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정간
작품등록일 :
2024.09.04 17:24
최근연재일 :
2024.09.18 06:00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1,610
추천수 :
136
글자수 :
73,526

작성
24.09.10 04:06
조회
117
추천
10
글자
12쪽

적당히 해

DUMMY

종묘샵 박사장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니네 아버지? 왔다 갔었지.”

“언제요?”

“너가 씨 받아가고나서 바로 왔지 아마?”

“무슨 말씀은 따로 없으시고요?”

“그동안 장난 많이 쳐서 미안하다? 뭐 이런 말?”


닭갈비집 계씨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별 말 없었는데?”

“아무 말도 안 했다고요?”

“닭갈비 먹고 그냥 갔어. 아, 그건 말했다.”

“뭔데요?”

“장인이한테 연락 좀 자주 하라더라고.”


그러고 보니, 한 명 더 있다. 아버지의 친구.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


* * *


[남녀칠세 부동산]


대성 아버지의 절친이자 이 지역의 부동산 중개사인 장인호 씨는 품 안의 편지를 만지작 거렸다.


“장인 아저씨!”


다급한 표정으로 들이닥치는 대성의 얼굴. 수십년지기 친구의 말 그대로다.


“아무리 나흘전에 내려왔다지만, 인사 한 번 없더니, 자네 아버지 일 때문에 온 겐가?”

“집에도 안 들어오시고 전화도 안 받습니다.”

“그래··· 생각보다 빨리 왔구만. 자네.”


10년 전부터 나눴던 친구와의 약속이 생각보다 빨리 실현되는 날. 장인호는 편지를 건넸다.


“솔직히, 이걸 주는건 한참 뒤의 일일거라 생각했네만. 이걸 읽는 순간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네. 괜찮나?”


10년 전에 봤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장난기 가득했던 장인호의 얼굴은, 지금 이 순간 더 없이 진지했다.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성은 편지를 읽었다.

편지는 당연하게도 아버지가 쓴 것이었다.


* * *


『사랑하는 내 아들 대성아. 네가 이 편지를 발견했을 때쯤이면 나는 아주 먼 곳에 있겠지』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소리.


“아주 먼 곳······.”


편지를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


『가르쳐 줄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일단은 먼저 떠나는 이 아버지를 용서해라』


먼저 떠나? 용서?


『하지만, 언젠가 나도 겪었고, 너도 겪을 일이 그냥 조금 일찍 왔다고 생각하면, 딱히 용서를 구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


“아버지······.”


『그 땅, 그 집에서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은 자연에서 지은 재료로 음식도 직접 해먹었다는 일평생의 경험이겠지』


“······설마.”


이해할 수 없는 문구를 몇 번이고 읽던 대성의 눈이 바로 다음 문장에서 뚝.하고 멈췄다.


『그러니까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아버지는 이태리 간다. 한우도, 한국 음식도 그동안 지겹게 먹었다. 아빠의 꿈은 옛날부터 미식가가 되는 거였거든? 일단은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고기 썰고 파스타 먹으련다. 뺑이 쳐라』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이제서야 생각나는 것들. 제대로 된 어른이 되었던 아버지의 얼굴은 사실 예전부터 ‘거대한 장난을 칠 때의 준비 자세’ 같은 것이었다는 것.


이제서야 보이는 것들. 장인 아저씨의 침통한 얼굴은 웃음기를 참기 위해 이를 악문 것이고, 역대급 장난을 지켜보기 위한 진지함으로 보인다.


“크흠, 에헴. 뒷면, 뒷면을 보게.”


멍한 얼굴로 편지의 뒷면을 보자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추신 : 내 아버지, 그러니까 네 할아버지도 이랬다. 우리 집안의 유일한 전통이지. 억울하면 너도 얼른 자식 새끼 낳아서 잘 키운 뒤에 물려주고 튀어라.


추추신 : 그리고 먼저 떠난건 너였잖느냐. 10년 동안 고향 한 번 안 내려온 것에 대한 복수다.


-자식 새끼 잘 키운 잘난 아비가-


* * *


이게 뭐냐, 사람 가지고 어떻게 이런 장난을 치느냐, 사람이 우습냐 등의 울화와 분노를 대략 한 시간 정도 가감 없이 터뜨린 후에야 마음을 조금 가라 앉힌다.


“미안하네. 자네 아버지가 이거 하려고 10년을 기다렸다고······ 꼭 장난 좀 같이 쳐달라길래······.”


마음을 조금 가라 앉히고나니, 피실피실 웃음도 나온다. 어떻게보면 현실적이다. 대성은 태어난 이래 무려 20여년간을 아버지의 크고 작은 ‘장난’에 시달려 왔으니까.


그 후 10년간 이 동네를 찾지 않은 것은 비단 아버지의 장난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가끔 이런 식의 장난에서 벗어난 것이 삶의 만족도를 꽤 끌어 올렸던 것도 사실.


“아버지가 시간이 없다 어쩌고 했다는 걸 들은 사람이 있는데, 그건 뭐였을까요?”

“비행기 티켓 날짜겠지. 자네 내려온다고 했을 때 바로 티켓팅 했다더군.”

“저만 몰랐던 겁니까? 박사장 아저씨랑 계씨 아주머니도 전혀 아무 말씀 없으시던데.”

“그 친구들은 늘 피해자 포지션 아닌가. 공범이라면 나만한 사람이 없지.”


입에서 자연스럽게 볼멘소리가 튀어 나온다.


“공범도 좋고 장난도 좋은데, 아무리 그래도 두 분 다 이건 좀 심했어요. 아시죠?”

“너무 그러지 말게. 자네가 10년 전에 훌쩍 떠나서 한 번을 안 내려온 걸 생각하면······.”


마을을 떠나기 전까지 23년간을 또 하나의 가족처럼 지내온 장인 아저씨다. 아버지가 준 편지의 마지막 말마따나, 먼저 떠나버린 건 자신인 것이다.


“저는······ 편지 정도는 썼잖습니까.”

“지금 자네가 들고 있는 게 뭐지?”


어느새 싱글벙글 장난기가 돋아난 장인호의 얼굴. 아이러니하게도, 이 난리를 치르고나니, 고향에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 된다.


“관두죠. 안 그래도 여기는 한 번 올 생각이었습니다. 혹시 땅 좀 살 수 있을까요?”

“땅? 뭐하게?”


대성이 땅을 사려는 목적은 하나다. 윙윙이와의 신묘한 농사가 남 눈에 띄지 않길 바라는 마음 하나 뿐.


“농사 지으려고요. 공사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사 핑계를 대는 이유도 간단하다. 공사 중 길 이용에 대한 문제나 소음, 사유지 침범 문제로 잡음이 일어나는 일은 흔하디 흔하니까.


“음, 하긴 자네 집 재산에다가 자네 정도의 젊은 인재가 농사 짓는다면 광작(廣作)이 기본이지.”


조금 후한 평가이긴 했지만, 이제 대성의 입에서 나올 말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위치는 저희 집 산을 기준으로 최대한 많이. 과장 좀 보태서 산 전체를 사고 싶습니다.”


사유지를 최대한 넓혀 ‘이상한 농사’에의 접근 가능성을 아예 차단한다.


“자네 부탁이라면 어떻게든 해줘야 하지···만.”


진지하게 서류를 뒤지며 장인 아저씨가 말했다.


“안 되겠네. 그 근방 산이라면 시세의 백 배를 줘도 자네한테는 못 팔아.”

“예? 백 배를 줘도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장인 아저씨.


“거기 국유지도 아니잖습니까. 땅 주인이 누군데요?”


심각한 얼굴로 말하던 장인 아저씨가 씨익 웃었다.


“누구인지 중요한 게 아니라, 땅주인이 지금 이태리에 가 있어.”


인상을 팍 구기며 대성이 외쳤다.


“아저씨!”


또 장난인가 하던 차에


“하하, 미안하네. 이 장난은 내가 10년을 기다린 거라서. 그래도 이번엔 꼭 장난만은 아닐세.”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내밀어진 것은 종이.

편지가 아닌 계약서다.


“증여 서류네. 사인만 하면 돼.”


화를 내거나 원망하기에 이 두 공범들은 너무 큰 걸 남기셨다.


* * *


아버지의 가출, 숨겨둔 땅, 이어지는 증여까지.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듯한 침묵을 깬 것은 당연하게도 장인호의 평온한 목소리였다.


“이제 일은 원 없이 하겠구만?”

“그러게요. 쉬러 내려왔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지.”

“적당히 해.”

“예?”

“지금처럼 하라는 말이야. 농사도 지어보고, 이렇게 동네 마실도 좀 나와보고, 장난에 화도 내보고.”


차를 내리는 장인 아저씨의 말이 이어졌다.


“일해본 적 없는 놈들이 괜히 오버하다가 디스크 작살내는 것처럼, 쉬어본 적, 놀아본 적 없는 놈들이 괜히 각 잡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어떻게 되는데요?”

“취해버려.”


장난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 깊이가 있다.


“술에 취하든, 약에 취하든. 취해버린다고. 그럼 나중에는 술 마시고 약 빨기 위해서만 힘을 써버리거든.”


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시게.”


어느새 내어온 모과차가 그윽한 향을 내뿜고 있다.


“향이 좋네요, 이거. 따뜻하고.”


마주보며 씨익 웃는 두 사람. 아직 쌀쌀한 3월의 공기 속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었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다.


당연하다. ‘아버지의 땅’으로 향하는 곳이 ‘여기서부터 내 땅’이라고 생각 되는 것으로 바뀌었으니까.


아버지가 사라지기 전이었다면, 이 넓은 땅을 어떻게 활용해 볼까로 한참을 고민했을까?


“그래, 적당히 하자.”


하나 고백하자면, 설렁설렁 일하면서 머리 속으로는 살짝 복잡한 생각을 조금 했었다.


빨리 자라는 작물과 땅을 이용한 가장 최적의 농법이라던가, 이를 가지고 누구에게 언제 팔지에 대한 ‘합리적’인 고민.


그 돈으로는 귀신들을 위한 사당을 세워서 만족도를 올리고 그렇게 뽑아낸 만족도로는 다시 농사를 부유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효율적’인 고민.


아버지가 사라진 며칠간, 이런 고민을 너무 자연스럽게 떠올렸던 것 같다. 웃기는 일이다. 그 합리와 효율에 실망하고 지쳐서 내려온 것 아니었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훨씬 중요한 것이 많다. 이를테면, 심어 놓은 산삼 씨 앞에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저 윙윙이라던가.


“뭐하니?”

“안 놀아!”


잔뜩 화가 난 것 같기도, 잔뜩 삐친 것 같기도 하다.

윙윙이의 분노를 산 것은 다름 아닌 저 산삼 씨다.


“잠만 자!”


얼마 전의 그 깻잎처럼, 하루만에 수확이 가능할 정도는 아니지만, 산삼 씨앗 또한 하루만에 싹을 틔울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윙윙이의 말에 의하면, 이 산삼 씨는 잠만 자느라 윙윙이와 놀아주지 않는 극악무도한 녀석이었다.


자신보다 먼저 농사에 재미를 붙여버린 녀석의 태도에 웃어야 할 지 걱정해야 할 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같이 살아가보기로 한다. 3월의 첫 시작이었다.


* * *


해가 지기 전에는 텃밭을, 해가 진 후에는 집 안을 좋아하는 윙윙이는 한참을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더니 문득 대성을 보고 무언가 대단한 발견을 한 듯 외쳤다.


“아저띠한테도 뽀바가 이따.”


무슨 말인가하며 턱을 긁다가, 삐죽 만져지는 턱수염의 감촉을 알아챈다.


“아, 그러고보니 면도도 못 했네.”


안 그래도 수염이 빨리 자라는 편인데, 내려오고 나서는 한 번도 깎질 않았으니.


아침에 일어나서 할까 하다가, 그냥 생각난 김에 정리하고자 욕실에 들어간다. 자신에게 없는 수염이 신기한지 한참을 관찰하던 윙윙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아저띠 뽀바는 뽀바 하기 전에 밥을 주네.”


세안하고 쉐이빙 크림을 바르는 모습이 ‘다 자란 풀에 물도 주고 비료도 주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뭐라고 설명할까 잠시 고민하던 대성은 옛날 아버지의 흉내를 조금 내보기로 했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

“이렇게 해주면 아침에 자라 있거든.”

“!”


* * *


“오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듣게 된 것은 윙윙이의 탄성.


“머리머리. 자라따······.”


저녁에 면도를 좀 대충 했기로서니, 아침이 되자마자 금새 자라 있는 수염을 윙윙이가 탄성과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윙윙이. 완전이 이해해떠.”


뭔가를 깨달은 듯 텃밭으로 달려나가는 윙윙이를 따라가 본다.


어제 저녁, 윙윙이의 성화로 기어코 비료를 뿌려 뒀던 산삼 밭에서 윙윙이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무슨 짓을 하나 했더니, 면도하는 것처럼 똑같이 물과 비료를 뿌리고 저걸 외쳐주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산삼은 깻잎과 다르다. 일반 농가에서도 한 달 만에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깻잎과 달리 산삼은 아무리 빨라도 몇 년이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원래 흙이었던 것마냥 비료가 흙 속으로 빨려 들고, 흠뻑 적셔뒀던 밭이 조금 메마르고, 그 사이에서 산삼의 잎이 푸슈슉하고 올라오는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가열찬 시도를 어떻게 위로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무렵

당연히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원래 흙이었던 것마냥 비료가 흙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흠뻑 적셔뒀던 밭이 조금 메마르기 시작했으며, 그 사이에서 산삼의 잎이 올라왔다.


“시··· 심 봤다······.”

“다라나라! 머리머리!”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 힘껏 하는 것과 함께하는 것 (1) NEW +2 22시간 전 51 4 12쪽
13 하자 +1 24.09.17 74 7 11쪽
12 할 수 있으면 24.09.16 79 6 12쪽
11 대충 아무거나 24.09.14 81 10 12쪽
10 웃으며 전력 질주 24.09.13 93 9 11쪽
9 사과의 방식 (2) 24.09.12 98 9 12쪽
8 사과의 방식 (1) 24.09.11 107 10 12쪽
» 적당히 해 +1 24.09.10 118 10 12쪽
6 윈-윈. 윙윙 +1 24.09.09 119 11 12쪽
5 개화만사성 +1 24.09.08 131 12 11쪽
4 아버지와 아들 +1 24.09.07 143 12 11쪽
3 뽀바 +1 24.09.06 160 13 12쪽
2 귀농의 귀가 그런 뜻이었어? +1 24.09.05 173 12 11쪽
1 힘들면 그래도 된다 +1 24.09.04 184 1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