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마스터. 일어나실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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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0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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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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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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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 과거의 기억과 라비린스

DUMMY

“마스터, 일어나실 시간이야.”


몸을 흔드는 감각에 의식이 각성한다.


“일어나. 마스터. 이리스가 깨우고 있어.”


“어훗?!”


물컹. 무엇인가가 얼굴을 짓눌렀다.


황급히 눈을 열자, 코와 뺨을 빙글빙글 누르는 새하얗고 굴곡진 다리가 보였다.


다리 너머 시선을 조금 올린 곳.


하늘색 스프라이트 줄무늬가 새겨진 순백의 수호자님도 안녕하신 것 같았다.


뺨을 희롱하는 다리를 잡고 들어 올리자, 그제야 한 걸음 물러나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는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시선의 역방향에서 한 소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파스텔톤의 연두색 눈동자가 시야 가득 들어온다.


소녀는 제로 거리에서 나와 시선을 맞춘 채 속삭이듯 말했다.


“마스터. 손님이 침입했는데 죽어버리셨어.”


“손님? 아, 모험자인가. 요즘 꽤 자주 오네.”


나는 소녀의 볼을 누르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지금도 당당히 서 있는 소녀와 이 소녀의 얼굴을 닮았다.


아니 똑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두 소녀는 쌍둥이다.


다른 점은 머리색과 눈동자색 정도일까?


당당한 자세로 요즘 마이붐이 온건지, 다시 얼굴을 밟으려 다리를 들어 올리는 소녀가 아르케.


덮고 있는 이불의 한 쪽을 걷어 올리고 침입하려는 소녀가 이리스이다.


“이리스. 이제 일어날 거니까, 들어오지 마.”


“왜?”


“왜라고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이리스가 고개를 기울이자, 하늘색 보브컷 모양의 머리칼이 귀엽게 흔들렸다.


애석하게도 연두색 눈동자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이리스와 이대로 대화하면 100문 100답이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이불을 걷어 올리고 상체를 세워 크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 사이 무릎 위에 묵직한 것이 내려앉았다.


하품 때문에 감겼던 눈을 뜨자, 앞에는 연두색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스터 1계층에 들어 온 침입자는 5명이야. 3명 죽으셨고 2명 도망갔어.”


아르케였다.


아르케는 나를 끌어안는 것처럼 빙글 몸을 돌렸다.


하늘색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는 그 시선에는 그다지 비장함이나 슬픔, 통쾌함, 즐거움 따위 감정은 담기지 않았다.


아르케가 앙증맞은 손을 펼치며 ‘릴리스 시스템 기동’이라 중얼거리자, 눈앞에 핑크색 아기자기한 빛무리가 일어나 홀로그램처럼 화면이 허공에 떠올랐다.


덤으로 팬시한 캐릭터가 홀로그램 화면의 테두리에 장식되어 있는 것은 애써 무시했다.


화면에는 전사 2명, 마법사 1명, 궁수 1명, 탱커 1명으로 보이는 집단이 단풍처럼 주황색으로 물든 숲 안을 걷는 모습이 비춰졌다.


대략적으로 직업을 나눈 것이지만, 그저 검을 든 사람 2명, 지팡이 가진 사람 1명, 활을 가진 사람 1명, 큰 방패를 가진 사람 1명이다.


아리스도 궁금한 모양인지 등 뒤에 달라붙어 내 어깨에 턱을 괴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강한 것 같아?”


“저번보다 송사리 분들이야. 다크울프 한 마리에 3명이 죽었어.”


그 말에 조금 안심하면서도, 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정지해있던 화면이 재생된다.


인간을 발견한 다크울프가 광기를 품은 붉은 안광을 번뜩거리며 공격 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비대할 정도로 근육을 팽창시킨 다크울프는 폭발적인 속도로 선두에 있던 탱커를 그대로 들이받는다.


탱커는 그대로 날아가 나무 기둥에 처박히며 허리가 꺾이지 말아야할 방향으로 꺾여 버린다.


그 모습에 검사가 크게 당황하며 검 손잡이를 잡기 시작했지만 늦었다.


서걱. 순식간에 달려든 다크울프의 날카로운 발톱에 상체와 하체가 마치 두부 가르듯 분리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검사의 사체에서 선혈이 뿜어지고 쏟아져 내린다.


다크울프는 그 피를 온 몸으로 받으며 감미로운 듯 입가에 흘러 떨어진 피를 날름 핥고는 붉은 눈을 더욱 요사스럽게 빛냈다.


2명이 개죽음 당하자 궁수와 전사의 행동은 빨랐다.


급히 대화를 나눈 후, 궁수는 다크울프를 견제하고 검을 빼든 전사는 마법사의 다리를 베어냈다.


가장 다리가 느린 마법사를 미끼로 쓸 모양이었다.


쓰러진 마법사의 비통한 외침에도 궁수와 전사는 무시하고 서둘러 자리에서 이탈한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리스, 아르케. 더워 비켜 줘.”


“아직 이야.” “조금 더.”


왠지 이른 아침부터 탈진감 밀려들어왔다.


어디서부터 교육을 잘못한 것일까?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는 한 편, 이렇게 되어서 좋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아르케가 나를 끌어안으며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었다.


“또, 옛날 일. 생각하시는 거야?”


“으음···. 뭐, 가끔 생각나니까 말이야.”


‘나도’라며 내 앞쪽으로 자리를 옮긴 이리스도 아르케와 같이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며 눈을 감았다.


“아니, 사람의 마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희들 훔쳐보지 말라고.”


“닳는 것도 아니시니까.” “마스터도 보실 거야?”


당연하다는 듯 당당히 선언하는 아르케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리스.


그 모습에 체념하고 지금까지의 일을 상기했다.


이 세계에 불합리하게 전생 당했던 기억.


코어 에어리어의 자연 속에서 홀로 생존을 위해 분투했던 기억.


권속, 다시 말해 서번트를 얻기 위해 가챠를 돌리고 시련에 도전해 몇 번이나 실패했던 기억.


그리고 이 쌍둥이 소녀들을 시련에서 구해낸 그 날의 기억들을.


나는 두 소녀와 이마를 맞댄 채 떠올리기 시작했다.



——————◇——————



나의 인생에 대해 말하자면 뭐, 무난했던 인생이었다.


한 가지. 아니 세 가지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긴 했지만, 누구나 겪어볼법한 감당 가능한 안 좋은 일이다.


그 중 한 가지는, 잘 다니던 회사가 경쟁업체와 치킨게임이 붙어 파산한 정도라고 말하면 알 수 있을까?


회사가 매각당하면서 부지의 매각 대금이 1차적으로 직원들의 퇴직금으로 지급되었기에 다행히도 퇴직금은 건질 수 있었다.


이 일로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한가롭게 지내던 중, 문득 취미생활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다운 취미를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인터넷 서핑이나 영상 시청 정도일까?


찾는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무엇을 해야 취미가 되는지 감도 잡지 못하고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즐겨 찾던 게임 전문 영상을 보던 중 눈이 크게 떠졌다.


이유는 한국과 몇몇 국가에서 마켓 1위를 달성한 게임인 <세피로스의 스티그마>의 개발사 <트레센던스>사에서 신작 게임이 곧 발매된다는 것.


영상을 모두 시청한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펀딩?”


그렇다.


영상 내용은 신작 게임의 개요와 특별한 사전 펀딩에 관한 것이었으니까.


<세피로스 스티그마>.


줄여서 세피로가 3년 동안 여러 국가의 모바일 게임 시장 1위를 유지 중이기에 막대한 수입을 얻고 있는 만큼, 굳이 펀딩을 해야 할까 의아했다.


개발사에 의하면 이번 게임은 특별한 프로모션으로 펀딩 형태로 기획 되었으며, 펀딩 참여시 특전을 제공한다는 것.


“사전 예약이나 시즌 패스 아닌가?”


뭐, 개발사가 말장난으로 유저를 유혹하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니 넘어가자.


아무튼, 나는 이 소식이 기뻤다.


그것은 바로 세피로에 적용되었던 AI생성형 캐릭터가 이 게임에도 적용된다는 것.


여타 다른 인공지능과 다르게, 트레센던스사의 AI 캐릭터 생성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각 플레이어마다 가챠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전부 다르다.


캐릭터별 스토리도 모두가 개별적으로 다르다.


모든 캐릭터의 세계관은 통합되어 있어, 판타지 세계에 뜬금없이 SF 세계관의 캐릭터가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더욱이 캐릭터 자체도 원화가가 그린 것처럼 아름답고 미려하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10인 10색을 넘어 만인 만색이었다.


그러나 게임성 자체는 그다지 좋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세피로는 기본 용사가 파티를 모집해 마왕의 군세를 격파하는 내용의 흔히 말하자면 양산형 모바일 게임이다.


더욱이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운 캐릭터나 능력치가 높은 캐릭터를 뽑기 위해 ○투버들은 가챠에 무한으로 과금한 뒤 폭사하는 모습에 일각에서는 과도한 사행성 게임이라고 비난받기도 하는 게임이었다.


게임을 좋아했지만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오느라 이렇게 영상으로 대리만족을 하던 나날이 떠올랐다.


검소, 절약··· 돈 쓸 곳이 없었던 나는 어떨까?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최고잖아···.”


순간, 이 모든 상황이 신의 계시와 같이 느껴졌다.


“세피로에 진입해서 바닥을 깔아줄 바엔 이왕이면 새로운 무대가 좋지.”


나는 곧바로 영상 하단에 첨부된 차기작 펀딩 페이지에 접속해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라비린스 : 심연의 던전>.


조금 올드한 게임명이라 생각하지만, 세피로도 그렇고 게임사 특색이라 생각하면 고풍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핸드폰 화면에 표시된 링크를 탭하며 펀딩 사이트에 개제된 게임의 개요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라비린스 : 심연의 던전>은 던전을 확장하며 외적을 막는 던전 운영&디펜스류의 게임이었다. 다행히도 개인적으로 호불호 중에 좋아하는 장르에 속하는 게임이었다.


또한 세피로와 마찬가지로 AI를 통한 자동 캐릭터 생성 기술이 적용된다고 한다.


찰나의 고민 후, 마음을 굳힌 나는 펀딩의 주요 상품을 살펴보았다.


3만원, 5만원, 15만원, 30만원의 패키지.


그리고 특이하게도 투자 패키지라는 것이 존재했다.


투자 패키지 : 크리스탈(투자액별 차등 지급), 인연의 키링*5, 원화집, OST USB, 캐릭터 피규어, 회사 방문체험, 게임 피드백

*본 투자 패키지는 한화 10,000,000원부터 가능합니다. 자세한 문의는 하단에 기재한 이메일, 유선 번호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투버가 세피로에서 이상적인 캐릭터를 뽑기 위해 무한가챠를 진행하고 폭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전작인 세피로의 특징 중 하나가 10연차를 돌리고 캐릭터를 선택하지 않으면 사용한 재화의 50%를 환불받는다.


전작과 같다는 가정 하에 15만 원 패키지면 최소 3번 10연 가챠를 돌리고 환불받아 최대로 돌리면 어떻게든 5회. 30만 원 패키지도 10연차 10회 정도인지라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튜버들도 몇 백만 원은 그냥 사용할 정도인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과연 이 게임을 오랫동안 할 것인지.


30만 원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게 되었다.


“별다른 취미도 없고 말이지. 계좌 잔액도 이 정도면 부담은 없는 편이고···.”


끄응 하고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당장 좋은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기간이 지날 때까지 상태를 보고 판단할까?”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시선은 핸드폰 화면의 한 지점에 고정된 채였다.


“그래, 그렇지. 따지고 보면 이것도 투자 상품이잖아? 여기 나와 있는 것도 투자 패키지이고.”


투자. 말 그대로 내 자산을 어딘가에 맡겨 이익을 내는 것이다. 주식, 코인, 부동산 지금까지 아무것도 해본 적 없는 나에겐 이 투자라는 단어가 감미롭게 들렸다.


“뉴스 보면 주식이고 코인이고 부동산이고 전부 잘못 투자하면 망하는 건 똑같지 않아?”


꽤 그럴듯한 합리적 생각이다.


내가 투자한 게임이 대박을 터트리고 한강 주변에 건축된 높은 아파트의 최상층에서 와인을 마시며 유유자적한 자신의 모습.


그런 미래를 상상하니 이 패키지를 사지 않는 미래는 이미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투자는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에 하는 것이 좋지!”


나는 투자 패키지에 파란색으로 적힌 전화번호 링크를 클릭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착신음이 끝나길 기다리길 몇 분.


핸드폰 너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안녕하십니까? 트랜센더스사 고객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펀딩 사이트를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라비린스라는 게임의 투자를 하고 싶은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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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마스터. 일어나실 시간이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20. 그대의 희생은 숭고했느니라 NEW 2시간 전 0 0 12쪽
20 19. 고요한 평화는 비탄의 외침에 깨진다 24.09.17 1 0 14쪽
19 18. 마스터, 메이드는 힘든 일이야 24.09.17 2 0 12쪽
18 17. 의심과 오해의 해소는 어렵다 24.09.16 5 0 12쪽
17 16. 따스한 봄볕에 황혼은 춤춘다 24.09.15 7 0 12쪽
16 15. 잠자는 숲속의 메이드x2 24.09.14 6 0 12쪽
15 14. 공격적인 입사 면접에 대하여 24.09.13 10 0 13쪽
14 13. 어미새 또한 아기새였다 24.09.13 10 0 12쪽
13 12. 후회에서 비롯된 각오 24.09.12 11 0 11쪽
12 11. 세번째 맛. 공(空)의 맛 24.09.12 8 0 13쪽
11 10. 파멸의 가챠는 심연으로 향한다 24.09.11 8 0 12쪽
10 9. 진화하는 능력, 퇴화하는 지능 24.09.11 7 0 12쪽
9 8. 메딕은 언제나 옆에 있었다 24.09.10 9 0 11쪽
8 7. 고도의 고고한 고고학자 24.09.10 9 0 14쪽
7 6. 두 번째. 고통과 슬픔의 맛 24.09.09 11 0 12쪽
6 5. 첫 가챠는 보라색맛이 났어 24.09.09 10 0 13쪽
5 4. 알고 있는가? 석판은 도구다 24.09.09 9 0 11쪽
4 3. 이세계에 유기당해 버렸다 24.09.09 10 0 13쪽
3 2. 안녕히 지구, 어서와 이세계 24.09.08 13 0 12쪽
2 1. 투자 제안은 사기일 수 있다 24.09.08 13 0 12쪽
» 空. 과거의 기억과 라비린스 24.09.08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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