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정간
작품등록일 :
2024.09.04 17:24
최근연재일 :
2024.09.19 06:14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844
추천수 :
142
글자수 :
78,622

작성
24.09.17 02:54
조회
87
추천
8
글자
11쪽

하자

DUMMY

아버지, 백회장이 말하는 ‘진짜’라는 것은 뭘까? 그거야 말할 것도 없이 미맹을 완화 시켜줄 들기름일 것이다. 그런데 왜 백회장은 그걸 가져오는 것이 몹시도 어려운 일인 것처럼 말할까?


그 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친 백설은 아침 10시가 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대성 농장으로.


“안녕하세요, 백아 식품 서비스 담당자 설입니다.”


내용에 거짓은 없었다. 비록 백아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그러니까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재벌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뭐가 어찌됐든 거짓은 아니다.


“아, 네.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채유기로 짜신 들기름 관련해서요. 저희가 사용자님이 만족하실만한 조건을······.”

“아, 팔 게 아니라서요.”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일이다. 백설은 빠르게 다음 카드를 내밀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 조건이라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오래전에 거래했던 분이 대성님네 작물을 꼭 원하셔서요······”


최대한 간절한 어조로, 물론 이것도 거짓이 아니다. 백설은 정말 간절했으니까. 하지만


“백아 그룹과 관련 있는 사람인가요?”

“네. 금액은 상관 없으니 꼭 부탁드린다고······.”

“죄송합니다. 제가 대기업은 별로 안 좋아해서.”


전화가 끊겼고, 백설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은데?”


아버지와 비서로부터 ‘쉽지 않을 거라는’ 조언을 듣고 코웃음 쳤지만, 이렇게 단칼에 거절 당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사실 백설은 대기업을 상대로 어떻게 막대한 금액을 뜯어낼지 궁리하는 사람과의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시겠지만~’으로 시작되는 비위 맞추기 싸움을 예상했었다.


물론, 이 사람 전대성 또한 말로만 거절이고 사실 이 모든 것은 더 큰 조건을 위한 포석일 수도 있다.


“그런 포석을 깔기에 들기름은 조금 부적합 하지.”


백설의 혼잣말처럼 들기름은 오래 보관할 물건이 못 된다. 산패가 빠르니까.


하지만, 그걸 차치하고 생각해봐도 이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과는 뭔가 느낌이 다르다. 특히 백아 그룹 이야기가 나왔을 때의 그 미묘한 어조.


“기본적으로는 무관심. 거기에 혐오감과 죄책감이 반 스푼 정도? 그런데 이게 같이 있을 수 있나?”


무관심, 혐오감, 죄책감. 어느쪽이건 흥미가 당기는 요소다. 다름 아닌, 백설 자신이 십년 가까이 느껴왔던 감정이니까.


“대기업은 별로 안 좋아한다라······ 그렇다면 개인 자격으로 접근해 봐?”


원래라면 거절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 금액을 올릴 생각이었다. 그게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여러 사업을 말아 먹어본 백설 특유의 직감이 발휘 됐다.


이 사람에게 그런 방법은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직접 가보는 것이 최선. 백설은 자신의 짐을 체크했다.


자가용 한 대, 텅 빈 냉장고, 여름과 겨울용 양복 세 벌씩. 훌쩍 떠나기엔 최고의 상태. 여기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현금 2천만 원을 챙겨 백설은 광천시로 향했다.


아버지와 이 농장에 대한 의문과 의심이 한가득, 그러나 역시 압도적인 호기심을 안은채, 백설은 천천히 서울을 빠져 나왔다.


* * *


그 무렵, 대성은 백설의 의문, 그러니까 대기업과 관련된 괴로운 개인사라던가, 돈에 초연한 의문의 젊은 남자 같은 주제와는 꽤나 떨어진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욕심쟁이······.”


다소 망연자실한 표정의 윙윙이가 토마토와 옥수수를 왔다 갔다하며 중얼거리고 있는 광경.


“욕심쟁이들이야······.”


전날 밤, 성급해하지 않는 윙윙이를 치하하기 위해서 특별히 윙윙이가 좋아하는 피노키오를 두 번, 고심 끝에 고른 또 다른 동화책을 두 편 읽어줬지만


이른 아침 나와본 농장은, 어찌보면 익숙한 형태로 이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풍경을 하고 있었다.


“욕심쟁이들이야!!”


하룻밤만에 사람 키만큼 자라난 토마토 줄기와 옥수수줄기라는 형태로 말이다.


하루 사이에 얼마나 양분을 빨아 들였는지, 굵직굵직한 줄기 그대로 사람 키만하게 자란 이 녀석들은 그 자체로 나무라고 부를만 했다.


문제는 이미 맺혀버린 그 열매. 옥수수는 시들시들하고, 토마토는 터져 있었다.


“아.”


윙윙이가 욕심쟁이 운운하는 것이 대충 이해가 갔다. 옥수수는 지력을 잔뜩 흡수한 것이고, 토마토는 수분을 잔뜩 흡수해 간 것이다.


토마토는 묘한 작물이다. 줄기와 열매가 각자 자란다. 줄기야 식물답게 물을 조금 많이 줘도 잘 자라지만 열매는 조금만 수분이 과해도 터져 나간다.


노지에서 토마토를 기르기 까다로운 것이 바로 이 때문. 그나마 천천히 자라는 일반 농사라면 비가 내리기 직전에 따주면 그만이지만


“너무 급하게 자랐네.”


하루만에 수확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자라는 이곳이라면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을 가능성이 컸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윙윙이가 실망과 분노를 터뜨리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나눠 먹어야지!”


윙윙이가 분노하는 포인트를 유심히 지켜본 대성이 우선 토마토를 점검했다. 빠른 속도로 자란 토마토는 대략 10여개. 그 중 가장 윗단의 토마토가 새빨갛게 터져 있고 나머지는 푸르딩딩하다.


“이거 좀 신기하네.”


대개 사람들은 식물들이야 말로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농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식물이야말로 지독하게 이기적인 생물이다.


근처에 풀이 있을 때 잎의 반경을 넓혀 아래로의 햇빛을 차단하는 나무, 지나치게 뿌리를 뻗어 근방의 수분을 빼앗는 작물, 심지어 어떤 작물은 일부러 병을 옮기거나 벌레를 불러 들이기도 한다.


토마토는? 식물과 열매가 각자 따로 자라는 대표적인 작물. 그리고 이 토마토는 윙윙이가 화내는대로, 단 하나의 커다란 열매가 모든 양분을 독식하고 있었다.


지독할 정도의 향기를 내뿜고 있는 주제에 제멋대로 터져서 즙을 질질 흘리고 있는 모양새, 반면 다른 열매와 줄기는 굵기에 비해 메마른 것이 그 증거였다.


“이건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


대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 문제의 해결책이 바로 떠올랐기 때문. 아침에 걸려왔던 전화가 의외의 힌트가 되어 주었다.


“아침부터 대기업 얘기가 나오더니, 이러려고였나.”

“대기업이 머야?”

“응. 욕심쟁이 같은 거야.”

“욕심쟁이? 그럼 나쁜 거야?”


나쁘다라······. 대성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대부분의 나쁜 일이라는 것은 ‘무언가’의 욕심보다는 ‘어떤’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니까.


“아니, 욕심쟁이도 꼭 나쁜건 아니야.”

“욕심쟁이 안 나빠?”

“응. 아저씨가 안 나쁘게 만들어 줄거야.”

“?”


윙윙이의 궁금증은 차차 해소해주도록 하고, 대성은 마른 땅에 비료와 물을 충분히 채워주고, 토마토 영역의 두둑을 조금 더 높였다.


“앗! 아저씨! 이러면 욕심쟁이가 다 머거! 또 터져!”

“괜찮아. 다 먹어도 돼.”

“응? 그럼 터지는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남은 일은 기다리는 것이다.


‘대기업을 떠올리고 대기업 토마토에 맞춘··· 이건 복수 같은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좀 없어 보이는데······.’


머쓱하게 웃으며 대성은 윙윙이와 함께 잡초를 따고, 옥수수 주변에도 비료와 물을 대며 텃밭을 거닐었다.


점심이 지나고, 다시 한번 텃밭을 점검하고, 한가롭게 윙윙이와 산책겸 운동을 하고, 들기름을 팔아 달라고 걸려온 전화를 다시 한 번 거절하고. 이윽고 저녁쯤이 되어서야 그 일은 다시 일어났다.


“아저씨!”


대성이 한 일은 어이 없을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다. 계속 감시하는 것. 그러다가 토마토가 충분히 빨갛게 익었다면


“됐다.”


터지기 전에 따주면 되는 일이었다. 대기업의 낙수 효과에서 떠오른 그냥 단순한 생각. 밑으로 양분이 나눠지지 않는다면, 적당한 선에서 따주면 그만이다.


“응?”

“됐다. 이제 먹으면 돼.”

“!”


윙윙이도 그제야 깨달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했다. 반면, 대성은 살짝 식은 땀을 흘렸다.


‘대충 8시간 정도인가. 잠은······.’


너무 빨리 자라는, 잠깐 몇 시간 방치하면 알아서 터지는 토마토. 오늘 아침까지만해도 별 아쉬움 없었던 그 토마토지만, 지금 대성은 이 토마토가 터진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토마토?’


아침에 본 것은 터진 토마토라서 몰라 봤지만, 터지기 전의 이 토마토. 크기와 향이 압도적이다. 특히 이 크기. 사과보다 조금 크다. 배라고 해도 될 정도다.


‘욕심이 과하면 안 되겠지. 이건 하루에 하나만······.’


대성이 입맛을 다시고 물러나려는 그때


“아저씨. 윙윙이. 완전히 이해해써.”


뭔가를 깨달은 듯 윙윙이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 *


재벌을 혐오하는 백아 그룹의 막내딸. 재벌 자식 아니었으면 진작 굶어 죽었을 이상주의자.


그간 코웃음치며 무시해왔던 저 별명들은 굳이 숨길 것도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백설에게도 할 말은 있다.


자신은 재벌의 순환출자구조를 혐오하는 것이지, 가족을 혐오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기왕 재벌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이상주의자로 살아도 괜찮은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재벌 가문의 막내딸이자 이상주의자인 백설은, 전자보다는 후자 쪽을 좀 더 혐오하고 있었다.


이곳은 사유지. 통행을 금지합니다.


지독하리만치 간단하게 쓰인 이 문구가 백설의 발을 간단히 묶었다.


“차라리 벌금이나 배상금이 있다고 하지······.”


머리 속으로는 가벼운 벌금과 고의성 여부, 무단침입이 성립되지 않을 갖가지 핑계 등이 떠올랐고, 이를 반박하는 고의성 여부와 준법 정신이 치열하게 부딪혔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이 문제가 백설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어떻게보면 백설에게 이 문제는 일종의 장애. 아니, 명백한 장애다. 단발성 거래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장기적 거래를 위한 신뢰를 구축하러 온 것이었으니까.


재벌가의 막내,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법률 관련 사무소는 물론 사업까지 모두 말아먹은 백설은 생각했다.


‘사유지, 출입 금지.’


여기서 발목을 잡힐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최소한 농장 근처에서 기웃대거나, 바깥에서 고함을 질러서라도 의사 정도는 전달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산 전체가 이 사람 소유라고?’


광천시 광천읍 봉황면 구서리 산 1-99번지. 어처구니 없게도 구서 마을의 산 입구에서부터 발목이 잡힌 백설의 귀에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산은······ 들어가면 안 돼······.”


산 입구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백설의 뒤에, 언제 왔는지 모를 마을 노인 셋이 하나씩 말을 이었다.


“절대 들어가면 안 되지.”

“특히 밤에는 더욱 들어가서는 안 돼.”


갈팡질팡하던 백설의 눈이 다시 빛났다.

호기심으로 타오르는 눈빛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힘껏 하는 것과 함께하는 것 (2) NEW 17시간 전 45 2 11쪽
14 힘껏 하는 것과 함께하는 것 (1) +2 24.09.18 73 6 12쪽
» 하자 +1 24.09.17 88 8 11쪽
12 할 수 있으면 24.09.16 93 7 12쪽
11 대충 아무거나 24.09.14 92 10 12쪽
10 웃으며 전력 질주 24.09.13 104 9 11쪽
9 사과의 방식 (2) 24.09.12 108 9 12쪽
8 사과의 방식 (1) 24.09.11 117 10 12쪽
7 적당히 해 +1 24.09.10 128 10 12쪽
6 윈-윈. 윙윙 +1 24.09.09 133 11 12쪽
5 개화만사성 +1 24.09.08 146 12 11쪽
4 아버지와 아들 +1 24.09.07 156 12 11쪽
3 뽀바 +1 24.09.06 175 13 12쪽
2 귀농의 귀가 그런 뜻이었어? +1 24.09.05 187 12 11쪽
1 힘들면 그래도 된다 +1 24.09.04 200 1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