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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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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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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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만사성

DUMMY

10년 만에 내려온 고향은, 정확히 말하자면 구서리의 풍경은 변한 게 없어 오히려 낯설다.


고층 건물이나 이곳저곳에 아스팔트가 깔린 것도 아니지만 낯설다.


없던 것이 생겨서가 아니라 있던 것이 없기 때문이다.


종묘샵 하던 박사장 아저씨도, 닭갈비를 기깔나게 하던 계씨 아주머니도 모두 읍내로 옮겼다.


“분위기가 확 달라지네.”


시골의 이미지는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읍내의 이미지는 각각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봉황면의 인구는 2천, 그 안의 구서리 인구는 40명. 반면에 광천시의 전체 인구 20만 가운데 4만 명이 광천읍에 산다.


그래서인지, 면 단위의 지역 소멸과 중심 지역의 도심화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광천시의 읍내는 어떻게 보면 지역적 혼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소멸된 지역의 인구가 몰려들고, 시내의 중심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정착하는 곳.


오래된 철물점과 대기업의 AS센터가 함께 존재하고, 지역의 오랜 맛집과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이웃하는 곳.


특별할 것 없는 적당히 오래된 도시의 풍경이다.


* * *


철물점에 들러 방수포를 사는 건 딱히 수고라 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종묘샵.


‘아, 그리고 산삼 종자 말인데. 혹시나 없다고 할 수도 있거든? 그럴 때는 마스크를 벗어라.’


도통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조언이 어딘가 마음에 걸렸다.


‘마스크를 벗어요?’

‘그래, 그러니까 일단 들어갈 때는 마스크를 쓰고 가.’


굳이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이 조언이 신경 쓰이는 이유는 아버지의 과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산에 틀어박혀 신선처럼 은거하고 있지만, 소싯적의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장난을 치곤 했다.


어머니 생전에 그렇게 등짝을 맞아가면서도 그 유치한 장난은 사그라들 기미가 없었고, 덕분에 대성은 고향을 떠나기 전에 그 어떤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들었다.


“나도 참, 별걱정을 다 하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의 눈에 그 장난기는 일절 보이지 않았기에 대성은 걱정을 훌훌 털어버리고 아버지가 말했던 종자샵의 문을 열었다.


아는 얼굴이 보였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동네 사람들에게는 호구박이라고 더 자주 불렸던 박종남 아저씨다.


10년 만에 보는 것에 대한 반가움과, 10년 만에 찾아온 것에 대한 어색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올라왔다.


“저··· 저기, 산삼 씨를 사러 왔는데요.”

“산삼 씨? 그런 건 없는데?”

“예? 없어요?”

“없지. 요즘 누가 산양삼을 씨앗부터 키워?”

“예? 그럼 어떻게 키우는데요?”

“요즘은 다 종근으로 시작하지. 종근이라도 줘?”


씨앗부터 발아시키기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보리 같이 대규모 경작을 할 게 아니라면, 이미 씨앗에서 발아시킨 종근을 심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 근방을 전부 뒤져도 산삼 씨앗 파는 데는 없을걸? 요즘은 인터넷이 워낙 발달해서 우리도 잘 팔리고 자주 팔리는 거 아니면 가게에 못 두거든.”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나 없다고 할 수도 있거든?’


잔뜩 분위기 잡고 나서 ‘당연한 말’을 하는 건 아버지의 장난 레퍼토리 중 1번에 속했다. 잠깐이나마 긴장했던 자신을 비웃으며 대성이 마스크를 벗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대성이 인사를 건네려는 그때


“얼굴이 낯이 익은데······. 어? 너!”

“너무 오랜만······.”

“설마! 너! 이 새끼!”


대성이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박사장 아저씨였다.


“진짜냐? 진짜야?”

“아, 예. 진짜······.”

“진짜구나!”


대성이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박사장 아저씨의 표정 때문이었다. 아저씨의 표정은 뭐랄까.


반가움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것이었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그게 진짜였어!”

“예?”

“예?는 무슨 이 자식아. 친구한테 임마!”

“예?? 친구요??”

“어? 어······. 그러고 보니 얼굴이 좀 다른······.”


설마하며 대성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 대성입니다. 아저씨.”

“대성이는 또 누군······ 아, 자네 아들?”

“아버지가 아니고 대성이요. 알아보시겠어요?”


아까까지 경악으로 물들어 있던 표정이 반가움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야! 이게 누구야! 대성이 아니냐!”

“예예, 그간 못 찾아봬서 죄송해요. 하하.”

“죄송하긴 임마! 사람이! 큰일 하러 간 건데.”


어떤 이상하고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금세 이런 표정이 되는 것이 박사장, 박종남 아저씨의 매력이었다.


“근데 방금은 뭡니까? 절 왜 아버지라고······.”

“아니, 네 아버지가 글쎄. 10년 전인가 했던 말이 있었거든? 그게 마침 방금 팍! 하고 떠오르지 뭐야?”

“예? 뭐라고 하셨는데요?”

“젊어지는 산삼을 키울 거라고.”

“예? 그걸 믿으셨다고요?”

“당연히 안 믿었지. 근데 네가 마스크를 벗으니까 옛날 얼굴이 팍! 하고 떠오르더란 말이야.”


박사장 아저씨의 또 다른 별명인 호구박은 이런 점 때문에 붙은 것이었다.


* * *


박사장 아저씨에게서 산삼 씨앗을 예약한 후 이동한 곳에서, 대성은 이와 비슷한 상황을 또 볼 수 있었다.


“아이고, 난 또 네 아버지가 오랜만에 이상한 걸로 장난치는 줄 알았지 뭐니?”


10년 전에 구서리에서 하던 작은 닭갈비 집을 읍내에서 제법 크게 확장한 계씨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하하, 아주머니도 아버지 말에 속으셨어요?”

“속기는? 내가 저기 호구박이니? 다행이다 싶었지.”

“다행이요?”

“그 왜, 니네 아버지. 5년 전부터 농담도 안 하고 장난도 안 치고 해서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데.”


5년 전이라면 아버지가 ‘귀안’이 닫혔다고 했던 때다.


“아, 사정이 좀 있으셨대요.”

“뭐 니 아부지도 그렇게는 말하더라만. 그건 그렇고 대성이는 어쩐 일로 내려온 거야?”

“아···. 뭐, 아버지 일도 도울 겸 해서요.”


대성이 잠깐 잊고 있었던 게 있다.


“그래, 뭐 대기업 다닌다는 말도 들었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돈을 얼마나 벌건간에 자식이랑 같이 있는 게 최고야. 니네 아부지 너 가고 나서······.”


계씨 아주머니는 엄청난 수다광이다.


“니네 아부지. 너 가고 바로 철들어 버린 거 봐라. 사람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거나 하던 짓을 안 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걱정 걱정을······.”

“아주머니! 저 급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 있어서요! 이제 곧 봄이라······.”

“아, 그렇지! 이제 막 내려온 거면 준비할 것도 많겠네! 얼른 가 봐! 자주 놀러 오고. 응? 이건 닭갈빈데 가져가서 불만 올리면 바로 먹을 수 있어. 맛있게 먹고. 응?”

“네! 또 올게요! 건강하세요!”


급하게 닭갈비를 챙겨 대성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 * *


“아버지!”

“어, 그래. 왔냐?”

“좋으시겠습니다. 대성공하셨습니다.”


박사장 아저씨와 계씨 아주머니의 반응을 전해 들은 아버지는 간만에 흡족한 얼굴이었다.


“여전하구먼. 그 친구들도.”

“여전해요? 최근에 안 보셨습니까?”

“보기야 봤겠지. 근데 5년 전부터는 그냥 멍하게 살았다보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지난 시간이라는 것은 좀처럼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둘의 교류는 전화상으로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대성은 그닥 살가운 아들이 아니었고, 아버지 또한 대성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시간이 썩 순탄치 않았을 거라는 건 안다. 회사 일에 몰두하던 대성이 그랬으니까.


몇 가지 다행인 점은 지난 10년 중에 최소한 5년간은 아버지가 외롭지 않았을 거라는 것, 그리고 예전만은 못하지만 사소한 장난 정도는 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닭갈비 얻어왔어요. 드실 거죠?”

“그래, 나는 가서 깻잎 좀 따오마. 그새 또 자랐더라.”


* * *


계씨 아주머니가 미리 재워둔 닭갈비를 팬에 넣고, 그 위에 양배추를 올린 후 양념장을 입혀준다.


갓 딴 깻잎과 마트에서 사 온 대파를 넣고, 깻잎의 숨이 죽을 때까지 볶는다. 고기와 양념의 감칠맛과 채소류의 향긋함이 집 안을 가득 채울 즈음


“밥이가 하늘새깔이야.”


어느새 둥실둥실 나타난 아이가 말했다. 빨갛게 볶아지는 닭갈비가 퍽 신기했던 모양이다.


“요 녀석. 갈 때는 얼른 오라고 성화더니. 인사도 없이 먹을 거부터 찾는 거야?”


민망한 건 아는 모양인지 깜짝 놀란 표정을 하더니 픽하고 사라진다.


“어디 갔어? 빨리 인사 안 해?”


짐짓 삐친 체를 해보자 픽하고 다시 나타난다.


“얼른, 다녀오셨어요. 해 봐.”

“언능 다녀오덧더요······.”


얼른은 빼고 말해야지 같은 말 따윈 하지 않는다. 하라는 대로 했으면 일단은 칭찬이다.


“잘했어요. 한번 먹어볼래?”


고개를 붕붕 끄덕이는 아이. 육신이 있었다면 군침도 질질 흘렸을 것만 같은 모습이 퍽 귀엽다.


충분히 익힌 닭갈비를 적당한 그릇에 담고, 옆에 향을 피운다. 이 정도의 간단한 제식으로도 음식을 주는 것이 가능한 모양이다.


쪼르르 날아와 그릇 위에 정갈하게 담긴 닭갈비를 집어 먹은 아이가 이내 안절부절못한다.


“어? 매워? 매운 거야?”

“으으! 입이 반짝반짝해! 입이 반짝반짝해!”


고개를 붕붕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에 대성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고, 귀신이 매울 거라는 생각을 못 했네. 아버지, 술? 술이라도 뭐 없어요? 아, 애지 참. 물 여기 마셔!”


대성의 호들갑에 식탁에 앉아 있던 아버지도 놀랐다.


“왜 그러냐? 무슨 일인데?”

“애가 매운 걸 느끼나 봐요. 완전 난리네.”

“얼른 진정시켜줘라.”

“어떻게요?”

“애라며? 둥가둥가 해줘야지.”


일평생 육아를 해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대성이지만, 급박한 상황 탓인지 저절로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아이, 매운 거 다 사라져라.”


말하고 나서는 아차 싶다. 그동안 이름도 없이 불렀구나. 나중에 이름 먼저 물어봐야겠다.


“매운 거, 다 사라져라.”


몇 번 반복해서 말해주자, 아이의 얼굴이 평온해졌다. 그리고는


“반짝반짝! 뜨거어!”


매운 느낌 다음에는 뜨거운 느낌인가. 꼭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을 마셔서인지, 매운 거 다 사라지라는 말 덕분인지, 매운맛이 적당히 중화된 것 같다. 기분 좋게 배시시 웃던 아이가 이내 텃밭으로 달려 나갔다.


“아까까진 맵다고 뒤집어 지더니. 맛은 있었나 보네요. 아오, 내가 다 까무러치는 줄 알았네.”

“너 키울 때, 나도 똑같았어 이 녀석아.”

“아버지 한창 장난치면서 마을 사람들 골탕 먹일 때는 생각 안 하세요? 제 어릴 때 속 썩인 건 그걸로 퉁······.”


텃밭에서 방방 뛰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한숨 돌리던 대성의 눈이 점차 경악하듯 크게 떠졌다.


“어? 뭐지? 아버지. 저거 뭡니까?”

“내 눈에는 안 보인다고 몇 번을 말하는······.”

“저거 설마 그겁니까?”


기분 좋은 듯이 텃밭에서 방방 뛰는 아이의 아래, 그러니까 들깻잎의 줄기가


“꽃 아닙니까?”


꽃을 피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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