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아카데미 못 만들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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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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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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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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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DUMMY

두 사람에게 간단한 밥을 해주고 내 방으로 돌아와 한 차례 명상을 끝냈다.

푹신한 침대에서 하는 명상은 아주 상쾌했다.

오랜만에 문명을 즐기고 있었는데 누가 방문을 두들겼다.


문을 열자, 오필리아가 서 있었다.

어떤 액체에 젖은 듯한 머리카락.

손에 묻은 흙먼지.

품위와 격식을 중요시하는 귀족 영애답지 않은 모습.

뭔가 식당에서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날 쳐다보다가 바닥을 보다가 천장을 보는 갈 곳을 잃은 눈동자.


“할 말 있어?”

“도···와줘!”

“···그 전에 해야 할 말이 있지 않아?”


씰룩거리는 입 주변 근육들.

뭔가 말을 뱉을락 말락 하는 것 같았다.


“모···르겠어! 매운맛을 무슨 재료로 낸 건지···.”

“그래서?”

“··· 네 부탁 들어줄게, 그러니까 제발 도와줘!”


오필리아의 패배 선언.

아카데미 입학 반나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반나절 만에 사고도 쳤지만.


오필리아 손에는 종이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뭔가 저거 때문에 오필리아의 자존심이 꺾였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에 쥔 건 뭐야?”

“교장 선생님이···.”

“벌점 받는 거야?”

“그건 아닌데··· 진짜 심각한 상황이야.”


오필리아는 내게 편지를 건넸다.

그 편지 첫줄에는


「교장은 실망했다.」


뒤에 내용은 더 안 읽어봐도 알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웃지 마! 심각하단 말이야.”


오필리아의 [번개 발걸음]은 연구실에 상주하는 대학원생에게 걸린 것 같았다.

원래라면 연금부 근처에서 일어난 일은 연금부 교수에게 우선 보고되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연금부 교수가 아카데미에 없어서 교장에게 그대로 보고가 올라간 모양.

그 덕에 이렇게 입학하자마자 교장의 친필 서신도 받고.

역시, 오필리아는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캐릭터다.


“간단하게 줄이면, 12시간 내로 해결 못 하면 한 학기 동안 하루에 세 번 200인분씩 음식을 만들게 될 거라는 거네.”

“너무 하시지 않아? 차라리 징계하시지.”

“축하해. 한 학기 만에 최강의 요리사가 되겠어.”


이대로 요리 연습을 강제로 하게 되면 한 학기 만에 언니에게 요리를 해줄 정도의 실력은 갖추지 않을까.


“제발 도와줘! 너 코스모스 가문이어서 대수림 근처에서 살다가 왔잖아. 식물을 어떻게 할 방법을 알고 있지?”

“도움 필요 없다며?”


최대한 무해한 표정을 지어보는 오필리아지만, 나한테는 안 통하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거 다 해줄게!”


교장 덕에 오필리아가 입학하자마자 자기 입으로 저런 말을 하다니.

아무리 금쪽이여도 8 서클 대마법사 편지 앞에서는 정신을 차리나 보다.


“12시간 안에 처리하려면 여기저기 다녀야 하는데.”

“클로에 가문의 이름을 걸고 다 해줄게! 제발 도와줘!”


고개까지 숙이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는 오필리아.

가문의 이름까지 걸다니.

이 세계에서는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는 마법이 있어서 가문의 명예를 건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교장 덕분에 생각보다 금쪽이를 완전히 제어할 기회가 쉽게 찾아왔다.


“정말로?”

“그래, 진짜야!”


게다가 이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정말로 오필리아가 아카데미 음식에 관여라도 하면···.

아주 많은 학생이 화가 나지 않을까.

오필리아의 요리 실력은 정말 끔찍하니까.

난 오필리아의 요리 숙련도가 정말 거지같이 안 오르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나도 맛없는 음식을 먹는 건 고역이고,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이다.


“일단 식당으로 다시 가보자고.”


*****


식당의 상태는 처참했다.

갈기갈기 찢겨있는 식물 줄기들.

사방에 흩뿌려진 초록색 액체.

박살 난 의자와 식탁까지.


“이 정도면 징계가 아니라 최단기 퇴학이겠는데?”

“안 돼!”


오필리아의 퇴학은 나도 바라지 않는 거긴 하다.


“노움.”

“반가워요, 계약자! 헉, 이게 무슨 일이에요?”

“식물 상태가 어떤지 알아봐 줘.”

“알겠어요.”


생각보다 식당 안이 완전히 점령당한 건 아니지만, 여전히 두께가 1m 정도 되는 식물 줄기가 식당을 뒤덮고 있었다.


“어라? 얘 왜 이래요?”

“왜?”


노움은 식물을 토닥토닥 다독였다.

일종의 교감이랄까.


“흠··· 안타깝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얼마나?”

“길어야 이틀 정도일 것 같아요. 모든 생명력을 사용해서 과성장을 해버렸네요.”

“이틀이라··· 그러면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 주라.”

“알겠어요~”


식당 배관 안으로 쏙 들어가는 노움.

이틀 뒤에 생명력이 다하면 그때 처리하는 게 가장 힘들이지 않는 방법이겠지만, 그럴 순 없다.

주어진 시간은 12시간뿐이니까.


“왜 혼자 중얼거리는 거야?”

“정령이랑 대화하는 거야.”

“뭐? 너 정령사야?”

“신기해?”

“당연히 신기하지. 제국에 정령사가 몇 이나 된다고. 그런데 뭐가 이틀이라는 거야?”

“이틀 뒤면 과성장한 식물의 생명력이 다 해서 죽을 것 같아.”

“그러면 그냥 두면 해결돼?”

“해결은 되고 넌 요리사가 되겠지.”

“제발 그건 안 돼! 어떻게 방법이 없어?”

“기다려 봐. 일단 무슨 식물인지 알아야 대책도 세우지.”


오필리아가 처참하게 찢어놓은 식물 줄기를 자세히 살펴봤다.

유연하고 딱딱하지 않은 줄기.

식당을 녹색 풀장으로 만들 정도의 물이 줄줄 나오는 높은 수분 함량.

줄기 속에 비어있는 공간이 있어서 보기보다 물이 빠져나간 줄기는 가벼웠다.


‘수생 식물인가?’


물이 있는 배관을 따라 식당까지 줄기를 뻗은 것까지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건물들은 지금 사람이 적어서 물을 쓸 일이 없고, 그나마 식당이 가장 물을 많이 쓰는 곳이니까.


“오필리아, 너 식물 알아볼 수 있어?”

“···책에서 본 거라면 구분할 수 있어.”


마법사여서 기본적으로 계산이나 기억력 부분은 범인의 수준이 아니긴 하지만, 책에서 본 지식만 가지고 실전에서 바로 써먹기는 어려운 일이다.

식물도감을 달달 외웠다고 해도 실제 산속에서 식물 찾는 건 초심자에겐 어려운 일이니까.


“연금부 인공 연못 쪽에 가서 지금 기르고 있는 수생 식물 종류를 파악해서 나한테 알려줘.”

“수생 식물?”“이번엔 마법 쓰지 말고. 연금부 사람들이랑 마주치면 사과도 하고. 모르겠으면 아는 척하지 말고 모른다고 하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봐.”

“···알겠어.”


한껏 풀이 죽은 목소리.

사실, 식당을 가득 채운 식물이 뭔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하지만 오필리아가 아무것도 안 하고 내가 다 해결하면 교장의 성격상 나한테까지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오필리아가 책임져야 할 일을 왜 네가 책임지냐면서.

그렇다고 그냥 두면 이 천재 캐릭터가 한 학기를 요리사로 그냥 날리게 된다.


오필리아가 일으키는 지나치게 큰 사고는 막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아무것도 못 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 통제하면 아예 성장이 막힌다.


깨달음은 남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식은 어떻게 강제로 넣어줘도 지혜로 만드는 건 본인이 해야 하는 일.

클로에 가문이 여러모로 오필리아를 위해 번개의 마나에 관한 연구자료도 구하고, 마법서도 가져왔을 거다.

다만, 오필리아가 그걸 너무 의심 없이 믿고 있다는 게 문제.


오필리아 시나리오를 하면서 느낀 건 정말 개복치 같은 번개의 마나를 통제하려면 그냥 개인의 감각에 맡겨야 한다.

책이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책은 그냥 가이드로 삼고, 본인의 몸에 최적화하는 작업을 계속 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깨닫게 해주려면 옆에서 그냥 말해주는 걸로는 안 된다.

책이랑 현실이랑 다르다는 걸 경험해 봐야 한다.


“해 질 때쯤 기숙사 로비에서 보자고. 나도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뭘 확인하게?”

“배관이 어떻게 놓여있는지 알아야 재를 뽑든지 끌어내든지 하지.”


내가 아카데미를 잘 알긴 하지만, 그렇다고 배관 위치까지 다 외울 정도로 미친 사람은 아니다.

아카데미 건축 도면은 당연히 학생에게 공개되지 않는 정보다.

유출되면 암살 위협이 증가하거나 보안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


오필리아가 연금부로 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노움이 다시 돌아왔다.


“계약자!”

“꽤 걸렸네? 멀리 있었나 봐?”

“너무 미로 같아서 뿌리를 못 찾겠어.”

“그래? 얼마나 미로 같길래?”

“갈림길이 너무 많아. 나 한 몸으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돌아왔어.”

“잘했어. 돌아가서 쉬고 있어.”


정황상 지하 수로 광장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내가 지하 수로로 들어가서 식물을 죽인다고 해도, 그 식물을 밖으로 빼내는 건 매우 힘든 일.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식물의 생존 본능을 이용해 밖으로 불러내는 게 최선이다.

일종의 낚시.

그러기 위해서는 배관의 길이, 구조 등이 어떤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미끼를 얼마나 풀어야 할지, 낚싯줄의 길이를 얼마나 해야 할지 견적이 나오니까.


이런 걸 잘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은 아니고 종족이 있다.

호감도를 높여 둔 보람이 있을 것 같았다.


*****



아카데미에 살고 있는 고스트들은 낮이 되면 지하에서 잠을 잔다.

그래서 아카데미에는 지하 공간도 꽤 있는 편.

가장 큰 지하 광장은 고스트의 본부로 사용된다.

곧 해가 지고 순찰 업무가 시작되기에 광장에 있는 고스트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똑똑-


광장 입구에서 보초를 서던 고스트는 의아했다.

고스트라면 문을 두들길 필요가 없기 때문.

그렇다면 다른 종족의 방문이라는 건데, 인간이 지금 시간에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도 확인하기 위해 문밖을 내다보는 고스트.

유령답게 상체만 쑥 문밖으로 삐져나왔다.


<안녕하세요.>


[분당 자연력이 30씩 소모됩니다. 970/1000]


“앗! 혹시, 이번에 신입생으로 왔다던···?”

<맞아요.>

“들어오세요.”


고스트는 별다른 의심 없이 문을 열어줬다.

이것이 호감도 90%의 힘.


지하 광장 바닥에는 아카데미 지도가 거대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지도 위에 반짝이면서 움직이는 점은 실시간으로 고스트들의 위치를 보여줬고,

고스트들이 책상 앞에 앉아 뿔을 빛내면서 현장에 있는 고스트들이 보내오는 정보를 분주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고스트들에게 신뢰를 쌓기 전에는 절대로 들어올 수 없는 곳.

하지만 에반에게는 프리패스나 다름없었다.


경비를 서던 고스트의 뿔이 밝게 빛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더 높은 직책을 맡고 있는 것 같은 고스트가 에반에게 다가왔다.


“은인의 후예를 환영합니다.”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네, 아카데미 건물에 깔린 배관을 표시한 지도가 있나 해서요.>

“그건 왜···?”

<식당이 과성장한 식물 줄기로 폐쇄가 되어서요.>

“아~ 그건 보고 받아서 알고 있습니다. 신입생이 연금부 근처에서 전격 마법을 함부로 써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놀라운 일이죠.>

“뭐, 신입생이니까 이해는 합니다. 배관이 터지거나 한 것도 아니어서 그냥 두면 해결될 텐데요.”

<교장 선생님이 12시간 안에 해결하라고 제 동기에게 통보했거든요.>

“아하··· 동기를 도와주시려고?”

<그런 셈이죠. 해결 못 하면 밥이 없는 것도 문제고요.>

“지도라고 하기보다는 저희가 순찰 루트를 그려놓은 건 있습니다. 따라오시죠.”


고스트들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구멍이나 틈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어서 이런 배관 같은 것도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거대한 문서실에서 종이 한 장이 날아와 에반 눈높이에 맞춰서 펼쳐졌다.


<식물 뿌리가 어디에 있을까요?>

“아마 각 건물의 배관이 모두 모이는 지하 수로 공동일 가능성이 크죠.”

<정화 마법진이 있는 곳인가요?>

“그렇죠.”

<마법진의 마나를 흡수하는 건 아니겠죠?>

“그랬으면 벌써 경보가 울렸을 겁니다. 배관을 막은 식물이 그 정도 몬스터라고 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으니까요.”


높은 수준의 몬스터일수록 마나를 잘 흡수하고, 흡수한 마나를 활용해서 진화한다.

이번에 과성장한 식물은 다행히 그 정도 변형은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러면 식물의 지능이 낮고 전체적인 스펙이 떨어진다는 거여서 문제 해결이 한층 쉬워진다.


<이대로 두면 사후 처리가 귀찮아지겠죠?>

“배관이 상하지 않으려면 죽은 다음에 일일이 잘라서 꺼내야 하긴 하죠.”

<그러면 스스로 나오게 하는 게 어때요?>

“그럴 방법이 있습니까?”

<마나에는 딱히 반응을 안 하죠?>

“맞습니다. 몸집만 비대해진 경우라서 다른 쪽 부분은 일반 식물이랑 다를 게 없는 상태죠.”

<아무리 변형이 됐다고 해도 근본이 식물이라는 건 변하지 않죠.>


고스트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물은 본능적으로 좀 더 비옥한 곳으로 뿌리를 뻗는 법이죠.>

“하지만 지하 수로에는 전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대지와 맞닿는 부분이 없습니다.”

<꼭 모든 식물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건 아니죠.>

“···?!”

<저한테 물의 토템이 있으니까, 그걸 이용해 낚시를 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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