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수의 검은사탑과 작두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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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작9

DUMMY

9화


테레지아가 본인 동의도 없이 숫총각인 동방진의 피를 뽑아 마나석이라는 마나 결정체로 이루어진 암석에 융합시켜 만든 ‘순혈 마나석’을 감상하고 있을 때 유일한 인간 남성 연구원이 다가왔다.


“부소장님 그 마나석은 처음 보네요.”


“아, 데반 소장님. 이번에 새로 온 한국 남자한테 뽑아낸 숫총각 혈액으로 만들었는데요. ‘순혈 마나석’도 일반 마나석처럼 보통 청보랏빛을 띠는데 이 사람 것은 특이하게도 호박빛과 푸른빛이 섞여서 빛나고 있어요. 예쁘죠?”


“예쁘네요. 보통 혈액 결정체만 중앙에 자리를 잡는데 이렇게 색이 다르게 나온 건 처음 같은데요.”


데반이라는 이름의 이 연구소 소장은 상당한 미남자로 중저음에 나긋한 말투로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동방진의 ‘순혈 마나석’을 데반 소장에게 넘겨주려는 테레지아였다.


“자세히 보세요. 소장님.”


하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아닙니다. 엄연히 주인이 계시는데 저분께 드려야지요.”

라고 얘기하자 테레지아가 무안해하며 말한다.


“소장님, 우리가 금화를 주고 사면 되잖아요.”


금화 얘기에 솔깃한 동방진은 내심 돈으로 달라고 작게 말하였다.


“네, 저도 돈으로······.”


‘저 보석이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국에서 돈도 안 돼. 금화로 주라고, 금화 가지고 한국 돌아가면 한 개에 최소 300만 원은 받을 수 있어.’


데반 소장은 그의 말은 무시하고 고개를 저으며,

“부소장님, 우리 이번 달 예산을 이미 다 썼어요. 예비비도 없습니다.”

라고 말하였지만 쉽게 포기 못하는 테레지아였다.


“이번에 개발한 신제품 일반형 콘돔 있잖아요. 그거 분명히 잘 팔릴 거니까, 이세옥 사장님한테 보너스 미리 받으면 안 될까요? 그래서 그 돈으로 사요.”


“테레지아 양이 무슨 무당도 아니고 잘 팔릴지 어떻게 알아요. 물건을 아직 시장에 내놓지도 않았는데 사장님이 보너스를 미리 주겠어요.”


“치이, 그래도······.”


테레지아는 어지간히도 동방진의 순혈 마나석을 가지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하지만 데반 소장의 무당 소리에 반사적으로 반응한 동방진이었다.


****


“저기, 제가 무당인데요.”


이번에는 제대로 동방진의 말을 들었는지 바로 반응하는 데반 소장이었다.


“정말요? 와, 여기서 무속인을 만날 줄이야. 동방진 씨라고 하셨나요. 저도 다른 세계에서 왔습니다. 거기도 무당이 있어요.”


과학자 같은데 데반이라는 사람은 무당에 대해서 좀 아는 눈치 같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제사장 사누시 할아버지가 물어본다.


“소장 양반, 이 숫총각이 무당이라고?”


“네 제사장님, 이 분이 제사장님이 하시는 일과 비슷한 일을 생업으로 하시는 분이에요. 신점도 보고 사주팔자에 무슨 굿도 하고요.”


“그래, 테레지아 그거 나한테 줘보겠니?”


“네, 여기요.”


데반 소장의 친절한 설명에 두 눈을 번쩍이며 동방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테레지아가 순혈 마나석을 건네주자 유심히 보는 제사장 할아버지였다.


“오호, 그래, 그래.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먼. 무당이라고 했나? 나랑 비슷한 일을 하며 먹고 산다고?”


“네, 어르신.”


“음, 젊은 친구가 그렇단 말이지.”


데반 소장은 동방진이 비슷한 세계에서 온 게 반가운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저기 활동명은 무엇이었나요?”


“활동명이요? 아~ 호칭이요. 전 세습무로 작두도령이라고 합니다.”


“작두도령이라하면, 그 칼 위에서 점을 치는 거요?”


아무래도 데반 소장은 무속신앙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 같아서 동방진은 최대한 그의 눈높이에 맞춰 답하였다.


“작두에 올라타 접신(接神)해서 원래는 작두굿으로 부정한 기운을 누르고 일이 안 풀리는 대주(大主), 기주(祈主) 분들의 조상님 한풀이를 주로 했었는데, 최근에는 궁금증 해소나 길흉화복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동방진이 있던 시대에는 과학이 고도화되며 손님이 전체적으로 줄어 무속 관련 산업이 사양길을 걷고 있었다. 물론 아주 큰 물주가 단골인 무속인은 걱정이 없었지만, 산업 전반적으로 쇠퇴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제사장 할아버지가 동방진에게 순혈 마나석을 돌려주며 물어본다.


“작두에 올라탄다고? 어떻게 말인가?”


동방진 대신 데반 소장이 대답한다.


“지금 실비아가 가지고 있는 엘븐소드 같은 칼을 탄답니다. 그래서 그 칼에 관련된 사람의 소식도 알 수 있답니다.”


그 말에 제사장 사누시와 실비아가 동방진에게 묻는다.


“정말인가?”

“정말요?”


데반 소장이 작두굿을 멋대로 해석해 말해버려서 곤란해진 동방진이었다. 그렇다고 꼭 틀린 말도 아니어서 그는 얼떨결에 긍정을 해버렸다.


“네, 뭐 그렇죠. 하하.”


덥석-

그의 손을 잡는 테레지아와 실비아,

테레지아가 먼저 말한다.


“네가 우리 제론이 소식을 알려주면 내가 개발한 콘돔 한 박스 그냥 줄게.”


이에 실비아는,

“나는 데이트 한 번 해줄게.”

라고 말하였다. 아까 은행 앞에서 세계수로 올라가겠다고 난리를 치던 모습에 비해 참으로 소박한 포상 제안이다.


그때 들리는 우렁찬 노인의 목소리,

“다들 뭐 하고 있어. 빨리 나가서 작두타기인가 뭔가를 준비해야지.”


아무래도 엘프족들에게는 작두 타는 게 없는가 보다.


‘엥? 이게 뭔 소리래? 난 작두 탄다고 말 안 했는데.’


테레지아, 실비아 이 엘프 자매는 어리둥절해하는 동방진의 팔짱을 끼고서 밖으로 끌고 나갔다.


“우리 일등 신랑감 빨리 가요.”


“어어··· 난 한다고 말 안 했는데.”

하지만, 그의 양팔에서 느껴지는 호빵보다 폭신하고 탄력 있는 지방 덩어리에 함락되어 속절없이 끌려 나갔다.


그들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데반 소장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연구소 문은 닫혔다.


****


세계수 중앙은행 앞 공터.


너른 금잔디밭 위에 건하게 잔칫상이 차려져 있고 3단 높이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 제단 위에는 실비아가 가지고 있던 칼이 고정되어 하늘을 향해 칼날이 서 있었다.


그 제단 앞에 홀로 서 있는 무복(巫服)을 입은 동방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린다.


“이게 지금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그리고 그를 수많은 엘프 여성들과 골렘 그리고 제사장 사누시가 쳐다보고 있었다.


어쨌든 제단 앞에 선 동방진은 상차림을 한 번 쓱 보고는 한숨을 내쉰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그랬다. 엘프들 나름대로 준비했는데 이건 맞고 저건 틀리고 하면서 초를 치면 안 되겠지.”


“그래도 그렇지. 불면증 치료하겠다고 왔다가 팔자에도 없는 엘프 검날을 타게 생겼네. 그것도 외날로 말이야.”


“쌍작두로 무게 분산해야 하는데, 이거 큰일이네. 하지만 저 칼이 실비아 오빠 거라는데 바꿀 수도 없고 말이야.”


“그러고 보면 제사장이라는 직책까지 있는 것도 그렇고, 이 엘프들 이런 거 겁나게 믿나 봐. 엘프들이 생긴 건 안 그런데, 원시 신앙에 대한 믿음이 되게 강한 집단일세.”


그러다가 한 곳에 그의 시선이 머물렀다. 거기에는 아주 이질적인 집단이 있었는데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로 ‘강완몽’이라는 여자가 교주로 있는 검은 사탑교로 그 신도들도 참석하였다.


대략 300명 정도로 그 수가 꽤 된다.


“저 검은 보자기 덮어쓴 놈들은 뭐길래 어디서 나타나서 구경 질이야. 제사장님 말로는 검은 사탑을 숭배한다고 하는데, 특별히 제재하지 않는 거 보니 또 나름 종교에 대한 자유가 보장된 사회네.”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을 마친 동방진은 북잽이도 없이 작두 굿을 시작하였다.


짤랑짤랑-

동방진은 양손에 쥔 신칼의 금속 장식에서 내는 소리에 맞춰, 서서히 심장박동수를 높이고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슥슥- 슥슥-

제단에서 굿을 하는데 커다란 몸집에 맞지 않게 사뿐사뿐 발을 놀리며 신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물 흐르듯 거침없다.


한 달이 넘도록 이어지는 불면증과 차원을 넘나든 기묘한 경험, 그리고 세계를 잉태하는 세계수 앞에서 펼치는 신에 대한 구애의 춤이 어우러져 동방진 자기도 모르게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가 되었다.


도무(跳舞)를 펼치는 동방진의 맨발바닥에서 푸른빛이 불꽃처럼 일렁이며 그의 발을 감쌌다. 보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윽고 그의 왼손 약지에 있는 호박 가락지가 호박빛을 내며 그가 접신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렸다.


제단 맨 위에 놓인 아주 날이 바짝 선 엘븐소드, 그 앞에 선 검은 도포 자락에 오방색을 곁들인 무복을 입은 동방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오른다.


훌쩍- 착-

외날 작두를 타듯 사뿐사뿐 칼날을 지르밟자, 곧 접신상태가 되었다.


보고 있던 엘프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


팟!

칼날 위에서 뛰어 내려와 엘븐소드를 움켜쥔 동방진이 엘프들의 검법을 흉내 내며 검무(劍舞)를 추는데, 그 모습에 깜짝 놀란 테레지아와 실비아가 제단 앞으로 단숨에 뛰어왔다.


제사장인 사누시 할아범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굽은 허리가 절로 펴져 있었다.


동방진은 검무를 다 추고는 칼을 하늘로 높이 쳐들고 외친다.


(엘프어): “내 이름은 제론, 세계수의 부름에 검은 사탑에서 적들과 싸우고 있다.”


빙의된 그의 입에서 엘프어가 나오자, 엘프녀들은 난리가 났는데 특히 실비아는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동방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물어본다.


(엘프어): “제론 오빠야? 나야 나 실비아.”


그녀가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 동방진이 춘 검무는 평소 뽐내기를 좋아하는 제론 오빠가 그녀에게 종종 보여준 것이었고, 지금 엘프어로 말한 동방진의 목소리가 제론 오빠의 목소리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자기 바짓가랑이를 잡은 실비아를 천천히 내려다보는 동방진은 다시 한번 엘프어로 말하는데 역시나 제론의 목소리가 나왔다.


(엘프어): “동생아, 여긴 너무 춥구나. 내 육신과 같은 형제들이 괴물들에게 죽었다. 이곳은 우리가 아는 세계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이 괴이하게 흐른다. 출구가 어디 있느냐! 출구가 어디 있어!!”


풀썩-

마지막에는 울부짖으며 동방진은 제단 바닥에 쓰러졌다. 빙의(憑依)가 풀린 것이다. 기절한 그를 끌어안으며 우는 실비아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엘프어): “오빠, 오빠, 제론 오빠. 흑흑.”


부스럭 부스럭-

접신이 끝난 동방진이 그녀의 품속에서 깨어나며 말한다.


“아이고 머리야, 제론이라는 사내 자면서 꿈을 꾸고 있었구먼. 생령(生靈)이야, 오빠는 살아있어.”


동방진이 다시 한국말로 말하자, 실비아가 그에게 묻는다.


“우리 오빠 살아있어요?”


“응, 살아있어. 지금 자고 있는데 거기가 추운가 봐. 상대가 살아있으면 혼을 불러내기 아주 힘든데 다행히 자고 있어서 생령으로 불러낼 수 있었어. 아주 운이 좋았지.”


그의 말에 안심했는지 그를 세차게 껴안는 실비아였다. 그리고 테레지아가 다가와 자기가 개발한 일반형 콘돔 한 박스를 꺼내놓았다.


그리고는 그녀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능청스럽게 말하였다.


“약속한 건 아니지만, 여기에 100개 들어있어. 오늘 내 남동생 소식을 알려줘서 그 고마움에 대한 표시야. 넣어둬.”


‘뭐지, 이 세계는?’

이라고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상자를 향해 손을 뻗는 동방진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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