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하여 전부 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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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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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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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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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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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신의 선물 (4)

DUMMY

" 너! 당장 따라와! "



표독스럽다는 말이 인간의 형상으로 변하면 이렇게 될까.


자신의 아들 뻘인 아이를 보는 눈빛이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보육원에 있던 시절에

이 여자가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 예, 뭐... 어디로 갈까요? "



나는 일부러 더욱 능청스럽게 답했다.


어제까지의 나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모습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옆에선 김성연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놀라고 있었고,

자신의 방으로 먼저 걸어가던 원장 또한

적지 않게 놀란 표정으로 황급히 뒤돌아섰다.



" 뭐, 뭐라고? "


" 어디로 가냐고요. "


" 이 자식이 어디서 배운 말버릇이야?! "



딱히 내 물음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었겠지마는.


애지중지하던 아들의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어 놓은

이 고아 새끼가 필시 마음에 들지 않았을 터다.



" 어차피 원장실로 갈 거 아니에요?

걷기 귀찮은데 그냥 여기서 말씀하시죠. "


" 야, 야 광아... 너 왜 그래. "



막 나가는 내 모습이 그렇게나 불안했던지

김성연이 내 옷깃을 붙잡으며 나를 말렸다.


원장에게 이 이상 대들었다간 나에게도,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다른 아이들에게도

어떠한 불똥이 튈지 몰라 걱정이 된 모양이다.


하지만 이 녀석의 걱정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단언컨대 없다.


내일이 되면 세상에 없던 대격변이 시작될 것이고,

이곳 한림 보육원이라고 무사할 리가 없기 때문에.


그러니 애초에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일 일어날 일을 알 턱이 없는 원장은,



" 너, 지금 그게... 지금 그게 도대체 무슨 태도니? "



두꺼운 화장을 한 얼굴까지 붉게 물들며 당황한 기색을 표출했다.


이제껏 이 정도로 자신에게 대들었던 아이는

아마도 내가 처음이자 유일하지 않았을까.



" 아니 저는 지금 원장님이 뭐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시는지 잘 이해가 안 돼서요. "


" 친구를 그렇게 때려놓고 뭐라고? "


" 친...구요? "



원장의 발언에 이번에는 오히려 내 쪽에서 당황했다.


강준성 그놈의 행실을 이 정신 나간 여자도 모를 리는 없을 텐데

어떻게 '친구'라는 말이 입에서 이리도 쉽게 나올 수 있는 건지.



" 저기요, 뭐 하나 물어봅시다.

사람을 죽도록 괴롭히고 죽도록 뚜드려 패는 놈도 친굽니까? "


" · · · · · · . "



턱하고 말문이 막혀버린 원장의 모습.


표정을 보아하니 자기 아들이 개차반인 걸 아주 모르진 않았나 보다.



" 원장님도 알고 계셨죠?

그놈 하나 때문에 많은 애들이 힘들어하는 거. "


' 그런 애들은... 없어!! "



분노한 원장이 대뜸 소리쳤다.


눈만 있으면 알 수 있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덮으려 하다니.


이 여자가 살아온 방식과 이 여자의 애새X가

지금까지 어떻게 커온 건지 대충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다.



" 크흐흐... 그러시겠죠. "



사납고 표독스러운 표정에서

알게 모르게 조금씩 새어 나오는 두려움과 당혹감.


그것들은 내 웃음을 터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 원장ㅡ 아니, 야 이년아.

그래도 보육원 원장이면 네 애새X만 감싸고 돌지 말고

다른 애들도 좀 챙기고 해.

가뜩이나 제 부모 없이 얼마나 힘든 애들인데. "



순간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거두고는 말했다.


애들이야 아직 애니까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 쳐도

눈앞에 서 있는 이 년은 어른이다.


그것도 회귀 전의 나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른.


제 아들놈이 당한 것처럼 뺨 한 대를 후려칠까

잠깐 고민하다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내 손만 더러워질 것 같았기 때문에.



" 이 고아 새X가 뭐라ㅡ "


" 아 됐고, 난 이제 여기 뜰 거니까 알아서 처리해 두쇼.

네가 못 시킨 애새X 교육은 내가 대신 해놨으니까

너무 고마워하진 말고. "



내 뒤통수를 향해 폭언을 쏟아내는 원장을 뒤로하고

그 길로 보육원을 박차고 나왔다.


어차피 이렇다 할 추억도 많지 않은 곳.


챙겨야 할 짐도, 챙겨야 할 사람도 없다.


그냥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게 정문을 나서려던 때,

김성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 광아! 최... 광! "



뒤를 돌아선 내 눈에 숨이 차 힘들어하는 김성연의 모습이 비쳤다.



" 진짜로 가냐...? "


" 어. 가야지 뭐. "



이곳에 하루 더 있어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저질러놓은 일의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은 제법 귀찮은 일이다.



" 나가서 계획은 있고? "


" 계획? 계획이야 다 있지. 너무 걱정하지 마. "


" 나중에 어른 되면 꼭 보자 우리.

너도 그렇겠지만 넌 하나밖에 없는 내 친구잖아. "



나를 쳐다보는 녀석의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친구?


나에게 친구라니.


마음 한 켠이 씁쓸하게 아려왔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돌아온 내게

친구라는 말은 그리 썩 달갑진 않다.



" 그리고 이거 받아. "



꾸깃꾸깃한 지폐 몇 장.


본인도 힘들게 모아왔을 그 지폐 몇 장을,

김성연은 나에게 선뜻 건네주었다.



" 뭐야 이건?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



보육원에 있는 애들이 돈이 어딨겠냐마는

사실 한 달에 소정의 금액을 용돈이란 명목으로 받긴 한다.


물론 내 용돈의 대부분은 강준성에게 뺏기긴 했지만.


근데 이 녀석의 처지도 나와 크게 다르진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만큼의 돈을 모은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게다가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을

나한테 건네주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



" 받아, 난 여기서 먹고 자면 되지만

넌 당장 나가자마자 돈 걱정이잖아. "


" · · · · · · . "


" 빨리 받아 새끼야. "



김성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


모진 풍파를 겪은 탓에 내게서 서서히 잊혔던 이 아이에게는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나 컸던 걸까.



" 음... 고맙다, 잘 받을게. "


" 고맙긴 뭘. 잘 가라, 몸조심하고. "


" 그래, 그리고 혹시 살다가 무슨 일 있으면 날 꼭 찾아. "


" 무슨 일? 크크... 그래 말이라도 고맙다. 얼른 가 봐. "



어느새 김성연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하지만 애써 웃는 얼굴로 나를 배웅해 준다.



" 진짜 간다! 잘 살아라. "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김성연을 뒤로하고

보육원 바깥으로 나왔다.


어디서 본 것 같으면서도 낯선 보육원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 모가지 잘 닦고 딱 기다려라 이 개새끼들아. "



바깥 공기를 힘차게 들이마시며 중얼거렸다.



***



보육원을 나와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타 있던 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차창 밖의 풍경을 감상 중이었다.


돈이 없으면 훔쳐서라도 타려 했는데

고맙게도 고아원을 나서기 전에 돈이 생겼다.



" 좋네, 좋아. "



오랜만에 가진 혼자만의 시간.


멍하니 바깥 구경을 하고 있자니 옛 생각들이 몰려왔다.


능력을 각성하고 헌터가 되어 사투 끝에 쓰러트린 벨니아.


힘겨웠던 인생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니 되게 별거 없어 보였다.


더욱 억울한 점은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음에도

그 끝은 믿었던 동료들에게 통수 맞고 죽임을 당한 거라니.


벨니아를 해치우고 다시 평화를 찾은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보상이라도 누리고 죽었다면

이렇게까진 억울하지 않았을 것 같다.



- 나가서 계획은 있고?



문득 조금 전 김성연의 물음이 머릿속을 채운다.


계획?


당연히 있다.


회귀 전보다 강해져서 놈들의 모가지를 따버리는 것.


이것 또한 한 문장으로 압축하니 간단해 보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크나큰 문제 한 가지가 존재했다.


이번 생에서 놈들은 나와의 인과 관계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찾아내어 쳐 죽이고 싶다.


하지만 놈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거니와,

어떻게든 놈들을 찾아내어 죽여도

나는 무고한 각성자들을 죽인 살인범이 될 뿐이다.



" 그건 복수가 아니지. "



그러한 복수는 내가 원했던 진정한 의미의 복수가 아니다.


당연히 영감쟁이가 원했던 그림도 아닐 테고.


놈들이 나를 악으로 몰아갔듯

이번 생에서는 내가 놈들을 악으로 몰아세울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불가능한 일은 또 아니었다.


인간이란 본래 뒤가 구린 법이므로.


앞과 뒤가 완전히 깨끗한 인간?


없다.


없을 것이다.


최소한 나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놈들 중 몇몇의 약점은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가령 미사키는 자신이 배합한 독의 효과 알아보기 위해

살아있는 인간을 잡아다가 실험하기도 했다.


내 목을 베었던 레오는 헌터가 되기 전과 후에도

손버릇을 고치지 못한 좀도둑이었다.


말이 좀도둑이지 실제로는 엄청난 고가의 물품들만 훔치는

대도(大盜)였다.


이런 것들을 외부에 까발릴 수만 있다면.


나는 그런 악(惡)한 놈들을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쉽게 복수에 성공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나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그 약점을 언제, 어느 시점에 터트리는지가 중요하다.


놈들이 아직 벌이지 않은 일을 벌였다고 주장하면

나만 미친놈이 되고 말테니까.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



머리가 아플 때는 다 치워버리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것이 좋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강해지는 것.


그것 말고는 없었다.



" 다들 곱게 뒤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



괜스레 멀쩡한 목을 문지르며 다시 한번 다짐을 하던 사이,



" 우리 열차는 잠시 후 해운대역에 도착합니다. 해운대역에ㅡ "



정겨운 안내 방송이 울렸다.


기차에서 내리자 후덥지근한 열기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나를 반겼다.


주변을 구경하는 것도 잠시,

나는 역을 빠져나와 대뜸 바닷가 쪽으로 걸어갔다.


쏴아아... 쏴아아...


시원한 파도와 함께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모래사장.


이윽고 도착한 해수욕장에는 수많은 피서객의 모습이 펼쳐졌다.


모래 반 사람 반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피서를 위해 바다를 찾은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사람 많은 곳이 딱 질색인 내가 굳이 굳이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바로 내일 이곳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처음으로 게이트가 나타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 이쯤이려나. '



정확하진 않지만 예전에 뉴스에서 본 기억을 더듬어

모래사장의 정중앙쯤에 자리했다.


2015년 7월 13일.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자리.


이 자리에서 말 그대로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다.


한가롭게 피서를 즐기고 있던 피서객들은

모두 무방비 상태로 게이트에 빨려 들어가게 되고,

이는 곧 수십,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인명사고로까지 이어진다.



" 난리도 아니었지 그땐. "



인류 역사상 처음 일어났던 이 미지의 사건에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버리고 마는데.


더욱 무서운 사실은 이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게이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게이트가 나타남과 동시에 몬스터와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그들이 바로 각성자, 즉 헌터였다.


난 그런 헌터들 사이에서 소위 정점을 찍었던 사람이었고.


물론 아직까지는 별 볼 일 없는 고아에 불과하지만.



- 7월 13일에 벌어졌던 해운대 게이트에서 살아남게 되면

'게이트 최초 격파'라는 업적을 받게 됩니다.

이 업적의 효과는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것 이상이죠.



당시 해운대 게이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 명인

장현우라는 인물의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훗날 세계 헌터 협회가 출범하자마자

한국 랭킹 1위, 세계 랭킹에는 12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는데.


여튼 내가 이를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나도 내일 이 업적을 얻을 예정인 까닭이다.



' 업적을 얻으면 회귀 전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겠지. '



업적의 정확한 효과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장현우의 말대로 그 업적이 엄청난 효과를 지니고 있다면

각성 초반의 능력이 매우 부실한 내게 크나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렇게 행복 회로를 돌리며 손으로 모래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 영감쟁이 말만 믿고 너무 빨리 와버렸잖아. "



이곳에 너무 빨리 와버렸다.


게이트가 생기는 시점은 내일.


그러니 발생일 하루 전인 지금은 당장 할 게 없었다.



" 더럽게 심심하네. "



출렁이는 파도는 백파를 일으키며 모래사장을 때려댔고,

사람들은 가족이며 친구며 연인할 것 없이

하하 호호 재밌게 뛰어놀고 있었다.


그 틈에서 혼자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고 있는 어린 소년.


그게 나였다.


그런 소년이 불쌍해 보였는지는 몰라도 또래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주변을 살피더니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 야, 웃어라. 티 내지 말고 그냥 웃어. "



그는 주위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복화술마냥 입은 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소년의 뒤로 친구, 또는 형처럼 보이는 아이들 네 명.



" · · · · · · ? "



나에게 벌어진 상황을 단번에 이해하진 못했지만

이내 깨달아버린 나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 그래 잘하네, 그렇게 계속 웃으면서 따라와라. "



소년이 말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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