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마왕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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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피아재
작품등록일 :
2024.09.03 23:54
최근연재일 :
2024.09.1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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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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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

DUMMY

수많은 악이 마음에 덧칠해진 마왕. 그러니 한참을 앉아 고뇌해도 선행이란 의미는 모를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깰 수 없는 신념이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


약함은 죄.


그러니 완전무결한 이 마왕께서 녀석을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더라도, 소년은 여전히 무기력하고 나약할 터.


그것은 선행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호한 악행이랄까.


그래. 착한 일. 착한 일을 해야 했다.

그래야 다시 아니무스로 돌아가니까.

그래야 다시 마왕으로 부활하니까.


그런 의미로.


머릿속에서 정리되어 입술로 산출된 단어의 조합은 선행을 위함이었다.


“그래. 저 소년과 승부다. 사내답게 일대일로 붙거라.”


나를 마주하고 서 있던 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럴 수밖에 없지. 마왕의 고뇌와 결정은 언제나 차원이 달랐으니까.


진수는 손으로 귀밑을 긁었다. 그러다가 이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내게 물었다.


“제가요? 쟤랑요?”


“그래. 물음은 거기까지 하거라. 왜? 두려운 것이냐?”


내 말에 진수는 헛웃음을 짓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어서 고개를 양쪽으로 두어 번 꺾으며 말을 이어갔다.


“참나. 제가요? 저는 상관없어요.”


의지가 잔뜩 실린 눈빛을 보자니, 구태여 마음을 읽을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진심이었으니까.


고개만 돌리기는 모자랐다. 그러니 몸을 돌려 자바스와 나란히 서 있는 소년을 바라봤다.


녀석은 얼굴에 쓴 안경을 손으로 매만지더니 눈을 끔뻑였다. 전개되는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어벙한 표정이었다.


한쪽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왜냐. 저 꺼벙한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이내 소년에게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묻지 않았군. 소년이여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아···. 김 유혁이요······.”


“유혁? 그렇군.”


나는 자연스레 녀석의 어깨에 한쪽 손을 올렸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들어서 알겠지만, 지금부터 승부다.”


“네······?”


녀석의 미세한 떨림이 어깨에서 느껴졌다. 그것은 분노나 흥분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유약한 두려움에 발현된 현상이랄까. 녀석의 나약한 모습에 스멀스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아랫입술을 한번 꽉 깨물며 사시나무처럼 떠는 녀석에게 말을 이어갔다.


“오해 말아라. 네 녀석에게 쌓인 분노를 보여주란 의미지, 이기라는 말이 아니다.”


녀석은 고개를 슬쩍 숙이더니 여전히 떨고 있었다. 마왕의 이야기가 귓가를 스쳤겠으나, 마음에는 닿지 않는 상황. 인간의 말을 빌리면 말 그대로 공황 상태랄까.


그러니 애정이 담긴 처치가 필요할 수밖에.


특별히 검지가 아닌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소년의 명치를 향해 날렸다.


「 퍽. 」


둔탁한 소리가 좁은 골목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들려오는 녀석의 신음.


“악······!”


유약한 녀석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손으로 배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꿀렁거렸다.


나는 다시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리고 녀석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몸이 고통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나는 오늘 여기에서 네 녀석의 유약한 마음을 고쳐주고 싶을 뿐이다.”


녀석이 요동치는 덕분에 얼굴에 쓴 안경이 바닥으로 떨궈졌다. 이어서 고개를 들자,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촉촉한 눈빛은 아직도 볼품없이 가냘팠다.


그러니 애정을 담은 손길이 이어질 수밖에.


「 쩍 ! 」


내 손바닥은 그대로 유혁의 뺨을 타격했다. 그러자 습한 공기가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이리저리 휘날렸다.


그전까지 가까스로 냉정함을 되새기던 자바스. 녀석이 긴 꼬리를 번쩍 세우며, 급히 내게로 다가왔다.


“크리우스 님······!”


그런 자바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라는 의미였달까.


이내 뺨을 부여잡은 소년을 바라봤다. 그러자 쇠약한 눈빛은 어느새 사라지더니, 눈동자가 또렷했다.


“그래. 좋은 기백이다. 유혁. 자리에서 일어나거라.”


뭐에 홀린 듯 유혁은 더러운 바닥을 손으로 짚고 일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왕은 흡족했다. 그러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이내 좁은 골목 가운데로 둘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정해둔 규칙을 녀석들에게 말했다.


“1분씩 2라운드. 급소는 가격하지 않는다. 이를 어기면 그대로 패배. 알겠느냐?”


내 말에 진수는 앞니를 훤히 드러내며 웃으며 답했다.


“하. 네. 알겠어요.”


그리고 유혁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오른손을 머리 높이 들었다. 그리고 아래로 꽂아 내리며 외쳤다.


“시작!”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수의 오른손이 유혁의 뺨으로 향했다.


그러자 쩍 하는 소리와 동시에 유혁이 상체를 굽혔다.


“악.”


그리고 이어지는 외마디 비명.


다시금 진수는 왼발로 유혁의 옆구리 부근을 차버렸다. 그러자 유혁은 길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아. 씨. 시켜서 하긴 하는데, 뭔 이런 같잖은 새끼랑. 하.”


진수의 폭력에는 자비가 없었다. 그대로 바닥에 엎드린 유혁에게 올라타더니 양 주먹을 녀석의 머리로 날려댔다.


「 퍽. 퍽. 퍽. 퍽. 퍽 」


“악. 악. 악. 악. 악.”


때리는 횟수대로 유혁의 입에서는 맥없는 신음이 이어졌다. 그 모습은 흡사 맹수가 먹이를 사냥하는 장면 같달까.


이내 진수의 주먹이 그대로 유혁의 광대에 직격했다. 그와 동시에 60초가 지났다.


“그만.”


내 말에 진수가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2라운드도 이렇게 하면 되는 거죠?”


패배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녀석의 표정.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마왕은 선행을 해야 할 입장. 언제나 중립을 지켜야 했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유혁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골목 한편에 놓인 찢어진 박스 위에 녀석을 앉혔다.


“헉···. 헉···. 헉······.”


녀석의 숨소리는 습하고 더운 공기에 뒤섞여 좁은 골목을 채워갔다. 나는 걸레짝처럼 변모한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프냐.”


“······네.”


“그렇군.”


유혁이 인상을 구기며 바닥으로 침을 뱉자, 시뻘건 선혈이 바닥에 낭자했다. 오랜만에 보는 피에 마음 한편이 편해졌지만, 구태여 티 내지 않았다. 선행을 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 아프겠지. 그러나 이전처럼 이유 없이 두들겨 맞던 그 고통과는 다르다. 그게 느껴지느냐.”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내 물음에 답했다.


“그러게요······.”


“그래? 뭘 느꼈는지 자세히 말해보거라.”


유혁은 다시 고개를 숙이더니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냥···. 정정당당한 느낌? 어쨌든 결투니깐요.”


“생각보다 멍청하진 않군. 그래. 정답이다.”


처맞는 건 같더라도 그 의미는 다를 게 분명할 터. 이 상황은 이전처럼 사냥당하는 먹잇감이 아니었다. 그저 승부를 겨루는 대결.


그 참된 의미가 조금이나마 유혁에게 전달된 것 같았다. 그러니 기쁠 수밖에.


나는 흙먼지가 가득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2라운드에서는 네 녀석의 분노를 보여주거라. 표출하란 이 말이야. 그걸 주먹이나 발길질로 표현해도 좋다. 닿지 않아도 상관없지. 완력으로 안 된다면, 소리를 지르고 악이라도 써라. 목구멍은 온전할 테니까.”


유혁은 앉은 자세에서 고개를 올리더니,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녀석의 눈빛은 흐리멍덩하지 않았다. 그저 분노와 용기가 중첩되어 이글거리고 있었달까.


이 몸이 보기에 그 태도와 자세는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팁을 줄 수밖에.


“유혁. 좋은 기백이다. 그러니 이 몸께서 팁을 몇 가지 전하겠다.

첫째. 눈을 감지 말 것.

둘째. 복부에는 언제나 힘을 주고 있을 것.

셋째. 모든 힘을 다해서 무서운 표정을 지을 것. 이상이다.”


내 말에 유혁의 눈동자가 잠깐 위를 향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녀석들을 골목길 가운데로 불러냈다.


진수의 뒤에 있던 무리는 웃음기 없이 진중했달까. 영문은 알 수 없지만, 그저 한껏 진지한 눈으로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 2라운드 시작하겠다.”


둘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시작할 수밖에.


“시작.”


내 말이 끝나자, 다시 진수의 주먹이 날아왔다. 유혁은 양손을 올려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마왕의 말대로 눈을 감지 않았다. 그러니 어설프게나마 피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진수는 그 나이에서 그런대로 실력자랄까.


동시에 쏜살처럼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유혁의 허벅지를 강타했다.


“흐읍.”


유혁은 깊은 신음을 내더니, 그대로 다리를 굽혔다. 그러나 눈빛은 여전히 죽지 않았고, 입술을 씰룩거리고 미간을 힘껏 찌푸리며 진수를 노려봤다.


“······.”


지금껏 계속 주먹을 날리던 진수가 멈칫했다. 녀석의 눈에도 닿았겠지. 유혁의 기백이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으아아아악!”


유혁이 상체를 숙이더니 멧돼지처럼 진수에게 달려들었다. 근본 없는 격투 기술에 실소가 나왔지만, 지금까지 전개와 달랐다.


흠칫 놀란 진수가 뒤로 물러서더니 눈을 찡그렸다. 그러나 녀석은 타고난 격투가.


곧바로 무릎을 치켜올려 그대로 유혁의 턱 끝을 날려버렸다.


“악!”


그리고 유혁은 다시 바닥에 나뒹구는 종잇장처럼,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맹수의 사냥.


「 퍽. 퍽. 퍽. 퍽······. 」


그러나 무기력한 옅은 신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저 유혁의 마음에 가득 찬 분노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래! 해봐! 해봐. 이 새끼야! 해보라고! 개새끼야!”


다시금 근본 없는 팔 휘저음이 시작됐다. 그러나 진수에게 닿을 리가 없었다.



.

.

.



“진수의 승리다.”


녀석은 기뻐하지 않았다. 그저 떨떠름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을 뿐.


나는 진수에게 다가가 한껏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진정한 강자는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다. 네 녀석이 진심으로 강자가 되길 원한다.”


내 말에 진수가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번만 더 누군가를 괴롭힌다면, 다시금 내가 너를 찾겠다. 그리고 결투를 신청하지.”


내 겁박에 진수가 온몸을 들썩이더니, 곧장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갈 길 가거라.”


진수가 고개를 꾸벅이더니, 골목 한 어귀를 채운 무리는 시야에서 점차 사라졌다.


이어서 바닥에는 엉덩이를 깔고 퍼져있는 유혁이 보였다. 녀석의 얼굴은 시뻘건 부종이 가득했고, 양쪽 콧구멍 주위로 피가 흥건했다.


나는 다시 자세를 낮춰 유혁에게 말했다.


“2라운드. 이미 정해진 승부에서 네 녀석은 사력을 다했지. 한 명의 전사 같았다. 패배했지만 무기력하지 않았다. 유약한 모습도 없었지. 앞으로도 그리 살거라.”


내 말에 유혁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흐뭇한 마음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골목 위로 뚫린 밤하늘에 보름달이 발광하고 있었다.



.

.

.



「 띵. 」


그리고 핸드폰에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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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투 24.09.18 7 0 11쪽
14 선행 24.09.17 8 0 12쪽
13 소년 24.09.16 11 0 12쪽
12 번개탄 24.09.16 14 0 11쪽
11 전투 24.09.13 17 2 11쪽
10 담배 24.09.12 15 1 11쪽
9 취업 24.09.11 16 1 11쪽
8 면접 24.09.10 2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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