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아카데미 못 만들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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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4 17:52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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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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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DUMMY

시골에서 먼 길을 온 카일은 15년 인생에서 가장 극심한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었다.

코스모스 가문이라니.

전설적인 대정령사가 시조인 개국 공신 가문.

하지만 건국 이후 대수림 근처에 터를 잡고 제국 정치와 경제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 베일에 싸인 가문.


그간 아카데미에 자식을 보내지도 않아서 무수한 소문만 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지방에 별 볼 일 없는 귀족 가문인 자신에게 대뜸 같이 가자고 하다니.

카일이 아무리 순박해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왜···나지?’

“왜 너냐고?”


속마음을 들킨 카일은 에반의 말에 흠칫했다.

여유롭게 입가에 미소까지 짓고 있는 에반의 표정에 카일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뭐 잘못 한 건가? 정령사에게 미움을 사면 평생 감시당한다던데···.’

“내가 무서워?”

“아···아니야. 코스모스 가문인데 나랑 같이 가자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돼서···.”

“왜? 네가 부족한 것 같아?”

“그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배경이 부족하다, 뭐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응···.”


세간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검술이 없는 라보르 가문은 서서히 가세가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영지가 지방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해서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손 펴봐.”

“손?”

“그래, 손.”


에반의 말에 카일은 주먹 쥐고 있던 두 손을 폈다.

한눈에 봐도 손에 굳은살이 두껍게 자리 잡고 있었다.

카일이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이는 손.


“이게 네 배경이지, 다른 게 배경인가?”

“하지만···이건 남들도···.”

“뭐, 기사 가문에서 온 학생이라면 굳은살쯤이야 있겠지. 하지만 넌 냄새가 달라.”

“냄새?”


카일은 황급하게 자기 옷 냄새를 맡아 봤다.


“나 오늘 여관에서 씻고 나왔는데···?”

“아니, 일반적인 몸 냄새 말고. 노력의 냄새.”


에반의 말에 카일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령사는 순수하고 맑은 정령들과 호흡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인공적인 향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에반은 실프가 카일 주변을 맴돌면서 생긴 바람 안에 금속 냄새, 가공된 가죽의 냄새, 기름 냄새를 맡았다.

검과 갑옷을 다루면서 몸에 밴 금속 향.

금속 냄새는 다른 기사 가문 자제들에게서도 난다.

검을 안 들고 수련하는 기사는 없으니까.


하지만 가죽 냄새와 기름 냄새는 다르다.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이 학생들이 교범에 적힌 대로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효율이라는 이름을 빌려 노력은 최소로, 성과는 최대로 얻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의 본성.

스스로 손에 기름을 묻혀가며 무구 손질을 하기 싫어하고, 가죽 레더를 입지 않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검을 들고 연습하려고 한다.


하지만 [성실함] 특성이 있는 캐릭터는 그렇지 않다.

얘네들은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스스로 잡을 줄 안다.

카일이 차고 있는 장검은 손질하고 닦은 흔적이 명백했다.

거기다가 손에서 나는 기름 냄새.


“오늘 아침에도 검 손질했지?”

‘아침부터 날 보고 있었던 거야···!’

“아침부터 널 보진 않았으니까 그런 놀란 눈동자는 하지 말고.”

“히익!”


에반에게 또 생각을 읽힌 카일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내가 널 감시하고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그런 건 다 헛소문이야.”

“하하, 그렇지···?”


“아무튼 너 같은 친구를 찾고 있었어.”

“나 같은 친구?”

“어, 믿을 수 있고 성실한 친구.”

“헤헤. 검 손질이야 교범에 나오는 대로 하는 건데.”


칭찬을 듣자 카일은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카일은 그렇게 굵직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하지만 카일을 적으로 돌리거나 다른 편에 들어가게 두면 나중에 시나리오 진행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커진다.


카일은 전투에서 상대편 주요 인물이 활약하지 못하게 1:1 마크하는 능력이 좋다.

흔히 말하는 안티 캐리형 캐릭터.

에반도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카일을 적으로 돌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매일 꾸준히 하는 게 진짜 어려운 거야. 자신감을 가지라고.”


에반은 카일의 팔을 툭툭 메고 있는 배낭에서 액체가 담긴 통을 건넸다.


“이건 뭐야?”

“고목 나무 수액. 기사들이 자주 마시잖아?”


고목 나무 수액은 운동 후에 마시면 근육 회복을 도와주기에 기사들이 근력 운동하고 자주 마시는 음료 중 하나였다.


“오? 어떻게 구했어? 마을 상점에는 어제부터 다 팔려서 없던데.”

“아, 오다가 고목 나무가 있길래 담아서 온 거야.”

“오다가···? 어디서 왔길래?”


에반은 손가락으로 산 하나를 가리켰다.

꼭대기 부근에 눈이 쌓여 있는 높은 산.

멀리서 봐도 산세가 험해 보였다.


“저 산을 넘어서 왔다고···?”

“응, 조금 험하긴 했지.”

“조금이 아닌데···?”


카일은 자신이 저 산을 넘으려면 며칠이나 걸릴지 생각해 봤다.

아니, 애당초 넘을 수나 있을까.

험준한 산을 넘은 것치곤 에반은 너무 평온한 모습이었다.


‘역시 아카데미는 대단한 친구들이 오는 곳이구나! 나도 열심히 해야지!’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자신과 달리 에반은 전혀 긴장하지 않아 보였다.

선뜻 고목 나무 수액도 건네주고.

카일은 뭔가 어른스러움을 에반에게서 느꼈다.

사실, 진짜로 에반은 어른이긴 했지만.


*****


[인물 도감: 카일 라보르의 특성에 [성실함] [순수함] 기록됩니다.]

[카일 라보르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0% → 50%]


특정 인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해당 인물에 대한 정보가 점점 더 많이 기록된다.

카일의 특성이 뭔지는 알고 있었지만,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나’라는 큰 변수가 이 게임에 들어온 거니까.


시뮬레이션 게임에선 작은 변화가 나중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심지어 내 직업은 정령사.

존재만으로도 변수다.

아직은 초반이어서 내가 아는 것에서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지만, 자만은 금물이다.


그나저나 호감도가 한 방에 50%나 올랐다.

같은 성별에서 이런 경우는 잘 없긴 한데, 카일의 눈빛을 보니 날 좀 동경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융통성만 좀 어찌 해주면 되겠지.’


대쪽 같은 성격 때문에 상관이나 높으신 분들의 미움을 받아 시나리오 중간에 장기 말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던 캐릭터다.


하지만 15살 카일이라면 바뀔 수 있다.

인물 특성은 성인이 되면 고정되지만,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는 특성이 추가될 수도 있다.

물론, 쉽게 추가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유연한 사고만 좀 길러주면 천재들을 이기지는 못해도 맞댈 수는 있다.


나에게 어떤 시나리오가 찾아올지 모른다.

앞으로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기사나 마법사의 스킬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가 검술과 마법을 배울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소드마스터도 되고 대정령사도 되고 대마법사도 될 수는 없다.

이것저것 다 배웠다가는 이미 게임에서 15년을 살았는데 150년을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


그럴 순 없다.

아무리 내가 이 게임을 좋아했고 많이 플레이했지만,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사는 건 아니지.

시나리오를 안정적으로 끌고 나가려면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하방을 구축해야 한다.

카일은 내 시나리오의 주춧돌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캐릭터고.


[현재 메인 시나리오 에피소드 1의 진행률은 2%입니다.]


아카데미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2%라.

좋은 출발이다.

역시, 원만한 교우관계도 ‘우수한 아카데미 생활’에 포함되는 거겠지.


정오가 되자 광장 게시판으로 신입생들이 모두 모였다.

게시판에 걸린 텅 빈 종이가 정오의 햇빛을 받자 서서히 글자가 드러났다.


<시간은 흐르되 멈춘 공간, 침묵이 노래하는 숲, 말 없는 군중들이 빼곡히 늘어선 곳.>


“이게 무슨 소리야?”

“대체 어디로 가라는 거야?”


신입생들은 웅성거렸다.

당연히 문장 그대로는 말이 안 된다.

다 시적으로 비유한 것일 뿐.

최대한 빨리 상상력과 추리력을 동원해 장소를 찾아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다.


“에반,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응.”


물론, 난 답을 안다.


“정말로?”

“일단,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가자.”

“왜?”

“너처럼 믿을만한 학생만 있는 건 아니거든.”


미행을 통해 정답을 알아내려는 신입생이 있을 수 있다.

아니, 무조건 있다.

사람이 다섯만 있어도 한 명이 쓰레기인데, 여기 신입생이 몇 명이야?


다행히 우리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복장을 보고 자신보다 하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야 고맙지.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 보는 학생.

갈팡질팡하는 학생.

고뇌에 빠진 학생.

아주 각양각색의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에반, 우리도 어디론가 가보긴 해야 하지 않을까?”

“아, 어디 갈 필요 없어. 적당한 타이밍을 보고 있는 거야. 모두가 우리를 의식하지 않은 순간을.”

“···왜?”

“지금.”


내가 골목길로 쭉 들어가자, 카일은 당황했지만 따라 들어왔다.


“이제 어떻게 하게?”

“여기야.”

“···서점?”


-끼익-


카일은 어리둥절하면서 나를 따라 들어왔다.

종이 냄새와 먼지 냄새가 섞여서 나는 오래된 서점.

서점 카운터에 앉아 있던 시험 관리감독관은 황당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신입생입니다.”

“··· 이번 기수는 꽤 빠르네요. 초대장을 주시면 안내해 드리죠.”


[카일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50% → 70%]


호감도가 오르니 다행이군.

[비관적] [질투] [열등감] 이런 특성이 있으면 호의를 베풀어도 호감도가 떨어지는 때도 있는데,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한 시골 소년에게 그런 특성이 있을 리가.


초대장을 확인한 관리감독관이 카운터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자 벽에 붙어 있던 책장이 돌아가면서 공간이 생겼다.

바닥에 그려진 기하학적 도형과 문양.

누가 봐도 마법진이었다.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마법진 위에 섰다.


“무사히 본관까지 도착하길 바랍니다.”


관리감독관의 말이 끝나자,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면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인생 첫 텔레포트 경험이었다.


*****


“우웨에엑.”


카일은 한 손으로 나무를 짚고 격렬하게 아침에 먹은 것을 다시 확인했다.

나도 상태가 그렇게 좋진 않았다.

포탈에서 위 방향키만 누르면 이동됐던 게 이렇게 힘든 거였다니.

새삼 내가 육성했던 캐릭터들에게 미안해졌다.


“어우, 힘드네.”

“에반, 너는 괜찮··· 우우욱.”

“난 버틸만하니까 네 몸부터 챙겨.”


카일이 몸을 추스르는 동안 나는 주변 나무 위로 올라가 어디로 떨어진 건지 확인했다.

5m 정도 되는 나무 위로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봐도 아카데미 건물은커녕 끊임없이 이어진 숲만 보일 뿐이었다.


“와, 답 없게 크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루티오 아카데미는 광활한 크기를 자랑합니다. 그 크기는 작은 공작령에 해당···]


“와, 말 안 해줘도 알고 있으니까 좀 가줄래?.”

[그럼, 무운을 빌어요~]


“우에에엑.”


무운은 카일에게 빌어줘야 할 것 같았다.


본관에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로 순위를 매기는 이 선착순 시험은 일찍 도착할수록 좋다.

상위 4%, 신입생이 보통 150명이니까 6등까지 혜택이 있는데, 그렇게 유용한 혜택은 아니다.

하지만 정령사인 나에겐 중요한 혜택이다.


신입생들의 첫 학기는 시간표가 정해져 있다.

기사를 지망하는 학생들도 다른 직업의 기초 과목을 듣는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숨겨진 적성이나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고, 너무 한 분야에 갇혀서 편협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에서 이것저것 찍먹해보는 학기가 첫 학기.


문제는 아카데미에는 정령사와 관련된 수업이랑 교수가 없다.

내가 아카데미를 백 번 넘게 졸업해 봤지만, 기사부나 마법부 같은 정령부가 있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직업이 정령사인 학생이나 교수도 본 적이 없다.

고로 짜인 대로 이론 위주의 기초 강의를 들으면 나에게 필요한 스탯이나 스킬 숙련도를 거의 올릴 수가 없다.


하지만 4% 안에 들어가면 개설된 강의에 한 해서 학생 마음대로 시간표를 짤 수 있다.

아카데미는 경쟁이 치열한 곳.

내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표로 살아남을 수 없다.


“카일, 괜찮아?”


격한 구토 후에 카일은 가지고 있던 물로 입을 헹구면서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미안해, 별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서.”

“텔레포트하면 원래 좀 어지럽고 그런 거지. 걸을 수 있지?”

“응, 이제 좀 정신이 드는 것 같아.”

“그럼, 이동하자.”

“벌써 방향을 알아낸 거야?”

“그럼, 눈 덮인 산도 넘어왔는데 이 정도 지형의 숲에서 방향 찾는 건 일도 아니지. 근데, 카일. 혹시 고스트 무서워해?”

“고스트···? 본 적은 없는데, 무섭게 생겼다는 말은 들어 본 것 같아.”


해가 지기 전에 아카데미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해서 하룻밤 노숙이 확정이다.

그러면 고스트랑 마주칠 수밖에 없다.


고스트.

밤이 되면 활동하는 아카데미의 경비원이다.

주로 감시와 정찰 용도로 아카데미에서 관리하는 녀석들이라서 위험하진 않다.

학생증만 있으면 공격하지도 않고.


하지만 신입생은 학생증도 없고, 고스트에게 신입생은 외부 침입자일 뿐이다.

그래서 밤이 되면 자는 사람 몸에 올라타 딱 붙어버리고, 여기에 침입자가 있다고 아카데미에 신호를 보내는 방식으로 경비 임무를 수행하는 것.

침입자를 쫓아내려고 무서운 형상을 하고 침입자를 깨우는 패턴도 있다.

그러면 이제 15살 소년, 소녀들은 놀라서 그날 잠은 다 잤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고스트에 잘 대처하지 않으면 다음 날이 되면 몸 컨디션이 굉장히 안 좋아진다.

자연스럽게 빨리 본관에 도착하기 어려워 지고.


하지만 무서워하지 않고 고스트를 이용하면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얘네만큼 아카데미 지형을 잘 알고 있는 존재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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