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하여 전부 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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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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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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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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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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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선물 (2)

DUMMY

눈을 떴다.


주위는 시야가 환하게 탁 트인 어느 초원 같은 곳.


푸른 하늘과 더불어 싱그러운 초목의 풀 내음이

답답했던 내 가슴을 말끔히 씻겨주는 기분이다.


그 느낌에 기분 좋게 취해있던 나는

별안간 조금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 뭐야, 나 죽은 거 아니었어? 설마 전부 꿈? "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목 주변을 더듬어본다.


다행히 목은 잘 붙어있다.


잘 붙어있으니 이렇게 초원을 볼 수 있는 거겠지만.



" 근데 꿈이라고 하기엔 · · · "



너무나 생생한 기억이다.


그게 문제였다.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생생했고,

또 주체 못 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 화병으로 앓아누워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말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 이곳이 사후세계인건가.

정말 있었구나, 사후세계가. "



나는 지금 있는 이곳이 사후세계라 믿었다.


조금 전 성검이 내 목을 스치고 지나갔던 느낌이

또렷하게 기억났기 때문만은 아니었고,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몸속의 마나를 계속 끌어올려 봤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게 느껴져서였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몸속의 마나가 반응을 안 한다'기보단

'처음부터 마나라는 것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겪어왔던 일들이

모두 한낱 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이런저런 잡념과 함께 나는 무작정 길을 걸었다.


그러다 꽤나 멀찍이 떨어진 곳에 조그마한 집 한 채가

덩그러니 놓인 것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 너무 좋잖아 여기. "



탁 트인 곳에 자리한 아담한 오두막 한 채.


생전의 내가 원했던 이상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오두막에 다다른 나는 노크 따위는 과감히 생략한 채 문을 열었다.


끼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 실례합니다. "



그래도 내 집이 아니었으므로 간단한 인사 정도는 했다.


아무리 배운 게 없어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고 살아야 하는 법.


그러나 집 안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것보다 아예 인기척조차 없었다.



" 누가 살긴 사는 거 같은데. "



부엌에서 주전자가 요란하게 끓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은 놈이 특별히 할 일은 없었으므로 우선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앉아 있다 보면 누가 오지 않을까.


근데 정말 보면 볼수록 부러운 집이다.


은퇴하면 꼭 이런 집에서 살고 싶었는데.



" 여기가 마음에 드는가? "



넋 놓고 집 구경을 하고 있던 사이,

오두막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흰 백발을 치렁치렁 기르고 있던 노인.


동네에서 한 번씩 볼 법한 평범한 외모였으나,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제법 인상적이다.



" 예, 뭐... 근데 누구신지? "



내 물음에 노인은 아무런 대답 없이 부엌으로 걸어갔다.


나도 별다른 질문을 이어하진 않았고

그저 말없이 노인의 행동을 지켜만 보았다.


쪼르르르.


컵에 팔팔 끓던 주전자 안의 물이 담긴다.



" 자네, 차 좋아하나? 아님 커피? "



뜬금없는 이야기에 나는 잠깐 고민을 하다 취향대로 커피를 주문했다.



" 커피 마시겠습니다. "


" 커피 좋지. "



이내 노인은 자신이 마실 차 한 잔과

내가 마실 커피 한 잔을 들고 다시금 내 앞에 자리했다.



" 들게. 꽤나 마음에 들 걸세. "



노인의 권유에 나는 커피를 입에다 가져다 댔다.


기분 좋은 원두 냄새와 떫으면서도 끝 맛이 달다.


제법 퀄리티가 높은 커피였던 걸까.


생전에 커피를 즐겨마시진 않았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다.



" 예상은 했겠지만 나는 신(神)일세. "


" 풉. "



느닷없는 소개에 처음 보는 노인의 면전에다 입안의 커피를 뿜을 뻔했다.


신이라고?


것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 왜, 믿지 못하겠나. "


" 아뇨. 생각한 이미지가 아니라서. "


"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자라. "



순간 신기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노인의 흰 백발은 점차 검게 변해 완전한 흑발을 이루더니,

남자치고 길었던 장발의 머리카락도 순식간에 짧아졌다.


얼굴에 가득했던 주름도 어느샌가 사라져

노인은 이제 도저히 노인으로는 볼 수 없는 젊은 남자가 되었다.



" · · · · · · ! "



놀라는 것 대신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이런 마법쯤은 내가 살던 지구에서도

찾으려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나 노인은, 아니 눈앞에 있는 남자는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 여전히 믿지 못하는 모양이군. "



자신을 신이라 주장하던 노인은 계속해서 자신의 모습을 탈바꿈하였다.


젊은 남성에서 긴 생머리의 젊은 여성으로.


긴 생머리의 젊은 여성은 안경을 쓴 남학생의 모습으로.


남학생은 다시 비쩍 마른 여학생으로.


그렇게 수차례 더 변신이 이어지던 가운데,



" 믿겠습니다, 믿겠다고요!

이제 그만하시죠. 머리가 핑 돌 것 같으니까. "


" 껄껄껄, 그러게 처음부터 믿었으면 좀 좋았나. "



다시 맨 처음 봤던 노인 모습으로 돌아온 그가 웃으며 말했다.



" 그럼 여기는 사후세계입니까. "



새삼스럽게 집안을 다시 둘러보았다.


사후 세계치고는 되게 아늑하고 좋은데.



" 정확히 말하자면 사후세계까진 아니고,

그 중간에 있는 어딘가쯤이지.

여긴 자네의 심상(心象) 공간이니까. "


" 심상 공간...? "


" 그렇게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은 아닐세.

그냥 자네의 의지가 만들어낸 공간이란 뜻이지.

오면서 생각했겠지만 자네의 마음에 딱 들지 않나? "



한 차례의 설명이 끝이나자

노인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홀짝였다.



" 대충 어떤 건지는 알겠습니다.

근데 제가 왜 이곳에 온 겁니까? "



성격이 급한 나는 거두절미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신이라는 작자와 느긋하게 다도를 즐기는 것보단

그가 나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훨씬 더 궁금했기 때문.



" 허허, 역시 보던 대로 성질이 급하군. "


" 절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 그럼. 매일 보고 있지.

그게 자네를 부른 이유기도 하고. "



마시던 커피를 내려두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나를 매일 보고 있었다고?


대체 왜?



" 저를 보셨다고요? "


" 그래, 혹시 그거 알고 있나? 신이란 존재는 정말 무료해. "


" 그렇습니까. "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신이 심심한지 바쁜지 내가 알게 뭔가.


것보다 왜 나를 보고 있었냐고.



" 여튼 나는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네. "


" 결말? 무슨 결말 말씀하시는 겁니까. "


" 무슨 결말이긴. 자네의 결말이지. "



노인은 말없이 오른손을 펼쳐보았다.


그러자 손 위에 생겨난 태블릿PC 하나.


마법 같은 일이 다시 한번 벌어졌지만

나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마법은 다른 헌터들도 쓸 수 있는 마법이었다.



" 신도 이런 걸 씁니까? "



그렇지만 충분히 당황은 했다.


신이 인간이 만들어낸 문물을 사용할 줄이야.


이것만큼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응? 이거 괜찮더라고.

예전엔 전부 책으로 보여줬는데 말이야. "



노인은 턱짓으로 탁자 옆에 마련된 책장을 가리켰다.


수많은 책들이 책장 안에 빼곡히 꽂혀있었다.



" 그러면 혹시 제가 영감님, 아니 당신께서 보시는 책들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라는 말씀입니까? "



어이가 없다.


내가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라고?



" 흐흐, 생각하기 나름이네만.

그리고 영감님이라고 불러도 상관은 없다네. "



노인은 태블릿PC 속의 영상을 재생시켰다.



- 개새끼들, 기다려라. 내가 죽어서라도 언젠가 꼭 · · ·



영상 속의 인물은 나였다.


조금 전의 나.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서걱, 툭...


다시 보니 더욱더 비참한 모습이다.



" 인간은 늘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을 해내곤 했지.

때론 그게 이것처럼 마음에 들 때도 있지만, "



영감은 손에 쥔 태블릿 PC를 흔들어보았다.



" 이번 같은 경우엔 썩 마음에 들지 않더군. "


" 저도 마음에 들진 않습니다. "


" 그래서 난 저 결말을 바꾸고 싶어졌다네. "



손에서 사라지는 태블릿 pc.



" 자, 어떠한 결말을 원하나. "



노인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대체 무슨 의미일까, 결말을 원하다니.



" 내가 결말을 바꿀 기회를 주겠네. "


" 어떤 수로 말입니까? "


" 자네 인생 중 원하는 시점으로 돌려보내 주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걸세.

당연히 지금의 기억을 온전히 가진 채로 말이야. "



차분한 노인의 목소리가 고막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그러나 차분했던 그의 말투와는 별개로

말의 뜻이 곧바로 이해가 되진 않았다.



" 무슨 뜻입니까, 지금 하신 말 · · · . "



방금 전 영감의 말을 천천히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죽은 나를 다시 되살려내어 과거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믿으라는 건가?


하지만 눈앞에 앉아있는 노인은 사람이 아닌 전지전능한 신이다.


그런 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아무리 터무니없는 말도 조금은 믿음이 갈 수밖에 없다.



" 당연하지. 대신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네는 신벌(神罰)을 받게 될 걸세. "



노인은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협박했다.


평소라면 조금이나마 겁을 집어먹을 법했지만,

지금은 왠지 그러한 협박이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지금의 기억을 가진 채 과거로 회귀시켜주며

내가 원하는 복수를 하게 해주겠다잖아.


협박 따위가 귀에 들어오는 것이 이상했다.



" 보내주기만 하십쇼. 최고의 결말을 보여드릴 테니. "


" 그래 돌아가기로 마음은 먹은 것 같구나, 껄껄.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으냐? "



레오가 내 인생을 되돌아보라고 했을 땐 개무시했었지만

영감의 말에는 인생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었다.


27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그러나 나는 별다른 고민도 없이 금세 특정한 날짜를 골라 뱉었다.



" 2015년 7월 13일 월요일로 돌아가겠습니다. "



요일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날은

나뿐만 아니라 지구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특별한 날이었다.


평화롭던 세상이 몬스터의 출현으로 인해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바로 그날이니까.


그리고 몬스터에 맞설 각성자들,

즉 헌터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고.


물론 나도 이날 능력을 각성했다.



" 역시 그럴 줄 알았네. "


" 가능합니까? "


" 예끼! 가능하고 말고.

하지만 나는 그 전날인 7월 12일을 추천하겠네. "



노인의 표정은 여전히 변화 없이 인자했다.


그 탓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떠한 이유로 그날을 추천한 건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


" 이유? 그런건 딱히 없네. 모든 건 자네한테 달려있지. "



나한테 달려있다니?


뭔 개소리야.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노인이 한 말의 의미를 되짚었다.


그러나 곧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한낱 인간이 신의 안배를 어떻게 알아챌 수 있단 말인가.



" 알겠습니다. 그럼 그 날로 하죠. 7월 12일로 보내주십쇼. "



결국 영감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좋아.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겠나? "


" 아, 출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


" 물어보게. "


" 대체 무슨 결말을 원하시는 겁니까? "



과거로 돌아가기 바로 직전이 되니 영감의 의중이 문득 궁금해졌다.



" 결말이라, 이대로 해줬으면 싶은 결말 같은 건 없네만. "


" 그럼 제가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상관이 없습니까. "


" 상관없네. "



영감의 속내를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떠한 결말을 원하는 걸까.



"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말게.

자네는 그냥 돌아가서 자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그러다 보면 좋은 이야기들을 써내려 갈 수 있지 않겠는가. "



근심어린 내 표정이 딱해보였는지는 몰라도

영감은 약간의 충고를 덧붙여 주었다.



" 원하는 대로? 저는 과거로 돌아가면 칼춤을 춰버릴 생각입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


" 그게 자네가 원하는 길이라면 뭐든지. "



과거로 돌아간다면.


정말 과거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칼춤 한 번 제대로 출 생각이다.


날 작정하고 악당으로 몰아세웠으니

이번 생엔 진짜로 악당이 되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놈들의 모가지에 칼을 쑤셔 박을 수만 있다면 뭘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 준비되었다면 과거로 보내주지. "


" 좋습니다. 가시죠. "


" 그럼 최고의 결말을 기다리고 있겠네. "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나를 배웅하는 것 대신 옆으로 다가와

자신의 오른손을 내 정수리에 가져다 대었다.



" 조금 어지러울 걸세.

아, 그리고 재밌는 능력 하나를 선물로ㅡ "



가까이에서 들리던 노인의 음성이 점점 멀어져 간다.


마지막에 뭐라고 한 거지?


그것을 이해할 시간도 없이 멀미가 난 것처럼

조금씩 어지럽기 시작했고 이내 시야도 뿌옇게 흐려져갔다.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닐까 싶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 으...으윽 에엑... "



병신같은 신음 소리가 내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그만큼 고통스러웠다는 뜻이다.


주위가 온통 어두워지고,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정신을 잃어버렸다.



***



" 야, 최광! 최광! "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의 귀를 강하게 때려왔다.


덕분에 신경질적으로 잠에서 깬 나는

몸을 일으켜 겁대가리 없는 녀석의 면상을 살폈다.



" 빨리 일어나! 아침 먹으러 가야지! "



어디서 많이 본 얼굴과 많이 들어본 목소리다.



" 넌... "



그런데 이름이 기억날 듯 말 듯 나지 않는다.



" 이름이... 뭐더라? "


" 뭔 개소리야! 얼른 와. 오늘 아침 맛있단 말이야.

다른 애들이 다 먹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



녀석은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몸을 돌려 황급히 방을 나섰다.


아침을 먹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저리도 급한 건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분명 익숙한 주변 환경인데도 오랜만인 것 같은 위화감이 든다.



" · · · · · · . "



나는 말없이 주변을 계속해서 살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달력.


' 2015년 7월 12일 '


빨갛게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 날짜 밑에

조그마한 글씨로 '아침 꼭!'이라는 단어가 적혀있다.


아마도 조금 전의 녀석이 표시를 해놓은 것이지 않을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달력 앞으로 다가갔다.



" 오늘이 7월 12일인가. "



순간, 현기증을 느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 으엑... 에엑... "



다시 한번 병신같은 신음 소리가 방 안으로 울려 퍼지고,

잠시 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모두 떠올랐다.



" 커헉... 진짜 돌아온 건가?

영감쟁이가 진짜 신이긴 신이었나 보네. "



기억이 돌아온 나는 이곳이 어딘지 단번에 맞출 수 있었다.


이곳은 내가 일곱 살 때부터 열아홉 살까지 신세를 졌던 보육원이다.


바닥에서 일어선 나는 아직 온전치 않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지금까지 벌어졌던 일을 천천히 떠올려보았다.


벨니아를 쓰러트린 직후 나를 배신한 동료 새끼들.


성검으로 처형을 당하던 순간.


그리고 자신을 신이라고 소개한 영감과의 만남.


그래, 제대로 기억하고 있구나.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엔 앳된 소년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송보송하게 나있는 솜털들.


얼굴을 가득 메우고 있던 상처들도 싸그리 없어졌다.


헌터가 되기전 평범한 고등학생에 지나지 않던,

열아홉 살의 최광으로 온전히 돌아온 것이다.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방을 나섰다.


아침을 꼭 먹어야 된다는 그 소년의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 보육원의 식당으로 향하던 도중,

뒤에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 뭐야? 아침부터. "



고개를 돌려 발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찾기도 전에

나는 눈앞으로 날아오는 손바닥을 피해야만 했다.


후우웅.


나의 뒤통수를 노렸던 손이

아무런 수확 없이 허공을 갈랐다.



" 어쭈? 이 새끼가 피해? "



고등학생이나 되었을 법한 소년 하나가

나를 보며 실소(失笑)를 머금고 있었다.



" 근데 어떻게 피한 거야? "



소년은 뻘쭘해진 손과 나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누구...? "



순간적으로 이름이 떠오르지 않은 나는

녀석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뭐, 누구? 이 새끼가 아직 오늘은 안 맞았지?! "



얼마 지나지 않아 떠오른 녀석의 이름.


이한구.


회귀와 동시에 잊고 살았던 옛 기억이

느리지만 천천히 돌아오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한구는 내 보육원 생활을 참으로 고달프게 만들었던

패거리들 중 한 명이기도 했다.



" 너, 한구 맞지? "



그새 얼굴로 날아드는 한구의 주먹을 가볍게 피하며 물었다.



" 한구? 씨X 내가 니 친구야? "



눈에 불을 켠 채 달려드는 한구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말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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