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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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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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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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DUMMY

“좋아요. 일단 정리해 봅시다.”


불판 위에 삼겹살이 올라간다.


“잡초 걱정은 일단 안 해도 된다. 맞습니까?”

“그렇지.”

“대충 뿌려도 알아서 잘 자라는 거 같고. 맞죠?”

“······맞긴 한데, 이 정도 속도는 처음이지.”


다 구워진 고기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내어 그릇에 담아 올린다. 장독에서 꺼낸 배추 김치도 함께다.


이것과 똑같은 밥상을 하나 더 만들어 입구에도 둔다.


“맛있게 드세요.”


이번에는 아버지 대신 대성이 절을 올린다.

혀가 짧은 탓인지 어설프게 흉내내는 아이도 함께다.


“마디께 드데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귀신들은 낯(?)을 많이 가려서인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거리를 줘야 한단다.


“근데, 얘는 계속 옆에 붙어 있는데요?”

“아무래도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뭐, 이젠 썩 나쁘게 들리진 않네요. 그건 그렇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대성과 아버지가 보고 있는 것은 방금 딴 깻잎이었다.


“먹어도 되는 됩니까? 이거?”

“먹으려고 따 온 거 아니었냐?”


비료 밭 한 가운데에서 자라난 깻잎이다.


* * *


엄청난 속도로 자라던 작물은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초고속 생장을 지속했다.


무려 5년 전, 어쩌면 그 이전부터 방치 되어 있었을 들깨 씨.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 씨앗들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결과다.


한 시간만에 생장한 탓인지 일반적인 깻잎보다는 확실히 작다. 대충 봐도 손바닥 절반만한 크기. 이 정도 크기면 당연히 좀 더 기다렸다가 따는 게 맞다. 하지만


“위험할지도 모르니 저만 먹겠습니다.”


식욕을 돋구는 깻잎 특유의 향. 분명 덜 자란 것이 분명한데도 당장 따지 않고서는 못 배길만한 향기.


“큰일날 소리. 이런 위험한 건 당연히 아비가 먼저지.”


갓 지은 밥과,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 겨우내 담가둔 김치. 이 사이에서 조막만한 깻잎이 압도적인 향을 뿜고 있었다.


“좋아요, 분배 합시다.”


각자 17장씩, 총 51장의 깻잎이 분배 됐다.


사람은 둘인데 분할을 셋으로 하는 이유는


“뽀바. 머거?”


수확의 일등 공신이 기어코 식탁 앞에 앉았기 때문.


“그래그래, 다 먹으면 말하고. 알았지? 꼭!”

“응. 꼭!”


연신 마시써를 외치고 오물오물 먹는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단순하다면 단순한 메뉴지만 10년만에 내려온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아버지가 있으며. 난생 처음 보는 아이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단순함은 담백함이 되고, 만찬은 성찬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이 성찬의 진정한 주인공은 밥도 고기도, 아들도 아버지도, 아이도 아닌 깻잎이었다.


밥과 먹으면 밥을, 고기와 먹으면 고기를 잡아 먹는 수준의 압도적인 맛과 향에 젓가락이 쉬질 못 한다.


“아들아, 깻잎만 싸먹지 말고 고기도 먹어야지?”


시골 산중턱, 어느 한 전원 주택의 밤이 깊어 갔다.


* * *


어디에서나 달을 볼 수 있듯이 공기 또한 어디에서나 마실 수 있다.


하지만 고향에서 보는 달과 타지에서 보는 달이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새벽에 마시는 산 속의 공기는 도시와 다른 상쾌함이 있다.


“어우,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고 잤네.”


정신 없이 식사를 마치고 노곤노곤하게 포만감을 즐기다 그만 잠들어 버린 모양이다.


만성적인 우울증과 불면증이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 같다.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하긴, 내려오자마자 괴상한 일을 연달아 겪었으니. 몸이며 정신이며 배겨날리가 없다. 하지만 그 괴상한 일은 이제 현실의 일부이자 일상이 될 것이다.


아무리 곧 3월이라지만, 이 계절에 깻잎이라니.


“어디, 얼마나 자랐는지 좀 볼까~”


어제의 깻잎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았다.


“그새 자랐겠냐. 아직 멀었다, 욘석아.”

“으악! 깜짝이야. 아버지? 벌써 일어나셨어요?”


아버지는 벌써부터 텃밭에 나와 있었다. 대성이 깜짝 놀라는 것에 반응했는지, 아이도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졸려······. 더 잘래······.”

“그래그래, 깨워서 미안······.”


귀신도 잠을 자나 싶었지만, 정작 본인이 더 잔다면야 그러려니 하는 수 밖에. 대성의 사과에 아이가 픽하고 사라졌다.


이제, 오붓한 부자간의 시간. 방금 전, 대성이 사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째, 적응이 빠르구나.”

“뭐, 회사에서도 꽤 여러가지 일들을 겪었으니까요.”


조금은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이번엔 대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만난 귀··· 아니,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어느새 귀신이라는 말도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가지각색이었지. 젊은 사람도 있었고, 늙은 사람도 있었고. 어린 아이는··· 없었던 것 같구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하던 대성이 다시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음, 싫은건 절대 아닌데. 앞으로 농사를 할 거잖아요? 아이를 이런 식으로 부려 먹는다는 게 좀 걸리네요.”

“아이가 힘들어 하더냐?”

“아뇨? 아주 그냥 신나서 방방거리던데요?”


어제의 일이 생각났는지 대성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는 평이한 어조로 질문을 이어갔다.


“어제 네가 그 아이에게 했던 말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싸게 부려 먹기 위함이었더냐?”

“아뇨! 무슨 말씀을!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아무 문제 없는 거 아니냐?”

“엥? 그냥 그걸로 끝입니까?”

“이 애비는 영혼을 여럿 봐왔지만 말이다.”


그때의 생각이 났는지, 아버지는 잠깐 말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지각색이더구나. 일하기 싫은 사람, 일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 농사는 관심 없고 젯밥에만 관심 있는 사람 등등.”

“음?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화 해야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걸 알아 줘야지.”


이상하게도 대성은 왠지 이 대화가 낯설지 않았다.


“그거 왠지 어디서 들어본 말 같은데······. 아!”


인사과에 들어갔을 때부터 몇 번을 전해 들었고, 다시 후배들에게 전했던 말이다.


‘어차피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은 제각각 다르니까, 우리는 사람을 알아야 한다. 알아줘야 한다.’


대성의 상념 사이로 아버지의 조언이 스며 들었다.


“그러다 보면, 알아서 성불도 하고 그러더라. 그러니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도 이 정도 뿐인거지.”


어딘지 쓸쓸한 목소리였다.


* * *


이 후로는 대화랄게 없었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아버지는 몇 십년간의 노하우를 대성에게 쭉 알려주었고, 대성은 머리 속으로 최대한 기억한 후 이렇게 말했다.


“나머지는 직접 해봐야 알겠는데요?”


말이나 글로 단번에 설명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실패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어제 아이가 보여준 것 같은 미칠듯한 생장 촉진의 원리 같은 건 아버지로서도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들은 것만으로 충분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일을 하며 웃는 사람이라던가, 일에 보람을 느껴본 일이 얼마만인지.


‘니들 눈엔 우리가 숫자로 보이지!’


퇴직을 결심하게 된 계기, 아직도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지는 말들이 떠오른다.


그 위를, 이곳에서 봐온 풍경들이 새살처럼 덮는다.


아까 전, 아버지의 말도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알아서 성불도 하고.’


이 일을 하는 것만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 생긴다. 성불이라는 게 과연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밥 차려주는 사람을 한 없이 기다리는 것보다야 이만배 낫겠지.


“이거 마음에 드는데요?”

“거 참, 어제까지만해도 무당이 어쩌니, 가업이 어쩌니 하더만. 통장 보고 텃밭 보더니 마음이 또 구름 탄거냐?”

“꼭 이렇게 한 마디를 덧붙이신다니까.”


이 일은 마음에 드는 일이다. 꼭 하고 싶은 일이다.


“그럼 전 아침 먹고 읍내 좀 다녀올게요.”

“음내!”


잠에서 깼는지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있던 꼬마 아이가 대성의 말을 또 흉내냈다.


“읍내? 읍내는 왜?”

“저거 때문이죠, 뭐.”


아이가 쪼르르 달려나가서 토닥이고 있는 깻잎대들.


“어어, 저거 또 자란다. 오늘은 좀 더 있다가 따자.”


평소에는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는 산 중턱이지만 모든 일에는 혹시라는 게 있는 법이다.


“행여나, 누가 찾아와서 보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2월에 자라는 깻잎이라는건 어디가서 말해봐야 믿지도 않겠지만, 기왕이면 가려두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뽑아버리긴 좀 그렇고, 햇빛 안 가리는 선에서 적당히 가려 놓죠 뭐.”

“뽀바?”

“아니, 안 뽑아. 키울거야.”

“안 뽀바. 키우꺼야.”


키운다는 말의 뜻은 직감적으로 아는 모양이다.

아버지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다. 아, 가는 김에 장도 좀 봐 오너라.”

“안 그래도 가릴 거 외에 뭐 좀 더 사려고 합니다.”


천막보다 더 우선해서 사려고 하는 품목이 있었다.


“아버지 혹시, 삼 씨는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삼? 산삼이야 나도 몇 개 심어봤지만, 결국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는데······.”

“저도 어제까지는 산삼의 산자도 생각 못 했죠. 근데, 지금 이 상황이··· 아버지를 기준으로 잡아도 생장 속도가 빠른 거잖아요?”


무엇이든 가공할만한 속도로 키워내는 땅과 농부라면, 어떤 조합이 가장 좋을까. 거기에 제철을 타지 않는 작물이라면?


대성이 내린 결론은 산삼이었다. 어쩌면 100년 묵은 수준의 산삼을 1년만에 키워낼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하긴, 너라면 또 모르지. 여기로 가 봐라.”

“오, 이 아저씨 아직도 종자샵 하세요?”

“말로야 그만둔다 어쩐다 하는데. 아무튼 가 봐라.”


차에 시동을 걸며 나갈 채비를 하자 아이가 졸졸 따라 왔다.


“뽀바 안 해?”

“음, 오늘은 쉴래? 어제 일 많이 했으니까?”

“어디 가? 언제 와?”

“잠깐 먹을 거 가지러 가는 거야.”

“머글거, 여기도 막 있는데······.”


아무래도 대성이 잠깐 떠나는 게 영 싫은 모양이다.

내친김에 물어볼 것이 하나 더 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아버지? 얘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 있어요? 아니면 얘가 따라온다던가.”

“음, 아무리 너라도 그건 안 될 거다.”

“안 되는 겁니까? 아니면 어려운 겁니까?”

“둘 중에 뭔지는 애비도 모르지만··· 너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귀신 본 적 있냐?”


없다.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설령 귀안이 있어도 귀신은 이곳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모양이다.


“금방 다녀올테니까 풀 애기랑 놀고 있을래?”

“풀 애기랑 놀고 이뜨먼, 언능 와?”

“그럼, 얼른 오지. 먹고 싶은거 있어?”

“업더. 빤니 와.”


빨리 다녀 와야겠다는 생각에 시동을 거는 속도가 빨라진다. 대성과 아이의 대화는 일절 듣지 못한 아버지가 차창 너머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리고 산삼 씨앗 말인데. 혹시나 없다고 할 수도 있거든? 그럴 때는······.”


뭐라뭐라 알 수 없는 어드바이스까지 받으며


“잘 다녀와라!”

“언능 와!”


대성의 차는 읍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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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아들 +1 24.09.07 144 12 11쪽
3 뽀바 +1 24.09.06 161 13 12쪽
2 귀농의 귀가 그런 뜻이었어? +1 24.09.05 173 12 11쪽
1 힘들면 그래도 된다 +1 24.09.04 185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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