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마왕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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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피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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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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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DUMMY

어디서도 도망친 기억은 없었다.


당연하지. 모든 힘을 움켜쥔 마왕 크리우스인데.


붉은 로브를 걸친 나는 신족에게 재앙과 같은 존재였다. 누구든 나를 마주치면, 천적을 만난 들짐승처럼 바들바들 떨었으니 말이다.


그저 어떻게 파멸시킬지, 어떤 죽음이 적에게 어울릴지 고민하던 그 마왕이었다.


그러니 명치. 그러니까 위장이 쓰렸다. 마왕에게 이런 시련이 찾아오다니······.


도망치는 방법 따위 모르기에 그저 달리고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어느 한적한 공원.


가로등 주황빛이 내 발아래를 비췄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굽혔다.


“젠장······.”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시뻘건 용암이 들끓는 아니무스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이 무더위.


두터운 겨울 코트를 걸치고, 챙이 넓은 중절모를 쓴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벗을 수 없었다.


나는 마왕이니까. 미적 감각이 스며든 위용을 스스로 저버릴 수 없었다.


그때, 눈동자에 들어온 낡은 벤치 하나.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왕에게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자 삶이었다. 이곳에는 나를 따르는 녀석들도 없었고, 무참히 살육해야 할 신족도 없었다. 그저 망망대해를 떠도는 한 마리 새처럼 외로웠다.


“휴···. 어쩌다가 이런 일이······.”


그때였다. 깊은 슬픔이 담긴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저기···. 아저씨······.”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벤치 뒤편에 목이 다 늘어난 흰색 티셔츠, 색이 바랜 파란색 반바지를 입은 어린 인간 하나가 서 있었다.


녀석의 입술과 인중에는 짓눌린 콧물이 가득했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참고로 나는 아이들을 좋아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악에 깃든 존재라서랄까.


시뻘건 핏빛으로 물든 마탑에서 아이들을 마주치면, 손수 허리를 굽혀 녀석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지.


“그래. 착하게 살면 안 된다. 언제나 지금처럼 악함을 드러내거라. 하하.”


그리 말하면 녀석들은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갑자기 찌푸리곤 했지. 보기 썩 나쁘진 않았다. 마족의 장래가 밝았다고나 할까나.


그런 의미에서 저 인간 아이.


눈동자에는 분노는커녕 패기조차 없었고 그저 슬픔만 가득했다. 그러니 마왕의 이마는 뜨거워졌다. 열 받았다는 소리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간이 찌그러졌다.


지금 내 모습.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헉헉거리며, 삐질삐질 땀을 흘리는 모습. 언제나 카리스마 넘치던 마왕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여기저기 찢기고 쓸린 상처가 가득한 패잔병 같달까.


그래. 길잃은 강아지처럼, 축 처져있는 모습은 흡사 인간 같았다. 마왕답지 않기에 찌질했다 이 소리다.


그건 용납할 수 없지.


활활 타오르는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져 타죽는다 해도.

육신이 갈기갈기 찢긴다 해도.

가슴팍에서 시뻘건 선혈이 분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해도.


이 몸은 마왕 크리우스. 언제 어디서나 가호가 중요했다.


「 쩍 - ! 쩍 - ! 쩍 - !··· 」


스스로 뺨을 내려치는 손바닥에는 자비가 없었다. 그저 지천이 쩍쩍 갈라지는 듯한 소리. 그 울림이 밤하늘 아래 울려 퍼졌다.


얼굴 전체가 쓰리고, 뜨거웠다. 거울은 없었다. 그러나 안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 이거지.


이게 마왕 크리우스의 진정한 본모습.


병신같이 우울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나는 아니무스로 돌아가야 하니까. 다시 완전무결한 마왕으로 부활해야 하니까.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쭈뼛거리며 서 있는 인간 아이를 바라봤다.


“그래. 인간의 아이여. 무슨 일이냐.”


녀석에게 질문을 던지며, 유약한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릴 일이 뭐가 있을지 되짚었다.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왜냐. 아니무스 아이들은 언제나 강인했으니까. 부모의 죽음을 목도 하면서도 눈빛은 언제나 이글거렸지. 팔다리가 잘리거나 부러져도 눈동자만 충혈될 뿐, 눈물이 흐르는 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코 묻은 입술이 무슨 말을 내뱉을지 알 수 없었다.


녀석은 내 물음에 쭈뼛거리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마왕 크리우스는 유약한 모습에 언제나 자비가 없었다.


“어허. 아이라 하더라도 사내자식이 머리를 숙이다니. 쯧. 고개를 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 모가지를 곧장······.”


“잃어버렸어요······.”


녀석은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잃어버렸다니.


하긴, 아니무스의 아이들도 뭔가 자주 잃어버렸다. 흑마력이 깃든 은반지나, 신족의 해골을 갈아 만든 각종 펜던트가 그랬지. 그러나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 다시 만들면 그만이니까.


“뭐냐. 그게. 보석이라도 잃어버렸느냐.”


“······.”


녀석은 다시 입을 닫았다. 감히 이 크리우스 마왕의 물음에 말이다. 그러니 지어지는 표정은 못마땅했다.


“어허. 감히 마왕이 묻는데 대답이 없다니, 당장 죽고 싶은 것이냐.”


“잃어버렸어요···. 보리를······”


“보리?”


내 영혼이 깃든 육체가 보리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산출해 냈다. 그것은 곡식.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가 이내 끼니를 굶었으니, 밥이라도 한 끼 사달라는 말 같았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때마침 나도 배가 고팠다.


그때였다. 다시 이마와 눈동자 사이 어딘가에서 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것은 라면.


들끓는 용암처럼 붉은 국물에 꼬불거리는 면발. 먹어보지 못했으니 맛 따위는 몰랐지만, 굵은 침방울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배고픔에 손으로 명치 부근을 매만지고 있을 때, 녀석은 훌쩍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보리요. 제가 키우는 강아지···. 잃어버렸어요······.”



.

.

.



아니무스.


그곳에서도 마왕을 따르던 생명체가 여럿 있었다. 대표적으로 피닉스. 불타는 화염을 온몸에 두른 새의 형상. 제법 비행 속도가 빨라 이동 수단으로 이용했다. 붉게 물든 하늘을 녀석과 함께 날아오르는 날이면, 끓어오르는 분노가 진정되곤 했다.


그러니 내가 가장 애지중지 아낄 수밖에.


그런 녀석을 내가 잃어버릴 일 없겠지만, 만약 신족에게 붙잡혔다? 그날로 제국 하나쯤은 처참히 박살 낼 수 있었다.


근데, 강아지라니?


그 작은 생명체 하나가 뭐가 그리 소중하다고, 저 호들갑을 떠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작 강아지를 잃어버렸다고 그 소란이냐? 쯧. 애초에 자연에서 살던 녀석들 아니냐. 이참에 보내 주거라, 알아서 잘 살겠지.”


「 띵! 」


문자가 도착하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왜냐. 녀석에게 윽박지르는 게 나쁜 일이라면, 또다시 포인트가 내려갔을 테니까.


떨리는 마음으로 곧장 검게 물든 화면을 눌렀다.


그러자.


【오늘의 임무 : 아이가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주세요!】

- 성공 시 : 500포인트 지급.

- 실패 시 : 50포인트 차감.

- 활성화된 능력 : 복종 1회

※ 자정이 지났네요! 히히. 마왕님 화이팅!


“뭐!? 500!?”


자정이 지났다고 약 올리는 녀석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무려 500포인트. 역시나 100포인트씩 쌓이는 건 아니었다. 그러면 아니무스로 돌아가기 위해 2,700년 정도는 걸리니까.


흥분됐다. 그러니 심장에 흐르는 혈류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눈에 띄는 게,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복종’


그 능력은 생명체 하나를 영원히 굴복시킬 수 있었다. 오직 마왕 크리우스의 지시에 따른다는 말.


물론, 때에 따라 계급이 낮은 신족도 굴복시킬 수 있었다.


눈썹을 꿈틀거리며 앞을 바라봤다. 그러자 울상을 짓고 있는 인간 아이가 보였다.


저런 녀석을 복종시켜봤자,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왜냐. 녀석이 잃어버렸으니까.


나는 다시 벤치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여전히 푹푹 찌는 기온에 숨이 턱턱 막혔지만, 손가락 두 마디로 미간을 긁었다.


진지하게 고민할 때, 취하는 자세랄까.


그러다가 복종시킬 만한 생명체가 있나 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중첩되어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를 제외하면, 딱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쯧. 어쩐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앙칼진 울음소리 하나가 귓가를 울렸다.


「 야옹. 」


머릿속에 입력된 단어. 그것은 고양이. 저녁에 길가를 누비는 녀석이랬나. 저녁이면 밝게 빛나는 눈과 날카롭게 솟은 귀는 제법 쓸만했다. 거기다가 기민했고 어딘가에 몸을 숨기는 능력을 뛰어났달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어벙하게 서 있는 아이의 멱살을 움켜쥐며 물었다.


“내 물음에 거짓을 고하면 곧장 죽여버리겠다. 저 고양이를 내게 데려올 수 있느냐.”


“네······?”


놀란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입술을 우물쭈물했다.


그리고 그때.


「 띵. 」


핸드폰에서 울리는 저 소리는 마왕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좋은 소식보다 언짢은 일이 많았달까.


※ 현재 포인트 : 197 / 100,000,000

- 아이를 괴롭히면 안 돼요! 그러니 1포인트 차감하겠습니다.


녀석의 멱살을 붙잡은 손을 재빨리 풀었다.


솔직히 어처구니없었다. 고작 멱살을 붙잡은 게 괴롭힌 일이라니···. 뜨거운 콧김을 내뱉으며 분을 삭였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고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선해 보이는 낱말을 조합했다.


“다시 묻지. 사실대로 말하면 목숨을 거두진 않겠다. 저 고양이를 내게 데려올 수 있느냐.”


스스로 놀라웠다. 그 마왕 크리우스가 이리 친절할 수 있다니. 역시, 무엇이든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었달까.


녀석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조금은 느슨해진 눈빛을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쯧. 원하는 답변은 아니지만, 닦달하면 또다시 포인트가 내려갈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당장 불태워 죽이고 싶지만, 적어도 거짓은 아니니 용서하마.”


그 순간.


「 스스스슥 - 」


참고로 마왕의 귀는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밝았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곧장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정체 모를 잡초가 우거진 한 구석. 짙은 어둠을 뚫고 빛을 내뿜는 눈동자가 보였다.


마왕의 뇌리를 스치는 직감.


처음 마주하는 생명체이지만, 녀석은 보통이 아닐 터. 곧장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이유는 갑작스러운 습격에 급소를 보호하기 위함이었고, 또 하나는 주술을 걸기 위해서였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걸음.


주술이 닿을 거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다섯 손가락을 앞으로 뻗고는 녀석에게 말했다.


「 내 앞을 가로막는 존재여···. 그 목숨과 의지를 마왕에게 바치거라! 」


손바닥에서 발현된 시뻘건 불빛은 곧장 녀석에게 날아갔다.


“야옹.”


그리고 들려오는 울음소리.


“그래. 이 마왕에게 그 모습을 보여라.”



.

.

.



“그리하겠습니다. 크리우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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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알바 24.09.08 18 0 12쪽
6 서른셋 24.09.07 17 0 12쪽
5 콩이 24.09.06 19 1 11쪽
» 복종 24.09.05 23 1 11쪽
3 붉은 눈 24.09.04 25 1 12쪽
2 층간소음 24.09.03 3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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