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아카데미 못 만들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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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4 17:52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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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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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화

DUMMY

교장의 호감도라···.

에반은 지금 상황이 그렇게 반갑지는 않다.

물론, 제국 내 최강자 중 한 명이 에반을 좋게 생각한다는 건 긍정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지만, 교장은 아직 에반의 실력으로는 제어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겠지만, 5년 전 적마탑과 연금술 공방 한 곳을 혼자서 지도에서 지워버린 사람.

자기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가차 없이 밀어버리는 성격이기 때문에 호감이 언제든지 비호감으로 바뀔 수가 있다.


“부우, 부우.”

“부우~”


고스트들이 몰려와 죽어버린 식물 줄기를 배관 밖으로 운반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오필리아는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녀는 복기하면서 생각과 감각을 정리했다.

한 발짝 성장한 다음에는 스스로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종의 깨달음 시간.

에반도 그걸 알기에 딱히 오필리아를 건들지 않았다.


에반은 오필리아의 손을 지그시 쳐다봤다.

귀족 영애 답지 않게 여기저기 상처가 있는 손.

마나 컨트롤이 숙달되지 않았을 어렸을 적에 번개의 마나를 다루려다가 생긴 상처.

그녀의 어린 시절 고독이 남긴 상처였다.


“하아···.”


한참을 서 있던 오필리아가 한숨을 뱉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잘했어.”


에반이 오필리아 곁으로 다가와 오필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야!”


질색하는 오필리아.


“땅으로 내다 꽂을 줄 알았는데.”

“내가 그런 실수를 할 것 같아?”

“또 투창 흉내 냈으면 그랬지 않았을까?”

“···쳇. 짜증 나게 맞는 말만 해.”

“내 말 들어서 나쁠 건 없지. 마지막에 정중앙은 아니었지만, 제법 번개의 마법사 같았어.”

“그걸 또 봤어?”

“내가 관찰력이 좋거든.”

“잘난 척은···.”


여전히 툴툴거리는 오필리아였지만, 속으로 에반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에반이 한 말이 아니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창을 던져볼 생각 자체를 못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나한테 걸어준 버프는 뭐야? 너 버프도 쓸 줄 알아?”

“버프는 아니지. 그냥 네 몸을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 주는 거야.”

“그게 버프지.”

“버프는 원래 능력에서 벗어나는 힘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이고, 내가 한 건 원래 능력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지.”

“무슨 말이야?”

“네 실력을 온전히 끌어내면 내 도움 없이도 [썬더 렌스]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야.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실력을 실전에서 온전히 발휘 못 하지만.”


연습과 실전은 굉장히 다르다.

예상된 상황, 통제된 변수들이 등장하는 연습과는 달리, 실전에서는 돌발 변수들이 튀어나오기 마련.

순간적인 판단 하나로 생사가 갈린다.

실전에서 유달리 강한 캐릭터들이 있는 경우도 이 때문.


“내가 실전에 약하다는 거야?”

“실전에 나가 본 적은 있어?”

“···그러면 너는!”

“대수림에서 한 달 정도 야영해 볼래?”


에반이 이 세계에 와서 실전이 아니었던 순간이 있었을까.


“왜 그런 행동을···?”


오필리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정령은 자연 속에 있으니까.”


지극히 합당한 말에 오필리아는 반박할 수 없었다.

자연에 연습이 어디 있겠는가.


“너도 참··· 어렵게 살았겠다.”


금쪽이 오필리아의 공감을 끌어낸 에반.


[오필리아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0% → 20%]

[인물 도감: 오필리아 클로에의 특성에 [근성] [마나 제어] [마나 감응] [집중력] [마법 조율]이 기록됩니다.]


‘마법 조율!’


떠오르는 시스템 창을 흘끗 쳐다보고 에반은 오필리아의 마지막 특성에 내심 놀랐다.

오필리아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특성이 벌써 생긴 것.

마법을 자신에게 맞게 조정하는 능력.

대마법사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특성이기도 하다.


에반은 오필리아의 어깨를 툭툭 쳤다.


“가자.”

“어딜?”

“어디긴. 식당으로 가야지.”

“···왜?”

“왜긴. 네가 부순 식당 정상화해야지.”

“식물 해치웠잖아!”

“부서지고 그을린 식탁, 얼룩진 바닥과 천장, 이리저리 뒤섞인 주방 기구들···.”

“알았어! 할게! 조금만 자다가 일어나서 하자. 나 피곤하단 말이야.”

“너 집안일 해봤어?”

“···.”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오필리아.

당연히 귀족 가문 귀한 딸이 손에 물을 묻혀 봤을 리가 없었다.


“네가 자고 일어나서 3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정리할 수 있다면 자도 되고. 참고로 교장 선생님이 12시간 제한 시간도 걸었다는 거 알지? 대충 해뜨기 전까지는 정리해야 할 걸?”


오필리아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장의 싸늘한 눈빛을 다시 받고 싶진 않았으니까.


“좋게 생각해.”

“이 상황을 어떻게 좋게 생각해?”

“뭐, 이번엔 클로에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체험해 보는 거지.”



*****



요리사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새벽 무렵에 일어난 그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식당이 정상화됐으니 다시 출근하라는 것.

실직 위기에서 벗어난 요리사는 기쁜 마음으로 식당으로 달려왔다.


-끼익-


밤새도록 정령들이 청소하고, 에반은 손재주를 발휘해 부서진 식탁과 의자를 수리했고, 오필리아는 쓸고 닦았다.

부서진 요리 시설은 마도 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와서 복구했다.

그 결과 식당 문에 약간의 소리가 났지만, 식물 줄기로 가득 찼던 식당은 원래 모습대로 돌아와 있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신에게 감사를 올리는 요리사.

늘 반복되어서 지루하다고 느꼈던 아카데미 요리사의 삶이 감사함을 느꼈다.

그는 초심을 되새기며 주방으로 향했다.


‘음식 냄새?’


화구 위에 놓여 있는 냄비.

그곳에서 음식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주방에 남겨져 있는 쪽지 하나.


‘어제 많이 놀라셨죠? 가볍게 아침으로 드실만한 요리를 남겨두고 갑니다. 요리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앞으로도 좋은 요리 부탁드립니다. -에반-’


요리사는 어제 네 학생의 대화 사이에 끼어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얼추 기억하고 있었다.

에반이라면 신비한 요리 솜씨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

범상치 않은 학생이 이런 놀라운 인성까지 겸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버섯 스튜였다.

요리사는 바로 아카데미에서 나는 버섯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버섯과 채소들이 어우러져 깊고 풍부한 국물.

반투명한 국물 속에서 다양한 버섯 조각들.

노란빛의 감자 조각과 선명한 주황색 당근 큐브가 색채감까지 더했다.


요리사는 국자로 조심스럽게 스튜를 떠보았다.

적당한 농도.

그대로 스튜를 한 입한 요리사는 채소들의 자연스러운 단맛과 버섯의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완벽한 간, 약간의 허브 향까지.


요리사는 에반이 만든 두 번째 요리를 먹고 존경심마저 들었다.

어떻게 나이가 어린데도 이 정도의 맛을 내는 걸까.


요리사는 의욕이 불타올랐다.

이 정도 요리를 할 줄 아는 학생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는다니.

에반이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고 실망하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에반이 요리사를 챙겨준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이 한 요리보다 맛없는 요리를 먹기 싫기 때문.

에반 스스로 요리할 수도 있지만, 매번 그러는 건 시간 낭비다.

맛없는 요리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요리사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요리할 필요가 있었고, 마침 자신에게 목숨을 빚진 요리사의 마음을 조금 더 부추겨 본 것.


[아카데미 요리사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50% → 70%]


효과는 확실했다.



****



개강 날이 밝았다.

떠오르는 햇살을 받으며 명상을 끝내고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대부분 학생이 정신 나간 입학시험의 피로를 풀기 위해 아직 꿀잠을 자고 있을 시간.

창밖에 카일이 아침 구보를 하기 위해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전에 해오던 루틴을 그대로 지키는 건 쉽지 않다.

역시, [성실함]을 특성으로 가지고 있는 캐릭터는 다르다.


그리고 한 무리의 학생이 기숙사로 들어오고 있었다.

하얀 사제복을 입은 학생들.

누가 봐도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제들이었다.

사제도 성실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긴 하지.


맨 앞에 서서 사제 무리를 이끄는 금발 소녀.


‘세렌···.’


어린 나이지만, 벌써 성녀라는 소리를 듣는 막강한 신성력을 몸에 담을 수 있는 소녀.

어떻게 보면 정령사와 비슷한 직업이 사제다.

신의 힘을 인간계로 가져오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게 사제라면,

정령사는 정령계의 힘을 인간계로 가져오는 다리 역할을 하니까.

물론, 사제는 신과 친구처럼 지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매우 다르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명확한 주종관계가 있지만, 정령과 인간 사이는 주종관계가 아니니까.


부지런하게 아침을 맞이하는 동기들을 보니 나도 뭔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령사라는 직업이 히든 직업이긴 하지만, 사기 직업은 아니다.

사기는 오필리아나 카이로 같은 얘들이 사기고, 정령사의 전투 능력은 지금 내 실력으로선 크게 뛰어난 편은 아니다.

여러모로 다재다능한 편이지만, 강점이 있다고 하기엔 약간 애매한?

최소한 상급 정령사가 되어야 전투 쪽에서도 강점을 드러내는 직업.


물론, 끝까지 가면 정령사가 다 이길 것 같긴 하다.

코스모스 가문 시조의 일기를 보면 걸어 다니는 자연재해가 정령왕 계약자.

산맥을 솟아오르게 하고, 강물의 방향을 바꾸고, 바다를 땅으로 바꾸는 거의 조물주 수준의 능력을 보여줬다.

이게 실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제국 내에서 몬스터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 몇 군데로 한정된 걸 보면 마냥 과장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좀 더 강해져야 할 필요는 있다.

실력이 없으면 무시당하는 게 차원을 넘어서도 통용되는 진리니까.

오늘 수업은 [희귀 식물 관리학]

탐험밖에 모르는 베른 라시아 교수의 수업을 통해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하나 있다.


[월광 연꽃의 씨앗]


몇 년 전 밤에 대수림을 돌아다니다가 호숫가에서 한 송이가 피어있는 걸 발견했다.

꽃의 중심부가 옅은 황금빛이어서, 마치 작은 달이 꽃 안에 자리 잡은 것 같은 모습.

이 부분에서 은은한 빛이 퍼져 나와서 멍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이 녀석의 꽃잎을 먹으면 자연력을 올려준다.

한 장당 무려 50이나.

발견 당시 8장이었으니 자연력이 무려 400이나 올렸다.


하지만 이 녀석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정보가 없었다.

연금술에서도 사용되는 재료긴 한데, 이걸 어떻게 키우는지에 대한 정보는 나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 연꽃은 무성 생식을 하는데 이 녀석은 씨앗을 통한 유성 생식이어서 더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중에 키워서 먹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아공간 배낭에 고이 모셔뒀던 녀석.



제국 내 거의 모든 지식이 집결된 도서관과 인생을 탐험에 바친 교수가 있는 아카데미라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수업 이름도 [희귀 식물 관리학]이니까.


*****


베른 라시아 교수는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개강을 맞이하고 있었다.

드디어 몇 년 만에 강의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강의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즐거워 보였다.

잠시 후 에반이 자신의 머리를 아프게 할 난제를 던진다는 걸 모르는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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