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마왕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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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피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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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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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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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

DUMMY

복종.


의식을 가진 생명체 하나를 내게 굴복시키는 주술.


미약한 신족에게는 통했지만, 직급이 있는 녀석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뭐, 그래도 상관없었지. 굴복시키는 것보다, 검게 타버린 숯으로 만드는 게 더 쉬우니까.


가끔은 부하들이 정보를 캐내야 한다며, 내 앞으로 유약한 신족을 데려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지.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속임수. 여지없이 모두 죽여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복종은 아니무스에 존재하는 정령이나 짐승을 길들이는데 사용됐다.


녀석들의 강함에 따라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피닉스가 그랬다. 녀석이 날린 화염에 하마터면 오른팔이 잿더미가 될 뻔했지.


그러니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들짐승 따위는 마왕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하겠습니다. 크리우스님.”


온몸이 검은색 털로 뒤덮인 녀석은 꼬리 끝을 살랑살랑 흔들며, 풀숲에서 내 앞으로 나왔다.


참고로 복종하여 내게 머리를 조아리는 생명체는 그게 무엇이든 대화가 됐다. 그래야 부려 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달까.


“아저씨 뭐 하세요?”


그러니까 옆에 서 있던 아이처럼 반응하는 게 당연했다. 녀석의 눈에는 내가 고양이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모르니까.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아이의 물음에 답했다.


“몰라도 된다.”


내 말에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얼굴에 번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어벙한 그 표정에 잠시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나는 마왕 크리우스.


아니무스로 돌아가야 할 몸이다. 그러니 섣불리 행동하다가 포인트를 깎아 먹을 순 없었다. 나는 아이를 향해 지그시 눈을 감고 손을 휘저었다. 말 걸지 말라는 의미. 그러자 녀석은 다시 쭈뼛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쯧.”


기백 하나 없이 축 처진 어깨를 보자니 몹시 못마땅했다. 정신 좀 차리라는 의미로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얻는 건 없었다.


다시 검은 고양이에게 눈동자를 돌렸다. 그러자 녀석은 바닥에 넙죽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마왕에게 꽤 만족스러운 태도였다.


“그래. 예를 갖춰야지. 네 녀석이 미개한 인간들보다는 낫구나.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을 묻자, 녀석이 고개를 들더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나비라고 합니다.”


“나비?”


“네.”


머릿속에 떠돌던 이미지 하나가 눈과 눈 사이에 떠올랐다. 나비는 날아다니는 곤충인데, 갑자기 웬 나비? 그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딴 저급한 이름 집어치워라. 자바스로 부르겠다. 그리 알거라.”


“알겠습니다. 크리우스님.”


녀석에게 지어준 이름 자바스. 물론 의미는 없었다. 그저 멋스러운 그 단어가 떠올랐을 뿐이다.


자바스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이자, 녀석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 자바스. 네게 궁금한 것이 있다.”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고개를 돌리자, 제국이라도 잃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가 보였다. 나는 그 녀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바스에게 물었다.


“이 인간 녀석이 잃어버린 강아지가 있단다. 그걸 찾을 수 있겠느냐.”


자바스는 벌떡 일어나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하겠습니다. 다만, 녀석의 이름과 견종, 나이를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래?”


녀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에게 물었다.


“어이. 잃어버렸다던 강아지 이름하고 견종, 나이를 말해라.”


내 물음에 녀석은 거뭇한 손등으로 눈가를 닦더니, 훌쩍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콩이···. 검은색 푸들이고···. 16살이에요······.”


녀석이 말을 끝맺자, 자바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마왕의 눈초리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뭐냐. 켕기는 거라도 있는 게냐.”


“역시 크리우스님의 영민하신 눈초리는 거스를 수 없군요.”


칭찬이다. 지구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들은 칭찬. 입꼬리가 씰룩거렸지만, 나는 마왕.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서 남에게 보여줄 순 없었다. 그게 마왕의 숙명이니까.


“겉치레는 관둬라.”


녀석은 내 불호령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밝게 빛나는 눈매만 슬그머니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나이가 꽤 많은 노견이라 말입니다···. 어딘가 돌아다니는 것은 힘들 터인데······.”


녀석의 말에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포인트 500이 달린 일이다. 녀석의 말에 쉽사리 수긍할 순 없었다.


“어허. 감히 마왕의 지시에 사견을 다는 것이냐. 건방지군. 방법이나 찾아라.”


“알겠습니다. 크리우스 님.”


녀석은 다시 고개를 한번 숙이더니, 잠시 시간을 달라며 풀숲으로 사라졌다. 혹여나 복종의 능력이 약해 이대로 도망친 건 아닐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손으로 목덜미를 긁으며 녀석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옆에 있던 아이가 손가락으로 내 허벅지를 쿡 찌르며 물었다.


“아저씨···. 뭐 하세요? 고양이랑 이야기 나눠요?”


“그래.”


“우와. 어떻게요?”


녀석의 물음에 대답 거리를 찾아봤다.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리고 괜히 말이 길어지면, 나도 모르게 마왕의 분노가 튀어나올 수 있었다.


“쯧. 묻지 말아라.”


「 스슥 - 」


이어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왼편으로 돌렸다. 그러자 풀숲 한편에서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둘. 셋···. 열?”


그 숫자는 무려 열. 그 앞으로 자바스가 걸어 나오더니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은 흡사 병사를 이끄는 장수의 모습 같달까.


마왕 크리우스. 100만이나 되는 대군사를 이끌던 장군이기도 했다. 마탑 최정상에서 내려 보더라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지. 녀석들의 살기와 전의는 타오르는 태양처럼 뜨거웠달까.


그것에 비하면 고양이 열은 비루했다. 그러나 녀석들이 보이는 충성심은 내 가슴을 조금은 뜨겁게 만들었다.


“그래. 자바스. 이 녀석들은 뭐지?”


내 물음에 자바스가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내 발밑에서 고개를 숙였다.


“제가 이끄는 녀석들이죠. 그리고 말씀하신 것을 알아봤는데···.”


“알아봤는데?”


“그게······.”


녀석의 충성심은 꽤 마음에 들었지만, 우물쭈물한 태도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왕은 덕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폭군에 가까웠지.


“이 녀석. 감히 누구 앞에서 말끝을 흐리느냐. 빨리 이야기하지 못할까!”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내 불호령에 곧게 서 있던 녀석의 귀와 꼬리가 바닥으로 축 처졌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뗐다.


“저희는 뛰어난 청각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고유 생명체가 발현하는 미세한 진동을 구분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저기 어린 인간이 말하는 그 콩이라는 강아지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 소리냐. 생명력을 느낄 수 없다. 그 말이냐.”


“맞습니다.”


“쯧. 돌려서 말하지 말거라.”


“죄송합니다.”


아니무스에서 마왕 크리우스도 생명체를 감지할 수 있었다. 육감으로 느껴지는 그 능력은 꽤 뛰어났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 같달까.


아무튼 자바스 말이 사실이라면 정답은 하나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봤다. 녀석은 여전히 훌쩍거리고 있었다.


“네 녀석 이름이 무엇이냐.”


“저요?”


“그래.”


“시우요. 김시우······.”


시우···. 마군관 시리우스가 생각나는 이름이었다. 그는 마족의 용맹스러운 선봉대장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구태여 내색하지 않았지만, 가장 아끼는 장수 중 하나였지.


그러니 언짢았다. 저 어린 녀석이 시리우스의 이름에 먹칠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콧구멍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왔지만, 견뎌냈다. 해야할 일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 시우. 네 녀석의 어미와 아비는 어딨느냐.”


“네? 엄마, 아빠요?”



.

.

.


나는 현관이라 부르는 공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왼편으로는 시우. 오른편에 자바스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아 있었다.


「 쾅 - ! 쾅. 」


초인종이라 불리는 것이 문 옆에 보였지만, 그것을 누르지 않았다. 그저 분노가 실린 주먹으로 문을 두들겼다.


“누구세요?”


“마왕이다.”


“······네?”


“마왕이라고.”


한 여인의 말소리가 뚝 끊기더니 기척이 사라졌다. 당장이라도 눈앞에 철문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입술을 질끈 깨물며 참아냈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구시라고요?”


이번엔 웬 사내 목소리가 문 뒤에서 들렸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우의 어깨를 잡아챘다.


“문 열라고 해라.”


내 말에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나야······.”


「 철컥. 」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곧장 손잡이를 잡아챘다. 그리고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한 사내가 어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누구······?”


“괘씸하군. 감히 마왕에게는 문을 열지 않다니. 쯧.”


그 뒤로는 한 여인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더니, 이어서 내 옆에 시우를 향해 말했다.


“어머. 시우야!”


나는 자바스와 시우를 문밖에 두고는 현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세차게 문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나와 마주한 사내와 여인. 나는 한껏 찡그린 눈으로 녀석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콩이는 어딨지?”


“네?”


사내로 보이는 녀석은 아마도 시우의 아비 일터. 내 물음에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모르는 소리 말아라. 네 녀석들이 키우던 강아지 말이다.”


내 물음에 시우의 어미로 보이는 자가 입을 열었다.


“그건 왜···. 그리고 누구세요? 여기 이렇게 갑자기 들어오시면······.”


“닥쳐라. 내 물음에 대답이나 하거라.”


아비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내 앞으로 마주 섰다.


“아니. 이봐요. 누구신데······.”


호기롭게 마왕을 가로막았지만, 녀석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왜냐. 이 크리우스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지. 살의가 깃든 내 눈빛은 그 누구도 견뎌내지 못했다.


“불경스러운 그 태도. 한번은 넘어가겠다. 그러니 내 물음에 대답하거라. 어딨느냐. 그 콩이라는 강아지는 말이다.”


내 말에 어미와 아비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죽었지?”


내 말에 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유나 들어보지. 왜 시리우스. 아니 시우에게 거짓말을 했느냐.”


그러자 어미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 물음에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가 너무 슬퍼할까 봐···. 그래서 예쁜 공원에서 놀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리고 이어서 옆에 아비가 말을 이어갔다.


“어쩔 수 없었어요···. 애가 너무 충격 받으면 안 될까 봐······.”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렁였다. 더 이상 녀석들의 변명을 들어 줄 필요가 없었다.


“개소리를 지껄이는군.”


곧장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시우가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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