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수의 검은사탑과 작두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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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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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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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작2

DUMMY

2화


자기 머릿속에만 들리는 핀잔 소리에 갑자기 신당(神堂) 방바닥에 엎드리는 동방진이었다.


[야, 너 우냐?]

[방진아, 그런데 여기 왜 이리 습하냐?]

[뭔가 축축한 느낌도 나고 말이야]


그의 돌발행동에 약간 걱정하는 듯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할짝할짝-

그녀의 그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동방진은 엎드려서 왼손 약지에 낀 호박 가락지를 핥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녀는 축축하게 느껴졌었고 원인을 발견한 즉시, 그에게 짜릿한 충격을 주었다.


찌리릿-

“아야!”


호박 가락지에 혀를 대자마자 뭔가 꽉 무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동방진은 고개를 황급히 떼었다.


“훤화 아씨, 지금 내 혀에다가 뭐 하는 짓이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지금 누가 성을 내야 하는데 이놈 봐라!]


성을 내는 여성의 목소리, 그녀의 이름은 훤화.

동방진은 그런 그녀를 훤화 아씨라고 불렀다.


“훤화 아씨가 먼저 우리 엄마 비웃었잖아.”


“우리 엄마 아니었으면 어디 전당포에서나 굴러다녔을 건데, 그 은혜도 모르고 말이야.”


[내가 왜 전당포에 굴러다녀]

[동방 가문에 가보인 내가 말이야]


그녀의 대꾸에 동방진은,

“가보 좋아하시네, 내 손가락에서 꼭 붙어있는 주제에.”


“그리고 내 이름은 진이야. 방진이가 아니라고.”


“나도 어엿한 동방 씨란 말이야······.”

라고 말끝을 흐리며, 벽에 기대어 앉는 그였다.


동방진은 멍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엄마도 나도 알아. 훤화 아씨의 능력으로 큰 부자도 될 수 있고, 권력자들 뒤에서 온갖 말로 조종도 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우린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었을 뿐이야. 그냥 평범하게 말이야.”


[미안해, 됐지]

쿨하게 사과하는 그녀다.


[심란한 소리 그만하고, 너 왜 이렇게 힘이 없어]

[판다를 잡아먹었나, 다크서클은 왜 그리 심한 거야?]


동방진은 자신의 진지한 독백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 훤화 아씨의 태도에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나 완전 판다 같아? 그럴 수밖에, 지금 한 달째 잠을 못 자고 있어.”


[아니 왜?]


“모른 척하긴 어차피 내 꿈, 다 보고 있었잖아.”


동방진의 말에 머쓱하게 답하는 그녀.


[헤헤, 알고 있었어?]

[난 네가 날 하도 안 부르길래, 괜찮은 줄 알았지]


“괜찮기는··· 지금 내 소원이 대자로 누워서 푹 자는 거야.”


“나 이러다 수면 부족으로 죽는 거 아닌가 싶어.”


[네가? 행여나 그러겠다]

[네 심장은 내 허락 없이는 못 멈춰]


단호한 그녀의 말에 동방진이 일어서서 묻는다.


“훤화 아씨, 아씨는 지금 나를 못 자게 하는 존재를 알고 있지?”


[아니 몰라]


시치미 뚝 떼고 말하는 것이 뭔가 아는 말투다.

그녀와 지내 온 세월을 얼마인데, 바로 알아챈 그였다.


“강의 신, 하백(河伯) 님의 둘째 딸인 훤화(萱花) 아씨가 어디 아무 말이나 척척 해대는 잡신들도 아니고, 모르신다면 모르는 게 맞으시겠지.”


“어디 오랜만에 작두 타고, 지나가는 아무 신령이나 불러서 물어봐야겠다.”


그러면서 방구석에 놔둔 배낭에서 신칼을 찾는 시늉을 하였다.


****


[잠깐 스톱! 동작 그만]


그녀의 다급한 외침에도 배낭 안을 뒤적거리는 그였다.


[지금 상차림 할 돈도 없잖아]


그러자 동방진이 왼손을 들어 호박 가락지를 내보이며 말한다.


“이거 팔아서 하지 뭐.”


[그게 말이 되니, 집안 가보를?]

[어차피 내 허락 없이는 못 빼]


짤랑-

배낭에서 기어코 신칼을 꺼내든 그가 말한다.


“그래? 그러면 자르지 뭐.”


[저게 미쳤나!]

[신체발부수지부모라, 어디서 그런······]


“아니다. 신칼은 날이 무뎌서, 작두를 꺼내야겠다.”


달그락- 달그락-

신당 안에 있는 서랍장을 뒤지는 동방진, 그를 다급히 말리는 훤화 아씨다.


[작두 도령이 자기 작두로 손가락을 자른다고]

[이런 미친놈!]

[그만두지 못할까!]


번쩍-

동방진의 의지와 상관없이 위로 올라가는 왼손이었다. 그의 약지에 있는 가락지가 호박색 빛을 은은하게 내고 있었다.


그러자, 동작을 멈추고 그가 말한다.


“훤화 아씨, 나 진짜 꿀잠 자고 싶어. 사람이 잠자면서 꿈꾸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 줄 알아.”


“꿈에서 그리운 사람이 나오면 얼마나······.”


그의 말을 끊는 그녀.


[지금의 난 몰라]

[난 이제 꿈을 꿀 수 없으니까]


틱- 틱-

신당 벽에 걸린 시계 초침 소리만 들렸다. 천천히 그의 왼손이 다시 내려가며 가락지의 호박색 빛도 점차 희미해졌다.


[세계수야, 세계수가 널 부르고 있어]


그녀의 말에 동방진은 고개를 들며 말한다.


“아차, 작두 팔았었지. 나도 참~ 요즘에 깜박깜박한다니까.”


[야, 동방진 너~]


“그런데 세계수가 그 세계수야? 10년 전에 나타나서 세계 각지에 차원문인가 뭔가 하는 거, 떨궈 놓고 간 나무말이야.”


훤화 아씨의 말투가 험해지려는 찰나, 선수 치는 그였다.


[응, 맞아 그 나무야]

[지금은 코빼기도 안 보이지만 말이야]


“지금 그 게이트인가 차원문인가 하는 게 한강 하중도(河中島)에 있잖아.”


[지금도 있을걸]


“나도 기억나, 갑자기 허공이 열리면서 무슨 커다란 나뭇가지가 파리의 개선문(凱旋門)처럼 생긴 걸 놔두고서는 TV 방송으로 전 세계에 메시지를 보냈잖아.”


“아 그때 뭐라더라······.”

동방진은 그때 상황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세계가 무너진다]


그의 머리에 쥐가 날까 봐, 먼저 말해주는 친절한 훤화 아씨였다.


“그래, ‘세계가 무너진다’라고 했어.”


“그래서 각 나라 정부들이 그 차원문으로 군대를 파견했잖아.”


“그때, 처음으로 내가 출생 미등록자라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니까.”


그렇다. 그의 어머니인 동방미는 혼자 집에서 출산한 아들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동방진은 그의 의사(意思)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모든 의무와 권리 그리고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마지막 남은 재산인 이 신당도 사실 어머니 병세가 더 악화가 되기 전에 판 것이다. 신분증조차 없는 동방진은 사실상 금융거래도 할 수 없었고 학교도 못 가고 어머니의 홈스쿨링만 받았다. 그렇게 어머니 뒤를 따라 무당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서류상 없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다행히 몸은 튼튼해서 병원에 갈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허공에서 나타난 나뭇가지가 세계 각지에 차원문을 놔두고서는 TV 방송으로 메시지를 보내지를 않나, 세계의 이름있고 영향력이 있는 모든 종교인의 꿈에 전사들을 보내라고 지속해서 나타났다.


결국, 불면증에 괴롭던 종교계의 압박이 거세지자, 세계수의 부름에 응한 각 정부는 대규모 파병을 결정하였다. 그중 대한민국은 징집병들을 주로 보냈는데, 알다시피 돈 없고 뒷배가 없는 병사들 위주로 편성해 보내버렸다. 만약에 동방진이 출생 미등록자가 아니었다면 나이 때문에 분명 끌려갔을 것이다.


****


잠시, 옛 생각에 빠져있던 동방진이 뜬금없이 훤화 아씨에게 물어본다.


“훤화 아씨, 어머니는 출생신고를 왜 하지 않았을까?”


[그건······]


“진짜, 신접(神接)해서 낳은 아이가 나야?”


소문이라는 게 무서운 게 어디서 왔는지 그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중요하지 않고, 그저 사람들 입과 입으로 전해져 당사자인 동방진의 귀에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


난생처음으로 훤화 아씨가 자신의 물음에 답을 못하자, 도리어 동방진이 담담히 말한다.


“괜찮아. 저번에 병실에서 엄마랑 같이 TV를 보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무슨 발표 같은 걸 하는데 책임자로 어떤 사람이 나오더라고.”


“그런데 그 순간 엄마의 표정이 꽃을 받아든 소녀처럼 밝아지는 거야. 난 살면서 그렇게 해맑은 미소를 짓는 엄마를 본 적이 없었어.”


“화면에 나온 남자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미중년이었어. 그의 눈빛은 너무 강렬해서 TV 화면이 아니라면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어.”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그때 엄마의 미소는 마치······.”


[동방진 정신 차려!]

[너 지금 불면증 때문에 착각하는 거야]

[과대망상에 확대해석이야]


“엉?”


훤화 아씨의 일갈에 자기 생각에서 빠져나온 동방진이었다.


“지금 내가 제정신이 아니긴 해. 하하.”


어색한 변명과 함께 웃는 그에게 훤화 아씨가 말한다.


[가자]


“응, 어디로?”


[어디긴 한강 하중도에 있는 차원문]

[세계수 만나서 따져야지]

[왜 사람 못 자게 해서 횡설수설하게 만드냐고]

[동방진, 그 정도 배짱도 없어?]


그녀의 도발에 넘어간 그가 말한다.


“없긴 왜 없어. 나 작두도령 동방진이야.”


“작두도 타는 놈이 무엇이 무서워서 안 가겠어.”


“가자! 어차피 답은 여기 안 있고 거기에 있으니까.”


그렇게 출생 미등록자로 어렵게 안 간 차원 넘어 세상을 제 발로 가게 된 동방진이었다. 그나마 군대에 끌려가 강제로 간 것보다, 조금 나은 거라고 볼 수 있지만 말이다.


****


아직 어두운 새벽, 한강 하중도와 연결된 다리 위를 한 남자가 배낭을 메고 뛰고 있었다.


“헉헉, 되게 머네. 그래도 아직 날이 밝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너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지금은 여기 관광지야]

[파리의 개선문처럼 말이야]


영화에서 금지구역을 몰래 넘어가는 사람처럼 말하는 동방진에게 한마디 한 훤화 아씨였다.


“아니, 내 말은 분위기가 그렇다는 거지.”


멋쩍은 동방진은 계속해서 뛰어 하중도 안으로 들어갔다.


훤화 아씨 말대로 차원문이 있는 하중도 안은 이미 공원화가 되어서 한강 관광명소 중 한 곳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군인들이 들어간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차원문에서 돌아오지 못한 군인들을 기리는 위령비 앞에 국화꽃이 몇 송이 있는 게 다이다. 유족들이 아닌 이상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지 꽤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수가 놓고 간 차원문이 상당히 멋있다고 할까. 돌로 된 거대한 구조물에 새겨진 문양과 알 수 없는 글자들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서 요즘에는 웨딩 화보 촬영지로도 유명해졌다.


거기다 한강 하중도에 있어 다른 나라의 차원문보다 그 접근성이 너무 좋다. 그래서 대한민국 차원문이 특히 인기가 많아 세계 각지에서 찾아올 정도다.


섬 정중앙에 있는 거대한 아치형 석조 문 앞에 선 동방진, 그의 키의 몇 곱절이나 큰 차원문의 크기에 압도된 그였다.


“우와! 진짜 크다.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진아, 사람들 오기 전에 저기 돌에다가 손을 대]


“어차피 난 이 세상에선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이 봐도 상관없지 않아?”


[너도 참, 요즘에 어떤 세상인데]

[사진 찍히고 영상으로 올라갈 텐데]


“그러면 안 되지. 정부에서 오겠네.”


진짜 옛날 사람인 훤화 아씨보다 지금 시대를 모르는 동방진이었다. 그런 그가 그녀가 시킨 대로 차원문의 아무 돌에다가 왼손을 대자, 차원문에 새겨진 문양과 글자들이 호박색 빛을 발하며 빛났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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