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마왕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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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피아재
작품등록일 :
2024.09.0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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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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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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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DUMMY

굳이 녀석에게 전화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크리우스 님. 그래도 편의점 주인에게 언지는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라···? 녀석에게 보고라도 하라는 것이냐?”


언짢은 기분에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러자 자바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건 아닙니다. 그저 이곳에서 오래 일하길 바라는 마음에······.”


“쯧.”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바스의 충언을 무시할 순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때문에, 안면 근육을 일그러트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편의점 주인이시여. 잠시 용무가 있으니 나갔다 오겠습니다.”


주인 앞에 편의점은 꼭 붙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했으니까.


- 예? 아니. 갑자기 어딜요?


“지금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그런 줄 아시지요.”


- 예?


「 띠릭. 」


간혹 길어지는 대화에 할 말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이 꼭 그랬지. 그러니 손에 쥔 핸드폰에 종료 버튼을 누를 수밖에.


공기에 실린 무게 따위 없겠지. 그러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편의점 안을 영위하는 공기가 무거워진 것을 말이다.


적막함이 흐르던 그때.


옆에 서 있던 소년이 등에 멘 가방끈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저기···. 아저씨. 도와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다시금 분노가 일렁이던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감히 마왕이 결정했는데, 토를 달았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아저씨라 부른 것이다.


“닥쳐라. 어서 앞장이나 서거라. 그리고 난 아저씨가 아니다. 마왕이다.”


“네······?”


소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시에 계산대 밑에 앉아 있던 자바스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크리우스 님···. 스스로 인간들에게 마왕이라 하신다면···. 곤란해지십니다······.”


“아.”


자바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내 정체를 모를 테니까. 때문에, 옅은 한숨을 내쉬며 소년에게 다시 말했다.


“마환이다. 김마환. 앞으로는 마환 님이라고 부르거라.”


“아. 예······.”



.

.

.



드넓은 창공은 붉은 석양으로 물들었다. 보기에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무스의 핏빛 하늘과 닮았달까.


습한 더위에 불쾌함이 끓어올랐지만, 중절모를 벗을 순 없었다. 그것이 마왕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이니까.


신호등이라 부르는 곳에서는 수많은 인간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웃는 소리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때마다 심기가 불편했다.


특히나 열받는 것은 저 클랙슨 소리.


「 빵 - ! 」


당장에라도 저 괴상한 금속 물체를 붙잡아 반으로 쪼개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악행. 마왕의 부활을 지연시킬 뿐이었다.


아무튼 괴롭힘을 당하는 소년을 따른 지 10분째.


그를 겁박해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 녀석들은 건널목 반대편, 낡은 건물 3층에 있는 피시방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내 저 멀리 신호등 불빛이 녹색으로 발현됐다. 그러니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여전히 쭈뼛거리던 녀석의 목덜미를 쥐고는 차도를 건넜다. 이윽고 도착한 건물 앞에서 녀석은 한껏 울상을 지으며 내게 빌어댔다.


“아. 진짜. 괜찮아요. 아저···아니. 마환 님.”


독기가 없는 저 표정을 보자니, 뺨이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악행. 어렵사리 쌓은 포인트를 잃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친절하지 않았다.


“닥쳐라. 몇 번이나 말하지? 네 녀석에겐 선택권이 없다.”


“아니. 이건 제 일이잖아요···.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 괜찮아요.”


“이제 이 몸에 일이다. 가자.”


여기저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끈적한 액체가 가득한 유리문을 젖혔다. 그러자 정체 모를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갖은 인상을 쓰며 한 손으로 입을 막았고 다른 손으로 소년의 목덜미를 쥐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는 소년을 데리고 들어갔다.


“눌러라. 3층.”


“······.”


녀석은 한껏 울상을 지으며 숫자 3을 눌렀다. 내가 누르는 편이 빠르고 편했겠지. 그러나 더러운 공간에 내 손끝을 닿게 할 순 없었다.


「 띵. 3층입니다. 」


문이 열렸다.


그러나 소년은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그러니 다시 끌고 갈 수밖에.


다시 손으로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굳게 닫힌 피시방 문을 발로 차버렸다.


「 팡 - ! 」


이목이 이 몸에게 집중됐다. 누구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누구는 얼굴을 구겼지. 그러니 마왕은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을 터.


“여기 이 소년을 괴롭히는 녀석이 누구냐!”


분노가 섞인 목소리는 습하고 어두운 공간 이곳저곳을 훑었다.


그리고 잠시 후.


몸집이 꽤 큰 녀석이 우리가 있는 문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리고 이어서 내 옆에 서 있는 소년에게 말했다.


“어. 너 뭐야?”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입가에 번지는 옅은 미소. 그 표정은 약자가 강자에게 보이는 일종의 조아림이랄까.


“뭐냐. 너 여기서 뭐 하냐?”


녀석의 물음에 소년은 미간을 긁적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뭐야. 씨. 미쳤냐? 대답이 없어 새끼가.”


녀석은 소년을 향해 오른손을 들더니 때릴 듯 위협했다. 그 모습에 소년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숙였다.


이 소년에게 딱 어울릴 낱말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무기력. 무능. 무의지.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리기는커녕, 조금의 생기도 없었다. 그저 고양이 앞에 죽음을 기다리는 생쥐 같달까.


그리고 포식자는 언제나 이를 놓칠 일 없었다.


「 퍽. 」


손바닥이 머리를 내려치는 소리는 둔탁했다. 그리고 연이어서 들려오는 소년의 신음.



「 아······. 」


“어휴 병신. 말을 하라고 새끼야. 여기 왜 왔냐고.”


「 퍽. 」


「 아. 」


「 퍽. 퍽. 」


「 아······. 」


마왕은 그저 눈매를 가늘게 뜨고는 그 광경을 지켜봤다. 솔직히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강자가 약자를 사냥하는 건 당연한 이치니까.


그러나 이 몸은 피로 물든 아니무스로 돌아가야 할 마왕.


착한 일. 그러니까 선행을 해야 했다.


그렇기에 소년을 괴롭히는 녀석의 행동을 두고 볼 순 없었다.


「 탓 - ! 」


나는 손으로 다시금 높이 올라간 녀석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마왕의 완력은 이겨낼 수 없었지.


“뭐야. 누구세요?”


이어서 녀석의 눈빛이 내 홍채와 맞닿았다.


“소년을 괴롭히는 게, 네 녀석이냐.”


“······예?”


녀석의 얼굴에 번지는 어벙한 표정. 그것을 마왕이 놓칠 일 없지. 기세를 놓치지 않고 몰아붙였다.


“얘를 괴롭히는 게 너냐고.”


내 물음에 어벙하던 눈빛이 이내 이글거렸다. 보기에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 아저씨가 뭔데요?”


녀석의 물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는 전투를 이어가기 힘들 터. 피식 웃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여기는 비좁군. 따라 나오거라.”



.

.

.



편의점을 지키겠다던 자바스. 녀석은 변덕스럽게도 내가 있는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뭐냐. 자바스. 따라온 것이냐.”


“그렇습니다. 크리우스 님. 아무래도 제가 필요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참나.”


나와 자바스 그리고 소년.


골목 반대편에는 한껏 인상을 구긴 녀석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서 있었다.


태양이라 불리는 별이 완전히 저물어 골목은 어두웠지만, 이내 훤히 빛나는 가로등 덕분에 서로의 얼굴은 볼 수 있었다.


나는 스무 걸음 정도 앞에 있는 녀석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오른손 검지를 하나 펴 보였다.


“덤벼라.”


말을 끝맺자, 녀석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시뻘건 깃발을 본 황소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

.

.



“흑······.”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는 흐느끼는 녀석. 전투는 허망하게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 이름을 말해보거라.”


녀석은 내가 검지로 쿡 찌른 어깨춤을 붙잡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저요? 김 선우입니다······.”


“그렇군.”


나는 친히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리고 손으로 녀석의 턱 끝을 쥐며 물었다.


“내게 패배한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지. 그러니 고개를 숙이지 말거라.”


선우라는 인간이 눈살을 찌푸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래. 좋군.”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여전히 쭈뼛거리며 서 있는 소년이 보였다. 여전히 기백이 없는 모습. 그러니 마왕의 정수리는 이내 뜨거워졌다.


“선우라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부탁이 있다.”


“아. 무슨······?”


“네 녀석의 리더를 이곳으로 불러라.”



.

.

.



선우가 내 부탁을 실행에 옮기고,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후.


골목 끄트머리에 족히 10명은 넘을 사내들이 서 있었다. 아. 사내라고 볼 순 없지. 아직 머리에 시뻘건 선혈도 마르지 않을 소년들이니까.


녀석들은 천천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옆에 앉은 자바스가 웬 호들갑을 떨어댔다.


“오. 이런. 아무리 크리우스 님이라고 하더라도 저 많은 수를 상대하시기는······.”


그리고 괴롭힘을 당하던 소년도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그리고 입에서 나오는 낱말은 나를 언짢게 했다.


“아···. 망했다······.”


나는 머리에 쓴 중절모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게 더 멋스러우니까.


녀석들이 내게 다가오는 걸음이 무척이나 느렸달까.


한껏 분노와 흥분이 뒤섞인 마왕은 이를 기다릴 수 없었다. 그러니 발걸음에 곱절을 더해 녀석들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마왕의 예상을 빗나간 일이 벌어졌다.


“어!”


가장 앞에 서 있는 노란 머리.


녀석은 내가 일하는 편의점에 담배를 사러 왔다가, 내게 혼쭐난 진수였다.


“아. 안녕하세요······.”


참교육의 효과가 있었달까.


진수 녀석은 한걸음에 내게 뛰어오더니 고개를 땅 아래로 푹 숙였다. 한껏 예의를 차린 모습에 마음에 쌓인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흠. 뜻밖이군. 진수. 네 녀석이 리더냐?”


진수는 손사래를 치더니, 리더 같은 건 아니라며 배시시 웃었다. 갑자기 기분이 팍 상했다. 그 말은 거짓이니 말이다.


나는 오른손 검지를 하나 펴서 녀석에게 보였다.


“내가 거짓을 싫어한다고 했지? 또 여기저기 찔려보고 싶은 게냐.”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제가 리더···가 맞습니다.”


녀석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손으로 목덜미를 긁어댔다. 한눈에 보더라도 민망해 보이는 모습에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그렇군. 진수. 저 소년을 알고 있지?”


진수 녀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내 뒤에 서 있는 소년을 바라봤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녀석의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태도. 마왕은 이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 아. 미친. 저 새끼랑 아는 사이인가? 앞으로 건들지 말아야겠다. 」


진수 녀석의 마음은 거짓이 없었다. 그러니 선행은 여기서 끝일 터.


하지만, 이 몸은 크리우스. 마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전개되는 이 선행을 깨끗하게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래. 진수. 부탁이 있다.”


“예···? 부탁이요?”



.

.

.



“그래. 저 소년과 승부다. 사내답게 일대일로 붙거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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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소년 24.09.16 10 0 12쪽
12 번개탄 24.09.16 13 0 11쪽
11 전투 24.09.13 1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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