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아카데미 못 만들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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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4 17:52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5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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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23

작성
24.09.0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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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화

DUMMY

숲은 그렇게 험하진 않았다.

너무 빽빽하진 않고 적당한 간격으로 두고 자라고 있는 나무들.

가끔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평화로운 봄날의 햇살까지.


하지만 막무가내로 숲을 가로지르며 달렸다가는 제압용 함정에 걸려서 1시간 정도 갇혀 있게 된다.


여기서 본관까지 거리는 약 20km.

해가 지기 전에 12km 정도는 가야 하는데 함정에 갇히게 되면 아까운 시간을 버리게 된다.


“노움.”


흙 위에 쌓여 있는 나뭇잎을 밀치면서 대지의 하급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가워요, 계약자!”


하급 정령 특유의 발랄함은 남아있지만, 실프보다는 어른스럽다.


“잘 지냈어?”

“그럼요, 저희야 언제나 조화롭게 지낸답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나요?”

“남쪽으로 쭉 걸어갈 건데 가는 길에 혹시 부자연스러운 게 있는지 알아봐 줘.”

“그건 어렵지 않죠!”


자신감이 넘치는 답변과 함께 노움은 다시 땅속으로 사라졌다.


“설마, 정령?”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일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정말 정령이 있구나.”


정령은 기본적으로 계약자 눈에만 보인다.

영적으로 좀 민감하면 보일 수도 있는데,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정령사만 가능하다.

카일 눈에는 땅이 갑자기 들썩이는 것만 보였을 거다.


“신기하지?”

“응, 정말 동화책에 나온 것처럼 생겼어?”

“비슷하긴 해.”


그렇게 노움을 앞세워 이동하고 있는데, 갑자기 노움이 다시 흙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흠...”


노움이 집중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땅바닥에 대자 주변의 흙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자연력이 10 소모됩니다. 990/1,000]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면 마나를 사용하듯이, 정령사는 마나 대신 자연력이라는 특수 스탯을 사용한다.


“부자연스러워!”


땅 속에서 뭔가를 발견한 듯한 노움이 미소를 지으면서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냈다.

누가봐도 수상한 금속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진이 새겨진 금속판이네.”

“가까이 가도 되는 거야?”

“밟지만 않으면 괜찮아.”


노움이 이렇게 온전하게 발굴해 버릴 줄은 몰랐다.


“잘했어, 노움.”

“간단한 일이었어요!”


노움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갔다.


“정령은 정말 강하구나. 별다른 힘이 느껴지지 않는데 트랩만 이렇게 쏙 꺼내다니.”

“뭐든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게 능사는 아니지.”


하급 정령의 최대 강점이 거의 자연과 다름없어서 감지가 힘들다는 것.

아카데미 곳곳에 매설된 지뢰 같은 트랩은 5~6 서클 마법사가 만드는 거여서 굉장히 민감하다.

나도 많은 캐릭터를 육성해 봤지만, 신입생 때 아카데미 트랩을 발굴할 수 있는 건 정령사가 최초.


“위험하니까 치워버릴까?”

“버리기엔 아깝지.”


5~6 서클이면 상급 마법사고 그들이 만든 물건들은 부르는 게 값이다.

누군가에겐 무서운 트랩이지만, 나에게는 그냥 황금이 땅에 묻혀있는 것.

가문에서 메고 온 배낭을 열고 금속판을 넣었다.


“아공간 배낭이야?”

“집에 있더라고.”

“부럽다.”


아공간 배낭은 굉장히 비싼 아티팩트 중 하나다.

거의 은거하다시피 한 코스모스 가문이지만, 그래도 공신 가문인 만큼 집에 쓸만한 아이템들은 몇 개 있었다.


이런 식으로 노움이 트랩을 발굴하고, 나는 주변에 먹을 만한 식물이나 열매가 있으면 채집하고, 카일은 지지치 않고 열심히 날 따라오면서 순조롭게 본관을 향해 가고 있던 와중에


“흑흑···.”


갑자기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직 고스트가 나올 때가 아닌데?’


아직 해가 지려면 1시간 정도는 남았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울음소리를 낼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실프.”

“안녕! 숲이네!”

“너도 울음소리가 들려?”

“울음소리?”


카일이 내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면서 주변을 살폈다.


[자연력이 10 소모됩니다. 980/1,000]


실프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빙그르르 돌았다.

조그마한 손가락이 바람을 어루만지듯이 섬세하게 움직였다.


“저쪽이야!”


실프가 바람을 타고 유연하게 나뭇가지 사이를 가리며 어디론가 빠르게 날아갔다.


“[정령 결속]”


실프가 도착한 곳에 로브를 뒤집어쓴 여학생이 나무 밑에 주저앉아 있었다.

어디 한번 거하게 구른 것 같이 로브는 흙과 풀잎으로 얼룩져 있었다.

헝클어진 짙은 갈색 머리카락.

눈물이 고여있는 큰 갈색 눈.


‘아리아... 인가?’


[인물 도감에 새로운 인물이 등록됩니다.]


평민이지만 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로 마법 재능이 있는 캐릭터.

하지만 인물 특성에 [유리멘탈]이 있어서 그렇게 활용도가 높은 캐릭터는 아닌데···.


지금 보니 유리 멘탈 같지는 않았다.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하고 흐느낌이 새어 나왔지만, 눈빛이 죽어있는 건 아니었다.

자포자기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


스크립트에 친구 없이 혼자 음침하게 중얼거리며 다닌다고 적혀있던 아리아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타고난 천성은 아니라는 건가.’


타고난 인물 특성을 지우는 건 불가능하지만, 모든 특성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살면서 새로운 특성이 생기기도 하는 법.

아직 [유리멘탈] 특성이 생기기 전의 아리아라면 꽤 괜찮은 전력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당장 오늘 밤에 고스트 때문에 [유리멘탈] 특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되게 내버려 둘 순 없지.


그리고 아리아를 통해 찾아야 할 것도 있다.

학기 시작하기도 전에 같이 들어온 동기를 버리는 선택을 하는 건 경쟁이 심한 아카데미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나보다 앞선다고?’


고인물인 나보다 더 빠르게 수수께끼의 답을 찾고 더 빠르게 이동이라···.

수수께끼를 사전에 유출된 냄새가 났다.

누가 그런 깜찍한 짓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

멀리 해야 할 쓰레기는 빠르게 분류하는 게 좋으니까.


“카일, 여학생이 울고 있는데 도와줄까?”

“뭐?! 당연하지. 대체 어떤 녀석이 숙녀를 울린 거야?”


카일다운 반응이었다.


*****


그렇게 아리아는 우리와 같이 움직이게 됐다.

다행히 어디 부러진 건 아니어서 가지고 있던 붕대와 약초로 별 무리 없이 치료할 수 있었다.

치료하면서 유리멘탈이 아닌 게 더 확실해졌다.

생각보다 차분하게 호흡하면서 통증을 참고, 소지품을 점검하면서 잃어버린 게 있는지 확인하는 건 절대 유리멘탈이면 할 수 없다.


[아리아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0% → 10%]


귀족이 평민에게 호감을 사는 게 생각보다 많이 어렵기 때문에 10%면 그래도 괜찮게 오른편.


“카일님, 도와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는 무슨. 숙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건 기사로써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말을 높이지 않아도 돼. 우린 같은 신입생이니까.”

“너 아직 기사 아니잖아, 카일.”

“그··· 그건 맞지만, 난 기사가 될 거니까 기사도를 지키는 건 당연하지.”

“기사가 될 거야?”

“당연하지! 나는 훌륭한 기사가 돼서 가문을 일으켜 세울 거니까!”


카일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어떤 결의가 느껴졌다.


“에반님도 정말 감사합니다. 직접 붕대도 감아 주시고··· 나중에 약초값은 꼭 갚겠습니다.”

“환자보고 감으라고 할 순 없잖아. 그리고 약초는 그냥 오다가 뜯은 거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나한테도 말 편하게 해도 상관없어.”

“알겠습니··· 알겠···어.”


아카데미 학생은 원칙적으로 모두 평등한 학생의 신분이다.

그래서 서로를 부를 때도 성을 떼고 이름으로만 부르는 게 교칙.

하지만 학생들도 누가 누구 집 자식인지 알 수밖에 없어서 집안이 좋을수록 암묵적으로 서열이 높아지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슬슬 숙영할 곳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미 찾아놨어.”


거대한 나무 아래에 자리 잡은 작은 공터.

축축하지 않은 땅과 평평한 지면, 바람을 막아주는 나무.


“우와, 완벽한데?”


카일은 장시간 걸었음에도 지친 기색 없이 바로 숙영 준비에 들어갔다.


“아리아는 다쳤으니까 그냥 앉아 있어.”

“아니야, 나도 도울게.”


두 사람이 이끼나 나뭇가지를 구하러 간 사이 나는 배낭에서 요리 도구를 꺼내 저녁을 준비했다.


‘무슨 요리를 할까.’


오늘 저녁 뭐 먹지는 만국 공통의 고민거리.

아공간 배낭 안에 음식을 넣어 두면 상하지 않기에 요리 재료는 충분했다.


‘김치찌개나 끓일까.’


판타지 세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한식 만드는 것에 성공한 지는 꽤 오래됐다.

여기서 15년을 살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걸 주면 여기 친구들은 못 먹을 수도 있다.


‘버섯 스튜나 해야지.’


숲을 지나면서 채집한 버섯들이 많았다.

배낭에서 주섬주섬 요리에 필요한 도구와 재료를 꺼내고 물의 하급 정령 운디네를 불러냈다.


“오늘도 요리 재료를 씻으면 되나요?”


[자연력이 10 소모됩니다. 930/1,000]


운디네를 불러낼 때마다 했던 부탁이었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운디네는 버섯과 채소를 깨끗하게 씻어주고, 솥에 물까지 채워줬다.


“카사.”

“불?”

“응.”


불의 하급 정령 카사는 말이 좀 짧긴 하다.

그렇다고 중급 정령도 소환할 수 있는 내 부탁을 거절하진 않지만.


[자연력이 10 소모됩니다. 920/1,000]


불의 정령의 불꽃은 장작이 없어도 타오른다.

대신 자연력을 소모하긴 하지만, 어차피 요리하는데 누굴 태워 죽일 정도의 화력은 전혀 필요하지 않아서 소모도 적은 편.


채소와 버섯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팬에 버터와 올리브유를 두르고 채소를 볶다가,

버섯을 넣고 수분이 날 때까지 볶고,

특제 다시다와 볶은 채소를 솥에 넣고 약한 불로 15분간 끓이면 끝.

간은 소금이랑 후추로 하면 되고.


여기까지 하고 앞을 보니 아리아가 경악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왜?”

“왜라니요. 어떻게 다른 속성의 정령 다루는 거죠?”

“말 편하게 하라니까.”

“말이 돼?”


뭐지, 초월 번역인가.

아리아가 이런 말투라니.


“그렇게 놀랄 일인가?”

“4대 정령을 모두 다루는 건 아니지?”

“다 다뤄.”

“엘리멘탈 마스터라고!? 대마법사들만 가능한?”

“그건 마법사 쪽의 개념이지. 난 정령사라고.”

“정령사도 다를 건 없지 않아? 속성을 가지잖아.”

“다르지. 마법은 지배고 정령은 조화니까.”

“··· 아무튼 다 속성이 얼마나 힘든 건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그게 무슨 말이야?”

“독립적인 상극처럼 보여도 결국 자연의 일부라는 소리야.”

“응?”

“한번 잘 생각해 봐. 마법의 길을 걷는 너에게도 도움이 되는 말이니까.”


아리아가 뭔가 더 말하려던 찰나 카일이 장작으로 쓸 나무를 가지고 돌아왔다.


“요리도 할 줄 알았어?”


보통 귀족이 요리를 직접 할 일이 없긴 하다.

더군다나 노숙할 때는 말린 음식으로 간단하게 때우는 게 보편적.

하지만 난 그렇게 살 수 없었다.

몇 달 동안 자연 속에 살며 정령들과 교감을 하는 삶에서 그나마 한 줄기 재미는 식도락뿐.

먹는 재미마저 없으면 진작에 정신줄을 놓지 않았을까.


그릇에 담아서 나눠주니 조심스럽게 한 입 먹는 두 사람.

그리고 맛있는 걸 먹었을 때 나타나는 진실의 미간을 두 사람에게서 볼 수 있었다.


‘왠지 뿌듯하군.’


거의 스튜를 위장으로 들이붓는 두 사람을 보니 흐뭇했다.


[카일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70% → 75%]

[아리아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10% → 15%]


*****


“근데, 아리아. 너 왜 혼자였던 거야?”

“그게···.”


든든하게 저녁을 먹은 아리아는 자세하게 어떻게 된 건지 말해줬다.


카일처럼 마을에 멀뚱멀뚱 서 있다가 소피아라는 학생이 함께 움직이자고 제안하자 그 제안을 승낙해 같이 움직이기로 했고,

정오가 되기 전에 소피아가 약초 상점에 잠깐 들르자고 해서 같이 약초 상점에 갔는데,

그러다가 정오가 됐고, 마침 약초 상점이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는 곳이었고,

운 좋게 곧바로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와서 같이 움직이다가,

체력이 떨어져서 조금 쉬는 와중에 한참이 지나도 볼일 보러 간다고 한 소피아가 돌아오지 않자,

당황해서 서둘러 움직이다가 미끄러져서 데굴데굴 굴렀고,

아프고 서러워서 잠깐 눈물이 났는데 나에게 발견된 것이었다.


카일은 아리아를 버리고 간 소피아에게 진심으로 화가 난 것 같았다.

부정행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면 폭발하려나.


“불침번은 어떻게 할까?”

“내가 먼저 설게. 두 사람은 좀 자둬.”


카일과 아리아는 금방 곯아떨어졌다.

조용히 일어나 실프를 불렀다.


“밤이구나! 무슨 일이야?”

“나무 위에 올라가자.”

“좋아!”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니 서서히 반투명한 무언가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카데미를 지키는 여러 시스템 중 한 축을 담당하는 고스트.

이들과 협력해 아리아를 버리고 꿈나라로 간 녀석을 찾아야 한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시나리오 클리어에 방해가 될 게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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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24.09.12 20 1 14쪽
7 7화 24.09.11 26 2 15쪽
6 6화 +1 24.09.10 28 2 17쪽
5 5화 +1 24.09.09 2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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