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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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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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바

DUMMY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귀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대성은 믿지 않는 쪽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걸 두려워하는 건 여러모로 비효율적인 일이니까.


“제 등을 타고 올라오더니··· 아까부터 저를 빤히 쳐다보고, 이제는 막 만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절대 존재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귀신이, 등에 업힌 채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지금. 대성은 좀처럼 침착해지기 어려웠다.


“만진다!”


그게 설령 외견상으로는 하나도 무섭지 않은, 평범한 5살 아이처럼 보인다 해도 말이다.


“뭘 그렇게 떠냐? 아까 벌레들 있을 땐 멀쩡하더니?”

“민달팽이랑 벌레 쫓아내는 거요? 그때 그 사람들은 멀리 있었고, 지금 얘는 너무 가까운데요.”

“흠, 이상하네. 이상한 일이야······.”

“뭐가 이상한데요?”


대성은 진짜 이상한 건 아버지와 귀신들이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아까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만, 분명 한 두 명도 아니고 여럿이 보이던? 전부 또렷하게?”

“네, 안경 벗어도 또렷하게. 자꾸 뜸 들이지 말고 얼른 말해줘요. 여럿이 보이면 안 되는 겁니까?”

“원래 처음에는 흐릿하게 보이기 마련이거든. 만진다거나 소리를 듣는다거나 이런 건 한참 후의 일이고.”


일부러 뜸을 들인다기보다는 기존의 경험적 지식을 넘어서는 상황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하나만 더 묻자. 방금 말한 꼬맹이. 등을 타고 올라온 건 어떻게 안 거냐? 등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닐 텐데.”

“···어? 그러고 보니까 그건 진짜 이상하네요?”


어깨 너머로 눈이 마주쳤으니 당연히 알 수 있는 게 정상이지만, 대성은 꼬마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도. 그러니까, 등에 업힌 순간부터 이미 아이의 존재를 느꼈다.


육체가 없다면 무게도 없어야 하는 게 정상.

그렇다면 영혼에 무게가 있는 것인가?


“무게감···은 아닌데, 존재감? 그런 게 느껴지는데요?”


하나가 아닌 여럿이 보이고, 귀신을 존재 자체로 느끼는 대성. 아버지는 이것의 의미를 간단히 함축했다.


“너, 아무래도 천재인 것 같다.”


* * *


“천재요?”


천재라는 말이 이렇게 불편하게 들린 적은 처음이다.

대성의 어조가 조금 급해졌다.


“농사든 뭐든 일단 할 테니까, 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뭘 해야 하는지부터 좀 빨리 말씀해 주시죠.”

“그렇다면······ 일단 따라와라.”


* * *


아버지가 대성을 끌고 나온 곳은 산속 집 앞의 텃밭.


산속의 텃밭이라기엔 조금 넓은 이곳에는 아직 2월인데도, 방치된 잡초들이 허리만큼 자라 있었다.


“여기 밭에서부터 시작해 보자꾸나.”

“이게 밭입니까? 숲이라고 해도 믿겠네.”


그동안 농사를 관뒀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닐 터, 감개가 무량한듯한 아버지의 표정이 이를 증명했다.


“원래는 천천히 친해진 후에나 부탁할 수 있는데, 벌써 가까이 왔다니까, 어디 한번 부탁해 봐라.”

“······부족한 아들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나한테 말고 욘석아, 너한테 붙은 꼬맹이가 있다며? 여기 풀 좀 뽑아달라고 부탁해 보란 말이다.”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으며 대성이 꼬마에게 말했다.


“저기, 여기 얘네들 좀 뽑아줄래?”

“뽀바?”

“응, 이렇게.”


귀신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기에, 여전히 어깨에 태운 채로 대성은 열심히 풀을 뽑았다.


“이렇게!”


뿌리까지 세심하게 뽑아야 한다는 듯, 풀의 뿌리를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러케?”


잔뜩 힘을 준 대성과 달리 간단한 몸짓만으로, 아이는 너무나도 쉽게 잡초들을 뽑아냈다. 심지어


“뽀바!”


뿌리까지 말끔하다.

마치 잡초가 스스로 일어난 것처럼.


“이러케! 마자?”

“맞아!”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맞아! 잘했어요!”

“잘해떠?”


잘했다고 말해주자 더욱 신이 난 모양인지 텃밭 주변의 잡초까지 모조리 뽑아낸다.


“뽀바 더 업더?”


이 모든 일에 걸리는 시간은 단 5분 정도.

이 정도면 어지간한 중장비 뺨치는 수준이다.


“아버지, 그 통장의 비결이 이거였어요?”


어리벙벙한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대성은 아마 자신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예?”

“아, 아니다. 조금 이르지만 다음으로 넘어가자꾸나.”


뭔가 예상과 벗어났다는 표정이지만, 어차피 지금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아버지뿐이다.


* * *


아버지가 말하는 다음 순서는 물과 비료였다.


“물은 둘째치고, 비료는 왜요?”


아직 씨앗도 뿌리지 않은 상태다. 비료는 보통 식물에 영양을 주기 위해 뿌리는 것. 하지만 씨앗에 있는 씨방에는 이미 새싹에 필요한 영양분이 충분하다.


“뭘 심을진 모르겠지만 새싹이 뿌리내릴 수 있게 밭부터 갈아주는 게 낫지 않아요?”


이미 충분한 양분이 있는 씨앗 위에 비료를 덮는다는 것은 신생아에게 고기를 먹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소한 대성이 봤던 책에서는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눈에 순간 놀라움이 스쳤다.


“그걸 네가 어떻게?”

“그냥 뭐··· 이것저것 공부 좀 했습니다.”


언젠가 직장을 그만둔다고 생각했을 때, 이것저것 농경에 대해서 배워둔 덕이다.


“밭갈이는 필요 없다. 이미 됐으니까.”

“피료 업더? 비료가 모야?”


필요라는 말과 비료라는 말의 어감이 겹치는 게 신기한 건지, 아버지와 대성 사이에서 피료와 비료를 연신 외우고 있는 아이. 아버지의 말대로 밭갈이는 필요 없었다. 이 아이가 한 게 있었으니까.


굵직한 잡초들을 단시간 안에 뿌리째로 들어낸 탓인지 밭은 제대로 갈아엎어져 있었다.


“아! 이게 이렇게 되는 거네요?”

“그래, 미리 공부하고 온 건 기특하다만.”


아버지가 인자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 좀 더 배워야겠구나. 특히 우리 산처럼 특이한 땅은 일반 지식과 다른 부분도 있으니 말이다.”


땅을 갈아엎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는 비료를 골고루 퍼트려서 땅 자체를 회복시키는 목적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라면 삽이나 괭이로 일일이 판 후 뿌려야 한다.


하지만, 5년가량을 묵혀뒀음에도 여전히 뽀송뽀송한 땅에, 신묘한 아이가 제초를 완벽히 한 상태라면


밭갈이는 굳이 입에 올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흠흠, 뭐. 앞으로 차차 배워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머쓱한 기분을 굳이 숨기지 않으며 대성은 다음 과제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 * *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현실은 대개 비슷하지만, 이론과 현장은 은근히 다른 경우가 많다.


“비료만 대충 뿌려줘도 땅이 알아서 비옥해진다고···?”


아까 전의 밭 갈기 같은 것이 그렇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기 마련이지만, 현장의 순리라는 것은 가끔 그 단계를 지나치리만큼 단축하기도 하니까.


5년을 방치시킨 잡초밭이 여전히 뽀송뽀송하다든가 하는 의문은 그냥 접어두자. 따지고 보면 귀신은 뭐 말이 되나? 대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일했다.


“이만하면 비료는 다 뿌린 것 같은데요?”


이제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 토 달지 않으리. 대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창고의 비료를 열심히 밭에 뿌렸다.


“비료가 모야?”


열심히 낑낑대며 일하는 대성이 재밌어 보였는지, 아이가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자꾸 묻는다.


“식물이 먹는 밥 같은 거야.”

“밥! 조아.”


어색하기도 하고 아주 약간 동안은 무섭기도 했지만, 계속 보고 있자니 이제는 귀엽기만 했다.


“근데 싱물이 모야?”


뽑는다거나 이렇게! 등의 말은 알아도 전반적인 단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모양이다.


“음······. 풀 같은 건데, 방금 뽑은 게 풀이거든?”

“풀! 뽀바!”

“맞아. 뽑아가 풀이야.”

“뽀바! 재미떠.”

“그래, 재밌지.”


적당히 대꾸해주던 차에 비료 작업이 다 끝이 났다.


“작업 끝! 이제 밥 먹읍시다!”

“밤 머거!”


자신의 말을 따라 하는 아이의 머리를 슥슥 만져주며 아버지를 불렀다. 장비와 여타 물품들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차에 또 하나 질문이 날아온다.


“밥 안 머거?”

“밥은 집에서 먹어야지. 우리 꼬맹이도 얼른 밥 먹자?”

“아니아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아이가 가리키는 곳은 아까 뿌리째 뽑은 잡초들이 모인 곳이다.


“뽀바, 밥. 안 머거?”


왜 식물이 비료를 먹지 않느냐는 말인듯하다. 뭐라고 둘러댈까 고민하던 대성의 머릿속에, 제사상의 장면이 떠올랐다.


배고픔이 한가득이던 얼굴과 제사상의 음식을 입에 넣고 무척이나 행복해하던 얼굴.


그랬던 아이의 얼굴에 지금은 동정 같은 게 담겨 있다. 아마 풀들이 밥을 굶는다고 생각한 거겠지.


내려와서 아무것도 못 먹고, 아까 전의 노동까지 겸해 몹시 허기진 상태. 하지만 이런 얼굴을 봐버리면 허기는 문제가 아니다.


“음, 오늘 뿌린 건 씨앗··· 음, 애기들 먹을 밥이야.”

“애기?”

“음, 직접 보여줄까? 아버지! 종자 하나만 주세요!”


농사는 그만뒀다지만, 그렇다고 잘 키운 종자를 다 버리진 않았을 터. 아버지에게 급하게 받은 토마토 씨앗 하나를 보여준다.


“여기서 풀이 태어나는 거야. 그러니까 풀 애기지.”

“풀애기? 풀이 애기 나아떠?”

“응, 얘가 자라면 풀이 되고, 그 풀이 또 애기를 낳아.”


조금 초조한 듯 보였던 아이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애기! 밥 머거! 조아!”

“그래그래, 이제 우리도 들어가서 밥 먹을까?”


저녁에도 제사상을 차려줘야 하는 건가, 따위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밥을 차려주고 같이 먹는 게 당연한 느낌. 하지만 아이는 집이 아니라 텃밭으로 달려 나갔다.


“풀 애기! 밥 머거!”

“거참, 저렇게 좋아할 일인가······.”


아무것도 없는 텃밭에서 꺄르르 웃으며 노는 걸 보자 하니 아까까지 귀신이 어쩌니, 가업이 어쩌니 하던 것들이 다 부질없이 느껴진다.


“종자는 뭐하게? 바로 심으려고? 아직 2월인데?”

“아뇨, 꼬맹이한테 보여주려고 잠깐 빌렸어요.”


어느새 입가에 헤벌쭉 미소가 번진 대성의 옆으로 아버지가 따라 앉았다.


“이제 내 눈엔 안 보이지만, 뭔가 좋은 걸 보고 있는 것 같구나. 어째, 할만할 것 같으냐?”

“네, 공기도 좋고.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뭘 심을지는 생각해 봤냐?”


땅이 골라졌고, 아직은 2월이니 슬슬 3월쯤에는 파종에 들어갈 수 있다.


“천천히 생각하려고요. 뭐 추천해 주실 거 있으세요?”

“없어. 뭐든 뿌리면 하루 만에 싹을 볼 거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아버지와 이렇게 앉아서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물론, 남들 눈엔 보이지 않는 아이와 함께 할 것이라고도······.


“밥 머거! 밥!”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아이가 급하게 뛰어왔다.


“그래! 밥 먹자!”

“아니아니!”


아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텃밭을 가리켰다.


“응? 밭은 왜?”


초록색 무언가가 자라 있다.


“땅이 좋다더니, 그새 잡초가 또 자랐나?”


자라고 있다. 초록색 무언가가.

그런데 실시간으로 자라고 있다.

생장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풀 애기! 밥 줘떠! 뽀바야 뽀바!”

“풀 애기?”


손아귀를 펴 본다. 아이에게 보여줬던 씨앗은 여전히 손안에 있다. 그렇다면 이건 아니다.


“아버지, 혹시. 여기서 키우던 게 뭡니까?”

“음? 들깨였지. 아마? 한동안은 그것만 키웠으니까.”


대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이가 이끄는 대로 걸었다. 폴짝폴짝 뛰는 아이를 따라, 어느새 줄기에서 잎까지 자라 있는 초록색 무언가를 본다.


“그럼 이건······.”


덩달아 따라온 아버지가 이것의 정체를 말해준다.


“······깻잎 같은데?”


아버지 또한 대성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2월에, 노지에서······.”

“하루 만에 깻잎이 나왔다고?”


쫄래쫄래 따라붙은 아이도 함께다.


“뽀바?”

“아니! 이건 안 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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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화만사성 +1 24.09.08 131 12 11쪽
4 아버지와 아들 +1 24.09.07 143 12 11쪽
» 뽀바 +1 24.09.06 161 13 12쪽
2 귀농의 귀가 그런 뜻이었어? +1 24.09.05 173 12 11쪽
1 힘들면 그래도 된다 +1 24.09.04 184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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