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마왕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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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피아재
작품등록일 :
2024.09.0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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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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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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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탄

DUMMY

“이 모자가 어떻다고?”


“······?”


“······!”


애석하게도 녀석들은 내 물음에 눈을 찡그리거나 고개를 갸웃거릴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손에 쥔 중절모는 빛바랜 검은색으로 챙이 넓었다. 거적때기만 즐비한 김마환의 옷장에서 찾은 보석이랄까.


물론, 기품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크리우스에겐 부족했지. 그래도 고심 끝에 고른 아이템이란 말이다. 그러니 이를 업신여기는 존재는 용서할 수 없을 터.


“자···잘 어울리세요!”


“아. 네네. 맞아요!”


그래도 녀석들은 눈치가 제법 빨랐다. 하지만, 마왕의 적안은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눈. 동시에 이런 말이 내 귓가를 울렸다.


「 저딴 모자를 누가······. 」


「 뭐래. 미친놈이······. 」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짧게 머무는 인간. 녀석들은 언제나 설익은 고기처럼 겉과 속이 달랐으니까.


그러니 들리는 말을 언제나 의심해야 할 터. 갑작스레 외로움이 느껴졌다.


“진심을 말하거라. 그렇다면 용서할 수도 있지.”


노란 머리 녀석이 손목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예?”


“솔직히 말하라고. 다 아니까.”


내 물음에 둘은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봤다. 좁은 골목에는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 적막함이 수초 간 흘렀다. 이윽고 팔뚝에 문신을 새긴 녀석이 입술에 침을 바르더니, 내 물음에 답했다.


“솔직히 좀···. 이상하긴 합니다······”


“뭐?”


“아. 아니. 솔직하게 말하라고 하시길래······.”


내 눈빛을 볼 순 없겠지만, 아마도 서글퍼 보일 게 분명했다. 손끝으로 콧날을 매만지며 녀석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뭐가 이상하다는 말이냐.”


그러자 이번에는 노란 머리 녀석이 한껏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유행에도 어울리지 않고···. 계절에도 맞지 않으니까요. 솔직히 그런 모자는 저희 할아버지도 안 씁니다······.”


“흠···. 유행이라······.”


쓴웃음이 얼굴에 번졌지만, 유행이라는 어쭙잖은 이유라면 괜찮았다. 마왕 크리우스는 언제나 선구자였으니까. 까짓거 내가 이끌면 그만이었다.


“아무튼 알겠다.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군.”


“아. 아닙니다······.”


나는 녀석들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한껏 목소리를 깔아 물었다.


“승부는 정해져 있었지만, 오랜만에 몸 좀 풀었군. 꽤 즐거웠다.”


“아···. 네······.”


“그 의미로 이름을 묻지.”


내 물음에 녀석들은 다시 어벙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김 진수입니다······.”


“박 하랑이요······.”


“그래. 이 몸께서 네 녀석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진수, 하랑. 갈 길을 가거라.”


그제야 녀석들의 얼굴에 진심이 담긴 미소가 번졌다. 그럴 만했지. 그 크리우스가 용서를 해줬으니 말이다. 아니무스에서 마주쳤다면, 둘은 이미 숯덩이로 변하고도 남았다.


둘은 고개를 꾸벅이더니 돌아섰다. 그때였다. 머리를 스치는 자바스의 충언.


「 신고라도 하는 날에는 그길로 감옥에······. 」


“잠깐!”


녀석들의 어깨가 들썩이더니 조심스레 뒤돌아섰다. 나는 녀석들을 향해 검지를 펴고는 입을 뗐다.


“봐서 알겠지만, 이 몸은 인간이 아니지. 신고하지 말아라. 그러면 이 손가락이 콧구멍을 통과해서 귓구멍으로 나올 것이다. 알겠느냐.”


“아. 네!”


“네네!”


“그래. 이상이다.”



.

.

.



※ 현재 포인트 : 1,197 / 100,000,000

- 마왕님! 미성년자를 괴롭히다니요! 나쁜 일! 하지만, 참교육하셨으니 100포인트만 차감하겠습니다!


「 빠득 - 」


어금니를 깨무는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그 소리가 귓가를 스쳐 고막에 닿았다. 이어서 안면이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한숨을 내쉬며 분을 삭였다.


이유가 뭐냐고?


각오하고 있었고 포인트가 생각보다 덜 깎였으니까. 한 300포인트 정도는 날아갈 각오로 녀석들을 처단했기에 그런대로 남는 장사라 여겼다.


대의를 위해 분노를 다스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 그것이 마왕의 본분.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골목에서 나와 편의점으로 향했다.


“오···. 크리우스 님. 무사하셨습니까?”


편의점 문은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나를 반기는 자바스.


녀석들의 기습으로 과자 봉지에 얼굴을 맞았지만, 큰 데미지는 없어 보였다.


“그래. 자바스 무사했구나. 이 몸께서 걱정이 많았다.”


“그리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충성심이 가득한 자바스는 고개를 더욱 숙였다. 마음이 흡족했다. 그러나 지난 일은 언제나 냉철하게 되짚어야 하는 법.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바스를 향해 목소리를 올렸다.


“하지만, 앞으로 내 허락 없이 나서지 말거라. 알겠느냐.”


“아. 알겠습니다.”


내 말에 녀석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더니, 흔들던 꼬리를 멈추곤 고개를 다시 숙였다. 그러다가 이내 편의점 문 쪽을 슬그머니 바라보더니, 내 앞으로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그나저나 크리우스 님. 한 가지 일이 생겼습니다.”


“일?”


“그렇습니다.”


녀석의 말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편의점 안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파란 조끼를 걸친 주인 녀석이 컵라면이 가득한 매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니? 벌써 돌아왔단 말인가?”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크리우스 님에게 맡기고 나온 것이 영 신경 쓰였나 봅니다.”

“뭐라? 이 마왕을 못 믿는다 이 말인가?”


자바스는 입을 움찔거렸지만, 사견을 아끼려는 듯 그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나저나 자리를 비우신 지 30분 가까이 되었습니다. 이유를 뭐라 하시겠습니까?”


“이유?”


“그렇습니다.”


녀석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뭐긴 뭐냐.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되지.”


“솔직히요?”


“그래.”


“편의점에서 담배를 태우다가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사려고 해, 밖으로 데려가 혼내셨다고 말입니까?”


“어. 그게 뭐 어때서.”


자바스는 손으로 목덜미를 긁더니, 꼬리를 살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다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담배를 태운 건 이야기하지 마시고 뒷이야기만 하시지요. 그리고 담배 냄새를 묻는다면, 녀석들이 태웠다고 하시지요. 어떻습니까?”


녀석이 끼워서 맞춘 대답은 그런대로 훌륭했다. 그러나 심히 마음에 들진 않았다. 문제에 직면하지 않고 도망치란 말이었으니까.


“닥쳐라 자바스. 감히 내게 도망치라는 것이냐. 솔직하게 말하겠다.”


녀석은 말을 이어가려고 입을 뻐끔거렸지만, 이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녀석을 뒤로했다. 그리고 투명한 문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어? 아니. 이렇게 오래 편의점을 비우면 어떡해요?”


주인 녀석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나는 어깨까지 온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그 물음에 답했다.


“일이 좀 있었습니다. 성인에 이르지 않은 녀석들이 담배를 사려했지요. 그러나 제 눈을 속일 순 없었고, 밖으로 데려가 지도를 좀 했습니다.”


편의점 주인은 눈을 찡그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 담배 냄새는? 애들이 피운 거예요?”


자바스의 충언처럼, 점주 녀석은 내게 담배 냄새의 원인을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 몸은 마왕 크리우스.


하찮은 변명이나 거짓은 언제나 용서치 않았다. 나는 여유롭게 팔짱을 끼워 넣고 녀석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요. 내게 폈습니다.”


“······예?”


점주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그러나 마왕은 그 이름에 어울리도록 당황하지 않았다.


“실수입니다. 이곳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그러니 넘어가시죠.”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피식거리며 말했다.


“참나. 젊은 친구가 진짜 당차고 솔직하네. 그래요. 외국에서 살다 왔다니 뭐. 허허. 다음부터 절대 그러면 안 돼요?”


“그래. 약속은 지키겠소. 마왕 아니. 이 김마환은 한 입으로 두말은 안 하니까.”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어서 편의점에 다시 온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좀 걱정되더라고···. 그래서 와봤는데 자리에 없어서 깜짝 놀랐지. 어디 나갈 때는 문 잠그고 나가고,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바로 전화해요. 알았죠?”


편의점 점주.


녀석은 지금까지 인간들과 달리 상냥하고 사려 깊었다. 그러나 이 마왕에게는 불필요한 근심이랄까. 나는 녀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전화할 일 따위 없도록 할 테니까.”



.

.

.



점주 녀석이 투명한 유리문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멀찍이 보이는 나무에 몸을 숨긴 자바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녀석은 쏜살같이 뛰어왔다.


“크리우스 님. 별일 없으셨습니까?”


“별일? 이 마왕에게 말이냐? 허허.”


녀석에게 꽤 한참을 마왕의 임기응변을 설파했다. 그러자 녀석은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경청하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자바스. 무례하구나. 내겐 당연한 일이지.”


내 말에 녀석은 다시 꼬리를 살랑거리며 고개를 두어 번 숙였다. 녀석이 보이는 충성심에 마음이 흡족했다.


“그리고 자바스. 앞으로 편의점 안쪽으로 들어와 있거라.”


“아. 제가요?”


“그래. 제아무리 마왕이라 하더라도 네 도움이 필요하다.”



.

.

.



그런 의미에서 자바스는 편의점 계산대 아래 있었다. 다행히 짐 몇개를 정리하자 그 작은 몸 하나를 숨길 공간이 만들어졌다.


“어떠냐.”


“조금 좁긴 합니다만, 제게 딱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이군.”


녀석을 발아래에 둔 채, 핸드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했다. 그러자 마왕에게 어울리지 않을 작은 한숨이 편의점 안에 채워졌다.


“크리우스 님. 무슨 염려라도······?”


녀석의 물음에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었다. 그리고 입술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포인트가 잘 오르지 않는군. 힘들게 올리면 깎이니 말이다.”


자바스도 지그시 눈을 감으며 내 고뇌에 함께했다. 그러다가 이내 앞발로 타일 바닥을 내리치며 말했다.


“아! 크리우스 님. 평소에도 선행을 많이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평소?”


“그렇습니다. 문자로 알려지는 임무 말고도, 넓은 아량으로 착한 일을 많이 하시는 겁니다.”


녀석의 말에 손가락 끄트머리로 콧날을 긁었다.


“어떻게?”


“그야. 여기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선행을 베푸시는 거지요.”


「 띠리링 - 」


편의점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자바스가 급히 몸을 숨겼다. 갑작스러운 인간의 방문. 그러나 이 몸은 당황하지 않았다.


“어서 오시지요.”


생각해 보건대, 이 몸께서 인간들에게 이리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선행일 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포인트는 그대로였다.


“쯧.”



편의점 안으로 들어온 인간 하나.


녀석은 바가지 머리에 하얀 셔츠 그리고 회색빛 바지를 입은 남학생이었다. 소년은 얼굴에 걸친 안경을 고쳐 쓰더니, 쭈뼛거리며 계산대로 다가왔다.


그리고 핏기 없는 메마른 입술을 깨물다가 말했다.



.

.

.




“혹시···. 번개탄 있나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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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결투 NEW 22시간 전 5 0 11쪽
14 선행 24.09.17 7 0 12쪽
13 소년 24.09.16 10 0 12쪽
» 번개탄 24.09.16 13 0 11쪽
11 전투 24.09.13 16 2 11쪽
10 담배 24.09.12 14 1 11쪽
9 취업 24.09.11 16 1 11쪽
8 면접 24.09.10 19 1 12쪽
7 알바 24.09.08 19 0 12쪽
6 서른셋 24.09.07 18 0 12쪽
5 콩이 24.09.06 2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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