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수의 검은사탑과 작두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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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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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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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작8

DUMMY

8화


“저기, 개 님. 혹시 진짜 말씀을 하신 건가요? 귀신 들린 게 아니라요?”


웰시코기 명문가의 당주이자 세계수 은행장인 케이나인 로센은 자기 앞에 놓인 명패를 ‘요리조리 장갑’을 낀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이거, 안 보여. 케이나인 로센, 이게 내 이름이다. 너 같은 팔푼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어리바리하면 살아남기 힘들 거야.”


주섬주섬- 짤랑짤랑-


눈앞의 노견이 주둥이를 움직일 때마다 진짜 말소리가 들리자, 동방진은 자신의 부적과 신칼을 다시 배낭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케이나인에게 질문을 하려던 순간, 은행 안으로 골렘들과 엘프녀들이 짐을 운반용 카트에 싣고 들어왔다.


골렘이 케이나인에게 인사하며 말한다. 엄밀히 따지면 골렘을 조종하는 골렘 PC방에 있는 직원이 마이크를 통해 말한 거다.


“저기, 은행장님. 지금 위로 수송할 수 있나요?”


“돈만 낸다면 언제든지 가능하지. 얘들아, 수송 준비해라.”


그때 옆에 물러서 있던 동방진이 이상한 것을 목격하였다. 데스크 위에 손을 올린 케이나인의 앞발에 장갑이 끼워져 있는데 마치 사람 손처럼 손가락 다섯 개가 앙증맞게 있는 것이다.


우다다다-

케이나인의 명령에 은행 안에 숨어있던 웰시코기들이 씰룩쌜룩 빵댕이를 흔들며 나와, 골렘들과 엘프녀들을 은행 뒤편으로 안내해주었다.


은행 안이 완전 개판이 되는 와중에도 케이나인의 장갑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동방진의 시선을 알아챈 케이나인 은행장이 그에게 말한다.


“어이 팔푼이, 요리조리 장갑 처음 봐?”

그러면서 장갑을 벗어 그 안에 있는 자신의 앞발을 보여주는 케이나인이었다.


“봤으니까, 자네는 그만 나가지.”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하는 개새끼를 한 대 콕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동물 학대로 엘프녀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로 남을까 봐. 속으로 화를 삭이며 은행 밖으로 나온 동방진이었다.


****


뚜벅뚜벅-

“지가 은행장이면 은행장이지.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개새끼가 진짜 어후~.”


세계수의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화를 내는 그였다. 그리고 버릇처럼 자기 약지에 있는 호박 가락지를 매만졌다. 아무래도 불안하거나 감정의 기복이 있을 때 만지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그의 머릿속에 훤화 아씨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 불렀어?]


“응? 아, 나도 모르게 만졌네. 하여튼 버릇이란 게 무서워.”


[왜 무슨 일 있어?]


훤화 아씨에게도 나름 대기상태라는 게 있어서, 동방진이 완전 위급상황에 처하거나 호박 가락지를 매만지거나 호흡을 불어넣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외부 세계와는 단절하고 사는 훤화 아씨다.


“아니, 오늘 완전 개 같은 일이 있어서.”


[아니, 왜?]

[누가 우리 진이한테 그랬어]


“그게 있잖아······.”


훤화 아씨에게 한껏 속풀이 말을 하려던 찰나,


쿵- 풀썩-

덩치 큰 동방진에게 누가 달려와 부딪쳤다.


“아니, 오늘 푸닥거리해야 하나 일진이 사납네. 누구야?”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와 부딪쳐 땅바닥에 주저앉은 한 엘프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향긋한 향기가 그의 코를 자극하였다.


순간적으로 얼굴에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하는 동방진이었다. 그것도 아주 신사답게 말이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우웩, 혀에 버터를 처발랐나. 너 왜 이래?]


그도 그럴 게 그 엘프 여성은 정말 기품있게 생겼다. 특이한 건 품에 검 한 자루를 검집 채 안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의 목소리가 뒤따라 들렸다.


“실비아, 이 할애비 말 좀 듣거라. 아이고 다리야.”


웬 할아버지 엘프가 그녀를 향해 잰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 하는 동방진이다.


“엘프도 늙는구나.”

[쟤네들이 엘프야?]


그러자, 동방진의 손을 잡으려던 기품있게 생긴 엘프 아가씨가 그의 손을 거절하며 스스로 일어났다.


“엘프도 당연히 늙죠. 우리는 전부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니까요.”


[여자애가 되게 까칠하네]


동방진에게 단호하게 호통치듯이 말하는 실비아라는 엘프 아가씨가 입을 열자, 향긋한 꽃내음이 그를 감쌌다.


하지만, 우리의 동방진, 그에 굴하지 않고 할 말은 한다.


“그냥 별 뜻 없이 말한 거예요. 엘프치고는 되게 과민반응이시네.”


[진이, 말 잘한다]


사실 비아냥에 가까운 말이다. 아까 개한테 한 소리 들어서 기분이 덜 풀린 상황에서 친절을 베푼 거니까 뒷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흥!”


[저것이 콱!]


실비아는 동방진에게 콧방귀를 뀌고는 곧바로 자기를 쫓아온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말했다.


“할아버지 그냥 계시라니까. 다리도 안 좋으면서 왜 쫓아왔어요.”


“네가 그 ‘세계수의 줄기 구멍’으로 간다고 하니까, 걱정되어서 따라왔다. 그런데 실비아야. 거긴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크기도 아니고 지나갈 수도 없단다. 그 길은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웰시코기들만 지나갈 수 있어.”


손녀인 실비아의 부축을 받으며, 점점 동방진 쪽으로 오는 할아버지였다.


****


‘아니, 왜 자꾸 내 쪽으로 오는 건데.’

동방진은 자기에게 다가오는 할아버지 엘프를 보며 속으로 말하였다.


그에게 다가온 할아버지와 그의 손녀 실비아.

할아버지는 동방진에게 물어본다.


“자네, 방금 은행에서 나왔는가?”


“네, 그렇습니다만?”


[진아, 이 할아범 기운이 장난이 아니야]

[나 조용히 있을게]


허리가 살짝 굽은 할아버지는 동방진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허리를 억지로 펴며 말한다.


우드득-

“아이고, 난 사누시라고 하는 사람인데 제사장을 하고 있지.”


“아, 네. 전 동방진이라고 합니다. 어제 이 세계로 넘어왔습니다.”


제사장 사누시는 그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차원문은 작동 안 한 지 10년이 다 돼가는데··· 한국에서 왔는가?”


아마도 동방진의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 그리고 피부를 보고 말한 것 같다.


“네, 맞습니다.”


그때 옆에서 제사장을 부축하고 있는 실비아가 끼어든다.


“할아버지, 이 인간이랑 이야기하고 계세요. 전 은행으로 갈 테니까요.”


그러자, 제사장은 자기 손녀의 팔목을 꽉 잡고 말한다.


“잠깐 기다리거라 아가야. 이 젊은이가 방금 은행에서 나왔으니 우선 물어보자.”


“저기, 은행장님은 바쁘시던가?”


은행장이라면 그 웰시코기인 케이나인 로센을 말하는 거다. 동방진은 대답 전 어깨 펴고 엉덩이 집어넣고 허리를 반듯이 하여 공수(拱手) 자세로 예의를 갖춘 후 말하였다.


“네, 어르신 방금 골렘들과 엘프 여성들이 짐을 실은 운반 카트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정중하게 대답한 동방진을 보고는 제사장이 말한다.


“그러한가. 그럼 바쁘시겠구먼. 그런데 자네 자세가 참 바르구먼. 좋은 기운이 느껴져. 미안하지만 나랑 손 한번 잡아볼 수 있겠는가?”


제사장은 곧바로 오른손을 내민다.

그걸 맞잡는 동방진.


동방진의 손을 잡은 순간, 제사장 사누시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뭔가 심오한 기운을 감지한 듯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놓으며 말하였다.


“자네의 ‘순혈 마나석’은 엄청나겠구먼.”


순혈 마나석이라는 말을 듣자 동방진에게 관심을 생긴 실비아였다. 그녀는 동방진의 의사도 묻지 않고 바로 그의 귀를 잡아당겨 귓구멍을 들여다본다.


덥석-

“아야, 이 아가씨가 왜 이래.”


당황한 동방진 하지만 그녀의 손길이 너무 부드럽고 향기도 좋았다. 그래서 말만 하고 제지하지 않았다. 아까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그는 관대하니까.


“후후.”

시력이 좋은 그녀가 연신 그의 귀에다가 바람을 불어대고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녀가 불 때마다 움찔거리는 동방진이었다.


“으~ 으~ 이 아가씨가 자꾸 왜~~, 거기는 안돼~~앙.”


거의 함락되어가는 그였지만, 실비아는 볼 거 다 봤는지 그의 귀를 놔주었다. 오늘 동방진은 불면증에 늙은 개와 망아지 같은 엘프 여자 때문에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쳐버렸다.


동방진이 자기 무릎에 손을 짚고서 말한다.


“헉, 헉. 오늘 일진이 사납구나. 지친다, 지쳐. 이거 살풀이해야 해.”


볼 거 다 본 실비아가 자기 할아버지에게,

“이 남자 귀지도 말랐고, 겨드랑이에서 암내도 안 나요. 테레지아 언니한테 데려가도 되겠어요.”

라고 얘기하자, 제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다.


“음, 1등 신랑감이로구나. 그럼 우선 우리 연구소로 같이 가세. 거기 부소장이 내 장손녀야.”


당황한 동방진,

‘1등 신랑감 내가? 장손녀는 뭐고 또 무슨 연구소 말하는 거지?’


그가 뭔가 말하기도 전에 그의 손목을 꽉 잡고서 먼저 길을 나서는 실비아에게 무저항 태도로 마지못해 끌려갔다. 그것도 피곤함에 찌들어 넋이 나간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하지만 그도 모르게 그의 약지에 있는 호박 가락지에서 호박빛이 계속 깜박이고 있었다.


****


엘프들과 함께 간 곳은 골렘비전의 연구소였다. 그곳은 엘프들이 있는 벙커 근처에 있는 건물로 골렘 PC방 못지않은 진짜 요새다. 골렘들의 경비도 삼엄했지만, 엘프 여성 궁수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제사장과 함께 왔어도 몇 겹의 보안 검사를 통과하고 안으로 들어간 연구소 안은 상당히 넓었다. 연구원들이 10명 정도 있는데 한 명만 인간 남자고 전부 엘프 여성들이었다.


‘이상해, 왜 남자는 전부 인간만 있고 여자는 왜 전부 엘프만 있지?’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동방진이 제사장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려는 찰나, 웬 키 크고 육감적 몸매를 소유한 흰 가운을 걸친 엘프 여성이 다가와 그들에게 반갑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응, 우리 장손녀 신랑감 데리고 왔어. 여기 동방진이라는 한국 청년인데 아주 실해.”


노인네가 어디서 힘이 났는지 동방진을 테레지아 앞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바로 서로의 코앞에 서게 된 두 남녀였다. 테레지아가 먼저 말을 하였다.


“한국 남자치고는 좀 우락부락하게 생겼는데요. 덩치도 크고 근육이 너무 커요. 둔해 보이는데.”


사람을 앞에 두고 바로 품평하는 테레지아, 그녀는 동방진의 의사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바로 그의 손을 잡더니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그 뒤를 따라나서는 제사장 사누시와 실비아였다.


어떤 비싸 보이는 기계장치 앞에 동방진을 앉히고는 그의 오른팔을 긴 통 안에 넣게 하였다. 그리고는 버튼을 누르자 동방진은 커다란 말벌이 쏘는 듯한 고통을 팔 전체에서 바로 느꼈다.


“으아! 이게 뭐야!”


이거 무슨 돈가스 사준다고 따라갔다가 비뇨기과에서 고래 잡은 상황이 그에게 펼쳐진 것이다. 고통에 몸부림치자 뒤에서 그를 실비아가 꽉 껴안아서 그나마 고통이 감해졌다.


푸슈우-

다행히 5초를 넘기지 않았다. 동방진은 오른팔에서 바늘 여러 개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바로 욕지거리하려는데 엘프녀 두 명이 그를 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자 겨우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속으로 되뇌었다.


‘이년들 뭐야. 갑자기 나에게 왜 이런 짓을··· 1등 신랑감이라며.’


동방진은 그의 오른팔을 기계장치에서 꺼낸 뒤 팔에 구멍이 났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테레지아는 어떤 기계장치에서 무엇인가 꺼내 가져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할아버지, 실비아. 이 한국 남자 100퍼센트 숫총각 맞아, 이게 그의 피로 만든 ‘순혈 마나석’이야. 다른 것들과는 차원이 달라.”


그녀 손바닥 위에 있는 엄지손가락만 한 보석이 호박빛과 푸른빛이 뒤섞여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고 있었고, 그 보석 중앙에는 붉은 핏방울이 동그랗게 결정되어 박혀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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