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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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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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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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으면

DUMMY

흰 밥을 제외하고 그들이 가리킨 반찬은 바로


“닭갈비···는 앞으로 자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한한 텃밭에서 키울 수 있는 걸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살풋이 웃으며 귀신들이 다른 그릇을 가리켰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각각 달랐다. 완벽하게. 다수결로 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각각. 그러니까


“······전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 사이 닭갈비의 매운 맛을 잠깐 즐긴 윙윙이가 토마토로 입가심하며 외쳤다.


“윙윙이는 이 반짝반짝 뽀바가 마음에 들어.”


가장 먼저 키울 작물도 결정 되었다.


* * *


“자라나라 머리머리!”


이제는 시그니쳐가 된 윙윙이의 주문을 필두로 토마토 씨앗이 무럭무럭 성장한다.


작은 씨앗들이 순식간에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며 줄기를 뻗어 올리는 장면을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오오······.”


하지만 처음 보는 것이 아니라해도 놀라운 것은 매 한가지다. 아무래도 씨앗이 금방 모종 크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니까.


처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 몇 분만에 깻잎을 수확할 수 있을 정도의 초고속 성장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편하게 해줘야 대.”


산삼 사건 이후로 윙윙이는 큰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었다. 빠르게 자라는 작물보다, 대성은 그 점이 기뻤다.


“우리 윙윙이. 많이 컸네.”

“윙윙이는 그대론데.”


대성과의 키를 재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윙윙이를 보며 대성은 막 자라고 있는 토마토의 곁순을 땄다.


“앗! 아저씨. 뽀바를 뽀바하면 어떠캐.”

“이래야 더 잘 자라거든.”


줄기 겨드랑이에서 나오는 곁순을 따주지 않으면 토마토는 열매가 아니라 잎을 키우는데 양분을 소모한다.


“윙윙이는 반짝 뽀바를 보고 싶은거지?”

“응! 반짝 뽀바 조아.”

“그럼 이렇게 줄기 하나만 자랄 수 있게 해줘야 해.”


지지대를 세워 원줄기를 살짝 묶어주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아저씨랑 윙윙이 같다.”


식물과 지지대를 묶는 것이 신기한지, 윙윙이는 옆에서 연신 감탄 중이다.


길쭉한 지지대와 아직 무릎 높이도 미치지 못한 토마토 모종을 보면 윙윙이 말마따나 어른과 아이 같다.


“다 자라면 깜짝 놀랄걸?”

“왜 깜짝 놀라?”

“얘가 아저씨만큼 커지거든.”

“!”


토마토는 방치하면 2미터까지도 자란다. 물론 지나치게 커지지 않을만큼 미리 잘라줘야 하지만


“아저씨만큼?”

“아저씨보다 더 커질수도 있어.”

“!”


이렇게 벌써부터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다소 열매가 부실하더라도 2미터까지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진다.


“언능 보고 십따.”

“금방 볼 수 있을거야. 토마토는 빨리 자라니까.”


‘반짝 뽀바의 이름은 토마토.’라고 연신 중얼거리는 윙윙이의 눈이 반짝반짝 했다. 크게 자란 줄기도, 주렁주렁 열린 열매도 하루 빨리 보고 싶은 모양.


하지만 역시 실행에 옮기진 않는다. 단지 토마토의 흙 주변을 조금 더 풀어주고 양분을 조금 모아주는 듯한 행동만 할 뿐. 예전처럼 작물의 생장을 재촉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 조금의 조급함이 남은 건 어쩔 수 없다.


“언능 크먼 조은데, 그치 아저씨.”


한 작물을 급속 생장하지 못하는 게 약간 애가 탄다는 듯이 다소 산만한 몸짓. 애가 타는게 나 뿐만은 아니지 않느냐는 눈빛. 영락 없는 5살이다.


“다른 뽀바들도 같이 키울까?”

“응!”


잠깐 고민하던 대성은 종자 하나를 더 꺼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느긋하게 하나하나 늘려 갔을 것이다. 당장 작물을 팔아서 돈을 벌 필요도, 정신 없이 일을 해야할 이유도 딱히 없었으니까.


그런 대성이 작물을 하나 더 심기로 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인내심을 배운 윙윙이에 대한 교육의 목적.


5살 아이답지 않게 속이 깊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언제 인내심에 한계가 올지 모른다.


‘작물이 두 종류라면 조금 더 참기 수월하겠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자라는 작물이 있다면, 그 왕성한 호기심을 자제하기가 비교적 쉬울 것이라는 계산.


물론 의외로 현실적인 고려도 함께였다.


‘줄기가··· 굉장하다.’


느리게 자라는(저번의 들깨를 기준으로 놓았을 때) 토마토의 줄기는 그 느림의 반동일런지 몰라도 상당히 굵었다. 기껏 박아놓은 지지대가 필요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굵고 튼튼해 보이는 줄기다.


빠른 생장에 집중 되었던 힘이 강한 생장으로 전환된 것일까? 아직도 원리와 한계를 알 수 없는 윙윙이의 힘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표본을 넓혀 볼 필요가 있었다.


“아저씨. 이 뽀바는 이름이 머야?”

“이건 옥수수야. 어제 봤던 노란색 뽀바.”

“반짝 뽀바는 토마토, 노랑 뽀바는 오쑤수······.”


그렇기에 대성이 선택한 다음 작물은 옥수수. 지력 소모가 어마어마하고 수분이 많이 필요한, 어떻게보면 토마토와 비슷하면서도 반대의 영역에 있는 작물.


“윙윙이가 보기에 얘는 어때? 토마토랑 옥수수는 조금 달라?”


아이에게는 어려운 질문일 것이 분명하지만, 윙윙이는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아저씨는 아저씨. 윙윙이는 윙윙이.”


이번에는 대성이 고개를 갸웃할 차례. 윙윙이의 말이 이어졌다.


“반짝 뽀바는 토마토, 노랑 뽀바는 오쑤수. 으음······.”


말하고 나서도 정리가 잘 안 되는지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는 윙윙이. 별다른 질문 없이 한동안 함께 생각하던 대성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다 다르다? 아저씨가 아저씨고, 윙윙이가 윙윙이인 것처럼? 뽀바들도 엄연히 각각의 뽀바들이다?”

“응! 엄연이! 각각이!”


아이의 대답이란, 가끔은 꽤 명쾌한 구석이 있다. 대성은 빙긋 웃으며 옥수수를 심고, 물과 비료를 듬뿍 얹어준 후에 윙윙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뭘 읽어줄까?”

“피노키오!”

“그럴까? 오늘 윙윙이 고생했으니까?”

“응? 윙윙이 고생 안 했는데?”

“그럼 오늘은 다른걸······.”

“윙윙이 고생해써! 피노키오!”


이 날 대성네 농장에는 두 작물이 심어졌다. 동쪽에는 토마토, 서쪽에는 옥수수.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라는 작물에 대한 걱정일랑 내일로 미루고, 두 작물을 심은 두 사람은 도란도란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농장의 하루가 또 한 번 저물었다.


* * *


그 무렵, 대한민국 최고, 나아가 세계 최고도 노려볼 수 있는 백아 그룹 회장의 집무실에는 지금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회장과 그의 사랑하는 막내딸 백설이.


“계약이요?”

“그래, 하겠니?”

“하면, 뭐 해주실 건데요?”

“뭘 원하니?”


백회장의 막내딸은 가만히 웃었다. 혐오하는 재벌이자 사랑하는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백설에게 이런걸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스무살 이후 8년째 같은 부탁을 해왔으니까.


“오빠 언니들에게 주식은 물려주되 경영권은 상속하지 마시고, 회사는 전문 경영인으로 운영해 주세요.”


거절할 수 밖에 없는 부탁, 언젠가부터 백설도 이런 부탁이 먹힐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거절의 이유를 대충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더욱 부탁했고


“네가 가져올 물건이 ‘진짜’라면. 그렇게 하마.”


그렇기에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

“그렇지. 아예 계약 조건까지 말해줄까?”


다른건 몰라도 아버지 백회장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으니까. 온갖 편법과 탈법을 자행하는 백회장이지만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켰다.


“네가 처음 가져온 물건이 ‘진짜’라는 가정하에, 그 곳의 물건을 1톤 어치 가져올 것.”


그러고보니 무슨 계약인지를 묻지 않았다. 어차피 아버지는 거절할테고, 그럼 자신도 거절할 생각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이 미묘한 무게는 뭔가. 1톤이라니.


“무슨 물건인데요?”

“식재료. 특정한 곳에서만 생산되는 식재료.”

“식재료 1톤이요?”


순간 백설의 눈에 의심과 실망이 스쳤다.


“이런 식으로 장난 치시는 거에요? 백회장 아버지?”

“장난이라니?”


아버지의 지독한 미맹은 당연히 알고 있다. 그걸 어떻게 해보려고 형제부터 직원들까지, 회장 본인까지 온 세상을 다 뒤지는 것도.


“천하의 백회장님이 식재료 1톤으로 이런 부탁을 들어준다고요? 애초에 불가능한 걸 달아서 포기 시키려는 거죠? 트러플? 캐비어? 사프란? 뭔데요. 1톤이면······.”


이들은 모두 그램 단위로 판매 된다. 회장이 특별히 구할만한 거라면, 그것도 경영 상속마저도 포기할 정도라면 어마어마한 가격일 터. 1톤이면 백만 그램이다.


“하! 해드리죠! 까짓거 죽어라 모으면 1톤?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네요! 대신 약속은 꼭 지키세요! 제가 귀신이 되어서라도······.”

“트러플은 혹시 몰라도 캐비어는 아닐거다. 우리나라 산에 있는 평범한 농장이니까.”

“예?”

“그리고 왜 벌써부터 화를 내고 그러냐? 거기서 뭐가 나오든 기간이 얼마나 걸리든, 합쳐서 누적 1톤이다.”

“예??”


말도 안 될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이다. 농장에서 생산되는 식재료 누적 1톤. 얼핏 많아보이지만, 평범한 농장이라면 아무 문제 없다.


파격적인 제안에 이어 더욱 놀라운 일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건 계약서다.”


다른 어떤 장난질도 통하지 않는, 명백한 서면 계약서.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키는 아버지가 이렇게 나온 이상, 믿을 수 밖에 없다. 백설은 믿음만큼이나 강렬한 무언가를 느꼈다. 이 일은, 분명 만만치 않은 일이다.


“거기서 재배하는 게 뭔데요?”

“그건 아빠도 모르지. 그리고 어디까지나 네가 처음 가져온 것이 ‘진짜’여야 계약 시작이란다.”

“대략적이라도.”

“음······ 한번은 수박을 먹은적이 있었는데······.”


백설의 의심이 조금 더 짙어졌다. 수박의 무게는 개당 8kg 정도. 규모가 조금 큰 농장이라면 1톤 어치 무게는 2년 안에 달성할 수도 있다. 너무 쉽다.


“지금 당장 갈게요.”

“주소는 여기 적어두었는데······.”


너무나 쉬운 조건,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백회장의 제안. 말처럼 쉬울리가 없다. 손에 들린 쪽지를 낚아채며 백설이 방을 나섰다.


“일단은, 다녀와서 뵙죠. 백회장 아버지.”

“아, 저기······ 설아!”

“네.”

“저기······ 음······.”


백회장이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백회장이라는 말은 빼고 불러주면 안 되겠니? 아빠가 이렇게까지 양보 했는데······.”


백설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건 제가 가져온 물건이 ‘진짜’라면 그때 해드릴게요. 백회장 아버지!”


이내 문이 쾅 닫히고, 그 닫힌 문을 다시 열고 비서가 들어올 때까지. 백회장은 잠깐 멍하게 앉아 있었다.


“대화가 잘 되신 것 같군요.”

“그래, 이제 남은건 기다리는 것 뿐이지.”

“의외군요.”

“뭐가 말인가?”

“막내 아가씨가 수락하실 거라고는······.”

“해주기로 했거든.”

“예? 뭘 말입니까?”


오늘따라 예?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생각하며 회장은 대수롭지 않은듯이 말했다.


“올해로 8년째 해오던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거든.”

“예??”


비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당연하다. 경영권 상속 포기라는 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그 누구보다 회장이 잘 알고 있다.


“1톤 어치 가져와달라고 했네. 그리 쉽진 않을 거야.”

“아······ 1톤······.”


비서의 눈이 안도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품었다. 경영 승계에 대한 안도, 막내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회장의 식사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그게 됐으면··· 지금도 맛있는 식사를 하고 계셨겠죠.”


그 농장을 알게된 10년 전부터 회장과 비서진들은 대성의 아버지에게 제발 농사 구역을 넓히고 재배량을 늘려달라고 애걸복걸에 협박까지도 동원해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애원과 협박이 슬슬 도를 넘을만한 시점에서 대성의 아버지는 그 애원과 협박을 받아들였다.


자신만의 형태로 받아들였다.


“그 해에는······ 생강 뿐이었지.”

“하필이면 보관도 어려운 작물이라······.”

“그래······ 고생 좀 했지······.”


과거를 떠올리며 이렇게.

이곳의 하루도 또 하루 저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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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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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힘껏 하는 것과 함께하는 것 (2) NEW 17시간 전 45 2 11쪽
14 힘껏 하는 것과 함께하는 것 (1) +2 24.09.18 73 6 12쪽
13 하자 +1 24.09.17 87 8 11쪽
» 할 수 있으면 24.09.16 93 7 12쪽
11 대충 아무거나 24.09.14 92 10 12쪽
10 웃으며 전력 질주 24.09.13 104 9 11쪽
9 사과의 방식 (2) 24.09.12 108 9 12쪽
8 사과의 방식 (1) 24.09.11 117 10 12쪽
7 적당히 해 +1 24.09.10 128 10 12쪽
6 윈-윈. 윙윙 +1 24.09.09 132 11 12쪽
5 개화만사성 +1 24.09.08 146 12 11쪽
4 아버지와 아들 +1 24.09.07 156 12 11쪽
3 뽀바 +1 24.09.06 175 13 12쪽
2 귀농의 귀가 그런 뜻이었어? +1 24.09.05 187 12 11쪽
1 힘들면 그래도 된다 +1 24.09.04 200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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