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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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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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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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껏 하는 것과 함께하는 것 (2)

DUMMY

구서리의 등록 인구 수는 40명이다. 이 정도는 딱히 뒷조사 따위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정보. 그렇기에 백설은 노인 3명이 한시간만에 사람 30명을 불러 모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 노인들의 수완은 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데서 그치지 않았는데, 몇 마디가 떨어지자마자 한 쪽에서는 육개장, 수육, 소주, 막걸리 등의 술상이 벌어지고 한쪽에서는 화투와 윷놀이판이 벌어졌다.


“대성이가 온다고?”

“아니, 대성이가 올 거라고.”

“그놈이 오겄수? 10년간 코빼기 한 번 안 비쳤는디.”

“아따, 자네 같으면 안 오겄는가? 그래도 그간 종종 편지는 보냈었잖애.”


평범한 내용과 달리, 이 대화의 목적은 썩 건전치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그러니까, 나는 바로 온다에 올인이여.”

“나는 내일 온다에 올인.”

“그럼 나는 발인날에 온다에 올인이제.”


도박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발인이요?”

“어. 여기 이 사람이 죽는거여.”


지극히 상식적인 백설의 의문은 갑자기 들이닥친 관짝이라는 형태로 격파 되었다.


“올해로 백살잉게, 죽어도 이상허지 않제라.”

“아··· 아니, 지금 정정하시잖아요.”

“아, 당연히 거짓부렁으로 죽는 것이제.”


자식 분들은 찬성하셨어요? 라는 정당한 의문이 오히려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뻔뻔한 답변이었다.


지금 이 사람들은 가짜 장례식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도 부조금 등을 부정하게 수령할 목적도 아닌, 그저 한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거예요······?”

“자주 없응게 다들 신나서 저라제.”

“우리도 살아 있는 동안 딱 한 번 봤당께.”


백년에 한번 정도는 있는 모양이다.


“그걸 자네가 고대로 하는 고만?”

“아따! 그랑께 이 아가씨가 귀인이제!”


한편으로는 이런 대화도 건네진다.


“부조함에 돈 넣는 놈들 있으믄 가만 안 둔다이!”

“백살에 깜방 들어가믄 그때가 진짜 초상인 것이여!”

“까딱 잘못하믄 기망죄가 되어붕게! 알았제?”


이 모든 결정과 실행이 이루어진 것은 불과 3시간. 대략 저녁 9시 정도인 지금, 이장댁은 훌륭한 상갓집이 되어 있었다.


백설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 머리 속에는 ‘이게 뭐냐, 사람 가지고 어떻게 이런 장난을 치느냐, 사람이 우습냐’ 등의 울화와 분노를 대략 한 시간 정도 터뜨릴··· 생면부지의 남자가 떠오른다.


“대성씨가··· 불쾌해하지 않으실까요?”

“그러니까 정성껏 해야제.”


그래, 이렇게 상식적인 질문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지는 지금 이 상황. 당연히 답변 또한 비상식적이다. 정성껏 준비하면 덜 불쾌한가?


‘그런가······?’


왠지 그럴 것도 같았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진 몰라도 철 없는 이상주의자 소리를 반평생 들었던 백설은 왠지 모르게 이 말이 이해가 갔다.


이 사람들의 ‘정성껏’이라는 말은 백설을 묘하게 흔드는 재주가 있다. 단순히 ‘열심히’만 하지 않는다.


우선, 명분이 있다. 마을 사람들을 선동할 때 백살 노인들은 ‘이 아가씨를 위해! 대성이를 위해!’라는 알 수 없는 캐치프레이즈를 세웠다.


또한, 실리가 없다. 장례에 쓰이는 관, 음식들, 사람들의 노동력이 전부 투입 되었지만, 여기서 이 사람들이 얻는 이득은 자기들끼리의 내기 결과가 전부다.


그마저도 내기에 참여한 사람은 불과 세 명 정도. 나머지 사람들은 신나서 술자리와 윷놀이에 몰두한다.


의외로 중요한 것은 이 다음 말이었다.


“이렇게 먼저 해불먼, 진짜 상 치를 때는 조금 덜 슬플 거 아니간?”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앉았네. 누가 오긴 오간디?”

“먼저 땡겨서 해부렀응게. 다음에는 국물도 없제.”


이상하게도 백설은 장례식의 주인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있었다. 생일의 주인공은 그 날 태어난 사람 본인이다. 그렇다면 장례식의 주인은?


“저는 뭘 할까요?”


기묘한 의욕이 생기는 백설이었다.


* * *


조금 착잡한 심정으로 대성은 천천히 밤 중의 산을 내려왔다. 올해로 백살이 되었을 마을 할아버지의 부고는 충분히 착잡한 것일 수 밖에.


마을을 떠난지 10년이었다. 청년이 중년이 되고, 중년이 장년이 되기도 하는 나이. 하지만 으레 삼총사라고 불렸던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때도 노인이었고, 지금도 노인이다.


그리고 그 중 한 분이 이제 고인이 된 것이다.


“생각이 짧았네. 생각이 짧았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장난을 좋아했지만, 그 중 삼총사와 아버지는 유독 죽이 잘 맞았다. 물론 그 뒤치다꺼리는 대체로 대성의 몫.


“혹시 이번에도 장난이신건······ 아니겠지. 무슨 생각을 하는거냐, 전대성 이 생각 없는 놈아.”


이런저런 생각과 혼잣말을 뇌까리며 대성은 이내 초상집이 된 이장댁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마을 장례식은 대성의 예상대로 슬픔보다는 축제 분위기였다. 백살 말년에 큰 고생 없이 가신 모양.


“어? 대성이냐? 뭐여, 얼굴이 그대로네?”

“대성이가 왔어? 아싸!”

“아이고! 대성이다!”


기왕이면 조금 더 평범한 날에 대면했으면 좋았을테지만 어찌 됐던 마을 사람들은 10년만에 대면한 대성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모두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대성은 살짝 묘한 마음으로 먼저 장인 아저씨를 찾았다.


“장인 아저씨.”

“어? 자네··· 얼굴이······.”


산삼 섭취 이후로 매끈매끈해진 피부를 본 장인호가 순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0년은 어려보이네. 이렇게 훤칠해지는 사람을 회사가 얼마나 고생을 시켰으면······.”


놀라움 반, 측은함 반이 섞인 말을 뒤로하며 대성은 이것저것 물었다.


“상주는 누가 하기로 했어요?”

“남은 두 분이서 하기로 하셨네.”

“참··· 마음이 죄스럽네요······. 일찍 뵀어야 하는데.”


삼총사 중 남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문상객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대성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이내, 대성에게 다가온 두 사람과의 간단한 대화가 끝나고 식이 진행 되었다.


“자, 대성이도 왔으니까 시작합시다.”

“그래, 고인의 마지막 말이나 들어 봅시다.”


무슨 극장이라도 온 듯한 분위기.


“그럼 유언장 낭독 하겠습니다. 먼저, 내 친구 봉가와 황가야······.”


친구들을 위한 유언을 필두로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에 대한 당부와 덕담이 이어진다. 유언장에 언급된 사람은 차례로 나와 향을 피웠다. 대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대성아. 얼굴 한번 못 보고 가는 것이 아쉽지만, 세가지만 부탁하마. 첫째, 자주 좀 내려와라. 둘째, 건강해라. 셋째, 다른 사람에게 친절해라.”

“?”

“니가 이걸 명심 안 한다면 이 노인네는 관을 박차고 나올 것이니께, 꼭 좀 부탁헌다.”


생전 노인의 말투가 그대로 들어가 있는 내용에 좌중이 낄낄대고, 대성은 절을 두번하고 뒤돌아 선 후 ‘변장’한 문상객 중 한명의 앞에 섰다. 그리고 말했다.


“거참, 환영식을 이렇게 하시면 어떡합니까.”


놀라는 것은 백설 하나 뿐이었다.


* * *


“먼저, 이런 장난은 얼마 전에 우리 아버지가 먼저 하셨어요. 덕분에 충격이 좀 덜했습니다.”


좌중의 탄식이 이어졌다.


“아이고, 일평생 딱 한 번 밖에 못하는건데, 이걸 이렇게 날리네······.”

“야 이놈아. 정성을 봐서라도 그냥 좀 넘어가 주지!”


대성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건 제 잘못이 아니라, 영감님들 잘못이죠. 구씨 할아버지 돌아가셨는데 두 분께서 문상객들 보고 있을리가 없잖아요.”


탄식이 감탄으로 이어졌다.


“아, 맞네. 세 분 우정이 몇십년인디, 거기서 문상객들이나 신경 쓰실리가 없제!”

“에헤이, 막판에 배려부렀네.”


대성은 설명을 이어 갔다.


“문상객들도 조금 어설펐어요. 아무리 호상이라도 장례식장에서 ‘아싸’랑 ‘아이고’를 하실 분들이 아니잖아요. 저 언제 오는지 내기 같은거라도 하신거죠?”


그 외에 대성은 ‘제삿상 위에 올라간 음식들이 너무 정직했다. 구씨 할아버지라면 무조건 치킨과 커피가 올라갔을텐데’ 라던가. ‘이만한 사이즈의 장난이라면 반드시 잘 보이는 곳에 있었을 것.’ 등을 설명하며 사건 설명을 마무리 지었다.


“캬, 10년을 떠나 있어도 전문가는 전문가시.”

“더 예리해진 거 같은디?”

“아, 구서리 짬밥에 서울 짬밥까지 얹었응게 인자는 영감님들도 못 비비제.”


여기서 유일하게 어리둥절한 것은 백설 뿐이었다. 비상식적인 장난을 아무렇지 않게 격파하는··· 저 하얗고 매끈매끈한 피부의 산 주인······?


‘나랑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데, 10년전부터 저랬다고?’


산에서 농사 짓는 사람 같지 않은 외모야 그렇다 쳐도, 이렇게 황당한 마을에서 저렇게 침착한 태도를 보게 될 거라고는······


“그건 그렇고, 유언장 내용은 뭡니까?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라니요? 조금 뜬금 없던데요.”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이 백설에게로 모였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서 왔디야.”

“아부지 땜시 왔다던디?”

“효녀여 효녀. 아부지 땜시 왔다드라고.”

“우리도 오죽 마음이 급하믄 그랬겄어.”

“그려,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세상 아니간?”


순식간에 책임 소재가 한 곳으로 모인다. 난처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둘로 늘었다. 백설과 대성.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묘하게도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난감하시겠다.’


자기 때문에 휘말린 사람.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딱 그랬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백설이었다.


“저··· 저기! 뭐든······.”

“예······?”

“뭐든 팔아주시면 안 될까요!”


백설의 얼굴이 토마토마냥 붉어졌다. 부끄러웠다. 이런 상황에 휩쓸리듯 말하는 자신이. 자신과 비슷한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저 청년과 비교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반면에 대성은 나름대로 놀라고 있었다.


몇번이나 전화로 들었던 그 목소리다. 상부의 압박이 심했던걸까? 얼마나 간절했으면 여기까지 내려와서 마을 사람들의 도 넘은 장난까지 어울려주고 있었을까.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에 마을 사람들이 눈을 빛내며 두 남녀를 지켜보았다. 옛날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대성, 녀석을 찾아 마을로 온 여성. 서로 어색해하는 두 남녀.


평균 나이 70세의 마을에서는 제법 흥미진진한 소재. 이제부터는 두 남녀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대성은 마을 사람들의 오해나 핑크빛 상상을 굳이 충족 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비즈니스적 이야기로 끝낸다. 최대한 빨리.


“네. 팔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시세를 잘 몰라서요 먼저 제시해 주시면, 그러니까 얼마쯤 생각하시는지.”


대성은 별다른 흥정 없이 대략적인 금액을 제시하면 그 가격에 넘겨줄 생각이었다.


하나 생각지 못한 것이 있다면, 눈 앞의 백설이라는 사람이 지나치게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 당황한 기색 그대로 백설은 입과 가방을 열었다.


“네······ 금액은 이 정도······.”


준비해 온 현찰 2천만원이 후두둑.

마을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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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화만사성 +1 24.09.08 148 13 11쪽
4 아버지와 아들 +1 24.09.07 159 13 11쪽
3 뽀바 +1 24.09.06 177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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