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마왕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인프피아재
작품등록일 :
2024.09.03 23:54
최근연재일 :
2024.09.18 23:56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275
추천수 :
11
글자수 :
77,888

작성
24.09.04 11:23
조회
25
추천
1
글자
12쪽

붉은 눈

DUMMY

내 눈동자는 적안이라 불렸다.


동공은 한 송이 장미처럼 붉었으며, 홍채는 값비싼 포도주의 보랏빛 같달까.


공전을 일만 번이나 반복한 행성 아니무스. 지금껏 이 눈동자를 지닌 인물은 초대 마왕과 내가 유일했다.


마음과 정신을 꿰뚫는 안광은 말 그대로 완전무결. 그렇다. 이 몸 크리우스는 초월적인 힘을 움켜쥐고 태어났다.


생명체에 깃든 심장을 단숨에 흑염으로 불태우거나, 대지를 갈라버려 솟구치는 용암으로 존재를 소거하는 주술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 붉은 눈에는 비빌 순 없었다.


「 띵 - 」


인위적이지만, 청량한 울림이 어두운 방 안에서 퍼져나갔다.


※ 임무 달성 완료! 100 포인트 지급합니다.

- 현재 포인트 : 200 / 100,000,000


“예스.”


나도 모르게 한 손을 움켜쥐고는 머리 위로 올렸다. 젠장. 그 불멸의 마왕이 고작 이런 일로 기뻐하다니. 쯧.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이 경박스러운 말과 행동. 거기에는 마왕 크리우스의 의지가 조금도 섞임 없었다.


이처럼, 이 조잡한 몸뚱어리는 가끔 날 당혹스럽게 했다. 혹여나

거룩한 내 영혼이 더렵혀질까 싶었달까.


아무튼, 아랫집에 살던 그 미개한 녀석.


적안으로 꿰뚫은 녀석의 기억. 그곳에는 딸자식 죽음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 흠···. 미개하더라도 자기 새끼는 끔찍이 아끼는군. 」


그래서 건넨 말이 꽤 감격스러웠는지, 하늘색 팬티를 입은 대머리 녀석은 털썩 주저앉아 흐느꼈다.


참고로 나 크리우스는 나약함에서 우러난 눈물을 혐오했다.


언제나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법.


미간을 찌푸리며 문손잡이를 움켜쥐자, 녀석이 눈물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젊은 양반. 미안하네······.”


“됐다. 돌아가거라.”


입에서 풍기는 입내에 구역질이 났지만, 눈을 질끈 감으며 견뎌냈다.


마왕은 언제나 인내심이 강했으니까.


“훗. 어쨌든 성공이군. 마왕 크리우스가 실패할 리가 없지. 어. 잠깐······.”


말했지만, 나는 숫자에 능통하며 영리했다.


그러니 핸드폰에 비추는 숫자가 알아서 나뉘었다.


“일억에 이백이니까···. 하루로 환산하면······.”


마왕의 심장은 언제나 분노가 들끓었지만, 어쩐 일인지 맥은 느슨했지.


그러나 갑자기 솟구치는 마그마처럼 심장이 요동쳤다.


“하루에 100포인트씩···. 2,700년······?”


페어리 새끼한테 곧장 전화했다. 그러나 녀석은 지금은 잘 시간이니 내일 통화하자며, 감히 마왕의 전화를 끊어냈다.


“뭐. 아니겠지······.”


미개한 녀석들의 말을 빌려 쿨하게 넘겼지만, 맥박은 여전히 두근거렸다. 쯧.



.

.

.



타오르는 갈증을 해결하기에는 신족의 피가 섞인 최고급 와인이 제격이었지.


기대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값싼 저급 와인 정도는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실망했다.


‘콜라’라 불리는 음료는 색은 매혹적이었지만, 맛은 구정물이나 다름없었다.


“크흡···. 뭐지···. 이 따가움은······.”


막연히 인간들은 보잘것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런 독약을 즐기다니···. 고작 한 모금이었지만, 그 강렬한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의외로 강인한 녀석들일지도···. 조심해야겠군.”


그 완전무결한 마왕이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

.

.



“아. 정말 토악질 나네. 이거 미친놈 아니야?”


웬만한 건, 너그럽게 용서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나는 꽤 자비롭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용납할 수 없는 것도 있는 법.


“도대체···. 무슨 이런 저질스러운······.”


아니무스에서 내 옷장은 그 넓이가 50미터쯤 됐으려나.


선대 마왕들보다 꽤 소박한 편이었지만, 옷에 있어서 만큼은 언제나 완연했다. 그것에는 양보도 타협도 없었달까.


내가 가장 아끼는 붉은 로브.


한번은 제대로 세탁되지 않아, 그대로 담당자 목덜미를 베어버렸다.


그만큼 패션이 중요한 마왕 크리우스였다.


그러나 이 미개한 녀석의 옷장. 거기에는 목이 축 늘어난 티셔츠부터, 소매가 닳고 닳은 후드티, 보풀이 잔뜩 일어난 니트까지···. 정말 최악이었다.


“이거 미친놈이네···. 도대체 밖에는 어떻게 돌아다닌 거지?”


솔직히 저딴 걸 몸에 걸칠 바에는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감옥보다 못한 원룸에 처박혀 있을 순 없었다.


“쯧.”


그나마 자색 빛이 도는 티셔츠가 눈에 띄었다. 정체 모를 퀴퀴한 냄새에 손으로 코를 막으며 그 옷을 집었다.


“흠···. 이걸로는 부족해.”


조금 더 눈동자를 바삐 움직였다. 그리고 가장 왼편 구석에 투명한 비닐에 쌓인 검은색 코트가 보였다.


디자인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러나 색감은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그러나 마왕 크리우스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음?”


심란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올리자, 옷장 윗부분에 칸막이가 하나 더 있었다. 발뒤꿈치를 올려 손을 더듬었다.


그러자 잡히는 물건 하나.


어딘지 모르게 감이 좋았다. 그냥 그런 순간이 있었지.


그것을 잽싸게 손에 쥐었다.


“흠···. 괜찮군.”



.

.

.



마왕은 언제나 그랬다.


일렁이는 분노에도 결국에는 정답을 찾아내는 존재.


그런 의미에서 머리에 걸친 중절모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현관문을 나서자, 정면으로 보이는 엘리베이터. 마왕은 그것을 마주한 적 없지만, 그 이름이나 기능은 알고 있었다.


“괴상한 물체로군······.”


나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지만, 구태여 그걸 타지 않았다. 참고로 두려운 게 아니었다. 신중했달까.


그 옆으로 눈에 익숙한 계단이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 뚜벅 – 뚜벅 – 뚜벅 - 」


언제나 어둠이 편하고 익숙했다. 그러나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머리 위에서 번쩍 켜지는 조명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쯧. 쓸데없이 말이야.”



.

.

.



골목에는 바람 한 점 없었다. 밤하늘은 어두웠고 한편에는 달이라 불리는 작은 점 하나가 노랗게 발광했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그 음률에 지그시 눈을 감아봤다. 계속 벌컥 이던 맥이 조금은 진정됐다. 그럴만했다. 이곳에서 마주한 첫 자연스러움이니까.


“스읍. 크억······.”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들숨에 담긴 옷 갓 지린내에 마음이 어질러졌다. 목구멍으로 토사물이 역류하는 느낌에 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마왕은 그 역한 냄새에 원인을 찾고 싶었다.


잔뜩 찡그린 눈으로 길바닥을 살폈다. 그러자 바닥 곳곳에는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었고, 한쪽 구석에서는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흘러나온 자줏빛 국물이 바닥에 흥건했다.


“···정말이지 희망하나 없는 행성이군.”


마왕의 입에서 희망이란 낱말이 나오다니···. 어처구니없었지만, 그만큼 이 행성은 미개했다.


참고로 나는 침실이나 집무실에 작은 먼지 한 톨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손에는 언제나 먼지를 털어낼 수 있는 작은 솔이 들려 있었다.


부하 녀석들은 언제나 벌벌 떨었다. 제발 자기들을 시켜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마왕 크리우스는 덕이 있었다. 그때마다 옅은 미소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청소는 내 일이다. 마음 쓰지 말고 네 녀석들 할 일이나 잘해라.”


그때마다 들려오는 녀석들의 속마음.


「 역시. 우리 마왕님은 대단하셔······. 」


「 크···. 저러니 우리 같은 아랫것들이 이리 따르지. 」


뭐, 사실 내 물건에 누군가의 손길이 닿는 것을 혐오하기도 했다.


어쨌든, 내 행동반경 안에 있는 쓰레기. 그것들을 당장 치우고 싶었다. 그러나 더러운 타액이 묻은 담배꽁초이며, 마치 독극물 같은 음식물 구정물을 만질 수 없었다.


그때였다. 웬 흰머리가 가득한 노인 하나가 골목 어귀를 걸어갔다. 그리고 녀석을 불러세웠다.


“어이.”


내 부름에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주변을 살폈다. 녀석의 얼빠진 표정에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뭐지? 네 녀석을 부르는 게 맞다.”


그는 손에 우산을 쥐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나를 가리키며 뛰어오듯 다가왔다.


“이. 이놈이! 어딜 버르장머리 없이!”


“아?”


감히 마왕에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러나 녀석의 반응이 곧 이해됐다.


“음···. 그래. 녀석들은 내 존재를 모르지. 쯧.”


“뭐라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딱히 간지러운 것은 아니었고, 생각하기 위함이었다.


이어서 녀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어디서 어른한테! 」


황급히 손으로 정수리를 만지고는 손바닥을 펴봤다. 그러나 붉은 선혈 따위 없었다.


“뭐지? 피 같은 건 없는······.”


노인은 내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내 손에 움켜쥔 우산을 나를 향해 들며, 으름장을 놓았다.


“또! 또! 어디서 배워먹은 거야? 어?”


「 띵. 」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 알람 소리. 나는 황급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현재 포인트 : 199 / 100,000,000

- 웃어른에게는 존댓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니 1포인트 차감하겠습니다.


“이런 미친!”


어떻게 올린 포인트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깎이다니, 가슴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손마디가 부들거렸고, 굶주린 산짐승처럼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러나 나는 영민한 마왕.


이내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언제나 고통스러운 법. 이런 하찮은 일에 얽매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래도 존댓말이라니······.


완전무결한 마왕은 그런 하찮은 말을 해본 적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아니무스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래. 미안합니다.”


이게 맞는 건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동시에 노인도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서 들려오는 그의 마음.


「 뭐야. 말투가 왜 이래? 어디 외국에서 왔나? 우리나라 사람 같은데? 」


그의 말에는 이 난잡한 상황을 타개할 힌트가 숨어 있었다. 그리고 영리한 마왕은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나는 어깨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털어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외국에서 왔습니다. 한국말이 서투니 이해합시다.”


내 흑마력에 천만분의 일 정도면, 앞에 녀석을 세상에서 소거시킬 수 있었다. 그만큼 유약하고 하찮은 존재에게 경어를 써야 한다니···. 마왕으로 부활하기 전에 화병으로 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목적이 있으니 이런 치욕도 견뎌야 했다.


어쨌든 내 경어에 그의 마음이 흔들렸는지, 한껏 분노가 실린 눈빛이 조금을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위로 든 우산을 천천히 내렸는데, 여전히 탐탁지 않은 말투였다.


“하여간 외국 놈들은···. 쯧. 그래. 왜 불렀어?”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여기 담배꽁초랑 저 더러운 국물 좀 치워주시지요.”


“뭐?”


“냄새가 역하잖아. 치워요.”



.

.

.



아주 어린 시절, 전장에서 신족에게 쫓겨 뛰어본 경험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마왕.


그 뒤로는 어떤 위기에서도 발걸음을 초조하게 옮기는 법이 없었다.


“헉···. 헉······.”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온 갓 자존심을 버리며 인간에게 경어까지 썼는데, 녀석은 미쳐서 날뛰었고, 계수도 1포인트 더 내려갔다.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이 몸 크리우스가 도망쳤다. 그리고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어딘지 모를 곳에 도착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부활한 마왕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결투 NEW 3시간 전 4 0 11쪽
14 선행 24.09.17 6 0 12쪽
13 소년 24.09.16 9 0 12쪽
12 번개탄 24.09.16 12 0 11쪽
11 전투 24.09.13 16 2 11쪽
10 담배 24.09.12 14 1 11쪽
9 취업 24.09.11 15 1 11쪽
8 면접 24.09.10 18 1 12쪽
7 알바 24.09.08 18 0 12쪽
6 서른셋 24.09.07 17 0 12쪽
5 콩이 24.09.06 19 1 11쪽
4 복종 24.09.05 23 1 11쪽
» 붉은 눈 24.09.04 26 1 12쪽
2 층간소음 24.09.03 35 1 11쪽
1 부활 24.09.03 44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