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마왕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인프피아재
작품등록일 :
2024.09.03 23:54
최근연재일 :
2024.09.18 23:56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271
추천수 :
11
글자수 :
77,888

작성
24.09.10 00:09
조회
17
추천
1
글자
12쪽

면접

DUMMY

「 크리우스 님. 이 나라는 예의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니 윗사람에게는 언제나 존대어를 사용하셔야 합니다. 」


아차!


두뇌에서 녀석의 말이 스파크처럼 튀었다. 그러나 붉은 입술에서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지.


거대한 마탑 최상층. 그곳에서 한번은 부하들을 크게 나무랐다.


“입을 열 때는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잿더미가 될 것이다!”


녀석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러니 눈빛은 보이지 않았지. 그러나 두려움에서 발현된 미세한 떨림이 내 눈에는 보였다. 마왕 크리우스는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었으니까.



.

.

.



“뭐라고요?”


그래. 인정했다. 나는 자바스의 충언에도 불구하고 말실수했다. 인중이 움찔거리다가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마왕의 고유능력. 적안에 의해 들려오는 녀석의 마음속 메아리.


「 마왕? 미친놈인가···? 옷차림은 저게 뭐야? 」


아니무스에서 들려오던 부하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감사함이나 충성심이 스며 있었다.


그런데 감히 내게 미친놈?


당장이라도 녀석의 심장을 도려내고 싶었지만, 견뎌냈다. 나는 여기 뽑혀야 하니까. 그래서 마왕으로 부활해야 하니까.


입에서 새어 나온 말은 주워 담을 순 없었다. 그러나 수습은 가능할 터. 마왕은 언제나 영민했다. 그러니 명석한 두뇌도 잘 돌아갔지.


“미안합니다. 이 세상에 온 지 이틀밖에 안 돼서 말일세.”


“저기. 그냥 나가세요. 이상한 사람이네?”


“아. 인간이여 사과하지 않았습니까. 그니깐 노여움을 거두시길······.”


“경찰 불러요?”


「 크리우스 님. 혹시라도 경찰이라는 말이 나온다면, 속히 나오십시오. 그들에게 붙잡혀 간다면, 앞으로 착한 일은커녕, 평생 병원에 입원할 게 분명합니다. 」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투명한 문을 밀치고 곧장 도망쳤다.



.

.

.



“헉···. 헉···.”


언제나 기품과 여유로움이 넘치던 마왕 크리우스. 그런 내가 한 마리 들짐승처럼 숨을 헐떡이다니. 안면은 한껏 달아올랐고 숨결은 뜨거웠다.


“젠장! 미개한 녀석이군. 이 마왕께서 존대어까지 사용했는데!”


말과 동시에 바닥에 널브러진 구겨진 캔을 그대로 차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검은 고양이 자바스가 뛰어오더니 고개를 숙였다.


“어찌 되셨습니까. 잘 안되셨습니까?”

“그래. 쯧.”


두터운 검은색 코트 그리고 중절모. 중천에 뜬 태양은 자비 없이 나를 내리쬈다. 때문에, 이마나 등허리에서 하염없이 땀방울이 솟아 흘렀다.


“정말 이 행성은 덥군······.”


“이쪽으로 오시지요.”


말을 끝맺은 자바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게 솟은 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그래. 좀 낫군.”


머리에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으며 이마의 땀을 닦아내자, 자바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녀석의 목소리에는 염려가 가득했다.


“크리우스 님.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그 옷차림이 문제인 듯싶습니다.”


“이 새끼가······.”


날씨가 무더우니 불쾌함도 중첩됐다. 한 마디로 상당히 예민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감히 마왕의 옷차림을 지적해? 현관문 앞에서 혼쭐났음에도 말이다.


타오르는 분노를 식혀야만 했다. 그러니 녀석의 멱살을 쥘 수밖에 없었을 터.


“크흡······.”


“자바스. 말했지? 선을 넘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그···렇습니다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었습니다······.”


“목적?”


목적이란 말에 녀석의 목덜미를 쥔 손이 느슨해졌다. 이어서 눈살을 찌푸리자 자바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네···.”


내가 이 행성에서 환생한 지 이틀째. 완전무결한 그 마왕도 모르는 게 많았다. 견디기 힘든 분노가 여전히 꿈틀거렸지만, 넓은 아량으로 녀석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래. 읊어보거라.”


녀석은 그늘에서 몇 차례 컥컥거리더니,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아마도 마왕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도록 할 단어를 고르고 있겠지. 녀석은 이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크리우스 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녀석들은 미개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마왕의 미적 감각을 따라오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미적 감각?”


“그렇습니다. 녀석들은 개성보다 겉치레를 중하게 여기죠. 그러니 이 무더운 계절에 걸맞지 않은 그 두터운 코트와 모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마른침 한 방울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그 어느 때보다 총명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가는 자바스. 천하를 순식간에 불태울 마왕이지만, 녀석의 말을 경청했다.


“그래?”


“네. 그러니 일할 사람을 뽑는 자리에 그 옷차림이라면···. 아무래도 취직은 어려워 보이십니다.”


녀석은 말을 끝냄과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거의 땅바닥으로 들어갈 기세였달까.


몹시 무례했지만, 녀석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러니 마왕으로서 고민은 깊어졌다. 나는 손에 든 중절모로 부채질하며, 손가락으로 미간을 긁적거렸다.


“그래. 이 몸께서 이해할 수밖에 없군.”


“오. 잘 생각하셨습니다. 크리우스 님.”


“그러나 둘 다 양보할 순 없다.”


햇볕이 들지 않는 그늘에서 자바스와 나는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잠시였지만, 서로는 위아래가 없었다.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열망만 타오를 뿐.


“모자는 안된다니까!”


“···알겠습니다. 그리하시지요.”


아무튼, 자바스는 이 중절모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뭐, 일종의 부러움이라 생각했다.


이어서 한참이나 알바지옥 앱을 뒤졌다. 그러다가 5분이면 도착할 거리에 있는 편의점. 그곳에서도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여기 어떠냐.”


“가까운 것이 최고입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크리우스 님.”



.

.

.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편의점 하나가 보였다. 급한 마음에 곧장 건너고 싶었지만, 빠르게 지나다니던 자동차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흑마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모두를 불태웠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윗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대며, 수십 초를 기다렸다. 그러자 신호등에서 초록색 빛이 발현됐다.


“건너시면 됩니다.”


“그래.”


건너편에 도착하자, 자바스가 나를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전봇대 밑으로 데려갔다.


“잊지는 않으셨겠죠. 미소 그리고 존대어 말입니다.”


“쯧. 알았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약속한 것처럼 코트는 벗으라고 말했다.


“모자가 걸리긴 합니다만, 훨씬 보기 좋습니다. 코트는 이쪽에 두시면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전봇대 옆으로 투명한 유리문 하나가 보였다. 그 앞으로 다가서자, 내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멀끔한 흰색 셔츠에 검은색 바지, 그리고 운동화에 중절모. 코트가 아쉽긴 했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코트를 잃어버리면 아무리 너라도 목숨을 거둘 수밖에 없다. 잘 부탁한다.”


고개를 꾸벅이는 녀석을 뒤로했다. 발걸음 하나에도 기품이 넘칠 터. 나는 골목 어귀에서 나와 편의점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 띠리리링 - 」


투명한 유리문을 밀어 열자, 귓가에 울리는 종소리. 깊은 한숨을 내쉬고 계산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중년의 사내 하나가 보였다.


「 크리우스 님. 그래도 들어가시면 모자는 벗으셔야 합니다. 차라리 가슴 한편에 모자를 두시면서 예를 갖추시지요. 」


녀석의 그 말에 한참이나 핏대를 세우며 반대했지만, 목숨을 건 자바스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자존심이 구겨지는 소리가 고막에 닿았지만, 마왕으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사내를 향해 비스듬히 서서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심장 부근에 올려두고는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크리···. 아니. 김마환입니다.”


“아. 면접이요?”


“그래요.”


“아···. 이쪽으로······.”


사내가 내민 손을 따라가자, 과자봉지가 쌓여있는 아래로 비루하고 조잡한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옅은 미소를 띠며 그쪽으로 향했다.


“고맙소.”


그때였다. 사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변의 공기가 심상치 않아, 곧장 붉은 눈으로 녀석의 속내를 들춰냈다.


「 생긴 건 멀끔한데, 말투가 왜 저러지? 모자도 좀 이상하고···. 정신에 문제가 있나? 」


위기였다. 조금 전에도 이러다가 문전박대당했으니 말이다. 이어서 떠오르는 자바스의 충언.


「 크리우스 님. 적안을 사용하시는 건 좋습니다만, 너무 티 내지는 마시옵소서. 」


재빨리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리고 사내에게 할 말을 결정했다.


“아. 외국 생활을 좀 오래 했습니다. 그래서 존대어가 익숙하지 않군요. 허허.”


“아······.”


한껏 의심이 담겨있던 그의 눈빛이 조금은 진정됐다.


자리에 앉자, 그는 손에 쥔 핸드폰이 뚫어지랴 쳐다보더니, 나를 힐끔 쳐다봤다.


“어휴. 대기업에서 일하셨네요. 편의점에서 일해보신 적은 있으세요?”


‘이 새끼야. 있겠냐?’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올뻔했다. 그러나 마왕의 순발력은 차마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울 터. 자바스의 충언대로 살며시 웃으며 사내 물음에 답했다.


“경험은 없소. 그러나 그 누구보다 자신 있지요.”


사내는 내 말에 허허실실 웃으며, 자신감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좋아하는 음료가 있는지 물었다.


“음료 말이요? 흠···. 붉은 와인은 좋아하지.”


“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반말에 어깨가 움찔했다. 그러나 일평생 존대어를 써본 기억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실수할 수밖에. 곧바로 다시 정정했다.


“아. 미안하네요. 붉은 와인은 좋아하오.”


사내의 표정이 미묘했다. 얼핏 보면 미소를 띤 것 같은데 한껏 인상을 구긴 듯한 표정. 곧장 그의 마음을 꿰뚫어냈다.


「 뭐지. 해외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가? 와인이라니 이상한 사람이네. 」


미간이 찌그러지는 걸 억지로 참았다. 아무튼, 인간들은 이상했다. 좋아하는 음료를 물어보길래 와인이라고 답했건만. 쯧. 당장이라도 마왕의 위엄을 드러내며, 사내의 무릎을 꿇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번잡스러운 마음이 마음을 잠식했다. 신족 수백을 상대하는 것보다 진이 빠졌달까? 아무튼, 눈동자를 위로 올렸다. 그리고 녀석의 물음에 적절한 답변을 생각했다.


“흠···. 그래. 콜라. 콜라가 좋겠군요.”


“아···예······.”


사내는 투명한 유리문이 달린 사각의 박스로 가더니, 문을 열어 뻘건 콜라 캔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건냈다.


“고맙소.”


그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다시 물음을 이어갔다. 어딘지 모르게 심문 같아 언짢은 기분이 들었지만, 견뎌냈다. 나는 마왕으로 부활해야 하니까.


“혹시···. 사람들을 대할 때는 어떠세요?”


“인간 말입니까?”


“네.”


마음을 꿰뚫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저 진심이 담긴 궁금함. 사내의 질문의 취지를 되짚었다.


의도가 무엇일까?

원하는 답변은 뭘까?

마왕으로서 솔직하게 말하면 될까?


「 크리우스 님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답변하시기 모호한 질문을 한다면, 평소 생각하는 것에 반대로 이야기하십시오. 그게 나을 듯합니다. 」


영민한 자바스의 충언. 순간적으로 그 말이 떠올랐다.


내가 인간을 마주하면 어떠냐고? 그리고 반대?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허벅다리를 쳤다. 그리고 한쪽 입꼬리를 훤히 올리며 사내에게 말했다.



.

.

.



“하. 그야 당연히 도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부활한 마왕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결투 NEW 2시간 전 4 0 11쪽
14 선행 24.09.17 6 0 12쪽
13 소년 24.09.16 9 0 12쪽
12 번개탄 24.09.16 12 0 11쪽
11 전투 24.09.13 15 2 11쪽
10 담배 24.09.12 14 1 11쪽
9 취업 24.09.11 15 1 11쪽
» 면접 24.09.10 18 1 12쪽
7 알바 24.09.08 18 0 12쪽
6 서른셋 24.09.07 17 0 12쪽
5 콩이 24.09.06 19 1 11쪽
4 복종 24.09.05 22 1 11쪽
3 붉은 눈 24.09.04 25 1 12쪽
2 층간소음 24.09.03 34 1 11쪽
1 부활 24.09.03 44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