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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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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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방식 (1)

DUMMY

3월의 첫 다짐으로 ‘적당히 살겠다.’ 마음먹은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상의 어떤 금욕적인 사람이라도 혹할만한 풍경이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산삼이다. 그것도 빨리 자라는 산삼.

일단 예의상 한마디 해준다.


“심 봤다······.”


건강과 재물. 양립하기 어렵다. 보통은 한쪽을 위해 다른 쪽을 잠시 접어두기 마련이다.


그런데 산삼이다. 팔면 부자가 되고,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산삼. 그것도 빨리 자라는 산삼이다. 욕심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산 중턱에 위치한 대성의 텃밭 구석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관계된 추억은 없지만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들깨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일조량이라면, 산삼에 필요한 것은 적절한 그늘이다.


다행히도 들깨는 밭 한 가운데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산삼은 그늘이 있는 텃밭 구석에 심을 수 있었다.


그 소나무 그늘 밑에서 산삼은 눈에 띄는 속도로 자라고 있었고


“심 봤다···가 아니잖아?”


산삼 근처의 소나무는 그만큼 말라가고 있었다.


소나무뿐만이 아니다. 뽀송뽀송하던 밭 또한, 조금씩 메말라 가고 있었다.


“물··· 물!”


급하게 호스를 가져와 산삼 주변에 물을 콸콸 붓는다.


“머리머리······ 하지 마······?”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윙윙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성의 안색을 살폈다.


“으응, 땅이 힘들어하는 것 같네?”


그제야 주변을 본 윙윙이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바닥이가 어질어질 해!”


윙윙이의 표현대로, 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쏟아부어지는 물과, 그걸 흡수하는 산삼 무리가 요지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말이 이만큼 들어맞을 수 있을까. 수도꼭지를 최대로 틀고 호스를 산삼 근처에 대충 던져둔 채 대성은 황급히 비료 포대를 꺼내 왔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 몇 년 치의 양분을 한 번에 빨아들여 성장하는 산삼이다. 그만한 대가가 없을 리 없다.


한참을 정신없이 움직이던 대성의 노동이 결실을 맺은 것은 그로부터 반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다디 잔다······.”


어딘가 넋이 빠진 표정. 다시 잠들었다는 윙윙이의 말 덕에 한숨 돌린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윙윙이에게 시선을 던진다. 윙윙이는 갑작스러운 일에 어찌나 크게 놀랐는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 *


대기업의 인사과라는 것은 갑질 부서, 칼춤 부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 인사과에서 다년을 근무했던, 인사과장 전대성의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대부분의 업무상 실수는 신입 사원의 지나친 업무 의욕 탓에 일어난다.


“음, 그러니까. 같은 ‘뽀바’면서 하나는 열심히 크는데, 새로 온 친구는 잠만 자니까 화가 났다?”


최근 농사에 맛을 들인 엘리트 농사꾼 윙윙이는 파리한 얼굴로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그래서 아저씨가 아침마다··· 아니, 어젯밤에 한 것처럼 머리를 감겨주고 밥을 줬다. 이거지? 잘 크라고?”


다시 고개를 붕붕 끄덕이는 윙윙 사원의 말을 그대로 신뢰하자면, 방금 윙윙이가 저지른 짓은 자는 사람의 머리를 강제로 감긴 것이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저 산삼이 화가 잔뜩 났다?”


당연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말도 안 된다.’ 정도.

세간의 인식이 어떤지는 몰라도 식물은 잠을 안 잔다.

동물이 아니니 감정을 느낀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눈앞의 윙윙이는 그야말로 ‘성격 좋은 큰 개에 오만 장난을 다 치다가 크게 혼쭐 난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믿기 힘들건 어쩌건 이런 아이에게는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성의 생각이었다.


“혹시, 윙윙이 기억나? 아버지··· 그러니까 할아버지랑 아저씨랑 이 앞에서 얘기할 때?”


제사상을 처음 차려주고, 깻잎을 처음 수확한 다음 날, 새벽의 일이다.


“음······ 가물가물······.”


그때 깜짝 놀란 대성의 목소리에, 잠에서 막 깬 듯한 모습으로 나타났었다.


“윙윙이는 자다가 일어났었어. 뭐 때문에 일어났지?”

“아, 그거. 아저띠가 깜딱 놀라더, 윙윙이도 놀래찌.”

“그럼, 그때 아저씨가 윙윙이 그만 자고 일어나서 뽀바랑 놀아주라고 떼썼으면 어땠겠어?”


뭔가 깨달은 게 있는 모양인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윙윙이가 답했다.


“윙윙이 피곤했을 거 가타.”


피곤이라니. 이런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걸까 싶지만, 그런 의문보다는 눈앞의 아이가 무언가에 공감한다는 사실이 기쁘고 기특하기만 하다.


“놀고 싶은 뽀바가 있으면 자고 싶은 뽀바도 있겠지?”

“응. 윙윙이가 나빠떠.”

“윙윙이가 나쁜 게 아니야.”


그날, 아버지는 이런 말을 했었다.

어제 네가 했던 말들은 싸게 부려 먹기 위함이었더냐?


“윙윙이는 뽀바를 괴롭히고 싶었어?”

“아니! 아니야!”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거지?”


고개를 붕붕 끄덕인다.


“몰랐던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다 사과하고 앞으로 조심하면 되는 거야.”

“윙윙이는 모르는 거 많아.”

“그래, 그러니까 실수할 수도 있는 거야.”

“윙윙이는 모르는 거 많아.”


윙윙이는 말을 반복하며 다시 질문했다.


“윙윙이 모르는 거 많으니까, 또 개롭히면 어떠캐?”


같은 실수가 반복될까 봐 두려운 모양이다.


흔한 일이다. 의욕에 넘쳤던 몇몇 신입 사원들은 의욕에 넘쳐 저질렀던 그 실수를 극복하지 못하기도 했다. 의욕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또 실수하면, 또 사과하면 되는 거야.”

“윙윙이, 잘 모르게떠.”

“음, 잘못한 게 있으면, 잘한 것도 있을 텐데?”

“윙윙이 잘 하는 거 업더······.”


풀이 확 죽어 있는 윙윙이의 머리 부근을 쓰다듬으며 대성은 상냥하게 말했다.


“아저씨도 그래.”


윙윙이의 고개를 저었다. 도리도리.


“아닌데, 아저띠는 다 잘하는 데.”

“아저씨가 뭘 잘하는데?”

“음, 밥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음······.”


딱히 뭐가 더 없는 모양이다.


“아저씨도 처음에는 못 했어. 윙윙이만할 때는.”

“?!”


윙윙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저씨가 윙윙이만할 때가 있었다니.


“그럼 윙윙이도 아저띠처럼 될 두 이떠?”

“당연하지!”


윙윙이에게는 아무 문제 없을 것처럼 말했지만, 당연히 현실적으로는 여러 리스크가 존재했다.


‘이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 된다면······.’


윙윙이에게는 ‘사과하면 된다’라고 말했지만, 동물에게도 말이 통할지 미지수인 마당에 식물에게 ‘미안하다.’ 라고 말한다고 그게 먹힐지는 의문이었다.


비료와 물만 준다면 혹시 또 모르지만, 그 간극이 극히 짧다. 이 정도면 이젠 농사가 아니라 단거리 반복 달리기 정도의 노동 강도에 속한다. 몸이 버티지 못 한다.


이럴 때 의지가 되는 것은 역시 지인이다.

아침이 되자마자 대성은 장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무슨 일인가?”

“트럭이랑 비료를 좀 사고 싶은데요.”


트럭이나 비료를 사는 일은 그닥 어렵지 않지만, 당장 빠르게 구매하려면 지인을 통하는 게 낫다.


다행히 장인 아저씨는 이것저것 물어보지 않고 대성이 바라는 트럭의 스펙만 들은채 전화를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성의 전화가 다시 울렸다. 걸려온 전화는 장인호가 아니라 종묘샵 박사장 아저씨였다.


“대성아, 비료를 산다고? 뭘 키울건데?”


장인 아저씨와 달리 박사장 아저씨는 궁금한 게 많다. 물론 이에 대비한 답변은 준비 되어 있었다.


“산삼 씨를 뿌렸는 데 비료가 떨어져 가서요.”


산삼은 지력을 많이 소모하는 다비성 작물, 그러니까 양분이 많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비료를 많이 구비해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적어도 대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응? 그걸 어디에 심었는데?”

“저희 집 텃밭이요.”


전화기 너머로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려 왔다.


“텃밭에 산삼을 심어서 비료를 준다고?”

“네, 마침 소나무 그늘도 있고, 잘 키워보려고······.”

“그래그래, 지력을 많이 소모하니까?”


그 후로도 조금 더 웃던 박사장 아저씨는 이내 대성을 너머에 두고 웃은게 미안했던지 살짝 목을 가다듬고는 “크흠.” 친절하게 말했다.


“대성아, 산삼은 주기적으로 옮겨 심어주는 거야.”


박사장 아저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삼 종류가 지력을 소모한다는건 특유의 병균 때문이야. 뭐, 이름이 뿌리썩음병이던가? 그럴거다.”

“예? 그럼 비료 안 뿌려요? 다비성 작물이라던데······.”

“다비성 작물이라는 건 비옥도를 갖춰줘야 한다는 뜻이지, 비료를 많이 줘야 한다는 뜻이 아니야.”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손바닥만한 지식을 가지고 잠깐이나마 전문가 흉내를 냈다니.


“그리고 방금, 소나무 그늘이 있으니까 심었다고?”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소나무 밑에서는 풀이 제대로 못 자라. 그동안 방치해 둔 참나무가 있으면, 그러니까 낙엽이 많이 떨어진 곳이 있으면 거기 심어라.”

“네······ 감사해요 아저씨. 그래도 비료는 살게요.”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그래도 대성이 너가 열심히 해보려는 게 아저씨는 너무 기특하다.”


귀여워 죽겠다는 어투로 전화가 마무리 되었다.


* * *


윙윙이가 느낀다는 식물의 ‘기분 좋음’이나 ‘화남’은 동물의 그것과는 다르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건, 뱃사람들이 ‘오늘은 파도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이라 말하는 정도의 감각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렇기에 대성은 식물에게 진짜 감정이 없는 것을 몹시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저띠. 오늘은 밥이 왜 이렇게 많아?”

“으응··· 윙윙이 얼른 크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럽다. 자고 있는 산삼의 머리를 강제로 감긴 것은 윙윙이지만, 대성이가 한 짓은 그렇게 감긴 머리에 밀가루를 쏟은 셈인 것이다.


풀이 잘 자라지 않는 소나무 밑에 심은걸로 모자라 거기에 비료를 쏟아부었다니.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간단히 식사를 마친 대성은 텃밭으로 나와서 산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미··· 미안합니다······.”

“미안함미다요.”


옆에서 윙윙이가 함께 고개를 숙였다.


형식적인 사과를 마친 후에 대성은 산삼의 위치를 옮기기로 했다. 집 앞 텃밭에서 집 뒤의 참나무 숲으로.


“뽀바를 뽀바따······.”

“이 뽀바가 더 좋아하는 곳으로 가는 거야.”


집 뒤의 참나무 숲은 지난 계절 떨어진 낙엽이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그곳에 얼추 자란 산삼들을 옮겨 심는다.


“다시 한번 미안합니다.”

“미안하다요······.”


둘의 사과에 감격한 산삼들이 붉은 열매를 뿅하고 열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윙윙이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분명 느껴진 듯 하다.


“오오! 아저띠! 대다내······!”

“여기가 더 좋대? 화는 좀 가라 앉았고?”

“그런 거 가타. 기부니가 조은 느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대성과 윙윙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별 소득 없이 고생만 한 느낌이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어딘지 모를 깨달음 같은 것이 느껴지는 하루였다.


“오늘은 좀 쉴까?”

“으응······ 윙윙이 피곤해.”


긴 하루였다. 녹초가 되어 돌아가는 둘의 뒤로 산삼 중 하나의 열매가 뿅하고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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