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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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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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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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방식 (2)

DUMMY

“윙윙아~ 점심 먹을까?”


산삼 사건 이후로 윙윙이는 조금 달라졌다.


“윙윙이, 오늘은 아무거또 안 해떠.”


이 날도 분명 대성과 텃밭에 나가 풀을 뽑고, 깻잎의 생장을 촉진 했다. 윙윙이의 말대로라면, 식물들과 놀아 준 것인데······


그 특유의 노는 방식이 영 조심스러워졌다.


신이 나서 방방 뛰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이유를 묻는 대성에게 윙윙이는 이렇게 답했다.


“안뽀바가 힘드러 하먼 어떠캐.”

“안 뽀바가 뭐야?”

“뽀바는 뽀바인데 얘는 마니 뽀바야.”


잡초를 가리키며 말하고


그 다음엔 깻잎을 가리키며 말한다.


“안 뽀바는 뽀바인데, 얘는 안 뽀바야.”


맨 처음 윙윙이가 뽑은 것은 잡초였고, 처음으로 뽑지 않은 것은 깻잎이라 그렇게 이름 붙여진 듯 하다. 많이 뽑아야 하는 쪽과 안 뽑아야 하는 쪽.


“안 뽀바가 힘들어 할 수도 있으니 놀기 어렵다?”

“으응······.”


확실하다. 소심해졌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몇 십년을 살아온 대성의 관점에서도 산삼 사건은 꽤 혼란스러운 일에 속했으니까. 아이의 관점에서보면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


이런 윙윙이의 소심함은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윙윙이의 달라진 모습이 그 뿐만은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아저띠. 이거는 머야?”

“이건 휴대폰이라는 거야.”


소심해진 것의 반대 급부인지 부쩍 호기심이 늘었다.


“후대포니?”

“음······ 휴대폰이 뭐냐면······.”


덩달아 대성이 설명해야 하는 영역도 대폭 늘었다.


“아저띠. 머해?”

“응··· 아저씨는 공부 중이야.”

“곰부가 머야?”


이런 질문 공세가 지금 대성이 겪고 있는 문제 중 하나였다.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가끔 혼란스럽다.


“공부는······. ”


육체를 가지지 않았다는 차이 하나만으로, 윙윙이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일은 꽤나 어려운 일이 된다.


가령, 육체가 없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윙윙이는 배설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생물은 살아가기 위해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 그 노폐물은 보통 버려진다. 하지만 정작 제사상을 먹고나서 윙윙이가 하는 그 비슷한 행위는


“이제 곧 있으면 들깨가 나오겠네.”


노폐물이라기보다 에너지에 가까운 무언가다. 이런 관점에서 윙윙이가 바라보는 새나 대성의 배설은 지극히 비효율적인 행위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어떤 보호자도 아이의 모든 궁금증을 해소해 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유치원 같은 곳에서 지식과 사회성을 함께 학습한다.


그리고 이곳에는 윙윙이를 위한 유치원이 없다.

대성은 이 사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한다.

하지만 절이 없으면? 중이 만들어야지.


“유치원이라······ 못할거 있나?”


이 순간, 대성 농장에 단 한 가구만을 위한 유치원이 만들어졌다.


아동학개론이나 아동심리학 같은 전문적인 분야는 천천히 공부해 나가기로 하고, 대성은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행동에 들어갔다.


“오늘부터는 이야기를 들려 줄거야.”


대성이 선택한 것은 동화. 아이에게 꿈과 희망은 물론 교훈까지 선사해주는 인류의 훌륭한 자산이다.


“여러분, 이 책은 왕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 나무 토막의 이야기랍니다.”

“······!”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처음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본 사람처럼, 윙윙이는 대성이 읽어주는 동화 속 이야기에 정신 없이 빠져 들었다.


“삐노키오······.”


읽어준 동화는 피노키오였는데,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텃밭으로 쪼르르 날아가 들깨대(윙윙이 식대로라면 안 뽀바)에게 피노키오라는 이름을 새로 붙여준다.


이 정도면 읽어주는 사람이 감동할 정도다.


물론 부작용도 없지만은 않았다. 피노키오의 대략적인 맥락을 단 번에 이해한 이 어린 천재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피노키오에 나오는 모든 단어를 물어보곤 했으니까.


토막, 입에 풀칠, 서커스 등 처음 들어보는 모든 단어를 질문해댔고, 대성은 설명할 수 있는 모든 단어를 설명하고, 서커스의 경우는 간단한 시범까지 보여야 했다.


괜한 일을 벌인게 아닌가 싶은 후회도 있었지만, 윙윙이의 정신적 회복에는 그야말로 즉효.


작은 아이가 깻잎꽃 옆에서 자신이 들은 피노키오의 내용을 그대로 외우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빤니 나와! 안 그러먼 진짜 본때를 보여 줄 테다!”


대성이 읽어준 피노키오의 국내 번역본 중 하필 저 부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하다부지는 안딤하며 중얼거려떠요.”


이쪽을 힐끗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쪼르르 날아온다.


“이 담이 머야?”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나무토막을 매끄럽게 문지르며 모양을 다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런······.”

“아! 아라! 아라!”


다시 쪼르르 달려가서는 다음 내용을 외워준다.


“히히히, 그만하데요. 간지럽단 마리에요!”


피노키오의 극초반 부분. 제페토의 친구이자 유명한 목수 안토니오는 식탁 다리를 만들다가 우연히 ‘말하는 나무토막’을 발견한다.


이윽고 오랜 친구를 찾아온 제페토. 안토니오와 제페토는 사소한 일로 심한 말다툼을 벌이지만.


“나이 먹고 이게 무든 짓인가. 제페토 하라부지가 옷을 툭툭 털며 말해떠요.”


이내 화해하고, 말하는 나무토막을 건네준 안토니오와 제페토는 다시 친구 사이로 돌아간다.


한참 기쁜듯이 놀고 있던 윙윙이는 바로 이 부분을 말하고나서 우뚝 멈춰섰다.


“윙윙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한참을 곰곰히 생각하던 윙윙이가 입을 열었다.


“윙윙이, 대다난 걸 깨다라떠.”

“응? 뭘 깨달았는데?”

“칭구는 화해를 하먼, 칭구가 되는 거여떠.”


뭔가 굳은 결심이 엿보였다.


“윙윙이는 탄담이랑 화해 해야 대.”

“산삼이랑? 엊그제 사과 했잖아.”

“윙윙이는 아직 못 해떠.”


아무래도 옆에서 대성의 사과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과해야 진정한 화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 * *


윙윙이는 과연 몇 살일까.


얼핏 봐서는 다섯살쯤 먹은 아이로 보이지만, 다섯살로 보기에는 발음이 조금 어색하고 그 아래로 보기에는 생각이 꽤나 어른스럽다.


“안토니오 하라부지는 제페토 하라부지한테 턴물을 줘떠. 윙윙이는 탄담에게 턴물을 안 줘떠.”


잔뜩 폼을 잡은 얼굴과 달리 말투는 상당히 엉성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전혀 엉성하지 않다.


“아저띠는 탄담이가 조아하는 곳을 줘띠만 그거는 아저띠가 둔 턴물이야.”


지금 윙윙이는 ‘사과란 말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잘못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말을 자기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윙윙이는 잠을 못 자게 해뜨니까, 탄담이 잠을 잘 잘 두 이께 해조야대.”

“잠을 잘 수 있게?”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윙윙이는 산삼이 있는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채 무언가에 집중하듯 조용조용 속삭였다. 그러자


산들산들 불던 바람이 갑자기 멎었다.


나지막한 새소리, 벌레 우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의 떨림이 모두 멈췄다.


중간중간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압도적인 고요. 그 속에서 윙윙이가 시원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대따.”


나지막한 새소리, 벌레 우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의 떨림이 다시 시작 됐다.


뭐가 되었다는 것인지 머리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성은 무언가 ‘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된거야?”

“대떠.”


윙윙이가 다 되었다면 된 것이겠지. 한숨을 휴 쉬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대성을 윙윙이가 다시 붙잡았다.


“아저띠. 나무 뒤에 바야 대.”

“나무 뒤에? 뭐가 있는데?”


윙윙이의 지시대로 나무 뒤편을 본 대성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적당히 거리를 벌려두고 심었던 여러 산삼 중 단 하나에 새빨간 열매가 맺혀 있었다.


“이거 가져 가야 대.”

“가져 가라고? 열매를?”

“아니. 탄담.”


사과하고나서 바로 노략질을 한다는 생각이 잠깐 머리에 돌았기에 대성은 지체 없이 질문을 이어갔다.


“산삼이 가져가라고 한 거야?”

“응.”


산삼은 보통 몇 년을 숙성 시킨다. 이렇게 몇 일만에 자란 산삼은 들어본 적이 없다.


“조금 더 자란 다음에 가져가면 안 될까?”

“안 대. 지금 가꼬 가야 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윙윙이는 이 산삼을 가져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지금. 대성이 직접.


이렇게까지 말하면 가져갈 수 밖에 없다.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대성은 산삼 주변의 땅을 파 뿌리가 상하지 않게 채취했다.


“대따!”


산삼과 윙윙이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는지 대성은 알 수 없었지만 윙윙이의 얼굴에 후련한 기색이 보이는 것은 아주 보기에 좋았다.


“아저띠. 삐노키오.”


산삼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잠깐 사이, 윙윙이는 피노키오를 또 한 번 읽어달라고 졸랐다. 딱히 어려울 것 없는 일이다. 대성은 이북을 켜고 몇 번째인지 모를 낭독을 시작했다.


“···두 친구는 마침내 화해했어요. 제페토 할아버지는 나무토막을 들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 왔답니다.”


산삼은 다른 작물과 달리 영험한 기운이 있다던데, 윙윙이와 산삼은 어떤 교감을 나누었길래 자신들 중 가장 잘 자란 녀석을 대성이 손에 쥐어준 걸까.


그리고 이 녀석은 왜 다른 산삼들보다 압도적으로 빨리 자란 것일까.


대성의 고민은 피노키오의 마지막 대사를 읊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피노키오는 생각했어요. 꼭두각시였을 때의 내 모습이란,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언제 자러 갔는지 윙윙이는 사라져 있었고, 윙윙이가 있던 곳 너머로 아까 가져온 산삼이 모습을 뽐내고 있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당장은 알 수 없는 노릇. 그리고 그런 고민을 신경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이 산삼은 때깔이 너무 곱다.


엊그제 심은 것이라 크기야 당연히 작지만, 선명한 녹색 잎과 붉은 열매의 조화가 훌륭하다.


더욱이 아까부터 은은히 풍겨 나오는, 맡기만해도 건강해 지는 것 같은 이 향기는··· 이게 엊그제까지만해도 그저 씨앗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게 만든다.


“당연히 먹으라고 준 것이겠지······?


식물은 당연히 의사를 전달할 수 없다라던가, 산삼은 체질이 맞지 않으면 부작용이 심각하다. 같은 상식이 머리 속에 스치지만,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죽어도 먹고 죽자는 게 이런 느낌인 건가.”


섭취 전의 유의사항은 대충 알고 있다. 금주와 금연을 삼가고 공복에 먹을 것.


마침 지금이 아닌가. 술과 담배는 원래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고 마침 지금은 공복이다.


사실 공복은 전날부터 유지해야 한다던가 하는, 조금 더 까다로운 다른 유의사항들은 머리 속에서 지워 버리고 대성은 산삼을 씹었다.


“다르다.”


건강식품이야 이전에 종종 먹어본 적이 있지만, 이 산삼은 뭔가 다르다. 흙맛 같은 것이 조금 나지만, 맛이야 아무래도 좋다.


먹자마자 몸에서 열이 돌고 기운이 솟구친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 열이 가라 앉지 않는다.


“어······?”


얼굴에 홍조가 피고 눈이 충혈되며 두통이 엄습한다. 검정색 코피가 쏟아지고 온 몸이 가렵다.



몇 번 휘청인 후.

대성은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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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힘껏 하는 것과 함께하는 것 (1) NEW +2 22시간 전 51 4 12쪽
13 하자 +1 24.09.17 74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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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대충 아무거나 24.09.14 82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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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버지와 아들 +1 24.09.07 144 12 11쪽
3 뽀바 +1 24.09.06 161 13 12쪽
2 귀농의 귀가 그런 뜻이었어? +1 24.09.05 173 12 11쪽
1 힘들면 그래도 된다 +1 24.09.04 186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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