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장남이 이혼 후 효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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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슬라
작품등록일 :
2024.09.0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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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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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화 오늘은 아들이 요리사

DUMMY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역시. 어제 치통으로 많이 아프셨나 보네.”


평소에는 설거지 거리가 생기는 걸 보지를 못하시고.

바로바로 하시던 어머니였다.

그런데 어제는 싱크대에 잔뜩 설거짓거리가 쌓일 동안,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주무셨다.


’차라리 잘 되었지.‘’

‘치통에 아플 텐데. 설거지는 효자 아들이 대신해야지.’


고무장갑을 끼는 손에 자연히 힘이 들어갔다.

수세미에 세제를 짜고, 평소에는 귀찮아서 하기 싫던 설거지도.

엄마 생각을 하면서 하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룰루~♪ 랄라~♬”

“즐겁네.”

“기분도 상쾌하고.”


설거지를 다 마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마, 오늘도 어제 임플란트를 받기 위해 이 갈이를 하고 임시 부착물을 붙여서.

밥을 먹기는 힘들 것이다.


“죽이라도 끓여드려야 하는데....”


아내 때문에 요리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매니저 일을 하면서, 밥을 챙겨야 했고.

신혼 때는 배달 음식이나, 어머니가 보내준 반찬으로 때우다가.

이렇게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간단한 냉동 음식 조리부터 시작하여 차츰 웬만한 요리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죽 거리가 뭐가 있나?”


냉장고 안을 살피니, 각종 채소가 보였다.

당근. 양파, 호박, 파프리카. 표고버섯, 새송이 버섯.


“좋았어.”


야채에.

고기도 좀 넣었으면 좋겠는데.


소고기가 있나 냉동고를 살펴봤는데.

조기와 냉동만두, 그리고 얼린 밥 등이 보이고.

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후우~. 내가 정말 무심했구나.’


나만 강남에서 비싼 식당에 가고, 값비싼 한우와 회를 먹었었다.

술집도 한번에 돈 백만원은 나오는 곳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들렸다.


‘모두 접대를 위해서였다지만. 할말이 없네.’


고기 한점 없는 냉장고를 보니, 죄송스러운 마음 뿐이었다.


‘소고기 한 근 사서 보내 드리는 게 뭐가 어렵다고.’

‘후우~. 죄송해요. 어머니. 아버지.’

‘이젠 진짜 안 그럴게요.’


매일 불고기에 잡곡밥을 먹게 해드릴 것이다.


“옳지. 참치캔은 있네.”


참치 죽을 만들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야채를 다지고, 윙을 꺼내 볶았다.

어느 정도 익으며 구수한 냄새가 나자.

불려놓은 흰쌀을 넣고 다시 한번 볶았다.

이제 여기에 물을 붓고, 조금 끓여주면 된다.

참치는 제일 마지막에 넣으면 식감도 살고, 비린내도 나지 않았다.


“좋았어. 엄마. 죽은 완성이 되었고.”


나는 손을 털며, 이제 아버지 밥을 차릴 준비를 했다.

다진 야채가 남아 있었다.


“음. 찌개는 어제 엄마가 끓여 놓은 김치찌개면 될 것 같고.”


반찬이 하나 더 있었으면 했다.


“김치찌개엔 역시 계란말이지.”


마친 다진 야채도 있어, 예쁘게 부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냉장고에서 계란 3개를 꺼내 풀고, 거기에 잘 다진 야채와 소금, 후추 간을 약간 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푼 계란을 따랐다.


치이이이!

군침 도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양반김 하나를 까서, 계란 위에 한 줄로 깔았다.

이렇게 하면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았다.


“이제 잘 말면 되지.”


중요한 순간이었다.

프라이팬을 손잡이 부분을 살짝 들어, 계란 국물이 가장자리로 몰리게 하고.

젓가락으로 살살 계란 지단을 말았다.


“좋았어. 계란말이 완성.”


도마에 올려 예쁘게 썰고, 접시에 담아냈다.

그 사이 죽도 보글보글 끓어서, 이제 약불로 줄여 잘 익게 저어주면 될 것 같았다.


“요리는 정성이지.”


주걱을 들고, 죽이 냄비 바닥에 눌러붙지 않게 계속 저었다.

그렇게 한참 요리에 집중하는 사이.


“현수야. 엄마 깨우지.”


잠에서 일어났는지, 엄마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왔다.


“어제 엄마가 맛있는 거 차려줬잖아. 그래서 오늘은 아들이 대접하려고 솜씨 좀 부려봤지. 방해하지 말고, 들어가서 조금 더 눈 붙이고 나와. 죽 완성되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하니까.”

“얘는. 네가 무슨 요리를 한다고...”

“후후. 먹고 깜짝 놀라지나 마셔. 자자. 어서 들어가.”

“설거지라도.”

“어허! 오늘은 아들 효도 데이라니까. 자꾸 방해할 거야?”


나는 엄마의 등을 떠밀며, 다시 안방으로 모시고, 마저 요리를 완성했다.


“어때? 입에 좀 맞아?”

“아들....”

“왜? 좀 짠가?”


엄마가 죽을 한술 뜨고, 손을 부르르 떨었다.


‘아까 간을 맞춘다고, 참치를 넣고 소금을 더 넣었는데. 그래서 좀 짜졌나?’


“아니. 너무 맛있다! 아들이 해줘서 그런가 꿀맛이야.”

“아.....”

“잘 먹을 게 아들.”

“응. 많이 드셔. 저기 더 있으니까.”

“어디 그러면 나도.”

“이이가!”


찰싹!

우리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도 한입 먹으려다가.

엄마의 찰진 손맛을 먼저 맛보아야했다.


“아빠. 아빠는 계란말이 만들었어. 이것도 먹어봐.”

“아들! 역시 너밖에 없다. 내 서러워서. 죽 줘도 안 먹는다.”


두 분은 사이좋게 투덕거리면서.

서로 자기 것은 먹지 말라며 몸으로 음식을 가리고. 내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왜 아들이 고향에 내려오면 그렇게 부모님이 밥부터 챙겨주었던지.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


부모님께 후식으로 커피까지 잘 타드리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어제 대표님이 전화를 받고 나눈 이야기가 있어. 이제 해결을 봐야 했다.


“아! 젠장!”


미니밴을 주차장에 대고, 사무실로 올라가려는데.

모퉁이 사이에서 이미연이 나타났다.


“야! 너 제정신이야!”


보자마자 소리부터 지른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보람찼던 기분이. 이미연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날아갔다.


‘빨리 갈라서야지.’

‘어후! 저 얼굴을 어떻게 6년이나 매일 봤나 몰라.’


고개를 내젓고, 앞으로 걸었다.


“야! 내가 이야기하잖아? 어딜 무시하고 그냥 가! 너 미쳤어!”

“시끄러워. 조용히 말해. 누가 들을라.”

“!!!”


내 말에 이미연이 흠칫 놀랐다.

그리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살피고는.

이내 아무도 안 보이자 다시 기고만장해졌다.


“내가 바보니? 주변에 사람 있는지 없는지 살피지도 않았게. 그보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갑자기 차를 가지고 사라지질 않나. 뭐? 어머니 임플란트. 그게 어디 한두 푼 하는 줄 알아? 그거 누구 카드로 했어? 너 미쳤어?”


이런걸 두고 적반하장이라고 하는 거구나.

헛웃음만 나왔다.

잘못을 한 놈이 더 성을 내고 있었다.


“해드릴 만 해서 해드렸고. 돈은 내가 알아서 갚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그리고 나 정신 말짱하고, 그 어느 때보다 맑다. 내가 태성기업 사장하고 바람을 핀 걸 또렷이 기억할 정도로.”

“이...야! 그건 오해라니깐. 내가 오해라고 했잖아. 내가 바람을 피긴 뭘 펴? 증거 있어?”

“글쎄?”


내가 묘하게 웃자 불안했던지, 이미연이 바닥을 구두 굽으로 콱 밟았다.


“그냥 밥 한번 먹은 거야. 광고 출연 제의가 들어와서. 네가 생각하는 그런 더러운 일은 없었어. 그리고 내가 이렇게라도 광고를 찍고, 작품에 출연하지 않으면. 네가 지금 먹고나 살 수 있었을 것 같아. 무능력해서 아무것도 할 줄도 모르는 널 누가 구제하여 매니저를 시켜줬는데? 잊었어?”


‘잊지 않았지.’

‘아주 똑똑히 기억하지.’

‘결혼을 하고, 거의 매일 후회를 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너 자존심 상할까봐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네가 어디 가서 제대로 돈이나 벌어 온 적이 있어? 다른 배우들은 다 사장 마누라. 의사 아내. 재벌가 며느리 되어서 떵떵거리며 살아. 나만, 너 같은 보잘것없는 매니저 만나, 사랑 하나 보고 결혼까지 했다고!”


이미연이 악에 받친 듯 쏘아붙였다.

그녀의 악담에.

무시에.

면박에.

예전이라면 큰 타격을 받고, 의기소침하여 잘못하였다고 빌었겠지만.

지금은?


‘내가 미쳤냐?!!!’

‘저런 가스라이팅에 당하게.’


나는 더는 무능한 장남도 아니고.

무기력한 남편도 아니다.

나 김현수는 부모님의 하나밖에 없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자긍심이다!


아들 얼굴만 봐도 환하게 웃음을 짓던, 두 분을 떠올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전혀 화가 올라오지 않았다.


“이! 씨! 씩! 씩!”


이미연이 거침없이 험담을 쏟아내고, 지쳤는지 거친 숨을 헐떡였다.


“다 했어? 이제 나 가봐도 될까?”

“너.....!”


이미연이 말을 잇지 못하며, 나를 향해 삿대질하며 손을 부르르 떨었다.

몹시 화가 나서 도저히 말도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재밌네.’

‘매번 싸우면 내가 항상 잘못했다고 빌며 끝났는데.’


오늘은 달랐다.


“대표님하고 약속이 있어서. 네 한가한 넋두리는 더 못 들어주겠다.”

“야! 김현수!”

“살살 말하라고. 그래도 다 들리니까.”


이미연의 사우팅에 핀잔을 주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혼 준비나 해. 곧, 변호사 선임해서 보낼 테니까.”

“뭣?”

“그제 말했잖아. 너랑은 더는 같이 못 살겠다고. 마누라 바람 피운걸 알고 어떤 남편이 함께 살아? 안 그래?”

“안 그랬다니까!”

“그건 네 일반적인 주장이고. 뭐. 끝까지 우겨보시던가. 그러면 법정에서 싸우고. 기자들도 다 알게 되겠지. 네가 바람을 피워서 우리가 이혼한다는 거.

그런 기사 나기 싫으면 조용히 찌그러져 있다가. 이혼 합의서에 도장이나 찍고. 위자금하고 재산분할로 줄 돈이나 준비해 놔. 나도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이 끊기면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이미연에게 한발 다가가 낮게 읊조렸다.


“......”


그녀는 내 말에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을 지었다.

돌아서는 날 붙잡기 위해 손만 움찔거리다가.

타이밍을 놓치고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별것도 아닌 게.”


나는 돌아서서 앞으로 걸으며 그 모습을 모두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시원하게 복수했다는 생각에.

저 발바닥 아래에서부터 정수리 끝까지 올라오는 강력한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짜릿하네!’

‘제대로 한 방 먹였어.’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 같아.’


회사가 아니었다면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통쾌함이었다.


**


6층 대표실 안.


김원민 대표와 마주 보고 앉아, 이렇게 어색한 시간이 있을 거라곤 예전에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다 식어가는 찻잔을 앞에 두고,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생각하고 있겠지. 다시 붙잡을 방법은 없는지.’

‘이미연 그년이 연기력은 좀 딸려도. 그래도 꾸준히 주·조연을 하며,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알짜배기 배우이니까.’


“대표님.”

“어어. 그래. 일단 차부터 들자.”


김원민 대표가 앞에 다 식은 찻잔을 들었다가.

이내 인상을 쓰고 도로 찻잔을 내려놓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현수야.”

“네.”

“마음 굳힌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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