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마왕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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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피아재
작품등록일 :
2024.09.0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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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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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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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DUMMY

「 찰칵 – 찰칵 – 찰칵······. 」


번쩍이는 빛은 안광으로 쏟아졌다. 그러니 오히려 시야는 어두울 수밖에.


거대한 테이블 위에 놓인 수십의 마이크는 오로지 내 입술에 집중하고 있었달까. 이윽고 한 인간이 내게 물었다.


“김마환 님! 인류의 대표로 선출되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류의 대표?

선출?

소감?


들리는 낱말은 마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뱉어지는 말은 날카로울 수밖에.


“그런 거 없다. 이 새끼들아.”


나는 돌아가야 했다.


아니무스로.


자비를 모른 채 살아가는 그 불멸의 마왕으로.



.

.

.



마왕의 심장은 밤낮없이 분노가 일렁였고 시뻘건 선혈만이 이를 진정시켰다.


때문에, 시선은 언제나 위를 향했다.


왜냐.


지평선에 맞닿은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내 영혼이 머무는 유약하고 볼품없는 김마환. 녀석이 사는 지구라는 조잡한 행성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성난 가슴을 진정시키기 힘들었을 터.


그래도 마왕의 혼은 영민했다. 이내 맥박이 느슨해지는 방법을 찾았달까.


“스읍···. 하······.”


옅은 회색으로 몽글거리는 이 기체.


담배 연기가 폐부에 스며들면 두근거리던 가슴이 진정됐다.


“좋군······.”


손바닥을 위로 보이며 양팔을 벌렸다.


아. 미간을 살며시 찌푸린 이유는 별것 아니다. 그저 그 탄내를 더욱 음미하고 싶달까.


“뭐야. 누구신데요?”


귓가에 울린 녀석의 목소리는 앳된 젖비린내가 가득했다.


저런 불경스러운 태도는 견디기 힘들다. 그러니 심장 혈류가 역류하는 걸 느낄 수 밖에. 그래도 견뎠다. 내겐 목적이 있으니까.


분노가 출렁거리는 마음을 붙잡고자,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 거 없다.”


미개한 인간들과의 눈맞춤은 언제나 언짢았지만,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오는 두 녀석. 얼굴을 포함한 생김새는 달랐지만, 옷차림은 같았다.


잿빛 교복.


하나는 재킷을 벗어 어깨에 걸쳤고, 또 하나는 단추를 풀어 헤쳤다. 머리가 지끈거린 이유는 타이 색 때문이었다. 토악질 나는 초록색이라니······.


솔직히 버릇없는 태도야 봐줄 수도 있었지만, 저런 미개한 패션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거슬리군. 앞으로 타이는 붉은색으로 메어라.”


“뭐···. 예?”


녀석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벙한 표정.


당장이라도 목에 걸린 거적때기를 갈기갈기 찢고 싶었지만, 아랫입술을 깨물며 참아냈다.


왜냐.


아니무스로 돌아가야 하니까.


영광스럽고 찬란한 마왕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니까.


늘 그랬듯,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띠었다.


“뭐야. 아저씨 뭔데요. 술 먹었어요?”


“야···. 이 아저씨 눈빛이 맛이 갔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 암흑이 깃든 내 눈동자에는 언제나 자비는 없으니까.


“정답이다. 어리석은 녀석들아. 살의가 가득 찬 내 눈은 언제나 정상이 아니지.”


내 악랄한 영혼을 담아낸 하찮은 육식이 지내는 집 앞 골목.


짙은 어둠을 드리우는 가로등 아래. 교복을 입은 세 명의 인간은 내 평온한 안식을 방해했다.


그리고 녀석들은 더러운 침을 바닥에 뱉어댔다.


“역시, 미개하고 더럽군···. 그 아니꼬운 표정도 마음에 안들어.”


순간, 상해버린 기분에 한껏 벌리던 양팔을 떨어뜨렸다. 그러니 견딜 수 없는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니 누군가 이를 받아줘야지. 천천히 눈동자를 좌우로 굴려, 표적을 골랐다. 그러자 유난히 시건방진 표정으로 입술을 씰룩거리는 한 녀석이 보였다.


아까부터 내지르는 말이며 표정까지. 단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터벅터벅 녀석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검지와 중지에 끼워진 담배를 낚아챘다.


“뭐. 뭐야?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야야. 하지 마. 하지 마. 찍고 있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책가방을 메고 있는 한 녀석이 나를 향해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다시 녀석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뭐요. 왜? 뭐. 때릴 거야? 해봐. 미성년자 때렸다고 신고하게.”


녀석은 당찼지만,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그래. 어떤 하찮은 존재라도 믿는 구석이 있으면, 대담해지는 법이지.”


아이들의 안광에는 대담한 광기가 사려있었다. 그러나 마왕의 눈은 늘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는 법.


가느다랗게 뜬 내 검붉은 눈동자에는 보였다.


용기가 아닌 객기. 미세하게 떨리는 눈빛에 사려있는 두려움.


그리고 녀석들의 마음이.


『뭐야. 진짜 눈빛이 맛 갔는데. 미친놈인가? 칼 같은 건 없겠지? 잠깐. 덩치는 왜 저래. 운동했나? 둘이 덤비면 어떻게 될 거 같은데······.』


“아···. 들리는군. 하찮고 나약한 네 녀석의 마음이.”


“뭐래. 미친놈인가 진짜.”

『뭐야. 진짜 또라이네. 저 새끼 버리고 그냥 도망가야겠다.』


옅은 미소를 녀석에게 보였다. 그리고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녀석을 가리켰다.


“칼 같은 건 없다. 내게 그런 조잡한 무기는 필요치 않지. 그리고 둘이 싸울 일도 없다. 네 옆에 녀석은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거든.”


“뭐···?”


“참고로 운동도 하지. 3대 500이다. 그것도 이 버러지 같은 육신으로 단 3개월 만에.”


말이 끝나자마자, 한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러나 한 녀석은 그렇지 못했다.


꿈틀거리며 주저하는 녀석의 뒷덜미를 한 손으로 잡아채 들어 올렸다.


“자. 잘못···했어···요······.”


아무튼, 인간은 재밌는 종족이었다. 언제나 잘못을 반복하고 용서를 구하니 말이다.


“그래. 읊어봐라. 무엇을 잘못했는지.”


나는 녀석에게 물으며 손아귀를 더욱 움켜쥐었다. 그대로 목뼈라도 꺾어버리면, 오늘 밤에는 불면에 시달리지 않을 터.


그러나 참아야 한다. 아니무스로 돌아가기 위해.


“다···담배···를 피우고···. 어른에게···. 버릇 없······.”


“훗.”


녀석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그저 멱살을 쥔 손을 풀어버리자, 녀석은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곧장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압수다. 가진 담배를 모두 내놓아라.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혼비백산하던 녀석은 이내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담뱃갑을 그에게 내밀었다.


“죄···죄송······.”


“그래. 용건은 끝났으니 꺼져라. 네 녀석이 떨어뜨린 더러운 꽁초는 주워가고.”


「 띵. 」


듣기 기괴한 문자 알림이 짙은 어둠 속을 퍼져나갔다.


※ 포인트가 23 올랐습니다. 1,322 / 100,000,000


“쳇. 겨우 23이라니. 이래서야 원···. 쯧.”


녀석을 뒤로한 채,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어둠에서 발광하는 달을 바라봤다.


“오늘은 만개했군. 저걸 보름달이라 했던가······.”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뺏어 태우는 담배 향은 언제나 맛이 깊었으니까.



.

.

.



아니무스 행성은 언제나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생각만으로 구역질 나는 신족.


그리고 마족.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도륙했다. 그것도 만년씩이나. 그러니 온전한 땅은 존재하지 않았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피가 흥건했다. 그러니 기쁨이 충만할 수밖에.


아작스 크리우스.


그곳에서 불리던 내 이름.


그 존재는 아니무스의 24대 마왕으로 발아래 수만의 마족을 두었다.


눈빛 하나로 모든 이가 고개를 조아렸고.


손짓 하나면 수많은 신족의 목을 썰어냈다.


한마디 말이면 어디든 불태울 수 있었지.


그 불멸의 육신이 기거하던 거대하고 높은 탑. 소문을 듣자하니, 아마 대륙의 끄트머리에서도 그 위용이 보였다지.


그러니 마왕에게 부족하다는 상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달까. 아. 그렇지도 않았다. 시뻘건 피는 언제나 부족했으니까.


언제나 붉게 타오르던 내 분노와 광기.


마관 데모스는 내 오른팔이지만, 언제나 콧대가 높았다.


그러나 끝에 앉은 녀석이 점으로나마 보이던 거대한 테이블. 그는 고량진미가 가득한 음식을 모두 비워낼 즈음 한껏 느슨해진 마음으로 내게 말했다.


‘단언컨대, 당신은 역대 최정상의 마왕이다. 아니무스 온 땅을 붉은 피로 물들게 해달라.’


맞아.


당연했다.


천지를 산산조각 낼 힘을 손에 쥔 채, 짙은 검붉은 눈동자는 그 무엇이든 꿰뚫었다. 예컨대 마음 깊숙한 곳에 감춰진 욕망 같은 거랄까.


그러면서도 마음은 분노에 잡아 먹히지 않으니, 행동은 차갑고 냉정했다.


그것이 바로 마왕 크리우스.


하지만, 그 불멸의 존재가 죽음에 닿는 장면은 기괴했다.


“크흡.”


나는 과즙이 풍부한 붉은 사과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저 일탈.


조금 특별하게 먹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공중으로 던져 입으로 넣었는데, 그게 기도로 들어갈 줄이야······.


살려달라고 외치면 목숨은 건졌겠으나, 그러면 체면이 말이 아니지.


어떻게든 혼자 해결한다는 게 그만. 쯧.


육신이 멸망으로 닿아가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어서 모든 감각이 둔해졌달까.


일말의 생명력이 꺼져가던 그 순간에도 유일하게 청각은 남아 있었다.


누구는 악을 내질렀고 또 어떤 이는 울부짖었지.


아.


똑똑히 기억한다.


한 녀석의 앙다문 입술을 뚫고 나온 그 소리는 비웃음.


언젠간 반드시 찢어 죽일 터.


눈꺼풀이 올라간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마왕이 목숨을 잃으면, 짙은 어둠을 영원히 계류한다고 생각했다.


평온했다. 그러나 오래가진 않았지.


“안녕하세요! 아작스 크리우스님.”


그 어둠은 깊은 심연이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저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지?”


“천상계에 존재하는 페어리라고 합니다! 공허의 존재가 당신을 만나게 해주셨죠.”


신과 마를 빚어낸 자. 그것이 공허의 존재. 우리에게 어머니와 같은 그 존재의 사자. 그것이 페어리라 불렸다.


“그래. 불멸에도 끝이 있었군···.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젠장. 평소대로 한 조각 베어 물어 그 달고 시큼한 맛이나, 음미할걸. 밀려오는 후회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음. 그게요. 이해하실지 모르겠는데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으니, 녀석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염려스러운 말과 다르게 페어리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그러니 사뭇 심기가 불편할 터.


“뭐지?”


“마왕님은 신족에게 멸망한 벌로 다른 세계에서 착한 일을 많이 하셔야 합니다!”


두 귀를 의심했다.


감히 마왕에게 벌이라니?


아니.


백만 번 양보해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착한 일이라니? 그것도 마족을 섬기는 우두머리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네 녀석. 농담이 지나치군. 감히 누구에게···. 당장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농담도 장난도 아닙니다! 그간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셨으니, 선한 일로 정화하셔야죠. 그게 우주의 섭리입니다!”


“뭐라······?”


“히히. 다시 마왕으로 부활하고 싶지 않으세요? 그러니 제 말 들으세요!”



.

.

.



감각은 허공을 떠도는 기체 같았다.


그러나 곧, 손가락과 발가락 끄트머리부터 선명한 감각이 느껴졌다.


“흡.”


여전히 눈앞은 어두웠다.


그리고 마왕에게 어울리지 않을 딱딱한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놀란 마음에 곧장 상체를 일으켰다.


“헉···. 헉···. 이 무슨······.”


「 아. 참고로 일상생활은 가능하셔야 하니깐요. 당신의 영혼을 담은 존재. 그의 일부 기억은 보존시켰으니 참고하세요. 마왕님 안녕! 」


녀석의 내게 건넨 마지막 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순간, 머리에서 수많은 사진과 영상 그리고 정체 모를 냄새와 소리까지. 그 모든 게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그리고 잠시 후.


불멸의 존재로서 아니무스를 살육하던 마왕의 기억.


그리고 미개한 존재의 보잘것없는 기억.


두 개의 기억은 중첩되더니, 마음과 머리를 잠식했다.


곧장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불을 켰다. 그러자 새하얀 타일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내 민낯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게. 무···무슨······?”


새하얗고 갸름한 얼굴에 바가지머리. 생기 없는 퍼런 입술에 말똥한 눈. 코는 오뚝했다. 그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존재.


그렇다 마왕은 지구라는 행성.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

.

.



착한 일을 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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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결투 NEW 3시간 전 4 0 11쪽
14 선행 24.09.17 6 0 12쪽
13 소년 24.09.16 9 0 12쪽
12 번개탄 24.09.16 12 0 11쪽
11 전투 24.09.13 16 2 11쪽
10 담배 24.09.12 14 1 11쪽
9 취업 24.09.11 15 1 11쪽
8 면접 24.09.10 18 1 12쪽
7 알바 24.09.08 18 0 12쪽
6 서른셋 24.09.07 17 0 12쪽
5 콩이 24.09.06 19 1 11쪽
4 복종 24.09.05 23 1 11쪽
3 붉은 눈 24.09.04 26 1 12쪽
2 층간소음 24.09.03 35 1 11쪽
» 부활 24.09.03 4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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