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마왕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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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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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DUMMY

마왕이란 존재를 담기에 지구의 그릇은 작았달까. 그러니 마주하는 인간들을 언제나 혐오했다. 그리고 마음에서 꿈틀거리는 분노는 내게 속삭였지.


‘하나도 남김없이 도륙하고 싶다.’


유능한 충신 자바스가 아니었다면, 솔직하게 말했을 것이다. 모두를 죽이고 싶다고.


언짢은 기분에 목덜미가 뜨거웠지만, 마왕은 언제나 영민했다. 그러니 사람을 대할 때 어떠냐는 질문에 그럴싸한 답변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 그야 당연히 도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오.”


비루하면서도 작은 공간을 영위하는 공기가 서늘해졌다. 이어서 따라오는 적막함. 마왕의 직감은 언제나 정확하고 섬세했다.


마왕의 본능이 꿈틀거리며 말했다.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다시 눈썹을 꿈틀거리며 적안을 밝혔다. 그리고 한껏 인상을 구긴 사내의 마음을 읊었다.


「 뭐야. 진짜 미친놈인가? 」


재현되는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다시 찾아온 위기에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갔다. 더 이상 떠오르는 자바스의 충언도 없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을 망망대해에 띄운 돛단배에 올라탄 듯 고독했다. 그것은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


아. 과거에도 몇 차례 이런 경험이 있었지. 나 홀로 수천의 신족에게 둘러싸여 마왕의 목숨이 위태하던 그 순간. 그 누구라도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였겠지만, 마왕 크리우스는 달랐다. 막다른 길에 몰릴수록 강해졌다 이 말이다.


‘그래. 치욕스럽지만,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대의를 이루기 위함이니 부끄러운 게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허벅지에 올려둔 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를 마주하고 있는 사내에게 반드시 인정받겠다고 말이다.


손에 든 콜라 캔을 거칠게 따서 단번에 목구멍으로 들이켰다. 그러자 견딜 수 없는 따가운 고통에 몸 곳곳이 아려왔다. 이어서 사내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은 말입니다. 인간 하나하나를 아낍니다. 제겐 소중한 존재들이지요.”


“아······.”


의심스러워 보이던 사내의 눈빛이 이내 느슨해졌다. 그러나 그쯤에서 고삐를 풀 순 없었다. 마왕은 언제나 완벽을 추구했으니까.


“그래. 인간들은 제게 가족이나 다름없죠.”


“······.”


사내는 아무 말 없었다. 그러나 표정은 달라졌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 그리고 치켜 올라간 눈썹. 굳이 녀석의 마음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 좋네요. 사시는 곳은 여기 근처세요?”


“그래요. 뛰면 1분 안쪽이지요.”


거짓이었다. 아마도 2분 정도는 걸릴 터. 그토록 거짓을 혐오하던 마왕이었지. 그러나 자존심을 버렸으니 괜찮았다. 어떻게든 돌아가야 하니까 그 크리우스의 몸으로 말이다.


“무단으로 늦거나 결근하시면 안 되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라?”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숨기기 어려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감히 내게 성실한지를 물으니 말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한 손을 옆구리에 올렸다. 그리고 사내를 한껏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무례하군! 아니. 무례하군요! 감히 이 몸에게 불성실을 논하다니.”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허옇게 뜬 입술이 슬그머니 벌어졌다. 말 그대로 얼빠진 표정. 당혹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숨기고 숨겨도···. 마왕의 위엄은 숨기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재빨리 손에 쥔 중절모를 가슴 왼편에 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슬며시 숙였다.


“아. 미안합니다. 그런 의심은 참을 수 없어서 말입니다.”


이어서 옅은 한숨을 코로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곱씹어 보니, 아무래도 이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문제였다. 태도는 그에 따른 마음으로 빚어냈으니 말이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왼쪽 다리를 오른쪽 허벅지에 올려, 허리를 자연스레 뒤로 젖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양손은 겨드랑이에 꼈지.


두근거리던 맥박은 이내 느슨해졌다. 당연했다. 자연스러운 마왕의 자세로 돌아왔으니까. 사내의 고개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았고 말을 이어갔다.


“성실함은 의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시겠죠?”


“아······.”


사내는 내 눈을 피했다. 그것은 맹수를 마주한 먹이의 모습이랄까. 그는 손에 쥔 핸드폰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마지막 질문을 이어갔다.


“저희 매장이 청소를 중요하게 생각해서요. 청소······.”


“그만!”


깜짝 놀란 사내는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얼굴에 번져가는 어벙한 표정. 나는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쯧. 지금 상태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군. 걱정하지 마시게. 지금보다 한층 순결하게 만들어 주지. 아니. 주지요.”


그는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참나. 요즘 젊은 사람 같지 않네. 아무래도 외국에서 살다 오셔서 그런가 봐요? 좋아요. 같이 일해봅시다.”


“훗. 고맙소.”



.

.

.



곧장 이 소식을 자바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내는 몇 가지 절차가 있다며, 나를 보내주지 않았다.


“시급은 만 원이에요. 근무 시간은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괜찮죠? 4대 보험은 가입되고······.”


알고 보니 사내는 이 비루한 편의점의 주인이라더군. 아무튼, 녀석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이어갔으나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딱 하나 제외하고 말이다.


“시급이 만 원이요?”


“네. 그래도 최저시급보다는 많이 주는 거 아시죠?”


“흠······.”


구태여 손가락을 접지는 않았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숫자 몇 개가 곱해지고 나뉘었다.


‘100억···. 나누기 만 원···. 백만······?’


백만 시간을 일해야 100억을 모을 수 있다니···. 굵은 땀방울 하나가 등허리를 타고 내려갔다. 일수로 환산하면 41,666일. 이 행성이 공전하는 주기를 감안하면 114년. 그제야 인정했다. 아무리 마왕이더라도 그 돈은 무리라고 말이다.


“자 여기 사인하시면 돼요. 신분증은 갖고 오셨죠?”


“아. 그래요. 여기.”


그의 물음에 지갑에서 김마환의 신분증을 건넸다. 주인은 나와 신분증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급여를 받을 통장 사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머릿속에 통장이란 단어는 저장되어 있었지만, 정확히 떠오르진 않았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우선은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충신 자바스에게 물어볼 심산이었다.


주인 녀석은 당장 오늘부터 일이 가능한지 물었다. 발은 무겁고 머리에는 미세한 편두통이 느껴졌다. 그러니 몸을 뉘고 싶었다.


하지만, 마왕은 언제나 강인해야 했다. 나약한 모습은 크리우스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태도.


“그럼요. 가능합니다.”



.

.

.



사장은 물건의 바코드를 찾아 스캐너에 찍는 법이나, 매장을 청소하는 법, 매대가 비워지면 창고에서 물건을 채우는 방법 등등. 내게 가리켰다.


이 몸에게 어울리지 않을 쉽고 단순한 업무.


드높은 마탑 최상층에서 최후 승리를 위해 고뇌하던 마왕의 일과는 비교가 불가했다. 자존심이 상했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 하루라도 빨리 부활하기 위해 마음을 정갈하게 다잡았다.


그나저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담배. 그것이 뭔지 궁금했다.


“아. 담배를 몰라요?”


“그렇소. 뭐 하는 물건이요?”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창밖으로 보이는 한 남자를 가리켰다. 조금 멀리 떨어진 탓에 눈살을 찌푸리니, 그의 입에서 허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뭐지? 기폭 주술인가?”


강력한 주술은 아니지만, 아니무스에 신족이나 마족은 작은 폭발을 일으키는 주술을 사용했다. 살상력은 없지만, 적을 기민하기에는 충분했지. 그런 의미에서 저 멀리 인간 하나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는 그 주술과 흡사했다.


“뭐라고요?”


그때였다. 주인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상세하게 기폭 주술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선혈이 흥건한 아니무스가 아니니까. 그저 지구라는 작은 행성이니까.


“아무것도 아니요. 그저 옛 생각이 떠올라서 말입니다.”


그는 고개를 다시 갸웃거렸지만, 구태여 캐물어 마왕을 당황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떠오른 옛 기억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저기. 나도 담배 하나 태워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내 말에 주인 녀석이 손사래를 치더니 얼굴을 한껏 구겼다. 이어서 조금은 격양된 말투로 내게 말했다.


“에이. 젊은 양반이 갑자기 왜? 시작도 하지 말아. 저거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녀석의 의도는 실패했다. 왜냐. 그 말을 들으니 더욱 태워보고 싶었으니까.


“훗. 괜찮소. 선택도 결정도 오직 이 마왕의 몫이지.”


“예?”


“아. 마환의 몫이라고요.”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 투명한 유리문 밖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상자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보이며 내게 말했다.


“젊은 양반. 진짜 괜찮겠어? 한번 피면 못 돌아올 수도 있는데?”


“그래요. 불.”


몽글거리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풍미가 훌륭한 탄내가 입안에 가득 찼다. 그리고 폐부를 순환해 입 밖으로 나오는 허연 연기.


“하···. 훌륭하군. 이보시오. 이거 얼마지?”



.

.

.



주인 녀석은 감히 마왕의 어깨를 몇 차례나 토닥였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지.


“이야. 한 번 알려주면 잘 알아듣네, 확실히 외국물 마시고 대기업 출신이라 이거야?”


아무래도 내게 육신을 건넨 김마환이란 녀석은 꽤 좋은 직장에 다닌 듯 보였다. 참나. 그러면 뭐하나? 지금은 마탑의 화장실보다 작은 형편없는 곳에서 추하게 사는데.


어쨌든, 썩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칭찬을 받았으니 말이다. 뭐. 이 몸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주인 녀석은 허허 실실거리더니, 저녁까지 잘 부탁하고,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연락을 달라며 밖으로 나갔다.


드디어 마왕에게 허락된 혼자만의 시간.


그가 나가자마자 옆에 놓아둔 검은색 중절모를 머리에 썼다. 그리고 계산대 뒤에 놓인 의자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흠···. 성공이군. 이 마왕이 실패할 일 없지.”


「 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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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양손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입 밖으로 나온 저급한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상관하지 않았다. 그 마왕이 자존심을 구기며 얻은 결과니까 말이다.


계산대 위에 놓인 남은 콜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처음에는 독약과 같았던 이 따가움.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랄까.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움켜쥐었다.



.

.

.



마음을 안정시키는 몽글거리는 연기가 퍼져나가던 그때였다.


“크리우스 님! 문 여시옵소서!”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자바스가 눈을 부라리며 유리문을 긁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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