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아카데미 못 만들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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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4 17:52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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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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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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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8화

DUMMY

이 괴팍한 양반이 친히 편지라.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 열어봤다.


「교장은 그대의 우수한 모습에 만족했다. 꽤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것 같더군. 앞으로도 그래 줬으면 좋겠어.」


굳이 교장의 관심까지 끌고 싶진 않았는데.


「조만간 티타임도 한 번 가지도록 하지. 내가 최근에 정령에 관심이 생겨서 말이야.」


숨 막히는 티타임이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별로 내키지 않지? 나도 그랬어. 교장이 불러서 덕담 몇 마디 듣는 시간이 정말 아까웠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양심 없는 놈이 아니지. 우수한 자의 시간은 우대해 줘야지.」


봉투 안에는 보라색 스크롤 한 장이 들어있었다.

보라색이면 소환 마법류다.

아공간에 보관 중인 물건을 소환하는 거겠지.


일단 주는 건 받아야겠지.

어차피 교장의 티타임을 거부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으니까.

설마, 이상한 몬스터 같은 게 튀어나오진 않겠지?


스크롤을 찢자, 공중에 마법진이 그려지면서 조그마한 상자 하나가 테이블 위로 툭 떨어졌다.


-철컥-


상자 안에는 반지가 들어있었다.


[아카데미 도서관 마스터키]


이건 꽤 여러모로 활용할 수 있다.

아카데미의 각종 연구와 지식이 집결해 있는 곳이 도서관.

아카데미 도서관은 여러 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1학년은 1층까지만 이용할 수 있고, 2학년은 2층까지, 3학년은 3층까지 이런 식이다.

대학원생들은 5층 이상도 사용 가능하고.


학년의 구분이 무의미한 캐릭터들에게는 굉장한 성장 가속 사다리가 될 수 있다.

1학년이지만 2학년보다 강한 학생은 분명히 존재한다.

학기가 끝나기 전에 큰 성장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고.

탐구열이 있는 캐릭터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좋은 도구.

물론 도움을 주기 전에 인성부터 파악해야겠지만.


오후의 햇살이 창을 통해 방 안에 가득 들어왔다.

최고층인 만큼 전망도 좋았다.

교복도 입으니 옛날 생각도 나고.


1등.

이 자리를 많은 학생이 원한다.

지금은 내가 이 자리에 있지만,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 있을까.

아카데미는 제국 각 지역의 정점들이 모이는 곳.

S대에서 1등 하라는 거랑 똑같다.


그런 면에서 다행인 건 시나리오 퀘스트가 요구하는 게 우수한 성적이 아니라 우수한 생활이라는 점.

하지만 또 어느 정도 성적은 받아야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

생각할수록 복잡하다.


[뭘 그렇게 고민하시나?]


불쑥 시스템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누가 던지고 간 퀘스트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에이~ 여태껏 잘해 왔잖아. 수많은 시나리오를 클리어한 고인물의 패기는 어디로 간 거야?]

“그거야 내 인생이 아니니까 할 수 있었던 일이지.”

[하하. 그렇게 무책임하게 설명하기엔 네 행동이 너무 반대였는데?]

“뭐가?”

[아카데미를 거치는 인물들의 시나리오를 클리어할 때 굳이 카일을 도와주지 않아도 클리어할 수 있었는데, 항상 도와줬잖아. 아리아도 그렇고. 왜 도와줬어?]

“··· 그게 시나리오 클리어에 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푸하하하.]


시스템 창이 사람이 웃는 것처럼 흔들렸다.


[계산적인 행동이었다고?]

“그런 셈이지. 두 사람은 적어도 감사할 줄은 아니까.”

[계산을 어떻게 한 거야? 네가 진행하는 인물 시나리오 클리어에 시간도 더 들고, 돈도 더 드는데.]


맞는 말이다.

아카데미 시나리오를 빠르게 클리어하려면 오지랖 넓게 행동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 도와 줄 수 있었으니까 도와준 거야.”


카일은 내버려 두면 지나치게 자신을 몰아붙인다.

아리아는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리고.

그냥 마음에 안 들었던 것도 있다.

감사할 줄 아는 캐릭터들이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게.


현실이라면 모른 척 했을거다.

그럴 능력이 안 됐으니까.

하지만 게임이 현실이랑 똑같으면 그게 게임인가.

현실에서 못 했던 거라도 게임에서는 해내야지.


[그냥 호의다?]

“그래.”

[그러면 재 시나리오 진행할 때는 왜 글짓기 연습을 시킨 거야?]


시스템이 재라고 하길래 창밖을 보니 안개를 뚫고 카르페가 본관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카이로 가문의 검술 천재.

검을 제외하면 부모에게도 무관심하지만, 그런 카르페도 유모는 특별하게 생각한다.

다만,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사이가 멀어지고, 안 좋게 인연이 끝나는 게 마음에 걸려서 글짓기를 통해 본인 감정을 타인에게 잘 다듬어서 전달할 수 있게끔 했다.

정말 글짓기 능력이 안 오르긴 했지만.


[쟤한테는 왜 그렇게 요리 스킬을 올리려고 한 거고.]


카르페 뒤에 은발에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걸어오는 문제아.

오필리아 클로에.

다루기 힘든 전격 속성의 재능을 타고났기에 파괴력 하나는 끝내주는 편이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격 같은 성격을 가진 금쪽이.

오필리아가 말을 듣는 사람은 그녀의 언니뿐이다.


오필리아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거로 푸는 편이어서, 가문 사람들이 비만이 되는 걸 막기 위해 오필리아에게 정해진 식사 외에는 음식을 못 먹게 통제했다.

그런 오필리아에게 언니가 요리 연습하는 척하면서 그녀에게 몰래 음식을 줬다.

착한 언니는 오필리아가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쯤에 선천적인 병이 악화한다.

오필리아는 언니에게 밥 한 끼 해주고 싶은데 오필리아는 정말 요리에 재능이 없다.

결국 오필리아의 요리를 언니가 못 먹어보고 세상을 떠나고, 이건 오필리아 마음에 평생 짐으로 남게 된다.


“후회는···안 하는 게 좋으니까.”


물론, 이런 거 안 해도 시나리오 클리어에는 지장이 없다.

세상에 어느 플레이어가 기사 캐릭터 육성하면서 글짓기를 연습하고,

마법사 캐릭터 육성하면서 요리 스킬 올리려고 하겠어.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아도 좀 더 완벽한 클리어를 추구했을 뿐이다.


[그래, 그게 우수한 거 아니야?]

“···고장 났냐?”


왜 안 해주던 조언을 갑자기 하는 거지?

덕분에 복잡했던 머릿속이 좀 정리되긴 했지만, 뭔가 의심스러웠다.


[네 시나리오 완성도는 언제나 우수했다고. 이번에도 우수한 클리어를 보여 줘. 복잡하게 고민하지 말고.]

“널 위해서 잘 해볼 생각은 없어. 이건 내 시나리오니까.”

[그럼, 그럼. 화이팅 해보라고~ 저기 둘이 싸울 것 같은데 말이야.]


뭔 소리인가 해서 다시 창밖을 보니, 기숙사를 향해 걸어오는 오필리아의 걸음걸이가 심상치 않았다.

뭔가 심술이 난 것 같은 걸음.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카르페에게 뭔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시비를 걸 것 같은 그런 느낌.


“쉴 틈이 없네.”


지금 카르페는 필터 없이 생각을 말하고, 오필리아는 금쪽이 그 자체다.

싸움이 나기 전에 로비로 내려갈 수밖에.



*****



카르페는 혼자서 본관을 지나 기숙사로 향하고 있었다.

그도 처음에는 동기들과 함께 이동했으나 안개가 깔린 이후에 우왕좌왕하는 동기들이 답답해서 그냥 두고 왔다.

어차피 그렇게 마음에 드는 동기도 없었다.

도움이 안 되면 짐이라도 되지 말아야지.


[4등: 카르페]


기숙사 로비에 있는 게시판에 누가 도착했는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카르페는 자신의 이름 위에 적힌 3명의 이름을 쳐다봤다.

등수 따윈 관심 없었지만, 약간의 흥미로움이 그의 눈에 스쳤다.


‘신기하네. 얼굴이나 봐 둘까.’


1등 한 녀석은 기숙사 최상층에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야!”


뒤에서 땍땍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카르페는 기감으로 주변에 자신과 저 여자밖에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을 불렀다는 걸 알지만, 무시하려고 지나가려 했다.


“너 왜 무시해!”


아예 카르페 앞을 막아서는 오필리아.

더는 무시하기 힘들어진 카르페가 한숨을 쉬었다.


“왜.”

“네가 왜 4등이야! 내가 먼저 왔는데.”

“먼저 왔다고?”

“그래.”

“네가 다 와서 머리카락 정리한다고 가만히 서 있지만 않았어도 네가 4등이었겠지.”

“새치기 한 거잖아!”

“내가 왜 네 머리카락 정리하는 걸 기다려 줘야 하지?”

“뒤에서 몰래 살금살금 걸어왔잖아.”

“그 정도 기척도 눈치 못 챈 네 실력이 문제라고 생각은 안 해?”

“뭐라고?”


오필리아에게 이렇게 차갑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클로에 가문에서 마법 재능을 칭송받으며 모두의 관심과 기대를 받으며 자란 소녀.

그녀는 아카데미에서도 모두가 자신에게 고개 숙일 거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그 착각을 아카데미 도착과 동시에 시원하게 카르페가 부숴버렸고.


“너···.”


오필리아의 감정이 격해지면서 주변 마나가 꿈틀거렸다.


“그렇게 4등이 하고 싶어? 그러면 너 가져. 시험 감독관 분들에게 가서 내가 말해 둘게.”


카르페의 푸른 눈동자는 오필리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는 오필리아에게 자신의 등수를 주면 이 귀찮은 상황을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오필리아의 화를 더 돋굴 뿐이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오필리아 손끝에 미세한 빛의 입자들이 맴돌면서 스파크가 튀었다.


‘기절시켜야 하나.’


둘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카르페는 진지하게 허리에 차고 있는 검으로 오필리아의 뒷목을 내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카이로 가문이 명성 높은 기사 가문인 만큼 카르페도 어릴 때부터 기사도에 대해 지겹게 들었다.

본인은 그런 거에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그래도 여학생을 후려친다는 거에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때 두 사람을 멈칫하게 하는 에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온 거지?’


카르페는 순간 당황했다.

목소리를 들었을 땐 이미 에반은 계단을 다 내려온 상태.

에반의 기초 스킬 [자연동화]와 [물아일체]의 숙련도는 막강했다.

카르페조차 에반의 기척을 파악할 수 없는 수준.


“넌 뭐야?”

“왜 그렇게 날이 서 있어? 보시다시피 너네보다 일찍 도착한 학생이지.”


에반은 붉은 구름 같은 풀을 흔들면서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너! 그 풀 어디서 났어?”


오필리아가 에반이 들고 있는 풀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거? 연금부 건물 뒤쪽 화단에 있던데?”


에반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필리아는 그대로 기숙사 건물을 나가버렸다.

마치 카르페와 한바탕 할 것 같던 일은 없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에반은 두 사람이 싸우지 않게 떼어 놓는 데 성공했다.

에반은 오필리아 시나리오를 클리어 해봤으므로 클로에 가문의 집안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오필리아가 금쪽이지만 본인 언니 말은 기가 막히게 잘 듣는다.

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풀이 지금 에반이 들고 있는 홍운초.

그래서 오필리아는 홍운초만 보면 모아뒀다가 언니에게 선물로 가져다주는 습관이 있다.


또 홍운초는 불면증 치료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마법사들이 자주 접하는 풀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던 에반이 일부러 홍운초를 아공간 가방에서 하나 꺼내 살랑살랑 흔든 것.


연금부 화단에 있든 홍운초를 다 뜯어가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만, 사실 연금부 화단에 홍운초는 없다.

일단 두 사람이 싸우지 않게 잠시 떨어뜨려 놓은 것뿐.

심지어 연금부는 기숙사에서 가장 멀다.


“···네가 에반인가?”

“오, 통성명하기도 전에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건 좀 의외인데.”

“난 카르페 카이로다. 아, 아카데미니까 성은 떼야겠네.”

"네가 성을 알려 줬으니 나도 알려줘야겠지. 난 에반 코스모스야."


카르페는 유심히 에반을 쳐다봤다.

그의 기감에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더 알 수 없었다.


“신기해.”

“뭐가?”

“이렇게 기척이 없는 사람은 처음이어서.”

“유망주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영광이네.”

“아무튼 네 덕분에 저 귀찮은 녀석이 사라졌군.”

“오필리아는 원래 좀 성격이 저래. 앞으로도 시비 걸 수 있는데 그냥 무시하는 게 편해.”

“그런가···. 코스모스 가문은 오랫동안 은거했다고 들었는데 의외로 귀족 자제들 소식도 듣나 보군.”

“뭐, 소식이야 듣고 있지.”


에반은 당황하지 않고 둘러댔다.

실제로 코스모스 가문에 편지 한 통이라도 보내는 귀족 가문은 에반이 15년간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귀족에 관한 지식은 온전히 에반의 게임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


“하긴··· 다 방법이 있겠지. 대수림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는 가문이니까.”


푸른 눈동자에 다시 귀찮음이 스쳤다.


“그럼, 이만.”


카르페는 천천히 자기 방을 찾아 계단을 올라갔다.


‘재밌을지도.’


아카데미 생활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던 카르페였다.

그냥 부모님이 가라고 하니까 온 것일 뿐.

그의 무료한 일상에 에반은 꽤 신선했다.


[카르페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0% → 5%]



*****



카르페의 호감도라니.

5%지만 카르페가 검 이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

존재 자체가 신기한 가문이 이런 식으로 또 도움이 될 줄이야.


금쪽이 오필리아는 곧 속았다는 걸 알고 씩씩거리면서 내 방문을 두드릴 거다.

사실, 그녀는 사건을 일으킬 운명을 타고났다.

번개의 마나 특성상 정교하게 통제하는 게 어려워서 수업 시간에 여러 가지 사고를 칠 수밖에 없다.

과충전, 마법진 오작동, 포션 변질, 아티팩트 오류 등 종류도 다양하고.


오필리아의 정신적 성숙도가 올라가는 동안 그나마 사고를 덜 치게 하려면 그녀의 관심을 나에게 집중시켜야 한다.

다른 학생들은 오필리아의 금쪽이 짓을 제대로 받아 줄 수가 없다.

오필리아를 통제할 방법을 아는 것도 나뿐이고.


‘뭔가 선생 같군.’


교사 시절에 엇나가는 학생들을 지도했을 때가 잠깐 생각났다.

지금은 학생인데 학생들을 이끌 계획을 세우는 내 모습이 뭔가 웃겼다.

이게 다 거지 같은 메인 시나리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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