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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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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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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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전력 질주

DUMMY

정신을 차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엉엉 울고 있는 윙윙이의 모습. 그리고 난장판이 되어 있는 집안 풍경이었다.


“아저띠!”

“윙윙아, 이게 다 뭐야?”


대성의 주변에 온갖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대충 살펴보면 향과 음식 재료들이다. 아무래도 윙윙이 나름대로 ‘제사’를 지내보려던 흔적 같다.


“윙윙아, 아저씨는 괜찮아.”

“갠차나?”


빈말이 아니라, 대성은 진짜 괜찮았다. 괜찮은 수준이 아니라 아예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다.


“아주 괜찮아.”


일반적으로 33세의 나이는 여전히 젊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20대 중반부터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그야말로 숨 쉬듯 일을 해온 누군가라면 어떨까.


세월을 직빵으로 맞은 수준은 아니지만 다소 탄력을 잃었던 피부, 문신처럼 새겨진 다크서클, 기다란 팔다리를 도리어 앙상해 보이게 만드는 적은 근육, 저질 체력은 사실상 대성의 상징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산삼을 먹고 깨어난 지금, 그 상징들이 모두 사라졌다. 근육량이야 그대로지만 나머지가 모두.


세수만 했을 뿐인데 피부에 윤기가 돈다. 피가 돌지 않은 듯이 늘 차가웠던 손발이 따뜻하다. 아침마다 커피와 항우울제를 갈구하던 머리가 오늘따라 말끔하다.


“윙윙아. 아저씨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


너무 좋아할 것 없다. 산삼 하나 먹고, 그것도 며칠 만에 비정상적으로 자란 산삼을 먹고 일어난 일. 두말할 것 없이 이상한 현상이다. 대성은 바로 병원을 예약했다.


* * *


“정상이요? 혈압도요?”

“네, 전부 정상인데요? 별다른 의심 증상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정상이라는 말에 대성이 놀라는 이유가 있다.


대성은 고질적인 저혈압 증상으로 10년을 넘게 고생했다. 회사 다니던 시절 격한 운동을 피한 것도, 이전의 산삼 사건에서 노동량이 급격히 늘어날 것을 걱정한 것도 모두 저혈압 증상 때문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저혈압이 개선되었다니. 기쁜 마음보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선생님. 제가 조금 비싼 산삼을 먹었거든요.”


산삼이라는 말에 의사가 싱긋 웃었다. 아무래도 비슷한 일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고혈압, 도취감, 불면, 피부발진, 코피. 이 중에서 섭취 이후 해당되는 사항을 말씀해 주세요.”

“섭취 이전에는 저혈압과 불면이 있었고, 섭취 직후에는 코피, 지금은 약간의 도취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성의 추가 진술에 영향을 받았는지 의사는 그 후로 몇 가지 질문과 테스트를 이어갔다.


“정밀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대성이 마른침을 삼키며 진단을 기다렸다.


“정상인데요? 산삼 먹고 오시는 분들 의외로 많습니다. 정밀 검사를 원하시면 접수는 해드리겠지만, 산삼 하나 먹었다고 백만 원짜리 정밀 검사를 한다는 건······.”

“산삼 하나 먹고 저혈압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겁니까?”


의사가 다시 한번 웃으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거 하나만 가지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전대성 씨. 아까 서울에서 일하다가 내려오셨다고······ 그럼 내려오기 전에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잤습니까?”


서울에서도 익히 들었던 질문이다. 요즘 하루에 얼마나 주무세요? 운동은 얼마나 하세요? 식사는요?


“평균적으로··· 하루 서너 시간 잔 거 같네요.”

“운동은요?”

“점심 저녁으로 회사 계단 오르기 정도······.”

“식사는요?”

“보통은 일하는 자리에서 바로 먹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역시 요즘이다.


“내려오고 나서는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네요.”


내려와서 푹 쉬고 가끔 육체노동도 하고 식사도 제때제때 적정량을 챙겨 먹으니, 이 정도면 저혈압이 아니라 어지간한 중병도 자연 치유될 것이라는 말이 이어졌다.


전혀 납득 못할 말도 아니었기에 대성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병원을 나와 주변을 조금 서성이다가, 조금 빨리 걸어보다가, 마침내 달리기 시작했다.


의사는 그저 정상이라고만 했지만, 아까부터 산삼의 기분 좋은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조금만 격하게 움직여도 두통, 현기증에 눈앞이 흐려지던 지긋지긋한 저혈압 증상은 이제 없다.


‘답답하지 않다. 어지럽지 않다.’


운동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하고 싶지 않아서 즐기지 않았던 것과, 할 수 없이 즐길 수 없었던 것의 차이는 크다. 대성은 병원 주위를 계속해서 달렸다.


달릴 시간이 있고 달릴 여력이 있다.


가지지 않았을 때는 전혀 의식하지도, 딱히 바라지도 않았던 것. 하지만 지금 막 가지게 된 이 순간. 여유 시간과 건강,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제야 어젯밤 자신이 얼마나 미친 짓을 저질렀는지 실감이 난다.


‘죽을 수도 있었던 거 아닌가?’


도심 속에 살았다면,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어제와 같은 갑작스러운 신체 이상이라면 최악의 경우 집 문만 살짝 열어놓고 쓰러져도 된다. 시간이 조금 걸릴지언정 알아서 병원으로 이송됐을 테니까.


하지만 산속 대성의 집이라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주소를 불러준다 한들 산속에 있는 대성의 집으로는 진입 자체가 어렵다.


그나마 119에 전화라도 할 수 있었으면 다행이지, 만약 바깥에 어떤 연락도 없었던 상태로 문을 열고 쓰러졌다면? 찾아오는 것은 구급차가 아니라 멧돼지나 까마귀일지도 모른다.


이런 안전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검증되지도 않은 산삼을 덜컥 씹어 삼킨 것이다.


물론,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대성은 그 산삼을 먹을 것이다. 너무 보양식처럼 생겼으니까······.


‘뭐, 일단 이렇게 건강해진 것도 있고.’


대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구급차를 미리 불렀거나 지인들에게 약간의 연락을 돌려뒀을 것이다.


이상한 산삼의 유혹에 넘어가 덜컥 씹어 먹은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만약의 사태는 늘 대비해 두는 것이 좋겠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무서워서 산을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윙윙이 때문에라도 이제와서 산 외의 다른 곳에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할 생각만 했지, 그 차단 후의 결과가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완벽하게 혼자일 수는 없다.’


언젠가는 윙윙이나 아저씨들 외에 다른 사람들과도 조금씩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가령, 마을 사람들이라든지.


‘물론 지금은 아니지.’


추운 날씨에 텃밭 가운데 자리 잡은 들깨라던가, 종종 허공을 보며 윙윙이와 대화하는 자신의 모습 같은 건······ 다른 사람에게 되도록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밭에 자라고 있는, 계절에 맞지 않은 들깨가 완전히 다 자라고 나면, 계절에 맞는 제철 작물을 키우며 천천히 생각해 볼 일이다.


‘아, 윙윙이. 기다리겠다.’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챙기는 일이 좀 더 중요하다.


대한민국 법률에서는 가정을 이렇게 정의한다.


가족 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하는 생활공동체로써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 양육, 보호, 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 단위.


아직 산삼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대성은 조금 더 뛰는 대신, 차에 시동을 걸어 산으로 향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 * *


“아저씨!”


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윙윙이가 팔을 붕붕 흔든다. 차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대성의 얼굴 이곳저곳을 만지는 탓에 운전에 집중할 수가 없다.


“윙윙아? 아저씨는 운전에 집중해야 해서······.”

“집중이 머야?”

“어? 윙윙아. 너 발음이······?”


뭔가 정확해졌다. 발음이.


“윙윙아. 아저씨! 해 봐! 아저씨!”

“아저씨!”


육체가 없는 녀석이 어떻게 발음을 교정한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조금 정확해진 발음이 어딘가 기특하면서도 섭섭하다.


하긴, 원래 5살은 또박또박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더군다나 윙윙이는 피노키오를 한 번 읽어주면 마음에 드는 부분은 단번에 암기하는 아이 아닌가.


이 정도 발음 교정은 자가 학습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혀 짧은 발음, 귀여웠는데.”

“혀. 짤. 븐? 바름? 아저씨 오늘은 어려은 말만 해.”


고개를 갸웃하는 윙윙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집 도착이다.


“집이다!”

“집!”


집이라는 발음을 완벽히 해내고 의기양양하게 대성을 바라보는 걸 보면 자기도 발음이 점차 정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좋아, 오늘은 윙윙이에게 줄 특별한 선물도 사 왔지.”

“선물! 조아!”


돌아오는 길에 대성이 특별히 사 온 것은 동화 피노키오에서 언급되는 여우와 고양이.


“이게 여우고, 이게 고양이야.”

“여우! 고양!”


아예 피노키오 인형을 사 올까 했지만, 인간 형태를 한 목각인형이라는 건 윙윙이에게 아직 이르지 않을까 해서 고른 여우와 고양이 인형이었다.


동물 인형에 매료된 윙윙이에게, 대성의 건강 상태를 심각하게 걱정하던 아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잘된 일이다. 저 나이의 아이에게 걱정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다른 귀신들에게 피워줄 향과 대량의 식재료를 차곡차곡 정리한 후, 대성은


다음 작업을 위한 계획에 들어갔다.


“아, 그 전에. 윙윙아. 산책 나갈까?”


몸도 건강하고 온몸에 활력이 넘치는 지금, 그동안 못 했던 운동을 겸하고 싶었다.


산책이 뭐냐고 질문하는 윙윙이의 말에 ‘밖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거야.’라고 답한 후 여우와 고양이 인형을 챙긴다.


양손에 들린 여우와 고양이를 보며 열심히 피노키오의 구절들을 읊는 윙윙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머릿속으로는 다음 파종 계획을 세운다.


초보 농사꾼이 기를 수 있는 가장 쉬운 채소류는 역시 상추. 하지만 대성에게는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현재 대성의 밭은 깻잎에 가장 적합한 온도인 25도. 상추는 10~20도에서 가장 잘 자라며, 그 위의 온도에서는 너무 길게 자라 갈대 같은 기괴한 모습이 된다.


더군다나 상추는 비료가 과하면 질겨서 못 먹는다. 여러모로 대성의 환경과는 맞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토마토? 토마토는 노지 재배가 적합하지 않다. 물을 많이 주면 터져나가고 빨간 껍질이 새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탈락.


‘탈락······?’


대성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탈락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는 사실이 조금 불쾌했던 탓이다.


가장 적합한 쪽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배제하는 방식.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이 방식을 너무 자연스럽게 떠올렸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윙윙아.”

“아저씨. 윙윙이는 지금 바빠.”


진지한 표정으로 여우 인형과 고양이 인형의 복화술을 하는 윙윙이 덕에 다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래, 뭘 또 효율이니 합리니 하고 있나. 다 해보자. 똑똑하고 빠릿빠릿하게 말고, 대충대충 느려도 성실히. 그렇게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시간도, 돈도, 땅도 있는 데다가 이제는 건강까지 생기지 않았나. 해보자. 나름대로. 재미있게.


“윙윙아.”

“아저씨! 윙윙이는······.”

“나 잡아봐라!”


여우와 고양이를 들고 전력 질주하는 대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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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으며 전력 질주 24.09.13 94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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