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하여 전부 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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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힘
작품등록일 :
2024.09.01 17:40
최근연재일 :
2024.09.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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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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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장기말 (1)

DUMMY

세상는 대격변의 시대를 맞이했다.



- 전 세계 각지에서 특이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자신이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ㅡ


- 한국에서만 벌써 일곱 건,

미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 보고된 사례로는

이미 수백 건을 돌파하고 있는ㅡ



뉴스를 비롯한 온갖 매체에서는 연일 이것에 대해 떠들어댔다.



- 대박 미국 현지 직찍임 (사진)


ㄴ 와 씹 미친... 실화임?


ㄴ 아니 이게 CG가 아니라 진짜라고?


ㄴ 나랑 같은 동네 사나 보네. 나도 오늘 저거 봄.



- 나 건너건너 아는 사람 각성했다는데?

능력은 모르겠는데 검은 문도 벌써 다녀왔다 함.


ㄴ 각성자 인맥 ㅈ되네


ㄴ 더 유명해지기 전에 싸인 받아놓으셈 가능하면 내꺼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SNS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이목이 전부 대격변으로 쏠린 것이다.



- 인도 검은 문 상황 (사진)


ㄴ 헐 미친 저거 다 시체임?


ㄴ ㅇㅇ 검은 문 시간 내로 처리 안 하면 붕괴한다는데

붕괴하면 안에 있는 몬스터들 다 뛰쳐나온다고 함


ㄴ ㄹㅇ? 세상 멸망하는 거 아님? ㅋㅋ



하지만 아직 그 피해 규모가 적은 탓일까,

사람들이 검은 문의 두려움을 깨닫기까지는

아주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한국.



" 야, 야! 미친. 재난 문자 봄? "


" 아니, 무슨 일인데? "


" 명동에 검은 문 나타났대. "



을지로에 있는 한 피시방.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학생 두 명이 게임 시작 중

막간을 이용해 떠드는 중이었다.



" 검은 문? 명동? 여기? "


" 어. 심심한데 우리 한 번 보러 갈래? "


" 그거 엄마가 절대 근처에 가지 말라던데?

일주일안에 해결 못 하면 안에서 괴물들이 튀어나온대. "


" 크크큭... 아직 일주일 안됐잖아, 쫄? "


" 쫄이 아니라 몬스터는 만나면 그냥 뒤지는 거래.

총이든 칼이든 무기도 안 통하고 "


" 그냥 보고 사진만 찍어오는 거지.

베이스북에 올리면 좋아요 좀 찍히겠던데. "


" 미친놈. 좋아요에 목숨을 거냐? "



그때 학생들의 뒷자리에서 유심히 대화를 듣던 한 소년이 있었다.


며칠은 씻지 않은 듯한 꾀죄죄한 몰골.


실제로 소년은 그 피시방에서 3일을 숙식 중이었다.


이윽고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소년.



" 친구들, 내가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니고.

방금 한 말 다 진짜야? "


" 예? 예... 재난 문자 온 거 보면 진짜지 않을까요. "



소년이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오자 당황하며 대답하는 학생 하나.


그는 말을 걸어온 소년이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지만

며칠간 씻지 않은 듯한 머리와 퀭한 다크서클 때문에

필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 재난 문자가 왔어? 핸드폰이 충전 중이라 못 봤네.

여튼 명동에 나타났다고? "


" 네, 명동에 나타났대요. "


" 그래, 고마워. "



짧은 대화를 마치고 소년은 그대로 피시방을 나갔다.


마치 할 일이라도 생긴 사람처럼 말이다.



" 놀래라. 갑자기 말 걸어와서 깜짝 놀랐네. "


" 그니까. 좀 씻고 다니지. 입냄새 개쩔어. "



***



한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그의 이름은 허승열.


불혹을 앞둔 나이지만 자기 관리가 뛰어나

날씬한 몸매에 정장이 매우 잘 어울리는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적당한 키에 선한 인상까지.


어디 하나 모난 곳이 없어 보이는 그였지만

그런 그에게도 요즘 고민거리가 있었다.



' 대체 왜! 대체 왜 내가 이딴 곳에...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이고 미치겠네... '



나름 주위에서 유능하다고 인정을 받던 그였지만,

사회에선 응당 라인을 잘 타고 정치질을 잘 해야 하는 법.


정쟁(政爭)에서 패배한 그는

얼마 전 신생 부서로 좌천되듯 발령을 받고 말았다.


신생 부서는 말이 신생부서였지

사실은 제대로 개편도 되지 않은 임시 부서에 불과했다.


그가 맡고 있던 익숙했던 일은 이제 다른 누군가가 대신하게 되었고,

아직 체계도 잡히지 않은 이곳에서

허승열은 워라벨도 박탈당한 채 업무 지옥에 허덕이는 중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부하 직원 하나가 허승열의 자리로 찾아왔다.



" 팀장님, 지금 빨리 회의실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


" 지금? 왜? "


" 3시 23분부로 비상소집 명령입니다.

메신저 확인 못 하셨나요? "


" 메신저? 안 왔는... "



급하게 확인해 본 사내 메신저에는 부하직원의 말대로

비상소집을 알리는 메시지가 정확하게 찍혀있었다.



" 미안, 정신이 없어서 못 봤네. "



서둘러 회의실로 향했다.



" 허허, 늦었구만. "


" 죄송합니다. "



회의실에 도착하니 인자한 웃음으로

그를 반기는 한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


그는 허승열의 부서가 속한

'특이 재난관리 본부'의 본부장 최택조였다.


특이 재난관리 본부는 대격변으로 인해 생긴

새로운 정부 조직 중 하나였다.



" 아니야, 얼른 앉게. "



삐질 흐른 땀을 닦으며 자리에 착석하는 허승열.


자리에는 다른 부서의 팀장들도 보였기에

그는 어색한 눈인사와 목례로 사과를 대신했다.



" · · · 그래서 그 일대 주위를 일단 봉쇄하고... "


" 예, 이미 경찰 쪽에 연락하여

폴리스 라인을 전부 쳐놓은 상태입니다. "


"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시민들의 접근도 막아야겠지. 어느 정도가 괜찮겠나? "


" 넉넉잡아 반경 30m는 해야 되지 않을까요? "


" 거기는 교통이 좀 불편해서 30m를 제외하면

그 일대가 아예 마비가 되어버릴 겁니다. "


" 그럼 절반 잘라서 15m로 해. "



회의의 내용은 여타 다른 부서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의의 내용은

본부의 이름에 걸맞게 특이한 주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 검은 문 붕괴까지 이제 며칠 남은 건가? "



확실히 '검은 문 붕괴' 같은 단어는

다른 곳에서는 흔히 들어 볼 수 없는 단어였다.



" 6일하고 11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



허승열이 최택조의 물음에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곧장 대답했다.



" 붕괴 시 대책은 마련했나? "


" 예, 일단 위험 반경에 있는 주민들은 주변 학교나

실내 체육관으로 대피시킬 예정이고요,

관련 기관에 공문은 보낸 상태입니다. "


" 괴물들은 어떡할 셈이지? "


" 일단 국방부 측에도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긴 했는데

아시다시피 현대의 무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놈들이라...

현재 전국에 있는 각성자들을 소집 중입니다. "



전근 온 부서의 일은 그의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다.


익숙하지도 않고 체계도 없는 까닭에

그 일이 두 배, 세 배로 힘들다.


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시간이 걸려서라도 깔끔하게 처리한다.


이것이 바로 허승열이 주위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는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 각성자들이라... 세상 참 말세구만.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원. "


" 하하...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계속 지속된다면

각성자들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 같습니다. "


" 그건 그렇겠지. 그래서 인원은 몇 명 정도가 적당하겠나. "


" 최소 열 명은 있어야 검은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한국에는 그 사례가 없지만 외국의 사례를 보면

거의 모든 나라가 열 명 이상의 인원을 파견했습니다. "


" 그렇군. 최대한 빠르게 각성자들을 소집해.

명동 일대가 초토화되는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하니까.

가리지 말고 되는 대로 전부 소집하라고. "



시간은 흘렀고 길었던 회의가 끝이났다.



" 자자, 그럼 이걸로 회의를 끝마치도록 하지.

허팀장, 자네는 남고 나머지는 나가 봐. "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회의실을 빠져나가고.


허승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최택조를 빤히 바라보았다.



" 본부장님. 저는 왜...? "


" 자네, 요새 많이 힘들지? 다크서클로 줄넘기해도 되겠어. "


" 예? 예. 뭐, 하하... "


" 원래 개척자란 고된 법이지.

그래도 나를 비롯해 위에서는 자네를 믿고 맡긴 거니

잘 해낼 거라 믿네. 이 말을 전해주고 싶었네. "


" 예!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



남들이 보기엔 허울뿐인 위로였다.


허승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허울뿐인 위로도 아주 가끔은

직장생활을 이어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 그래, 가서 일 봐. 자네에게 기대가 커. "


" 감사합니다! "



꾸벅.


허승열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90도로 인사한 후 회의실을 나섰다.



" 팀장님, 팀장님! "



허승열이 사무실로 돌아오기 무섭게

부하직원이 그를 불러 세웠다.



" 무슨 일이야? "


" 명동에서 긴급 요청이 들어왔는데요. "


" 명동? 검은 문? "


" 예, 자신이 각성자라고 주장하는 한 소년이

검은 문으로 들어가겠다고 난동을 피우고 있답니다. "


" 각성자? 몇 살인데. "


" 열아홉 살이랍니다. "


" 고3? 뭐야, 학교는 어쩌고. "


" 거기까지는 확인을 안 해봤습니다. "


" 학교나 가라 그래! 무슨 어린놈이 각성자 타령 · · ·

잠깐...! 각성자인 거 확실하지? "



불현듯 조금 전 최택조 본부장의 지시가 떠올랐다.


가릴 처지가 아니니 되는대로 각성자를 모두 소집하라던.



" 예, 연락이 온 바로는 확실한 것 같긴 한데요.

근데 팀장님, 성인도 아니고 열아홉 살짜리를

검은 문 안으로 들여보내시게요? "



꽤나 리스크가 큰 일이다.


민간인을 그 안으로 집어넣는 일은.


게다가 각성자는 아직 고등학생이다.


자칫 잘못했다가 불상사라도 발생한다면...


사과문 한 장으론 국민들의 원성을 잠재울 순 없을 것이다.


허승열을 시작으로 줄줄이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명동의 검은 문이 붕괴하여 괴생명체들이 뛰쳐나온다면?


어린 학생을 사지(死地)로 내몬 것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 일단 내가 현장으로 가서 판단하도록 하지. "



잠깐의 고민 끝에 허승열은 명동의 검은 문으로 향했다.



***



" 수고하십니다. 특이 재난관리 본부에서 나왔습니다. "



허승열은 목에 걸린 공무원증을 꺼내 보였다.



" 어디서 오셨다고요? "


" 특이 재난관리 본부에서요. 이번에 신설되었습니다. "


" 아, 예. "



허승열을 맞이하던 경찰이 아니꼬운 듯 대답했다.


현장 일을 주로 맡는 경찰들은

기본적으로 공무원이란 작자들을 싫어한다.


그들이 탁상공론(卓上空論)을 펼치면,

뒤치다꺼리는 모두 본인들의 몫이라고 생각했으니까.



" 여기 검은 문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한 각성자를 보러왔는데요. "


" 그 고등학생을 보러 오셨다고요? "


" 각성자죠, 고등학생이라도. 지금 어디 있나요? "



경찰관은 허승열을 옆에 마련된 천막으로 안내했다.



" 그럼 말씀 나눠보세요, 저는 이만. "



경찰관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천막에는

앳돼 보이는 소년이 앉아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형.


또래 친구들보다는 적당히 커 보이는 키.


며칠 씻지 않은 듯한 행색에 비해

소년의 날카로운 눈매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겨왔다.



" 그래, 각성자라고? "



허승열은 소년에게 다가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소년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 아저씨 나 알아? "


" 응...? "


" 나 알아? 나 아냐고.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



망치를 얻어맞은 것 마냥 강한 충격이 허승열의 후두부를 강타했다.



" 크흠... 미안, 아니 미안합니다. "



눈을 질끈 감으며 사과하는 허승열.


가뜩이나 좌천되어 온 부서에서

쓸데없는 일로 잡음을 만들 순 없었다.


게다가 그 잡음이 미성년자와의 시비라면 더더욱.



" 좋아. 마음에 드네. 아저씨가 책임자야? "



' 삼촌뻘인 내가 존댓말을 하는데

왜 이 빌어먹을 꼬맹이는 반말을 하는 거야? '


허승열은 집에 있는 초등학생 아들을 떠올리며

들끓는 화를 참아냈다.



" 내가 책임자에요. 혹시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나요?

저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 "



능력자라고는 해도 상대는 어린 학생이다.


되게 싸가지가 없을 뿐인 학생.


일정 수준만 되면 그를 검은 문에 들여보낼 생각이었지만

허승열은 잘 타일러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리라 다짐했다.



" 재밌네. 혹시 저기 안에 들어간 사람 있어? "


" 그건 기밀이라 민간인에게 말씀드릴 순 없고.

우선 가진 능력부터 설명해 줘요. 부모님도 이쪽으로ㅡ "



순간, 멀쩡하던 천막이 바람에 흩날렸다.


이어 허승열은 깜짝 놀라 자신의 눈을 이리저리 비볐다.


자신의 눈앞에 앉아있던 소년이 갑작스레 시야에서 사라졌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능력을 설명해달라고? 자신의 능력을 밝히는 헌터,

아니 각성자도 있나? "



그리곤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헌터?


꼬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보다 훨씬 더 불가해(不可解)한 일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 까닭에.



" 어떻게 한... 거지? "



분명 이 소년을 바라보면서 말하고 있었는데.


방금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천천히 되짚어봤지만,

일반적인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풀어낼 수가 없다.



" 어떻게 하긴, 간단해. 그냥 이렇게. "



등 뒤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다시 정면에서 들려왔다.


눈 깜짝할 새에 소년이 눈앞에서 나타난 것이다.



" · · · ! "


" 이 정도면 충분해? 아님 더 보여줘야 하나. "


"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마술인가? "



놀람이 가시질 않은 시뻘건 얼굴로 허승열이 되물었다.



" 마술? 이건 그냥 단순히 빠르게 움직인 거야.

단지 너무 빨라서 아저씨 눈으로 쫓지 못했을 뿐이지. "



그 말대로 소년은 특별히 무언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지닌 마력을 발에 조금 실어 빠르게 움직인 것.


그것이 전부였다.



" 음, 더 보여줘야 하나? 특별한 건 없고, 이거라도. "



천막을 향해 걸어가는 소년.


스스슥...


소년의 손끝에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빛무리, 푸른 빛무리가 소년의 손끝에 모여들고 있었다.


어릴 적에 영화에서 봤던 광선검이

꼭 저런 모습이었다고 허승열은 생각했다.



'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



허승열은 계속해서 자신의 눈을 비벼댔다.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지 확인 할 방법이 이것 말고는 없었기 때문.


그러나 아무리 눈을 비벼도 소년의 손끝에 모인 빛무리는

도저히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이거, 아주 날카롭거든. 웬만한 칼보다 잘 들어. "



소년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천막의 벽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주우우욱! 하고 천막의 벽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 무슨 일입니까! "



밖에서 경찰관 하나가 뛰쳐들어왔다.


잘 있던 천막이 난데없이 찢어지니 놀란 탓일 테다.



"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냥... 갑자기 천막이 찢어지더군요. "



허승열이 대답했다.


갑자기 천막이 찢어지다니.


경찰이 이를 믿을 리 없다.


하지만 허승열의 무언의 눈짓을 통해

경찰은 천막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척하다

별다른 추궁 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 눈치도 빠르고 괜찮네. 아저씨, 나랑 거래 안 할래? "



허승열은 대답하지 않았다.



' 거래? '



평범한 거래는 아닐 것이다.


거래를 빙자한 청탁일 것이 확실하다.


청렴한 공무원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받아들이면 안 되는 이야기였다.



" 아저씨, 승진하고 싶지 않아? 남자로 태어났으면 본부장쯤은

아니 장관 자리 한 번은 밟아보셔야지. "



그러나 달콤한 유혹이 뱀처럼 허승열의 몸을 휘감았다.


흔들리는 눈빛.


소년의 말처럼 그도 남자인데다 한 가족의 가장인지라

승진에 대한 욕심이 물론 있긴 했다.


그러나 부정한 청탁까지 들어주면서 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는 일개 고등학생이다.


학생 주제에 뭘 안다고 지껄이는...



" 아니, 그 말은 못 들은ㅡ "


" 아저씨, 특이 재난관리 본부 소속이지? "


" 어떻게 알았지? "



소년에게 자신의 소속을 말한 기억은 없었다.



" 그거 나중에 '각성자 관리청'으로 개편될 거야.

특급 비밀이긴 한데 특별히 가르쳐 줄게. "


" 꼬마야! 어른을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해. "



결국 참다못한 허승열이 소리쳤다.


분명 소년의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래봤자 열아홉 살짜리에 불과한 어린아이.


아이의 헛소리를 들어줄 만큼 허승열은 한가하지가 않았다.



" 나 장난하는 거 아니야. 이야기 똑바로 들어.

저거, 밖에 저거 보이지? "



그러나 소년은 되려 정색을 하며 밖에 있는 검은 문을 가리켰다.


그 분위기에 압도된 허승열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저 소년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길 뿐이었다.



" 저거, 그냥 잠깐 저럴 것 같지?

당신네 공무원들, 특히 윗대가리들 생각이야 뻔하지.

대충 시민 보호하는 척하면서 세금이나 빼먹으려 들겠지. "


"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고작 열아홉 살짜리가ㅡ "


" 근데 비밀 하나 알려줄까? 저거 안 없어져.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쉴 새 없이 나타난다고.

그리고 세상은 저거 때문에 쑥대밭이 될 거다. "



허승열은 검은 문과 소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과연 소년의 말이 사실일까?


사실일 수도 있다.


적어도 현시점에선 자신보다 저 소년이

저것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었다.


아무래도 열아홉 살밖에 안 된 어린애의 말이었으니까.



" 거래라고 했지만 딱히 아저씨가 잃을 건 없을 텐데?

어차피 아저씨, 나를 저기다 집어넣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그거 확인하러 온 거잖아. "



헌데 소년은 제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도 비범했다.


소년의 분위기에, 말투에, 표정에 서서히 압도되기 시작한 허승열.


그의 마음은 조금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단지 저곳에 들어가게 해달라, 그것뿐이야. "


" 정말 그것 말고는 없나? "


" 없어. 내가 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이유가 뭐겠어?

어차피 내가 들어가려고 하면 아무도 막지 못할 텐데.

난 단지 책임자와 안면을 트고 합법적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거야.

귀찮은 건 싫으니까.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허승열.


소년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방금 전 보여준 상식 이외의 움직임을

과연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허승열은 이제 같아서는 그냥 들어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서,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아직 몇 개 정도 남아있다.


저 문을 넘어가기 위해 수많은 공문을 작성해야 하고

소년의 부모님 동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ㅡ



" 저거 완벽하게 없애 드릴게. 너무 걱정하지 마.

나중에 장관 자리 하나 하셔야지? "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마는 계속 장관 타령이다.


장관이란 자리가 얼마나 높은 자리인지 알기나 하는 걸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허승열.


이윽고.



" 알겠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그런데 알다시피 절차가 좀 까다롭다. "


" 절차? "


" 너에 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이름도, 주소도, 부모님도.

그리고 같이 들어갈 인원들도 최소한 9명은 필요해. "



서로 거래를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버린 두 사람은

어느새 자연스레 반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소년도 이에 대해 그다지 불만이 없는 것 같았다.



" 이름은 최광, 주소는 없어, 부모도 없고. 고아거든.

그리고 다른 놈들은 필요 없어. 혼자 들어갈 거니까. "


" 뭐라고? "


" 그리고 아저씨, 착각하는 게 있나 본데. 이거 거래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이 귀찮은 짓을 왜 하겠어?

그냥 다 무시하고 들어가 버리면 되는데.

그런 절차 정도는 아저씨가 알아서 처리하셔야지. "


" 그런...! 아니 잠깐ㅡ "



얼추 대화가 마무리된 거 같자 소년은 불쑥 천막 밖으로 향했다.



" 잠... 잠깐! 어이!! "



뒤늦게 소년을 따라간 허승열.


그러나 소년의 한쪽 발이 이미 검은 문에 걸쳐진 상태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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