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들이 사라져서 개척을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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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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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그룹의 계획

DUMMY

50년 전 오성사업은 작은 유통가게에서 시작했다. 모든 국가와 균등한 거리에 위치한 태평마루 국가에서 밀가루를 유통하였는데, 유통하면서 빵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빵집이 유명해지면서 그 성장에 박차를 가했는데 그 유명세는 전쟁이나 요괴로 피해 본 시민들이나 도깨비들에게서 얻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통에서 밀가루뿐 아니라 목재, 광석들도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유통과 동시에 생산과 제작까지 손을 뻗었다. 그러나 몇 년은 끝없이 부진하였으나, 회장이 북쪽의 바다를 건너 안평국에 있는 난쟁이들을 영입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난쟁이들은 예로부터 손기술이 좋기로 유명해 세계의 모든 국가에 인지도가 있었다. 그들의 기술은 모두 병기에 집약되어 전쟁이나 요괴를 잡기 위해 그 재능을 썼기에 항상 수요가 있었으며, 명성을 얻기에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은 영원하지 않았고, 요괴는 점점 씨가 마르는 게 눈에 띄게 보였다. 결국 일부 난쟁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외당하기 시작하여 농사를 짓든 사냥하든 제각기 먹고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때 난쟁이들의 기술력을 병기에서 다른 곳으로 돌린 게 오성사업 초대 회장 정오성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목재, 광석 등의 세공부터, 제조 및 건설까지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하더니 요기를 품은 초자연적인 광석, 인강철과 난쟁이들의 활용이 묘수로 다가왔다.

예로부터 도깨비들은 사인검을 통해 요괴를 잡았다. 사인검은 요기가 들어 있다고 알려진 인강철로 만들어진다. 인강철을 사인검으로 만드는데 자그마치 일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30년 전부터 요괴가 줄어듬에 따라 인강철의 수요가 적어지기 시작했다.

인강철이 모든 국가에 재고가 쌓인 것을 안 정오성 회장은 인강철을 꾸준히 구매했고 비축했다. 그리고 요괴 학자들과 난쟁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인강철을 사용할 수 있게 연구를 지시했고, 거듭해왔다.

그 결과

인강철을 가공하면 인강철에 기본적으로 정해진 요기가 있다는 점.

똑같이 가공된 인강철끼리 붙어있으면 서로 요기를 공유한다는 점.

여러 개의 가공된 인강철에 같은 주문과 각인을 세기고 요기를 불어 넣으면 장거리 통신이 가능하다는 점.

무당의 특정한 주문을 가공된 인강철에 새겨넣고 요기를 불어 넣으면 주기적인 폭발 또는 일회성의 폭발이 일어난다는 점 등을 발견하였고 연구 개발하기 시작했다.


연구를 통해 밝혀진 인강철의 통신성으로 대중적이진 않으나 장거리 통신을 활성화시켰고, 인강철의 폭발성을 이용해 기존 병기인 대포와 조총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요괴 토벌에 획을 그었으며, 광석을 캐기 위한 인강철의 폭발성을 이용해 동력을 얻는 기관 등의 발명을 했다.

이 기술은 19년 전 모든 국가에서 요괴가 사라졌다는 것을 공표한 이후, 다음 해에 발표했었다. 오성 사업 본사에 있는 대운동장에서는 기술까지 시연했었고 이에 참여자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이 사건 이후 인강철 광석을 등한시하던 모든 국가가 유통을 금지 시켰고, 그와 동시에 소외당하던 난쟁이들이 모두 일자리를 찾아갔다. 이는 정오성 회장이 충분히 인강철과 기술 좋은 난쟁이들을 수급한 이후였다.


"어서 오세요. 아버지. 대탐사도는 어땠는지요?"


정오성 회장이 오성 사업으로 복귀한 점심이었다. 별 다섯 개가 그려지고 갖은 화려한 장식이 된 마차에서 내린 정오성 회장을 맞이한 건 오성 그룹 부회장이자 아들 정오혁이었다.

정오성 회장은 옆에 서 있는 보좌관에게서 지팡이를 건네받아 지팡이를 짚었다. 얼핏 보면 머리의 절반은 벗겨진 흰머리의 주름이 자글한 평범한 노인의 모습을 한 그였다. 하지만 그가 입은 짙은 이끼색의 도포는 그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욕심이 끝도 없다."

정 회장의 입에서 탁한 목소리가 나왔다. 나이에 맞지 않게 목소리의 울림은 상당했다.


"그렇다는 건 이번 대탐사도 개척사업은 또 미루어진 겁니까?"

정오혁이 물었다.

정 회장은 본관으로 가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정오혁을 보았다. 자신과 닮지 않은 큰 키와 다부진 몸을 가진 체격이 그의 건강을 말해주는 듯 보였다. 다만 막 40세를 넘은 나이에 머리에 희끗희끗 흰머리가 보이는 모습에 정오성은 내심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정오혁의 표정은 근심이 있는 표정으로 정 회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 회장은 고개를 거두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오혁은 냉큼 아버지의 옆에 서서 같은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두 마디로 그래도 개척사업은 할만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진행만 하면 된다."

"축하드립니다. 아버지."

정오혁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정 회장도 그 모습에 껄껄 소리 내어 웃어 보였다.


"그래, 고맙다. 역시 그들도 자신들의 격오지를 그냥 버려두기는 아까운 것이지. 다만 계약 조건이 달라졌다."

"무엇이 바뀌었나요? 돈을 더 달라던가요? 아니면 우리의 기술이라도 요구했나요?"

"아니, 쌀을 생산하는 것보다 밥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달라는 거지. 자신들의 땅에 우리 오성 그룹의 장거리 통신 생산지를 만들어 달라는군. 자기네 나라 사람들을 써서 말이다. 그러면 격오지인 대탐사도 밀림의 개발권 및 임차권을 오백 년 해주겠다더구나."

"네? 그것 만으로 오백 년이나요? 백 년 아니었나요?"

정오혁의 놀란 물음에 정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연구 중인 인강철 동력기관 공장을 얹고, 임차권이 끝날 때까지 대탐사도에서 매달 발굴한 인강철의 4%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매년 우리 매출에 4%의 임차비용과 더불어서 말이야."

"허 그렇군요. 날강도가 따로 없네요. 땅만 빌려주는 것이면서."

"괜찮다. 그리고 오백 년 동안 새로운 자원 발견 시 인강철과 같은 비율로 무상 제공,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상품을 생산할 시 자기네 나라 사람들을 고용한 공장을 그때그때 만들어달라는군."

"아버지, 그곳에 자원이 많다지만 우리가 너무 장기적으로 손해 보는 것 아닌가요? 한편으로는 대탐사도는 위험하고 보고된 자원이 모두 거짓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괜찮아. 날 뭘로 보는 거냐. 이제 시작이고, 일단 해봐야 아는 거다. 이제 계약이 성사되서 말하지만, 너도 모르게 자원 조사도 얼추 했으니 걱정하지 마라."


정 회장의 말에 정오혁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미루고 미루어져 약 10년이나 지난 정 회장의 숙원사업이, 그가 죽기 전에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오성사 본관은 높이 3층의 밝은 흑색 벽돌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 높이는 층고가 높아 다른 건물의 5층 높이로 족히 15M는 되어 보였다. 본관 정문에는 오성사의 표시인 노란 별 다섯 개가 겹겹이 옆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별 표시는 마치 맨 앞의 별 그림자가 옆으로 연속된 것처럼 보였다.

본관 내부는 정 회장이 도착한다는 소식에 양 문이 크게 열려 있었다. 하지만 본관 한 편에 마련된 운동장도 분주했는데 내일 있을 오성사 대면 시험 진행도 이곳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본관에서 정 회장을 맞이한 직원들의 인사말이었다. 정 회장은 그들을 보곤 고개를 끄덕이며 중앙 계단을 이용해 회장실인 3층으로 올라갔다.


"이거 요술석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계단 못 만드나. 서 있기만 해도 서 있는 사람을 위로 올려주는 계단말이야.. 이런 건 무당들을 고용해야 하나."

"아버지. 차라리 마차 채로 위로 올려주는 걸 개발하는 게 빠르겠어요."

"그럼 개발해 봐라, 내 계단 오르는 것도 예전 같지 않다."


느릿느릿 계단을 올라 회장실에 도착한 그는 중앙에 놓인 푹신한 의자에 앉아 몸에 축 늘어트렸다. 그의 입에서 편안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오혁도 그의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입 좀 축이고 얘기하지. 보좌관 자네도 수고했네. 볼일 보게."

"네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고개를 숙여 보이곤 회장실에서 나갔다. 곧이어 비서가 차를 가져와 정 회장과 정오혁의 앞에 두었다. 차에서 노릇하게 구워진 차향이 올라왔다. 정 회장이 차를 입에 대었다.


"마셔보니 알겠어. 이 차는 감귤차에 비할 것이 안 된다는 것을."

"라탐국의 감귤차는 워낙 생기롭고 맛이 풍부하기로 유명하죠. 분명 대탐사도도 라탐국의 소유이니 그곳에서 감귤차도 우리가 직접 생산 할 수 있을겁니다."

"그래, 그러면 좋지. 감귤차는 마실 때 입안에 귤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차가 아니라 식사하는 느낌이었지. 흠, 그럼 그게 차인가?"

"적어도 감귤을 우려서 만드니까, 차라고 봐야죠."


정 회장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쩝 소리를 냈다.


"그놈들은 자원이 뭐든 풍족하니까 그런가 보다."


라탐국은 섬나라면서 천연자원이 풍부하기로 소문났다. 그들의 지역은 중앙의 라한 호수를 기준으로 크게 서부와 동부로 나뉘는데 라탐인들은 서부에 있는 주제도시에 모여 산다. 라한 호수의 수원이 서부로만 흘러서 도시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천연자원을 서부의 자원만 발굴해 쓰는데도 그들은 풍족하게 사용하고 있고, 아직 서부에 캐지 못한 자원도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라탐인들은 서부에 몰렸음에도 내륙인보다 경쟁 없이 여유 있게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햇볕이 강렬한 곳이어서 대부분 갈색의 피부를 한 것이 그들의 특징이었다.


"섬나라에서 기술도 없고 천연자원만 있는 녀석들이 대탐사도 밀림을 대가로 우리의 기술력을 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오백 년 동안 태평마루 국가 크기의 땅과 자원을 얻는다. 지금으로써는 부당한 거래고, 까닥하면 그들한테 뇌수까지 빨아 먹히기만 할 테지만, 우리가 자리 잡고 난 후에는 그럴 일 없다. 내 그동안 살아온 촉이 말한다."

"예, 다만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뭐?"

"김가한테 들었습니다. 덥거나 추운 극한의 날씨는 물론이고 비와 태풍도 자주 오는 날씨라서 광석 발견 및 채굴이 힘들 것을요. 그리고 각 국의 내륙 범죄자들이 모두 도망쳐서 가는 곳이 라탐국 동부 밀림인 대탐사도라고요."

정오혁은 의자에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막 40대를 바라보는 정오혁은 정 회장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이다. 늘 사랑을 독차지 받았으나 그만큼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그렇기에 정 회장이 벌이는 사업 앞에서는 항상 조심하게 입을 열었다.


"허허, 김가가 그리 말했어?"

너털웃음을 터트린 정 회장은 차를 내려놓았다. 정오혁도 마주 웃었다. 심기를 거스르지 않은 것이다.

라탐국의 서부에 비해 격오지이자 미개척지로 분류된 동부 대탐사도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적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범죄자들의 손길이 닿기는 했으나 그뿐이었다. 라탐인들도 여러 차례 동부 조사를 시도해 봤지만 밀림과 늪이 심하고 야수들과 요괴도 있어 개척하며 나아가기에는 워낙 험지라 힘들었다. 다만 그들의 조사에 따르면 밀림에 어느 정도 진입해도 서부 못지않은 천연자원이 있다는 것이다.


"날씨가 덥거나 추우면 어때 네 말처럼 우리도 감귤 장사를 하지 뭐, 비와 태풍이 자주와? 그러면 라탐국 사람들은 어떻게 거기서 살아왔겠나. 인간은 다 적응의 동물이다. 어떻게든 살아간다. 우리 오성사 아니, 오성 기업, 오성 그룹의 땅이 생기는 건데 고작 그 정도 날씨로 말이야."

"그러면 범죄자들은 어떻게 하죠?"

"그것도 이야기를 다 끝마쳤다."

"이전에 말씀하신 탐험대입니까?"

"그래, 탐험대 이야기야. 라탐국에서 우리 탐험대에 병사를 붙여주기로 했다. 80명으로 이루어진 대대를 붙여주겠다는군. 이후 개척지의 자리를 잡으면 추가로 최대 200명의 병사를 파견해 주겠다는군."


정오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문뜩 머릿속에 태평마루가 떠올랐다.


"태평마루에서는 우리 오성사업이 라탐국으로 이전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자식들은 왜 그래? 우리가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우리보다 설레발을 치고 있어. 기분 나쁘게. 내가 태평마루에서, 오성 사업을 키울 때 도와준 게 뭐가 있다고!"

정 회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한껏 격양되었다.


"그리고 그 새끼들이 앞으로 우리를 오성 그룹으로 격상하며 세금을 더 떼어가겠다더군. 망할 새끼들."

"예, 그래도 그건 예정된 순수 아니었습니까. 진정하셔요. 잠시 후에 태평마루에서 사람이 옵니다."

"그래도 그 자식들 내가 공들여 계획한 이 개척사업을 망치진 못할 거다. 자그마치 십 년이 지났어. 십 년! 라탐국과 협상할 때마다 깔아준 기반 시설만 몇 개냐. 망할 놈들."

정 회장은 숨을 고르며 다시 차를 들었다.

정오혁도 인제야 자기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약재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으나 입 안은 시원한 느낌으로 가득 찼다.


"맞습니다. 그들도 어쩌진 못할 겁니다. 다만 우리가 대탐사도에서 백 년의 개척권과 임차권을 가져간다는 것만 알고 있으니 마음이 쓰인 것뿐이겠지요."

"하하하, 오백 년이다. 오백 년이야. 지금쯤 그놈들 귀에도 그 소식이 들어갔겠지. 표정들이 궁금하구먼, 그리고 대탐사도뿐 만 아니라 이제 다른 나라, 다른 기업에서도 견제가 끝도 없이 들어오겠지. 하지만 여념치 않다. 우리도 거기서 왕이 되는 거다, 나도 너도 네놈 아들도."


아까와는 다르게 해맑게 웃은 정 회장의 표정은 아이와 같았다. 개척만 잘 된다면 국가 하나를 세울만한 크기의 땅이 있다. 오성 그룹에는 그 땅들을 개발할 수 있는 재력과 기술이 있다. 오백 년이면 오성 그룹이 아닌 오성 국가가 생기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정 회장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김 실장 들어오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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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 그룹의 본관은 요식업과 유통을 제외한 세공, 제조, 건설의 수뇌부가 2층에 다 포진되어 있다. 유일하게 회장실과 같은 층을 부서는 비서실 뿐이다.

본관 3층은 회장실과 더불어 접견실, 비서실이 자리해 있다. 접견실을 제외한 두 곳은 2층보다 소탈하게 꾸며져 있는데, 고가의 사치품을 좋아하지 않는 정 회장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었다. 또한 비서실에 근무하는 자들도 다른 기업보다 훨씬 적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소속된 인원이 적기에 다른 직원들은 보좌관들이 정 회장의 일을 거드는 것으로만 알고 있으나, 실체를 아는 이들은 비서실을 쉽게 대하지 못했다. 정 회장의 모든 계획과 지시가 비서실을 거쳐서 나가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는 유일하게 장거리 통신기를 이용해 정 회장에게 직접 연락을 할 수 있는 부서였다.

김 가는 비서실을 운영하는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정 회장이 난쟁이들을 영입할 때 같이 영입된 인재다. 그는 난쟁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난쟁이들과 잘 어울려 대장장이 일을 하는 모습에 정 회장이 안평국에서 난쟁이들의 소통과 관리를 맡긴 것이다. 여기서 시작된 인연은 자그마치 30년이나 흘렀다, 그는 이제 오성 그룹의 누구보다 정 회장의 기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들어오게."


회장실 안에서 정 회장의 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 회장은 사무용 책상 앞에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오성 그룹에서 탐라국 몰래 대탐사도에 자원을 파악하기 위해 보낸 파견대의 보고서였다. 김가가 직접 관리한 파견대의 정보로 한 문서였기에 단박에 알아보았다.


"찾으셨다고요?"

"그래, 오랜만이야 김가."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개척사업은 들었습니다. 얼굴이 많이 피셨습니다."

"얼굴이 피긴, 내 나이 70이다. 이제 요괴도 없어 100세 인생이라고 하지만, 나는 죽을 일만 남았다."

"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회장님. 대탐사도 개척하고 오성 그룹이 자리 잡는 것까지 보셔야죠."

"봐라, 네놈도 날 거기까지밖에 못 보는 사람 취급하지 않나. 일단 좀 앉아라."

정 회장이 앞의 의자를 가리켰다.


회장실은 딱 필요한 것만 갖춰져 있었다. 밝게 햇볕이 들어오는 창과 그 앞에는 처음으로 세공에 성공한 성인 주먹 크기의 인강철 한덩이가 장식되어 있다. 인강철의 앞에는 투박하고 넓은 갈색 원목의 정 회장의 책상이 있으며, 책상 뒤에는 같은 색의 책장에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책상 앞으로는 접견을 위한 의자 5개가 있었는데, 상석 자리에 하나 마주 보게 서 있는 의자가 옆으로 2개씩 있었다.

정 회장이 보고서를 내려놓고 김가를 보았다.


"김 실장. 이 보고서가 사실이라면, 우리 오성그룹이 대탐사도에서 오백 년 동안 자급자족하기 충분하다."

"예? 오성 그룹이요?"

김가의 물음에 정 회장이 힘없이 손을 휘휘 저었다. 쓰잘머리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태평마루에서 오성사업에게 세금을 더 매기기 위해 기업 등급을 격상했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정 회장이 수긍할 줄은 몰랐던 그였다.


"예, 저도 보고서를 토대로 하면 충분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 그렇지. 의견이 같군.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나?"


정 회장이 화두를 돌렸다.


"안평국가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떻게 잊겠습니까. 회장님이 난쟁이들을 영입하러 오신 날 이었죠."


김 실장이 미소 지었다. 정 회장이 기분이 좋은 게 틀림없었다. 그는 기분이 좋을 때 항시 과거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자기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다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여 닿기가 쉽지 않은 안평국가 도심지에 태평마루에서 먹을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 온다고 하길래요. 뭐 난쟁이들이 즐비한 안평국가 백태산맥에 관광차 왔나 싶었었죠."

"관광도 맞다. 난쟁이 말고 누가 높은 산에 굴을 파고 살겠나. 나는 그런 도시를 처음 봤다. 아무튼 백태산맥에서 너와 난쟁이들을 만났다. 인강철을 이용한 요괴 퇴치 병기 제작의 달인들 앞에서 내가, 난쟁이들에게 직접 영입을 제안했었지."

"네, 병기의 시대는 끝나 간다! 새로운 밥그릇을 찾아야 한다! 그 밥그릇에 난 여러분이 필요하다! 모두 그 말 듣고 망설임 없이 거부했었죠. 다들 빵 가게 사장이 질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해 우리를 데려가는 거다, 라고 수군거리면서요."

"하하!"


정 회장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그때 난쟁이들의 얼빠진 표정과 똥 씹은 듯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는구나. 그래도 나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영입하려 했지만 좀처럼 되지 않았지. 그때 난쟁이들 속에서 너를 보았다."

"저는 수습 시기가 막 끝난 신참 대장장이라 안쪽에서 열심히 풀무질하며 듣고 있었죠."

"그래, 그래도 눈에 띄었어, 고집불통의 난쟁이들 사이에서 인간이 우뚝 서 있다는 게 누가 보아도 한눈에 봤을 거야."

"이름도 없는 저를 난쟁이들이 거두어 줬으니까요. 아는 거라곤 김씨 성만 새겨진 부서진 제 호패였다고 하죠."

"나는 그래서 네가 난쟁이들과 함께 자라서 똥고집에 장인정신이 가득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었지. 오히려 부드럽고 더 이야기가 잘 통했다."

"매번 말씀드리지만 제 옆에 와서 조용히 말을 거실 때는 정말 귀찮았었습니다."

"맞아 귀찮게 했지 내가, 네가 거기서 나랑 가장 말이 잘 통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웃으며 김 실장을 가리켰다.


"저는 난쟁이 선배들한테 이미 찍힌 상태였고, 좋게 말하면 변혁자, 나쁘게 말하면 변질자였으니까요. 저는 아시다시피 병기 말고 다른 것도 만들자고 했었습니다. 저의 설득은 농기구나 가죽 세공 등을 말한 것이었는데, 설득된 난쟁이들 대부분 세밀한 세공이 필요하고 값비싼 장신구들이나 만드는 게 전부였지만요."

"그래서 그때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했나?"

"뭐, 회장님의 말처럼 인강철 광석과 병기가 점점 창고에 쌓이는 게 느껴졌으니까요. 그렇다고 인강철을 다른 강철처럼 다르게 활용하자니 조금만 세공을 잘못하면..."

"펑! 터지지."


정 회장이 김 실장의 말을 끊고 큰 소리와 함께 양손으로 손가락을 오므렸다 펼쳐 보였다.


"내 기억으론 막 2주가 지났었나, 마지막으로 난쟁이들을 설득하고 안 되면 포기하려고 했다. 그때 너희 도시 안쪽에서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땅이 울리기 시작했지."

"예, 누군가 인강철 세공에 실패해 대규모 연쇄 폭발을 일으켰죠."

"그게 불가사리를 불러냈지. 내 살다 살다 말로만 들었지, 산속에서 불가사리가 나오는 걸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저도 처음이었습니다."

"그게 몇 미터짜리였지 한 10미터는 되었나. 너희 도시 천장까지는 머리가 닿던데."

"아닙니다. 한 6미터였습니다. 대규모 대장간은 높이가 6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 아무튼 그때 돼지 같기도 하고 곰 같기도 한 불가사리 놈이 그 기다란 코로 대장간의 모든 물건을 쓸어 담아 먹기 시작했지. 신기하고 끔찍했다. 그때 너는 난쟁이들과 도망치다 말고 말했지. 군대가 오기 전까지 일단 싸웁시다! 우리 병기를 이용합시다! 도망치지마!"


정 회장이 김 실장의 성대모사를 하며 주먹을 쥐고 공중으로 두어 번 흔들었다. 그 모습에 김실장이 웃었다.


"그랬었죠. 근데 저 말고도 다른 선배들도 그랬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교감해 같이 한 것뿐이고요."

"그랬겠지. 그래도 나는 너만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도망치는 난쟁이들은 감명받았는지 각자 만든 무기를 가져왔지. 인강철 대포를 가져와 불가사리에게 쏘아대고, 활과 수석총을 가져와 인강철로 다듬은 화살과 총알을 쏘아대고, 진풍경이었지. 하지만 먹히는 게 없었다. 병기를 다 쓴 난쟁이들은 도망가기 시작했지."

"그래도 불가사리의 진격을 늦췄습니다. 대장간 바로 옆이 창고여서 불가사리가 그것마저 먹어 치운다면 큰일이었죠."

"그래, 그래서 나는 너에게 같이 도망치자고 했다. 맞나?"

"아닙니다. 그때 유일하게 우리를 보며 웃고 계셨습니다. 저희가 쏜 병기들 진짜 잘 만들었다고 하시면서요. 제가 네 번인가 다섯 번째에 수석총을 들고 갈 때 말리셨습니다."

"맞아, 병기를 다 사용하고도 효과가 없어 시무룩하고 분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네 꼴이 기억난다. 웃겼었지. 아무튼 나는 그때 말렸다. 인재를 잃기 싫다고 말이야."

"그것도 아닙니다. 제가 죽으면 난쟁이들을 설득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리셨습니다."

"하하."


정 회장의 쇳소리 섞인 너털웃음이 한동안 방안에 가득했다. 김 실장도 그와 같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래, 그랬지. 마침 원강 국가의 도깨비와 무당이 와서 불가사리를 잡지 않았더라면 김가 너를 데려오지 못해 우리 오성 그룹은 이렇게까지 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닙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회장님은 오성 그룹을 키웠을 겁니다."

김 실장이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근데 그 얘기를 꺼내시는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김 실장의 물음에 정 회장의 웃던 눈빛이 진중하게 변했다.


"지금은 그때와 같은 결단력, 무식함, 우직함이 필요한 때다. 대탐사도는 불가사리와 같이 우직하고 거대하고 알 수 없는 곳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리도 못 잡고 몇 년 동안 밀림만 주구장창 헤쳐 나갈 것 같단 말이야. 그래서 계속 집착하고 파고드는 사람이 필요해."

"그게 저입니까?"

"그래, 비서실장을 겸임하면서 나랑 같이 대탐사도에 집중 좀 하자. 그리고 네 심복 있지? 네가 칭찬을 마지않던 친구. 옛날의 너를 보는 것 같다던 친구 이름이 뭐였드라?"

"남 철입니다. 외자 이름이죠."

"그래 그 친구를 현장에 내세워라. 요 몇 년 평가도 아주 좋게 했더군. 너와 그 친구에게 모든 지원은 아낌없이 해주마. 너도 알다시피 전문가들과 파견할 직원들은 준비되었다. 내일 면접에서 필요한 이들이 있으면 너가 선별해서 더 뽑아가, 시중에 내놓지 않은 우리 개발 장비들도 다 지원해주마. 그리고 직원들을 훈련 시키고 못 해도 한 달 이내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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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들이 사라져서 개척을 시작함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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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전세사기 당했습니다. 24.09.05 14 0 -
16 속사정 24.09.14 2 0 21쪽
15 박미래 24.09.13 3 0 17쪽
14 첫 습격 24.09.12 6 0 17쪽
13 변화하는 인간관계 24.09.11 6 0 17쪽
12 탐험대-5 24.09.10 6 0 17쪽
11 그녀들 24.09.09 8 0 21쪽
10 탐험대-4 24.09.07 7 0 13쪽
9 태평마루의 한현호 24.09.06 7 0 18쪽
8 탐험대-3 24.09.05 9 0 15쪽
7 탐험대-2 24.09.04 8 0 18쪽
6 탐험대-1 24.09.03 7 0 18쪽
5 소집 24.09.02 8 0 17쪽
4 변혁의 시대 24.08.31 9 0 19쪽
3 움직이는 외부세력 24.08.30 10 0 20쪽
» 오성그룹의 계획 24.08.29 14 0 24쪽
1 도깨비의 자식 24.08.28 27 0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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