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정간
작품등록일 :
2024.09.04 17:24
최근연재일 :
2024.09.18 06:00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1,620
추천수 :
136
글자수 :
73,526

작성
24.09.05 12:50
조회
173
추천
12
글자
11쪽

귀농의 귀가 그런 뜻이었어?

DUMMY

“보이냐고요? 무슨 80년대 괴담 같은 장난을 하세요?”

“어떻게 생겼냐? 하나하나 말해봐라.”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반응이지만 대성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답변해 주었다.


“어린 아이 하나, 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고.”

“한 명이 아니고 두 명? 정말이야?”

“두 명도 아니고 여럿.”


보이는대로 말해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기도 했지만, 갑자기 생기가 도는 아버지의 표정이 보기 좋기도 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아직 있었구나!”


어린 아이처럼 방방 뛰며 정신 없이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기는 아버지에게 질문할 것이 산더미다.


“멀쩡히 눈에 보이는걸 굳이 왜 물어요? 혹시 눈이 안 좋아지신 겁니까? 농사도 그래서?”

“눈이라면 눈이지. 영안(靈眼)이 닫혔어.”


영안. 영혼을 보는 눈.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영안?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와요?”

“우리집 농사. 그동안 귀신이 지어줬거든.”


아무리 장난이라도 이 정도면 정성이 느껴질 정도다.


“그럼 제가 보고 있는 게 귀신이라는 겁니까? 저 사람들······, 아니 귀신들이 그동안 농사를 도와줬고?”

“그래. 마지막 녀석이 사라지고 나서는 조금씩 흐릿해지더니 결국 안 보이게 돼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인내심에 슬슬 한계가 온다. 그만하라고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고민 중일 때, 아버지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안경 벗어 봐.”


오랜 세월 직장에 몸 담은 대가로, 대성의 시력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안경을 벗으면 저 정도 거리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보인다.


주위의 모든 것이 흐릿한 와중에, 저기 있던 사람들은 여전히 또렷하다.


“저게······ 대체······.”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릇이며 향 같은 것을 한 아름 꺼내온 아버지가 대성의 손을 잡아 끌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나 좀 도와줘라.”


* * *


아버지를 도와 대성은 저온저장고의 음식을 한 아름 꺼냈다.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과일은 수확한 순간부터 썩는다. 물론 저온저장고는 그 썩음을 방지하기 위한 장소지만 이 정도의 양은, 두고 먹기에는 과하다.


“이만한 양을 어디에 쓰시게요?”

“질문은 나중에 하고, 얼른. 차리자.”


두 사람이 앉기에 지나치게 큰 상을 펴고 음식을 올리고 나니, 그제서야 보이는 것.


“제사상?”


강정, 사과, 곶감, 배, 밤, 대추.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柿)


냉장고에서 급히 꺼낸 생선과 고기도 올라간다.


“어동육서에 동두서미.”

“잘 아네. 다 까먹은 줄 알았더니.”


그야 매년 이맘때쯤 고사를 지냈으니까. 그때는 그냥 흔한 미신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미신이 아니라 귀신이었나······.’


대성은 조금 참담한 심경으로, 열심히 향을 피우는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내 눈은 닫혔지만, 아들이 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는 사실 사명을 부여 받고 이 땅에 내려온 천사였단다.’ 라는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잠깐 떨어져 있자.”


향을 다 꽂은 아버지가 물러나자, 상 주위로 창백한 얼굴의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귀신들이 모여들었다. 우울하고, 어딘가 갈망에 찬 눈빛들.


충분히 거리를 벌린 아버지가 외쳤다.


“배불리 드시고, 올 한 해, 잘 부탁합니다.”


말과 동시에 귀신들이 상 위로 손을 뻗었다. 몇 년 정도는 족히 굶은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은 상 위의 음식들을 몇 초 안에 해치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먹지 못했다. 귀신들의 손은 차려진 음식 위를 허무하게 통과할 뿐. 손, 입, 발. 그 무엇이건 차려진 제삿상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저거 뭡니까? 마술?”


통과하는 마술? 아니, 저건 귀신이 맞다. 눈에 보이는 걸로 모든 의심이 걷혔다. 등이 서늘해져 얼이 빠진 듯한 대성의 귀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먹고 있냐?”


기대에 찬 목소리와 얼굴. 그 기대를 배신하고 싶진 않았지만 대성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뇨, 그래도 귀신인건 알겠네요. 상이고 그릇이고 음식이고 손이 슝슝 통과하고 있어요.”

“···그럼 역시 지난해동안 한번도 못 먹었겠구나······.”


슬픔에 찬 아버지의 얼굴. 상 위의 귀신들도 마찬가지고, 대성도 마찬가지.


솔직히 조금 많이 놀라긴 했다. 이 시대에 귀신이라니. 하지만 그건 그거고, 딱 봐도 배고픔에 가득 찬 사람들이 음식을 눈 앞에 두고 먹질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한 명. 어리다.

아까 봤던 작고 어린, 아이 하나가 있다.

한창 자랄 나이, 한창 먹을 나이로 보이는 어린 아이.


먹여주고 싶다. 먹었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측은한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는 풍경에 대성이 괜히 볼멘소리를 해본다.


“저리 급하면 먹어도 체하겠네. 천천히 좀 먹지······.”


그 순간, 아이의 손에 깎은 밤 한 알이 덜컥 잡혔다.


“어?”


* * *


잡히자마자 깜짝 놀라 입 안에 넣는 것을 필두로 음식들이 하나하나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창백하게 굳었던 얼굴이 조금씩 펴지고, 겨울의 추운 공기가 조금씩 풀린다. 눈물 날 육신은 없어도 영혼이 데워진다. 아이는 먹었다. 천천히. 급하지 않게.


그 광경을 지켜보며 대성이 말했다.


“먹는다. 먹고 있어요.”

“먹는다고?”

“네, 안 보이세요? 막 집어 먹고 있잖아요.”

“안 보인다니까······. 정말 먹고 있는거지?”


먹는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아직도 얼떨떨한 상황이라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지만, 대성은 성실히 답했다.


“그래, 드디어······. 다행이다. 다행이야.”

“버림 받은 강아지 챙기는 말투는 뭡니까?”

“버림 받은 강아지 맞아. 불쌍한 사람들이다.”

“불쌍해 보이긴 하네요······.”


* * *


다 먹기까지 시간이 걸릴 듯 했기에, 대성과 아버지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눴다.


“제삿밥을 대신 차려준다고요?”

“그랬었지.”

“그 대가로 저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농사를 도왔고?”

“그랬지.”

“근데 5년전부터 그··· 귀신 눈인가 뭔가가 흐려져서 덩달아 저 사람들이 굶게 됐다. 이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이미 의심할 수도 없는 상황들을 보고난 직후인 만큼, 대성은 차마 ‘지금 저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따위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 사람들이 드디어 밥 값을 하게 된다? 농약도 뿌려주고 비료도 주고?”

“비슷하지. 어디 보자······.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가 찾은 것은 한 때 표고버섯을 재배했을 것이 분명한 참나무 접종목이었다.


하지만 5년 동안 방치된 참나무 접종목은 당연하게도 쓸만한 버섯이 하나도 없었다.


“이거······ 기르는 겁니까?”


대성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버섯이 아닌 민달팽이. 집 없는 달팽이들이 제 집처럼 기어오르고 있었다.


“무슨 달팽이가 이렇게 커요? 약이라도 쳐야······”

“그럴 필요 없다.”

“버섯은 안 키우더라도 달팽이는 잡아야죠. 그래야 상추를 키우건 뭘 하건······.”

“그럴 필요 없다니까. 먹는 거 봤다며? 그럼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아버지의 말대로였다. 창백하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온 사람들이 멀리서 손짓하자


“어? 어?”


민달팽이들과 각종 벌레들이, 이불에서 털어지는 먼지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후에야, 진짜 마음이 놓인다는 듯 아버지가 대성의 등을 탁탁하고 두드렸다.


“와 줘서 고맙다. 덕분에 마음이 놓이는구나.”


* * *


육체 없이 영혼으로 구성된 죽은 사람의 넋. 보통 여기서 인간에게 화를 내리는 존재를 귀(鬼)라 부르고 복을 주는 존재를 신(神). 이를 통틀어 귀신이라 부른다.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대성의 집안은 이 귀(鬼)들을 신(神)으로 변환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농부가 아니라 무당 집안이었다는 거네요?”

“그거랑은 좀 다르지. 엄연히 농사로 하는 거니까.”


한참 동안이나 ‘고맙다’와 ‘마음이 놓인다’를 반복하던 아버지는 집안의 내력과 농사의 필요성을 짤막하게 강조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뭘 어떻게 해? 농사 지어야지? 얼마나 다행이냐.”


좀 전까지의 침울했던 표정이 벌써부터 그리울 정도의 태세전환이다.


“관뒀다면서요?”

“나는 못하고. 당연히 네가 하는 거지.”


그래, 이 뻔뻔함이 있어야 아버지답지. 대성의 얼굴이 팍하고 구겨졌다.


“아버지는요?”

“난 따로 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다. 부탁 좀 하마.”


당장 일 때려 치우고 온 김에, 전반적으로 힐링도 하고 농사도 도울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농업의 관점이었지. 이런··· 오컬트의 관점이 아니었다.


눈으로 본 게 있으니 지금 상황을 잘 짜여진 연극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귀신이라니. 귀신과 함께 농사를 지어야 한다니.


“저보고 무당이나 하라는 겁니까? 이 괴상한 가업을 이어달라. 뭐 이런 말씀이세요?”

“싫으냐?”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대성은 조금이지만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힘들어 하는 아들을 부른게 아니라, 쇠퇴한 영안을 대신할 후계자를 부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묘한 배신감.


“혹시 이거 때문에 내려오라고 하신 겁니까? 어차피 이어 받을테니까? 가업은 운명이다?”

“응? 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지금 뭔가 오해를 하는 모양인데······.”


정말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멀쩡하게 대기업 다니는 아들을 뭐하러 농사를 시켜? 돈도 잘 버는데.”

“···예? 대대로 이어오는 가업 아니었어요?”

“그건 맞지. 근데 대대로 이어오는 이유가 뭐였겠냐.”


숙명, 집안의 의무. 이런 말만 예상하고 있었기에, 대성은 인상을 찡그린채로 아버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아버지가 내놓은 대답은 의외로 오컽트와는 한참 떨어진 것이었다.


아버지는 통장을 하나 ‘더’ 던졌다.


“확인해 봐.”


좀 전에 침울했을 때 던졌던 통장과 다른 통장.

그러니까··· 통장이 두 개에, 액수가 상당하다.


“이거··· 혹시 농사로 번 돈입니까?”

“그렇지. 돈 잘 버니까 가업이지. 별 거 있냐?”


의욕이 불타오를만한 액수.

아버지가 여기에 추가로 기름을 부었다.


“하나 더 있다. 이 일, 하겠다고 하면 주마.”

“···더 있다고요? 이런 통장이?”

“통장은 아닌데, 싫으면 말고.”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 그리고


“일단···,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들어나 볼까요?”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 천천히 시작해 보자.”

“아뇨······. 기왕이면 빨리 부탁 드릴게요.”

“거 참. 통장 좀 봤더니 금새 의욕이 생기냐?”

“그게 아니라······.”


식은 땀을 흘리며 대성이 말했다.


“지금, 바로 뒤에 있어요. 제 등에···. 어떤 꼬맹이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 힘껏 하는 것과 함께하는 것 (1) NEW +2 22시간 전 51 4 12쪽
13 하자 +1 24.09.17 74 7 11쪽
12 할 수 있으면 24.09.16 79 6 12쪽
11 대충 아무거나 24.09.14 82 10 12쪽
10 웃으며 전력 질주 24.09.13 94 9 11쪽
9 사과의 방식 (2) 24.09.12 99 9 12쪽
8 사과의 방식 (1) 24.09.11 107 10 12쪽
7 적당히 해 +1 24.09.10 118 10 12쪽
6 윈-윈. 윙윙 +1 24.09.09 120 11 12쪽
5 개화만사성 +1 24.09.08 132 12 11쪽
4 아버지와 아들 +1 24.09.07 144 12 11쪽
3 뽀바 +1 24.09.06 161 13 12쪽
» 귀농의 귀가 그런 뜻이었어? +1 24.09.05 174 12 11쪽
1 힘들면 그래도 된다 +1 24.09.04 186 1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