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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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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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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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면 그래도 된다

DUMMY

“저 내려가도 돼요?”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도 대성의 아버지는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말했다.


“회사는?”

“아, 그게요······.”

“많이 힘드냐?”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어투였기에 대성은 오랜만에 당황하며 주절거렸다.


“아뇨, 뭐 농사보다 힘들겠어요?”

“걱정말고 내려와라.”

“그래도 될까요?”

“그래도라니? 힘들면, 그래야 되는거지.”


* * *


홧김에 하는 말이 폐부를 찌를 때가 있다. 올해 33살, 최연소 과장을 넘어 어쩌면 최연소 차장도 헛된 희망이 아니었던 인사과장 전대성은 이 말을 들을 때가 그랬다.


“니들 눈엔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 숫자로 보이지?”

“죄송합니다. 회사 사정이······.”


사실이 그랬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사실, 그래서 당신들을 정리하고 해고해야 한다는 사실.


그러기 위해 사람이 아닌 숫자로 보아야 했다는 사실.


‘해고’라는 명사를 ‘자른다’라는 동사로 처음 말했던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밤잠을 설쳐가며 고심 끝에 확정한 정리해고 명단에 적힌 이들은


정말이지 목이 잘린 얼굴로 울부짖곤 했다.


개중에는 입사 후 반년도 되지 않은 신입 사원까지 있었다.


‘이럴 거면 뽑지나 말지.’


물론 회사 사정이라는 것이 늘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갈 수는 없다는 걸 대성도 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늘 납득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이다.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꺼이 깎이거나 동결된 연봉을 받아들일 것이다.


남은 사람들은 떨어진 사기와 별개로, 실적을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다.


그렇게 회사는 살아남고, 회사원들은 죽어갈 것이다.

다시, 또다시.


올해 33살, 한 때 최연소 차장을 넘보던 전대성은 역시나, 이런 게 너무 지겨워졌다. 지겹고, 지쳤다.


“부장님.”

“어, 전 과장. 어? 이게 뭐야?”

“사직서요.”


정리해고 시즌에 사직서를 받는 일은 의외로 드물지 않지만, 그 사람이 회사에서 주목 받는 사람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누가 몰라서 물어? 왜 이 타이밍에 사직이냐고.”

“이 타이밍이라서요. 잘리기 전에 나가고 싶습니다.”

“잘려? 누가 자네를 잘라?”

“제가요.”


그런 극히 드문 케이스 중 하나. 죄책감. 여러 심정이 담긴 대성의 대답에 부장의 심정이 당혹에서 서서히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다른 사람 말은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딱히 자네 잘못도 아니잖아? 남은 사람들은 생각 안 해? 혹시 이직이야?”

“네.”


별생각 없이 물은 질문에 대답이 너무 쉽게 나왔고, 그 대답이 ‘애사심 높던’ 전대성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으로 물들던 부장의 눈이 분노로 불탔다.


“뭐? 이 판국에 이직처 알아보고 있었다고?”

“귀농할 겁니다. 고향에 산이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이 착하고 능력 좋은 사람이 다 죽어가는 상황에 뻔뻔하게 뒷구멍을 팔 리가 없다.


“흠흠, 저기, 알겠어. 전 과장 생각은 잘 알겠고. 귀농? 좋지. 좋은데, 귀농에도 돈이 들잖아.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는 자네도 잘 알잖아. 그러니까······.”


돈 좀 더 벌다가, 그러니까 조금만 더 회사에서 버티다가 가라는 진심 어린 조언. 하지만 대성도 진심이었다.


“어차피 인사과에서도 한 명 나가야 하잖아요.”


어차피 잘릴 테니 먼저 나가겠다는 말. 하지만 대성이 잘릴 리가 없다. 나름 회사의 중요 인물이니까.


하지만 인사과의 다른 직원들은?


대성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잘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농이세요. 비빌 곳이 있어서 가는 겁니다.”


* * *


다른 부서에서 인사과를 부르는 호칭은 이랬다.


칼춤 부서.


힘 있는 사람은 승진이나 고과에 목을 매며 딸랑거리고, 성과가 적은 사람은 덜덜 떨며 피해 다니는 부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는 사람들은 늘 이면을 외면하곤 한다.


채용 시즌이나 승진 시즌에는 힘 있는 사람들이 회유나 협박을 동원하고, 해고 시즌에는 힘없는 사람들이 애절함과 비굴함으로 무장한 채 접근해 온다.


회사가 잘 되면 승진 절차 때문에, 회사가 잘 안되면 해고 절차 때문에 압박받는 삶의 연속.


“이번에 잘린 김 과장 말이야······.”


그 김 과장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는 일부러 듣지 않았다. 단지, 그날부터 대성은 얼굴을 굳히고 태도를 단단히 했다. 협박도 사정도 전혀 통하지 않는. 냉혈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런 한편으로, 저성과자에 대한 교육 프로세스 또한 더욱 효율적으로 정비했다. 이게 ‘개인’이 모두와 회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결과는 모두에겐 좋았어도 대성에겐 썩 좋지 않았다.


* * *


“사실 가장 좋은 건 잠깐 쉬시는 건데······.”


몇 년째 같은 말만 하는 의사의 말은, 이제 걱정이라기보단 버릇처럼 들린다. 처방 약은 점점 독해지고 빈도도 늘어났다.


“정신과는 뭐 수술 이런 거 없습니까?”


농담 삼아 던진 말에 의사는 꽤나 진지하게 답해줬다.


“외과랑 다르게, 정신과는 째자마자 해결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대성 씨 같은 경우는 더더욱.”

“째요?”

“네, 배를 짼다고들 표현하잖아요?”

“정신과니까······. 머리를 째면 되나요?”


어디까지나 농담이었지만 여전히 의사는 진지했다.


“배에 문제가 있으면 배를 째는 거지만, 지금 대성 씨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진 않은데요. 회사를 째야죠.”


이날부터 대성은 사직서를 품 안에 넣고 다녔다.


* * *


사직서를 품 안에 넣었던 순간부터 업무 과정과 노하우를 전부 기록해 뒀던 탓인지 정리는 금방 끝났다.


“잘 있어요. 다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신세는요······. 저희야말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미안한 마음이 반씩 담긴 작별 인사들. 송별회를 마친 대성은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었다.


오랜만에 한숨 푹 잔다. 입사 후 처음으로, 새벽에 울리는 알람을 무시해 본다.


자가용 한 대, 텅 빈 냉장고, 여름과 겨울용 양복 세 벌씩. 그야말로 직장과 집만 오갔던 사람의 짐이다.


시원섭섭한, 그러나 역시 압도적인 해방감을 느끼며 천천히 운전한다.


4차선 도로가 조금씩 줄어들고, 건물의 층수가 조금씩 낮아지는 것을 보며 천천히.


어느새 비포장도로가 늘어나고 회색 아스팔트보다 녹색 잎의 비중이 늘어난 풍경이 보인다.


아름다운 광천, 따뜻한 광천.

광천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광천시 입구에 있는 지역이 광천읍, 거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봉황면이 나오고, 그곳에서도 조금 더 차를 몰고 들어가면 어느새 구서리.


그곳에서도 조금 더 들어간 곳이 묘혈산 중턱에 있는 대성의 집이다.


“풍경 좋고.”


겨울이 조금씩 가고 있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

과감히 차창을 내리고

이내 시원한 솔향이 차 안으로 스민다.


“공기 좋고.”


어느덧 차는 완전한 산길로 접어들고, 적당한 입구에 차를 세운 대성이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말도 안 되게 오랜만이네.”


어처구니없지만 대성은 이곳을 10년 만에, 그러니까 23살 이후로 처음 온 셈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대성에게 이곳은 변한 게 전혀 없···

···지 않았다.


외진 곳에 있는 것이 특징이었던 산 이곳저곳에 잔뜩 굳은 표정의 사람들이 가득했다. 어린아이, 젊은 여자, 등산은커녕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노인까지.


모두 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상들.


“여기에 사람이 올 일이 있던가?”


수확 철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오긴 했었지만 그 경우엔 차를 가져오지, 이렇게 산을 서성이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람들. 아무리 봐도.

피부가 너무 창백하다. 햇빛을 못 받은 사람처럼.


대성은 그중 하나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꼬마야. 여긴 어쩐 일······.”


대성 농장의 아들이자 그 이름의 주인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창백한 얼굴의 어린아이가 갑작스런 질문에 깜짝 놀라는 걸 보는 와중


“대성이 왔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의 사람들은 어느새 전부 사라져 있었다.


* * *


“농사는··· 관뒀다.”


10년 만에 내려온 아들에게 스리슬쩍 건네는 말치고는 지나치게 담백한 말.


“예? 언제부터요?”

“5년 전부터.”

“5년 전? 그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굳이 말 안 했지. 너도 마찬가지잖냐.”


너도 직장 일 때문에 정신과에서 상담받고 약까지 먹을 정도로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잖냐.


“아니, 왜요? 그만둔 이유가 뭔데요?”

“혼자 하기 힘들어서.”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인부라도 쓰면 되잖아요.”

“그 인부가 이제 없어.”


대성의 눈앞이 조금 캄캄해졌다.


귀농이 만만치 않다는 건 대성도 잘 안다. 생초짜가 농사 경험 없이, 시골에 집 한 채 없이, 심지어 돈도 없이, 시골 텃세를 버티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몇십 년의 농사 경험을 가진 아버지가, 시골에 산과 집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것도 제법 브랜드화된 농작물을 생산하고 있었다면?


이 정도 기반이 되면 귀농은 이직이나 창업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것이다. 그런데 농사는 그만뒀다니!


“걱정 말고 내려오라면서요?”


다소 원망 섞인 말도 튀어나온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돈은 많이 있으니까.”


무심하게 툭 던져지는 통장 하나. 대충 봐도 상당한 액수지만, 그 너머로 이제서야 보이는 것들.


여전히 무심한 말투에는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찌푸린 얼굴에는 주름살이 보인다.


“일하다 온 거지, 일하러 온 게 아니잖냐.”

“같이··· 일하려고 했죠.”

“이 돈으로 쉬어라. 아니면 놀든가. 실컷.”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직 남아 있는 인사과장의 눈으로, 대성은 아버지를 천천히 스캔했다.


허리가 꼿꼿하고 손이 굽지 않았다. 어디 골병이 든 것은 아니다. 난데없이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닐 것이다. 돈이 이렇게 많으니까.


변한 건, 눈. 어머니 생전에 그렇게 등짝을 맞아가면서도 사그라들지 않았던 장난기가, 저 눈에 없다.


“이런 신파 같은 건 관둡시다. 어울리지도 않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관뒀다니까. 혼자 하기 힘들어서.”

“그래요, 그것부터 시작하죠.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원래 농사는 혼자 하셨잖아요.”


사실이 그랬다. 넓은 부지의 땅과 산을 아버지는 혼자 관리했었다. 수확 철을 제외하고는 애초에 인부를 쓴 적이 없었던 것. 이 농장은 그래도 됐었다.


“그리고, 인부가 일을 안 하면 다른 인부를 쓰면 되는 거 아닙니까? 농업에 산업 노조가 있다는 소린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인부라는 게······.”


난처하다는 듯 아버지는 턱을 긁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희끄무레한 여러 형체가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어딜 보시는··· 어? 저 사람들······. 혹시 저 사람들이 방금 말씀하신 것과 관련 있는 겁니까?”

“응······. 응?”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우리 산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얼굴도 농사짓는 사람들 같지 않은데. 혹시 저 사람들이 협박이라도 해요?”


아버지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아니, 잠깐만. 너 지금······.”


쓸쓸하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뭔가 보이는 거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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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힘껏 하는 것과 함께하는 것 (1) NEW +2 22시간 전 51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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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화만사성 +1 24.09.08 131 12 11쪽
4 아버지와 아들 +1 24.09.07 143 12 11쪽
3 뽀바 +1 24.09.06 161 13 12쪽
2 귀농의 귀가 그런 뜻이었어? +1 24.09.05 173 12 11쪽
» 힘들면 그래도 된다 +1 24.09.04 185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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