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돌 하나로 초월급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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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끼
그림/삽화
DDD
작품등록일 :
2024.08.30 15:38
최근연재일 :
2024.09.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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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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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S+

DUMMY

검사원은 좀비처럼 생기없는 얼굴이 인상적인 이십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한기훈 님?”

“네.”

“검사에 앞서 몇 가지─”


그는 사무적인 투로 검사 내용과 각성 사실이 허위로 밝혀졌을 때 부과해야 하는 검사 비용 등의 주의 사항을 이야기했다.


나는 대충 한 귀로 흘려들었다.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각성했을 때를 대비해서 몇 번이고 뇌 내 시뮬레이션을 돌렸으니.


별 감흥 없는 얼굴로 내가 적어낸 신청서를 읽어내리던 검사원의 표정이 일변한 것은 그때였다.


그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차트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중얼거린다.


“연금, 술사···?”


비친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이런 건 소설에서나 봤는데.’


각종 서브컬쳐에 익숙해진 나는 상황을 곧장 이해했다.


알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무려 그 ‘신성’의 길드장 박운호와의 식사를 앞둔 ‘귀한 인재’ 가 아니던가?


묘한 기분으로 이어질 그의 호들갑을 기다린다.


그러나 조금 더 시간이 흘렀지만, 검사원의 입은 다시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긴가민가한 얼굴로 신청서만 뜯어보고 있을 뿐.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묻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얼버무린다.


역시 소설은 소설일 뿐인가···.


하긴, 내 능력이 보기 드문 거라고 해도 저 사람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지. 지금까지 검사원으로 있으며, 얼마나 많은 각성자를 만나봤겠어.


“저쪽으로 가셔서 누우시면 됩니다.”


시키는 대로 돌침대 같기도, 엑스레이 촬영기 같기도 한 장치 위에 누웠다.


옷감 너머지만 장치와 맞닿은 매끈한 돌 표면에서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같다.


“금방 끝나니 그대로 움직이지 말고 편안한 상태로 계세요.”


어느새 건너편 모니터실로 넘어간 검사원이 지시했다.


─이이잉


묘한 소리와 함께 장치가 가동을 시작한다.


‘진짜 엑스레이 같네.’


잠시 후 매끈한 돌에서부터 실안개를 닮은 빛무리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기계 위에 오르는 사람은 대부분 각성의 설렘을 안고 온 풋내기일 텐데, 그런 상황에서 편안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그런 하릴없는 생각을 하며 얼마쯤 지났을까.


“···어?”


의아한 탄성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그 직후.


─피슈우웅! 퓨슈으우······.


퓨즈가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안개처럼 뻗어 나오던 빛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뒤쪽에서 느껴지던 미세한 진동도 함께 사라졌다.


“······.”

“······.”


···원래 이런 건가?


상체를 일으켜 유리창 너머의 검사원을 살폈다.


나라라도 잃은 듯 망연자실한 표정.


‘아니구나.’


단번에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시계 침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는 대략 30초쯤 뒤에 깨졌다.


눈에 초점이 돌아온 검사원이 허겁지겁 모니터실에서 달려 나온 것이다.


그러고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장치 이곳저곳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한다.


“이, 이게 왜 이러지? 어, 어떡하지?”


그제야 진실이 보였다.


이 사람, 사회생활에 찌들 대로 찌든 고인물이 아니라 그냥 의욕 없는 엠지였구나.


“아니, 이게 진짜 왜 이러지?”


단둘뿐인 실내라서 그런지 예상치 못한 상황인데도 내 마음은 의외로 차분했다.


‘···돌슨이 함께라서 그런가?’


그런 생각과 함께 주머니 속 작은 친구를 떠올렸다.


어쩌면 재혁 형이 없었어도 됐었을지도.


정신없어 보이는 검사원을 뒤로한 채 나는 내게 번질지 모르는 피해에 대해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설마 나한테도 책임이 있으니 물어내라거나 하진 않겠지.’


47억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두려운 숫자였다.


“진짜 마나가 측정 한계치를 넘었다고? 아니 그래도 이런 경우는···.”


머리를 감싸며 쉴 새 없이 중얼거리던 검사원이 무언가 떠올린 듯 퍼뜩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서, 선생님 혹시 마정석이나, 아니면 마나가 깃든 아이템 같은 거 소지하고 계신 거 있으십니까?”

“아니요?”


즉답하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눈을 끔뻑였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


다소간의 곡절은 있었지만, 내 검사 결과는 무사히 도출되었다.


나는 흡족하게 결과지를 읽어내렸다.


[한기훈 님 마나보유량 측정 결과: S+]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간 47억짜리 장치에 대해 마음속으로나마 짧은 애도를 표했다.


죽을상으로 검사 결과지를 건네던 사회초년생에 대한 건 잊어버리자.


정신에 좋지 않다.


─이기적인 새끼, 쓰레기, 살인자.


이거 봐 또, 시작하려고 하잖아.


나는 입술을 씹으며 본능적으로 주머니 속 돌슨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평소라면 너덧 번쯤 더 악담을 퍼붓고 난 뒤에야 사라졌을 음성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지는 게 아닌가.


“······?”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마음도 평온하게 가라앉는 기분이다.


‘뭐지?’


당황스러운 마음에 우두커니 서 있는데 재혁이 낚아채듯 손에 들린 결과지를 빼앗아 갔다.


그러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어 번 눈을 비비더니,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아니 마나가 S+ 라고? 이게 말이 돼?”

“말이 안 될 건 뭔데.”

“아니, S+라는 등급이 있다는 걸 나는 맹세코 지금 처음 알았다고!”


어이가 없네.


“···허, 형이 모르면 없는 거야?”


타당한 반문을 가볍게 무시한 재혁이 계속해서 재를 뿌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너한테 결과지 건네주던 검사원 얼굴도 뭔가 이상했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을 본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고.”


···진짜 귀신같네. 눈치가 빠른 건가? 촉이 좋은 건가?


“이거, 기계 고장 난 거 아니야?”


···진짜 어떻게 알았지?


“···괜찮아.”

“그러지 말고, 재검사해 보자. 이런 건 확실히 해야 해. 너 이거, 마냥 등급 높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너? 마나 고갈되면 사람이 맛이 간다니까? 본인 역량 제대로 파악 못 하고 나대다가 골로 가는 거야, 뭐 네가 던전에 갈 일은 아마 없겠지만, 마나 넘친다고 깝치다가 정작 필요한 상황에 없어서 못 쓰면 어쩔 건데?”


“119번 한기훈 님.”


아 등록증 나왔다.


직원에게 등록증을 받아 챙겨 나오는 와중에도 재혁의 염려는 그칠 줄을 몰랐다.


아 이거, 진실을 말할 수도 없고.


“걱정 마 던전 들어갈 일 없어.”


내가 딱 잘라 말하자 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다.


그리고 혼자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한다.


“뭐, 그래. 위험한 일만 없으면 오류든 진짜든 등급은 높을수록 좋긴 하지.”


하여튼 걱정을 사서 한다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교육 성적이 어떻게 되든 평타만 쳐도 S급이라는 건데. 완전히 죽을 쒀도 A급일 거고, 야 너 진짜 대박 났다 대박 났어. S급으로 확정되면 아무것도 안 하고 한국에서 숨만 쉬고 있어도 지원금을 준다더라.”

“알지.”


형보다 내가 더 잘 알 걸?


“너 우리나라에 S급 헌터가 몇 명인지 알아?”

“음, 다섯 명인가?”

“일곱. 오천만 국민 중에 단 일곱 명이야.”


소식 끊고 산 사이에 좀 늘었나?


“이제 여덟 명이네.”


내가 씩, 웃으며 말하자 성큼성큼 발을 내딛던 재혁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내 얼굴을 빤히 보다가 피식 웃는다.


“···이 새끼 이거. 이제야 좀 옛날 모습 나오네.”


옛날 모습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혁은 어딘지 기분이 좋은 듯했다.


“참 오늘 저녁은 네가 사는 거다. 소고기로.”

“미국산으로 합의 봐.”


***


며칠 후.


나는 재혁과 함께 약속 장소인 일식당으로 향했다.


부회장님께서 식사는 뭐가 좋으시겠냐고 여쭤보시기에 강력하게 어필했다.


왜 꼭 영화 같은 거 보면 중요한 만남은 꼭 이런 데서 하지 않나.


건물 모퉁이를 돌기 직전 재혁이 물었다.


“준비됐냐?”


그 말에 나는 옆 건물 유리창에 내 모습을 비춰봤다.


썩 멀끔하다.


비상금을 털어 정장도 한 벌 빼입고, 이발소에서 깔끔하게 머리도 정리했다.


신경 안정제와 청심환, 혹시 몰라 숙취해소제도 미리 복용했다.


가장 중요한 돌슨(과 그 부산물)도 재킷 안쪽 주머니에 잊지 않고 챙겼다.


그야말로 만전에 만전을 가했다.


외적인 준비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었다.


“······”

“왜 말이 없어, 너 병원에서도, 센터에서도 평범하게 보였어, 정신병자 안 같았다고.”

“정신병자라고 하지 말아줄래?”

“그래서 준비는?”

“아무래도 청심환이 중국산이었던 것 같은데. 두근거림이 안 멈춰. 역시 나중에 다시 날 잡는 게 좋을─”

“지랄.”

“아니 아직 예약 시간도 아니잖아? 30분이나 남았다고.”


외침은 묵살되었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뒷덜미를 잡아챘다.


그렇게 난 반강제적으로 식당 안으로 끌려들어 갔다.


***


“아빠 저 어때요?”


박운호는 백미러 너머로 떠름하게 연진을 훑었다.


“······.”


딸의 변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서 지켜보아서 장담할 수 있었다.


연구실에만 박혀 있던 연진을 아는 누군가가 지금의 그녀를 본다면 절대 알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늘 함께하던 눈그늘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고집스럽게 꼬불거리던 곱슬머리는 찰랑거렸다.


그의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연진은 누구라도 한 번쯤 뒤돌아볼 법한 미인이었다.


그랬기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선보러 가니···?”

“선보다 더 중요한 자리죠. 아무튼 예쁘다는 거죠?”

“오냐오냐, 그래.”


’뻔뻔한 것도 제 엄마를 쏙 빼닮았고.‘


“좀 긴장되네요.”

“네가? 긴장이 된다고?”

“? 저를 뭐로 보시는 거예요?”


긴장이 되지 않을 리가 있나.


그들이 지금 향하는 일식집에서, 대한민국 유일한 연금술사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나저나 의외였죠?”

“응?”


박운호는 자신이 딸이 또 무슨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건지 고민하다, 이내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기훈씨 말이구나.”


확실히 의외였지. 분명 자신과 다름없는 아저씨일 줄 알았는데.


이제 고작 스물한 살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라니.


“우리 연구실에도 어린애들 있어요. 한창 그 나이대 애들이 쓰는 말투가 아니었다니까요?”

“숫자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려무나.”

“제가 언제 숫자로 판단을 했어요, 아빠.”

“내가 좀 봤는데, 아주 인성이 되어 있는 친구야. 요즘 젊은 사람 같지 않아.”

“판단은 아빠가 하는 것 같은데.”


박운호는 자신의 사람 보는 눈만큼은 정확하다고 믿었다.


글에는 그 사람의 인격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척 돌랜드, 라는 닉네임은 그가 게시글을 작성하기 이전부터 박운호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척 돌랜드]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척 돌랜드] 부회장님 글을 보고 오늘의 전 타인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반추해 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척 돌랜드] 사람의 마음도 돌처럼 단단해지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척 돌랜드] 올 한해도 무사히 지나갔군요, 대한민국을 지켜주는 이들이 있어 저 같은 사람이 오늘도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습니다.

└[척 돌랜드] 부회장님께서도 후회 없이 하루 마무리하시길···.


‘분명 요즘 보기 드문 올곧고 바른 청년일 테지.’


부드럽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박운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연진이 너도 알잖니, 이 아빠 사람 보는 눈 하나는 확실한 거.”

“아직 안 보셨잖아요···?”

“···음, 오늘따라 우리 딸이 왜 이렇게 까탈스러운 것 같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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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저 위에 던전이 생겼다고 해서 구경 갔어요 (3) +1 24.09.12 285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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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저 위에 던전이 생겼다고 해서 구경 갔어요 (1) 24.09.10 323 11 13쪽
11 유니크 24.09.09 334 10 13쪽
10 무한의 돌멩이 24.09.08 350 11 13쪽
9 해방 24.09.07 365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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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꿈과 악몽 (1) 24.09.05 359 9 14쪽
» S+ +1 24.09.04 380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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