 있었다. 또한 춥다고 하면 구석에 있는 벽난로에서 장작과 같이 열을 내뿜는 인강철을 사용할 수 있었다.


"천천히 씻지 뭐, 그것보다 난 자기가 무슨 생각 했는지 궁금한데?"

한현호는 그녀를 침대에 조심히 눕히고 자신이 그 위에 올라탔다.


"아까 말했잖아, 내일 있을 대면 시험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이야. 그것 보다 소화도 시킬 겸 사랑을 먼저 나눠볼까?"

"됐네요.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야."

강하나가 한현호를 가볍게 밀쳤다.

한현호는 뒤로 물러나며 그녀가 상체를 세우는 것을 도와주었다. 둘은 나란히 침대 끝에 앉았다.

강하나는 한현호와 정략결혼 할 사이었다. 강대쏠 국가에서 우직하고 사람 돌보기로 유명한 한 양반의 집안과, 아름수 국가에서 장사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상인 집안이 만난 것이다.

당시 강하나의 집안, 즉 강 상인의 집안은 더 이상 각 국가에서 고아들을 거두지 않는 모습에, 고아 자선사업 및 기부 활동을 한 집안이었다. 한 양반 댁과의 첫 만남은 10년 전 강하나의 아버지가 한 양반의 집안에 물건을 팔러왔을 때였다. 그때 두 집안의 기둥들은 얼굴을 처음 텄고 서로 옳다고 하는 일들이 비슷한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두 집안은 정기적으로 친목을 가졌다.

한현호의 부모는 그때 강하나를 처음 보았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앙칼져 보이나, 그 성격은 밝고 활달하며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텄다. 특히 강 상인이 고아들을 도와 일을 나갈 때 같이 나가 돕는 모습에 며느릿감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이 둘이 서로 만난다고 하면 양가 부모는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 두는 단계까지 와있었다. 정략결혼을 약속했었는데 둘이 사이까지 좋아지면 더욱 좋다는 의미였다.


"내년이면 나도 스물한 살이야. 우리 둘이 처음 만난 게 벌써 10년이나 지났다니 신기하지 않아?"

"그래, 그때부터 하나와 만난다고 하면 장인어른께서 경호원을 붙여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됐네."

"그때는 요괴가 없어졌다고 해도 불안했으니까, 이제는 확실히 없고 말이야. 아직도 우리 아빠는 내가 조금만 험한 곳이라도 간다면 수행원을 붙여주신다니까?"

"나 같아도 그렇겠다. 하나밖에 없는 아리따운 딸이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그런데 여기는 아름수 국가에서 반나절이나 걸리는 곳인데 수행원이 안 보이던데?"

"응, 내가 불편해서 거리를 둬서 티 내지 말아 달라고 했어. 수행원은 당연히 있고, 아래층에서 쉬고 있어. 저게 뭔 줄 알아?"

강하나가 침대 옆에 놓인 탁자를 가리켰다.

탁자 위에는 그녀가 벗어놓은 금팔찌가 올려져 있었는데, 팔찌는 평범해 보였으나 중간에 보석처럼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의 빛나는 것이 보였다. 한현호는 그것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세히 봐봐."

팔찌를 집은 그녀는 한현호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보석은 빛을 받지 않아도 푸른 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뭐야? 작은 통신기라도 되는 거야?"

"아니야, 예전에 내가 위급할 때 쓰던 대롱 폭죽 있지? 그게 이걸로 대체 된 거야. 위급할 때 손목에 낀 팔찌를 어디 세게 부딪쳐서 깨버리면 내 수행원이 끼고 있는 목걸이에 신호가 가는 거야."

강하나가 팔찌를 들어 벽에 부딪히는 시늉을 했다.


"역시, 장인어른의 딸 사랑은 대단하시네. 우리도 곧 부딪힐..."

"아 정말."

한현호의 말에 강하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다가오는 얼굴을 밀었다.

한현호는 그대로 뒤로 누웠다. 푹신한 침대가 사뭇 어제 주막의 이불과는 달랐다.


"내일, 오성사 대면 시험 말이야. 나는 괜찮은 데 주한이 잘 됐으면 좋겠네."

"주한씨 잘 지낸다면서? 예전보다 얼굴도 폈고, 자신감도 생겼다면서 그러면 내일 면접에 많은 이점이 될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 걔는 발품을 그만 팔고 한자리에 붙박여서 정기적인 일이 필요해. 매일 보따리 메고 산을 넘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겠어."

"난 처음에 그 사람 너무 음침해서 놀랐다니까."

강하나의 말에 한현호가 누워서 째려보았다.


"왜? 틀린 말도 아니잖아. 우리 아빠가 내가 어릴 때부터 고아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했다지만, 그 정도로 음침한 사람은 없었거든, 가만히 있어도 풍기는 분위기가 어두웠어."

"할아버지가 죽고 오명을 그대로 뒤집어썼으니까. 마을에서는 아무도 받아주는 이가 없었지. 자세히 말은 못 하지만 꽤 여러 가지 일을 당했더군."

"그런데도 둘이 친하게 지내는 게 참 특이하다니까."

"글쎄, 어릴 때부터 집에서 같이 살아서 그런가. 근데 이상하게도 성격은 맞았어, 단지 아버지가 주한이를 데려왔을 때 처음에는 말이 없어서 벙어리인 줄 알았지."

"그래서 놀러 나갈 때 매일 데리고 나갔다며? 사고 친 적은 없어?"

"없어. 그냥 바보 같이 당하기만 했지."

"내가 놀리기만 해도 가만히 있고, 다른 사람들이 놀려도 가만히 있고. 근데 내가 누군가에게 맞거나 하면 경호원이라도 된 것처럼 달려들었지."

"됐어. 이제 지겨워 똑같은 옛날이야기. 주한씨가 알아서 잘하겠지. 설령 면접에 떨어져도 말이야."

"떨어지면 안 되지."

"주한씨가 많은 일을 하며 독하게 살아왔다면서? 그럼 독한 마음 품고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너무 신경 쓰지 마."


한현호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가을로 접어든 저녁 공기가 쌀쌀하게 느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하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 이제 좀 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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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들이 사라져서 개척을 시작함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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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박미래 24.09.13 3 0 17쪽
14 첫 습격 24.09.12 6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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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녀들 24.09.09 8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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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탐험대-3 24.09.05 9 0 15쪽
7 탐험대-2 24.09.04 8 0 18쪽
6 탐험대-1 24.09.03 7 0 18쪽
5 소집 24.09.02 8 0 17쪽
4 변혁의 시대 24.08.31 9 0 19쪽
3 움직이는 외부세력 24.08.30 10 0 20쪽
2 오성그룹의 계획 24.08.29 14 0 24쪽
» 도깨비의 자식 24.08.28 28 0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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